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앗찔한 잇꽃 좀 보소 / 박규리
보따리 풀어놓고 어둔 방안에 앉은 당신을 보니 참말로 가슴이 무너져내리네
그동안...어찌...살았는가..... 다 접어둠세...... 새끼들 두고 도주한 자네 심정
생각하면 그 사연 소설 몇 권 안 되겠나 피차 누굴 원망하겠는가 내 죄 더 큼세
저 꼼지락대는 것들 눈앞에 감감하여 농약병도 깊숙이 넣어둔 지 나도 꽤 오래
네 자네 없이 살아보니 말이네만 내 속이 깊지 못했네 축사를 덮는 골판 지붕에
도 왜 있잖은가 푹푹 골이 잘 져야 빗물이건 눈물이건 아래로 내려가지 않던가
제 몸의 골도 잘 파여야 하다못해 지나는 바람 한줄기 편히 흘러내리지 않던가
긴말 할 것 없네 몇 년 사이에 골 깊어진 이맛살을 보니 이녁 마음살도 터졌네...
한잔 더 하려고 들고 온 술인데 잘 되었구만 쭉, 드소! 암말 말고 눈물바람도 치
우고, 저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물 스미듯, 맺힌 맘 모진 세월 휘이휘이 가슴팍
아래로 흘려내리소 자, 자 이쪽 툇마루쪽으로 좀 나와보소 아, 눈물에 부대낀
만큼 파이고 낮아 지지 않는 세월 봤는가..저기, 아찔한 연분홍, 잇꽃 부푼 것 좀
보소
* Zhao Kun Yu / Break Of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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