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저녁 / 홍윤숙
- 望鄕詞6
눈 내리는 저녁길엔
목화꽃 지는 냄새가 난다
할머니 옛날 목화솜 지으시던
물레 소리가 난다
한밤에 펼치시던 오색 조각보 속
사각사각 자미사 구겨지는 소리 나고
매조 송학 오동 사꾸라
유년의 조각그림 몇 장
떨어지는 소리도 난다
어디서 그 많은 이야기를 실어오는지
어디서 그 작은 소리들을 풀어내는지
눈 내리는 저녁길엔
눈 덮인 고향집 낮은 굴뚝담 위
굴뚝새 푸득푸득 날으는 소리 나고
한 필 삼팔명주 하얗게 삭아내린
매운 세월 넘어
어머니 젊은날 혼자서 넘으시던
오봉산 골짜기 눈에 묻힌 길
수묵으로 풀어내는 한오백년
쇠락한 歲寒圖가 있다
사십 년 걸어도 닿지 못한 나라
눈 내리는 저녁길엔
문득 그 나라 먼 길을 다 온 것 같은
내일이나 모레면
그 집 앞에 당도할 것 같은
눈 속에 눈에 묻힌 포근한 평안
더는 상할 것 없는
백발의 평안으로 잠들 것 같다
눈 내리는 길로 오라 / 홍윤숙
눈 내리는 길로 오라
눈을 맞으며 오라
눈 속에 눈처럼 하얗게 얼어서 오라
얼어서 오는 너를 먼 길에 맞으면
어쩔까 나는 향기로이 타오르는 눈 속의 청솔가지
스무살 적 미열로 물드는 귀를
한자쯤 눈 쌓이고
아름드리 해뜨는 진솔길로 오라
눈 위에 눈 같이 쌓인 해를 밟고 오라
해 속에 박힌 까만 꽃씨 처럼
오는 너를 맞으면
어쩔까 나는 아질아질 붉어오는 눈밭의 진달래
석달 열흘 숨겨온 말도 울컥 터지고
오다가다 어디선가 만날 것 같은
설레는 눈길 위에 자라온 꿈
삼십년 그 거리에
바람은 청청히 젊기만 하고
눈발은 따뜻이 쌓이기만 하고...
포플러 (겨울 포플러) / 홍윤숙
나는 몰라
한 겨울 얼어붙은 눈밭에 서서
내가 왜 한 그루 포플러로 변신하는지
내 나이 스무 살 적 여린 가지에
분노처럼 돋아나던 푸른 잎사귀
바람에 귀앓던 수만 개 잎사귀로 피어나는지
흥건히 아랫도리 눈밭에 빠뜨린 채
침몰하는 도시의 겨울 일각(一角)
가슴 목 등어리 난타하고
난타하고 등 돌리고 철수하는 바람
바람의 완강한 목덜미 보며
내가 왜 끝내 한 그루 포플러로
떨고 섰는지
모든 집들의 창은 닫히고
닫힌 창 안으로 숨들 죽이고
눈물도 마른 잠에 혼불 끄는데
나는 왜 끝내 겨울 눈밭에
허벅지를 빠뜨리고 돌아가지 못하는
한 그루 포플러로 떨고 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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