#시/영상시

한 아짐에게 수작 걸다/이대흠

경호... 2015. 7. 17. 05:09

 

 

 

 

 

 

 

 

 

 

 한 아짐에게 수작 걸다 / 이대흠

 

 

 

 

석양입니다. 역시 해지는 모습은 가을이라야 합니다.

모든 것이 여물고 가닥 나는 시간들입니다.

얼마전에 두둑을 하고 씨를 뿌렸던 채소밭에는 푸름이 넘실거립니다.

모서리 밭에 한 사람이 앉아서 무 잎을 다듬고 있습니다.

 

뭐 하세요?

조간 솎았소

여그넌 아짐 밭이오?

문 농사럴 요라고 지섰으까?

가물아가꼬 올해넌 무시 안되부요야

그나저나 이름이 무에요?

성은 박인디...

어디 박씨요?

함안이라

와야, 양반이구마. 근디 이름언 무요?

이름언 읎어

긍께 이름언 읎어요? 박읎어?

문 그란 이름이 다 있다요?

이름이 너머 물짜서...

이름얼 노코도 물짜다넌 말을 쓰요이.

 

야  와마, 얼굴이 참말로 곱소이,

저번에 어디 갔드니 똥례라넌 이름도 있고

어뜬 어르신은 꼬순이란 이름얼 습디다.

 

꼬순이. 그라제. 꼬순이도 있고 꼬술이도 있고 꼬실이도 있고 그라제

그래요이, 글먼 아짐 이름언 끝순이요?

끝순이? 와마 말 안한당께. 너머 물짜가꼬. 말 안한당께넌 그라네이.

이름얼 알아사 데이트럴 신청하든가 그라껏 아니요.

 

쩍서 우리 아들언 언능 나오라고 소리해싸구마이

언능 가씨요

나-가 지금 아짐 이름 안 알고 갈 것 같트요?

하-마. 징합니이. 무디라 안 이삔 이름얼 알라고 그라까?

 

하지만 그니의 표정은 환해져 있습니다.

서산으로 쑥 스밀 것 같은 저녁해는 그야말로 불덩어리 입니디다.

지는 해의 색깔을 표현 할 수 있는 화가가 있다면 그는 위대한 자일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름이 무요?

하아마. 박꽁례요, 꽁례!

징하게 이삔 이름인마이. 무다고 고라고 숭갰소?

이뻐요?

겁나 이뻐요안

요새넌 농약얼 안치먼 요라고 되부로가꼬 해묵을 거시 읎단 말이요.

말을 하면서도 그니의 눈은 자신이 다듬고 있는 무 무더기에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비젓하게 아짐들에게 수작을 거는 인물이 하나

느닷없이 떠오르더라

 

특히 주름꽃 이쁘게 핀 할매 덜 무쟈게 좋아하는!

 

 

 

       

                                                         
                                       가을을 남기고 떠난사람 / 패티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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