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를 위한 스터디 독서법
정병기
『가르침과 배움』제18호(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2008년 가을), 16-21쪽.
독서법에는 왕도가 있다. 다만 독서의 세계에는 전국 시대처럼 왕도가 대단히 많다. 자기만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학술적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물을 작성하기 위한 스터디 독서에서는 자신만의 왕도가 더욱 중요하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기술과 방법은 다를지라도 모든 스터디 독서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기본적 내용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쓰기를 위한 스터디 독서는 분석적ㆍ비판적 독서와 신토피컬(syntopical) 독서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독서법에 따를 때 우리는 연구를 위한 체계적인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터디 독서는 읽기에서만 끝나지 않고 사고하면서 읽을 뿐만 아니라 읽고 생각한 것을 반드시 기록해 두어야 완결된다.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읽자
분석적ㆍ비판적 독서는 주제와 문제제기 및 주장을 파악하는 도입단계에서 시작하여, 논증과 내용을 숙지하고 내용과 주장을 해석하는 본격적인 단계를 거쳐, 내용과 논증 및 주장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는 마감 단계까지 밟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먼저, 본격적인 독서에 들어가기 전에 그 문헌이 무엇에 대한 것이며 어떤 주장을 하는지를 파악하자. 그 문헌이 다루고 있는 주제를 명확히 파악하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목차를 따로 구성하거나, 논문의 제목도 주제와 주장을 알 수 있게 단다. 그러나 목차를 따로 구성하지 않거나 연구 대상만 알 수 있게 제목을 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경우에는 서론과 결론을 속독하여 요점을 파악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저자의 문제제기와 주장을 알고 읽는다면, 아무리 긴 글이라도 길을 잃지 않고 논리 전개를 쉽게 숙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독서 단계에서는 우선 논증과 내용을 숙지하면서 읽자. 핵심 단어들에 관심을 가지고 중요한 문장을 발견하여 저자의 주요 명제들을 파악하라. 일련의 문장 속에서 저자의 논증을 발견한 후, 몇 개의 문장을 끄집어내어 논증을 짜맞추어 본다. 앞부분에서 이해한 부분과 뒷부분에서 이해한 부분이 서로 모순이 있다고 생각되거나 연결이 석연치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잠시 읽기를 중단하고 정리해 보라. 문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논증의 단계를 빼고 읽었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 내용을 연결해 보자. 정리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를 제대로 했다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원문의 길이와 상관없이 한 문장으로 그 내용을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건성으로 읽지 말고 집중하여 생각하면서 읽자. 중요한 단어에는 밑줄과 같은 표시를 하고, 중요한 단락에는 자신의 생각과 해석을 간단히 적어두라. 독서를 계속해 가면서 그 생각이 더 심화될 수도 있지만, 단편적인 생각으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단편적인 생각도 때로는 버리기 아까운 번뜩이는 비판일 수 있다. 표시하고 적어두며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읽는 것이 바로 생각하는 독서이다.
내용과 주장을 해석하면서 읽자. 독서하는 중간에 떠오르는 의문과 생각들을 적어두는 것이 이미 해석의 행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내용과 주장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더 심사숙고하면서 읽는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상황에서 쓰인 문헌이나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을 허용하는 문학 작품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분석적ㆍ비판적 독서의 최종 단계는 내용과 논증 및 주장에 대한 비판이다. 지식이나 내용을 흡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헌의 논의, 논쟁, 내용이 타당한가를 검토하면서 읽자. 또한 저자가 해결한 문제는 무엇이며 해결하지 않은 문제는 무엇인지 판별하라. 미해결의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에 실패한 것을 저자가 인지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확인한다. 이러한 비판적 독서가 가능하려면, 저자의 의도와 주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의 관심 주제에 대해 대화하듯이 저자와 함께 사고하면서 독서해야 한다.
비교하고 종합하면서 읽자
스터디 독서에서 비교 고찰은 대단히 중요하다. 동일한 범주의 현상도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그 다른 양상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한 채 한 사회 안에서 일어난 현상의 인과관계를 일반화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동일한 주제에 대한 여러 문헌들을 접하면서 각각의 주장을 비교해 가면서 읽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주제별 독서를 말하는 이른바 신토피컬 독서가 필요한 것이다. 신토피컬 독서란 동일 주제에 대하여 두 권 이상의 책을 읽는 독서법을 말한다.
우선, 관련되는 주요 문헌들을 조사하여 정리하자. 분석적ㆍ비판적 독서에서 말하는 관련 문헌들의 조사와는 달리 비교 가능한 핵심 문헌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석적ㆍ비판적 독서의 도입단계를 통해 문헌들에 실린 대강의 내용을 알아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대상 문헌들을 두루 통독하거나 속독하여 비교 가능한 문헌들을 추려내야 한다.
그런 다음 대조적인 주장을 담은 문헌과 유사한 주장을 담은 문헌들을 분류하고, 어느 문헌들을 어떤 순서로 읽을 것인지를 계획하자. 비교 항목들이 일정하게 미리 잡혀 있는 경우에는 처음부터 유사한 묶음의 문헌들을 모두 읽고 다른 주장이나 대조적인 문헌 묶음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분류만 해놓았을 뿐 비교 항목이나 논점을 정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대표문헌들을 하나씩 선정하여 먼저 읽고, 나머지 문헌들을 읽어 비교항목들을 선택하라. 그 후 다른 주장이나 대조적인 내용을 가진 문헌들을 읽어 보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주요 용어와 개념을 비교하여 통일하면서 읽자. 대부분의 독자는 저자가 자기보다 아주 훌륭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독자들은 용어나 어휘에 대해서도 저자의 사용법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자의 용어 사용법에 묻혀버린다면 다른 문헌들과 비교하는 독서는 불가능하다. 일차적으로 충실히 파악한 개념들을 비교하고 통일적 관점에서 추릴 것은 추려야 한다. 대개는 ‘최소 정의’를 사용하는 것이 유용하다. ‘최소 정의’란 여러 개념 정의들 중 다른 점들을 가려내고 공통적인 부분만을 추려서 정의하는 방법을 말한다.
핵심 내용에 대한 질문과 저자의 답변을 정리하면서 읽자. 비교할 항목들을 정확히 정리하고 배치한 후 그 항목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다. 연구 대상이 되는 개념에 대한 정의도 주요 비교 항목에 들어갈 수 있다.
논점을 명확히 파악하면서 읽자. 주요 비교 사항과 질문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나 답변이 정리되면, 자연스럽게 논점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저자들 간에 대립하는 부분을 찾아 항목들을 새로운 핵심 개념에 따라 하위 항목이나 다른 방식으로 분류하여 정리하라. 논점이 명확하게 서지 않는 항목들은 과감하게 줄이거나 삭제한다. 물론 필요하면 공통점으로 달리 정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주제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비교하자. 독서를 시작하면서 대강의 주제와 주장은 이미 파악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과연 그러한가를 묻고 정확히 파악했는가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한 문장으로 엮어낼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저자들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분석적ㆍ비판적 독서와 신토피컬 독서를 가로지르는 원칙은 생각하는 독서이다. 버크(E. Burke)가 말한 것처럼, “생각하지 않고 하는 독서는 씹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생각하는 독서는 저자와 대화하는 독서이다. 그리고 여러 문헌을 읽을 때 생각하는 독서는 비교하는 독서이다.
읽고 기록하자
읽은 문헌에 대해 독서록에 소상히 기록해 두자. 읽을 때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다 읽고 난 후 글을 쓸 때는 수십 배 편리해지고 정확해진다. 독서록을 제대로 작성했다면, 이후 글쓰기는 독서록을 정리함으로써 적어도 이미 절반은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논문의 일차적 구성을 완성하여 목차를 기술한 다음, 필요한 부분에 독서록의 내용을 모두 옮겨놓은 후 논문 형식에 맞추어 재구성하고 자신의 문장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이 상태로도 이미 번듯한 논문이 완성된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 절대 후회할 일이 아니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작업이다.
독서록은 최종 글쓰기를 위한 자신만의 자료이므로 특정한 방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학술적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들, 즉 문헌 정보, 저자 정보, 독자적 방식에 따른 내용 분류, 문헌 내용 요약, 자세한 인용문, 개인적 견해와 평가는 반드시 기입해 둘 필요가 있다.
첫째, 정확한 문헌 정보를 표시하자. 자신이 사용하는 참고문헌 표기방식을 따르되, 가능한 한 상세한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좋다. 문헌 정보란 단행본의 경우, 저자 성명, 단행본 제목, 출판도시, 출판사, 출판연도를 말하며, 논문일 경우는 논문 저자 성명, 논문 제목, 게재지(단행본의 저자 성명과 제목 혹은 잡지), 잡지 권수와 호수(필요할 경우 발행기관), 출판연도, 게재 쪽수를 말한다.
둘째, 저자에 대한 정보를 기입하자.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저자일 경우에는 굳이 기입할 필요가 없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반드시 조사하여 기입해 놓는다. 저자 정보로는 일반적으로 성과 이름, 생몰 연도, 주요 저작과 학문적 경향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대학 출신이고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현재 어디에 재직 중인지도 기입한다. 대학을 중심으로 학파가 형성되었을 경우, 저자가 몸담았거나 몸담고 있는 대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독자적 방식에 따른 내용 분류도 표기하자. 내용 분류는 단기간 내에 작성할 논문을 목표로 할 수도 있고, 평소의 관심이나 장기적 관점에서 구상한 단행본에 맞출 수도 있다. 주의할 점은 도서관의 도서분류법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독서록은 개인적 필요에 따라 작성하는 것이므로 그 필요에 유용하게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문헌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하자. 읽은 문헌에 대해 간결하게 이해하고 정리해 놓음으로써 언제 다시 보아도 저자의 입장과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요약은 두세 문장을 넘지 않도록 한다. 긴 요약은 나중에 다시 볼 때 시간을 낭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자세한 인용문을 기록하자. 이후 사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빠짐없이 기록하라. 큰따옴표를 이용해 그대로 베껴놓거나 적절히 요약 혹은 수정하여 상세하게 기입해 둔다. 자신의 해석이 가미되지 않는 이상 가능하면 직접인용을 해놓는 것이 더 좋다. 특히 간단한 변형만을 추가한 간접인용을 한다면, 이 부분을 재변형하여 글쓰기에 사용할 때 자칫하면 다시 원문처럼 변형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접인용을 할 때에도 필요하면 부연설명을 적는다. 또한 기입한 내용이 재인용된 부분일 때는 재인용된 원문에 대한 정보도 정확히 기입해야 한다. 옮겨 적을 때는 반드시 인용된 페이지까지 정확하게 기록하자.
마지막으로, 읽은 문헌에 대한 개인적 견해와 평가를 쓰자. 문헌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과 기타 부분적인 견해들을 기입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용문을 기입할 때 부연했다면 견해와 평가 난에서 다시 기입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견해와 저자의 견해를 혼동할 염려가 있을 때는 반드시 괄호와 같은 특수기호나 자신이 알 수 있는 머리글자를 적절히 사용하여 자신의 견해임을 밝혀야 한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는 것은 글쓰기의 기본이다. 책은 활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과 사회를 담은 그릇이다. 그 내용을 관찰하여 살아있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비교하고 종합하여 자신의 견해로 재창출해 낼 때 스터디 독서는 완성된다. 노신(魯迅)의 말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 책을 읽는 사람이다. 더 좋은 것은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의 안목으로 세상이라는 이 살아 있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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