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푸른 강물 / 신해욱 외(2006년 광화문 글판)

경호... 2015. 7. 17. 03:58

 

 

 

해마다 봄이 되면 / 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여름

 

 

 

푸른 강물 / 신해욱

 

오늘은 반짝이는 은어가 되어

푸른 강물을

헤엄쳐 보는 건 어떨까, 친구?

 

 

 

 

가을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祈禱)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겨울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Unspoken Words / Hi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