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kbs열린음악회에서 이「봄날은 간다」를 부르는 사람이 있습디다.
중간에 봐서 가수 이름이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자 가순데요.
늙수구레한 게 나이가 장사익씨 정도는 돼 보이더군요.
입에 하모니카 걸고 기타 치며 부르는데, 참 구성지게도 부릅디다.
지금 이 한영애도 그렇게 부릅니다만,
이 노래는, 이렇게 '날 잡아잡수'식으로 끈 놓아 버리고 부르는 게 젤로 좋습디다.
물론, 원단 백설희씨의 그 애절한 '봄날은...'도 좋아합니다만.
그리고 또 장사익씨가 부르는 것도 그 나름의 멋이 있는데.....
말하자면 이 노래는,
세대 · 나이별로, 男 과 女, 그리고 성격이나 살아온 사연별로,,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느낌이 각기 다를 듯합니다.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으로 시를 쓴 사람도 열 명이 넘습디다.
그런 걸 보면 '봄날'과 '봄날이 가는 것'에 대해서는
저 뿐만이 아니라 다들 생각이 많은가 봅니다.. ^^*
물론 노래를 부르는 이들처럼,
느낌이나 뉘앙스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습니다만.
저는「봄날」하면,
'푸릇푸릇함'이나 '따사로운 햇볕', 그런 것보다 '을씨년스럽단' 생각부터 듭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뭔가 감춰진 '과거'가 있을란가?
아무튼,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기분이 참 묘해요잉?
詩 몇개 훝어봤는데, 그 중에 기형도 시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봄날은 간다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 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 패 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 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 들어온 것들의 인사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소읍小邑은 무서우리 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숙취는 몇 장 지전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이 시도 멋지집니다만,
저는 역시「봄날은 간다」의 노랫말이 더 좋게 느껴집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엔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언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울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고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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