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이규리

경호... 2013. 10. 1. 04:04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이규리

 

여섯 살 때 내 남자친구, 소꿉놀이 하다가

쭈르르 달려가 함석판 위로

기세 좋게 갈기던 오줌발에서

예쁜 타악기 소리가 났다

 

셈여림이 있고 박자가 있고 늘임표까지 있던,

 

그 소리가 좋아, 그 소릴 내고 싶어

그 아이 것 빤히 들여다보며 흉내 냈지만

어떤 방법, 어떤 자세로도 불가능했던 나의

서서 오줌 누기는

목내의를 다섯 번 적시고 난 뒤

축축하고 허망하게 끝났다

 

도구나 장애를 한번 거쳐야 가능한

앉아서 오줌 누기는 몸에 난 길이

서로 다른 때문이라 해도

젖은 사타구니처럼 녹녹한 열등 스며있었을까

 

그 아득한 날의 타악기 소리는 지금도 간혹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로 듣지만

비는 오줌보다 따습지 않다

 

서서 오줌 누는 사람들 뒷모습 구부정하고 텅 비어있지만,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선득한 한 방울까지 탈탈 털고 싶다

 

- 시집『뒷모습』(랜덤하우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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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체 형상의 배설물인 똥은 대변이라 하고 액상인 오줌은 소변이라고 한다. 대변을 볼 때는 남녀가 같은 체위인데 소변의 자세는 영 딴 판이다. 시인은 어린 시절, 이 차이에서 야릇한 선망 혹은 모종의 열등감으로 몇 번 ‘서서 쏴’를 시도해 보는데 낭패감만 맛보고 만다. 자라면서 인체 구조적 차이일 뿐이지 차별적 기능은 아니라고 애써 위안해보지만 ‘젖은 사타구니처럼 녹녹한 열등’에서 흔쾌히 벗어나진 못한다.

 

 하지만 ‘서서 오줌 누는 사람들 뒷모습 구부정하고 텅 빈’ 허세라 부러워할 일은 못 된다. 오줌 누는 절차가 상대적으로 간소하다는 장점 말고는 주변 환경을 지저분하게 할 개연성이 높아 비위생적이기만 하다. 요즘은 남성도 앉아서 오줌 눌 것을 권고 받으면서 실제로 여성과 같은 자세로 오줌 누는 남자들이 많이 늘었다. 일견 남성의 여성화를 통한 남녀평등의 모색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보다 더 인간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이드는 성 정체성 해석에서 여자애들은 어릴 때 사내애들과 성기가 다른 점을 알게 되는 순간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마음속 응어리가 되어 마침내 여성으로 하여금 열등의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일부 여성들은 남성보다 열등한 것을 감수하고 있을 수는 없다며, 오히려 남성보다 우월해야 되겠다는 감정이 마음속에 솟구쳐 기어이 '목내의를 다섯 번 적시'는 '축축하고 허망'한 일을 내고만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가만히 주저앉아있지 않고 '서서 오줌 누고 싶은' 여성들에 의해 주도된 오랜 동안의 여성운동이 괄목할 성과를 거두어 과거와는 비교안될 만큼 여성 지위는 향상되었다. 오히려 얼마 전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의 이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약화되고 위축된 남성들의 수가 늘고있는 상황이다. 양성 공히 '선득한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낼 때 운동이니 연대니 하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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