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나는 이나랏 사람의 자손이외다 / 양주동 . 조선의 맥박(脈搏)

경호... 2013. 2. 17. 16:53

 

 

 

 

 

 

나는 이나랏 사람의 자손이외다 / 양주동 

 

 
이 나랏 사람은
마음이 그의 옷보다 희고
술과 노래를
그의 아내와 같이 사랑합니다
나는 이 나랏 사람의 자손이외다.


착하고 겸손하고
꿈 많고 웃음 많으나
힘없고 피없는
이 나랏 사람
아아 나는 이 나랏 사람의 자손이외다.


이 나랏 사람은
마음이 그의 집보다 가난하고
평화와 자유를
그의 형제와 같이 사랑합니다.
나는 이 나랏 사람의 자손이외다.


외로웁고 쓸쓸하고
괴로움 많고 눈물 많으나
숨결있고 생명있는
이 나랏 사람
아아 나는 이 나랏 사람의 자손이외다.

 

 

 

조선의 맥박(脈搏) / 양주동


한밤에 불 꺼진 재와 같이
나의 정열이 두 눈을 감고 잠잠할 때에,
나는 조선의 힘 없는 맥박을 짚어 보노라.
나는 임의 모세관(毛細管), 그의 맥박이로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환한 동녘 하늘 밑에서
나의 희망과 용기가 두 팔을 뽐낼 때면,
나는 조선의 소생된 긴 한숨을 듣노라.
나는 임의 기관(氣管)이요, 그의 숨결이로다.


그러나 보라, 이른 아침 길가에 오가는
튼튼한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 그들의
공 던지는 날랜 손발, 책보 낀 여생도의 힘있는 두 팔
그들의 빛나는 얼굴, 활기 있는 걸음걸이
아아, 이야말로 참으로 조선의 산 맥박이 아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갓난아이의 귀여운 두 볼.
젖 달라 외치는 그들의 우렁찬 울음.
작으나마 힘찬, 무엇을 잡으려는 그들의 손아귀.
해죽해죽 웃는 입술, 기쁨에 넘치는 또렷한 눈동자.
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肺)는 아가야 너에게만 있도다.

 


■일제치하에서 쓰여진 이 시에서 우리는 시인이 말하는 `맥박'을 느껴 보아야 할 것이다. 시의 운율과 정서를 살리는 데 관심을 기울인 양주동이었지만, 이 시에서는 `조선의 맥박'이라는 의미를 중심으로 시를 구성하고 있다. 이 시의 의미 중심인 `맥박'이란 무엇인가. 맥박이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심장 소리이며 그 움직임으로서 생명의 역동적인 상징이 아닌가.

 

`한밤에 불꺼진 재와 같이' 어두운 시대에 화자가 짚어 보는 조선의 맥박은 비록 `힘없는' 것이지만 조선민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조선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희망의 징표이다. 

`모세관'처럼 가는 혈관 속에 `힘없이' 뛰던 맥박은 `이윽고 새벽'이 되면 `희망'과 `용기'로 살아난다.

`희망'과 `용기'로 가득찬 맥박이란 힘찬 심장의 고동으로 태어나는 `갱생(更生)'이며 터져나오는 민족의 `숨결'일 것이다. `새벽'이란 민족과 민족정기가 분출되는 때, 즉 해방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제 학정기의 한 가운데인 이 때에 `새벽'으로 광복을 소망하고 열망하는 화자에게, 겨울 아침에 힘찬 숨결을 뿜으며 `책보를 끼고' 힘있게 두 팔을 저으며 가는 어린 학생들이야말로 진정한 민족의 희망으로서 `조선의 산 맥박'이 아닐 수 없다.

민족의 미래를 약속하는 듯이 `빛나는' 어린 학생의 `얼굴'과 `갓난아기'의 힘찬 울음과 아이의 `웃는 입술', `또렷한 눈동자'에서 시인은 조선의 `대동맥'과 `폐'를 발견한다. `대동맥'과 `폐'란 맥박을 일으키고 숨결을 토해내게 하는 생명의 원동력이 아닌가. 민족의 희망을 잉태하고 성장시키고 발현시킬 민족의 `대동맥'과 민족의 `폐'가 오직 `너에게만' 있다는 구절에서 우리는 해방된 민족과 조국의 미래가 다음 세대에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숙: <한국의 현대시>)

 


 이 작품은 민족주의의 바탕 위에서 쓴 계몽적ㆍ교훈적 경향의 시이다. 일제시대의 암담한 현실에서 민족 부활의 미래를 소년 소녀들과, 갓난아이의 새싹들에서 발견하고, 꺼진 듯한 조국에의 희망을 고동치는 민족의 맥박에 다시 불어넣고자 의도한 것이다. 이 시의 투박한 은유와 ‘∼이로다’ 따위의 낡은 감탄어는 성공적인 표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시의 매력은 민족주의를 어떤 이념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으로 추상화하지 않고, ‘맥박?숨결’ 등 생명적 요소로 파악, 보다 구체적이고도 근원적인 생명감으로 표현한 데 있다. 그것은 건전한 민족주의 세계로 시적인 공감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제1연에서 3연까지의 시간적인 변화와 이에 따른 표상의 변화도 이 작품의 구체적 표현에 해당한다.

‘한밤?새벽?이른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간적인 흐름, 여기에 상응되는 ‘힘없는 맥박ㆍ희망ㆍ활기’ 등의 상황의 변화는 아주 자연스럽고 인상적인 전개이다.

(조남익: <현대시 해설>)

 


 이 시의 특별한 매력은 표현의 현저한 구체성에 있다. 가령, 봄이란, 눈 트는 가지 끝에서 부프는 봉오리에서 풀리는 물소리와 아지랑이 낀 공중에서 또는 삼월과 사월 사이의 따스한 시간에서― 이와 같은 구체적인 사물들에서 느끼는 것이지, 추상적으로 당초부터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처럼 한국의 맥박도 한국의 젊은이들의 손짓과 팔목과 얼굴과 말과 호흡에서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것이지, 어딘가에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에서 뛰고 움직이는 한국의 맥박을 이 작가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활기에 넘치고 한국의 맥박을 우리로 하여금 막연히 인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게 한다.

철학적 인식은 구체적인 경험을 추상화함으로써 얻어진 것이고, 시적 경험은 일단 추상화된 관념도 다시 구상화함으로써 얻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체적 표현을 통해 한국의 맥박은 불꺼진 재와 같은 기성세대에서보다도 지금 불붙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더욱 뚜렷이 보고 듣는다는 이 작가의 사상이 유감없이 나타나 있다.

(김현승: <한국 현대시 해설>)

 

 

작가는 조선의 빛나는 내일을 갓난아기의 모습에서 발견하고 있다.

맨 끝 연의 ‘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는 아가야 너에게만 있다’고 했다. 이 시 전체의 무게가 여기에 놓여 있다. 첫 연과 둘째 연에서 작가는 우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은 조국 조선의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밤에 작가는 암담한 절망에 사로잡혀있을 때, 조선의 맥박을 가만히 짚어본다. 모세관 정도의 맥박 같은 자신을 의식한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살기 위한 용기와 희망을 다시 찾아 활동을 하면서 길게 심호흡을 해 본다. 이때 되살아난 조선도 심호흡을 한다.

자신은 조선의 기관이요, 숨결임을 의식해 본다.

다음에 3∼4연에서 작가의 시선은 미래의 세대로 돌려지고 있다. 자신보다도 더 크고 더 빛나는 것이 미래의 세대임을 발견한다. 거리에 나섰을 때의 씩씩한 젊은이들, 학생들, 이것이 조선의 참 맥박임을 본다. 그리고 보다 어린 갓난아기야말로 조선의 대동맥이요, 폐임을 다시 발견한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자기와 조선과의 관계, 청년과 조선과의 관계, 유아와 조선과의 관계―이렇게 점차 미래로 지향하여 나가고, 약한 모세혈관에서 점차 기관으로, 숨결로, 참 맥박으로, 대동맥, 폐로 발전함으로써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절망에서 소생하는 기상이 이 시의 장점이라 하겠다. (권웅: <한국의 명시 해설>)

 

 

 

어머님 은혜 / 양주동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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