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조용할 때 / 김용택
어제는 많이 보고 싶었답니다.
그립고,그리고
바람이 불었지요.
하얗게 뒤집어진 참나무 이파리들이
강기슭이 환하게
산을 넘어 왔습니다.
당신을 사랑했지요.
평생을 가지고 내게 오던 그 고운 손길이
내 등 뒤로 돌아올 때
풀밭을 보았지요.
풀이 되어 바람 위에 눕고
꽃잎처럼 날아가는 바람을 붙잡았지요.
사랑이 시작되고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
그리고 사랑하기까지
내가 머문 마을에
날 저물면
강가에 앉아 나를 들여다보고
날이 새면
강물을 따라 한없이 걸었지요
사랑한다고 말할까요
바람이 부는데
사랑한다고 전할까요
해는 지는데
새들이 조용할 때
물을 보고
산을 보고
나무를 보고, 그리고
당신이 한없이 그리웠습니다.
사랑은
어제처럼
또 오늘입니다.
여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을 만들고
오늘도 강가에 나앉아
나는 내 젖은 발을 들어다봅니다.
그리운 우리 / 김용택
저문 데로 둘이 저물어 갔다가
저문 데서 저물어 둘이 돌아와
저문 강물에
발목을 담그면
아픔없이 함께 지워지며
꽃잎 두송이로 떠가는
그리운 우리 둘.
달 / 김용택
그래, 알았어
그래, 그럴게
나도 ...... 응
그래
멍 / 김용택
내 가슴은 늘 세상의 아픔으로 멍들어야 한다.
멍이 꽃이 될 리 없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으로
나는 늘 세상의 고통 속에 있어야 한다.
그럴 나이가 되었다. 꽃이 없어도 될 나이.
생각과 행동에
자유와 평화로움을 얻을 때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어떤 것에도 아쉬워해선 안 된다.
훨훨 나는 창공의 새를 보아라!
평생 물을 보며 살았지 않느냐. 물 같아야 한다.
강물같이 도전해야 한다.
생각이 흐르는 강물처럼 평화롭고 공평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의 가슴은 세상의 아픔으로
늘 시퍼렇게 멍들어야 한다.
그 푸르른 멍은, 살아 있음의,
살아감의, 존재 가치의 증거가 아니더냐.
봄날은 간다 / 김용택
진달래
염병헌다 시방, 부끄럽지도 않냐 다 큰 것이 살을 다 내놓고 훤헌 대납에 낮잠을 자다니
연분홍 살빛으로 뒤척이는 저 산골짜기
어지러워라 환장허것네
저 산 아래 내가 쓰러져불겄다 시방
찔레꽃
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
사내 손목을 잡아끌고
초저녁
이슬 달린 풋보릿잎을 파랗게 쓰러뜨렸니라
둥근 달을 보았느니라
달빛 아래 그놈의 찔레꽃, 그 흰빛 때문이었니라
산나리
인자 부끄럴 것이 없니라
쓴내 단내 다 맛보았다
그러나 때로 사내의 따뜻한 살내가 그리워
산나리꽃처럼 이렇게 새빨간 입술도 칠하고
손톱도 청소해서 붉은 매니큐어도 칠했니라
말 마라
그 세월
덧없다
서리
꽃도 잎도 다 졌니라 살가지 끝마다 하얗게 서리꽃은 피었다마는, 내 몸은 시방 시리고 춥다 겁나게 춥다
내 생에 봄날은 다 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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