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雪夜 / 윤의섭

경호... 2013. 2. 9. 02:48







        雪夜

        눈이 내리면 나무들은 고개를 숙인다 용납은 오래도록 쌓이다 서서히 기우는 일 저만한 적설을 이루기 위해 눈구름은 뼈를 발라내야 했겠지만 모든 마당과 모든 길과 모든 지붕을 뒤덮는다는 것은 때 되면 벌어지는 전멸의 시도다 저 눈송이들, 이 도시에 쌓이기 위하여, 혹은 머무르다 사라져버리기 위하여 달의 중력을 끊어내며 집결하는 눈송이들, 우리들 언젠가 이 행성에 살게 되었고 어느 날 이 도시로 이사를 왔고 누군가 살다 묻힌 자리에 잠깐 머물기 위해 모여들고 다시 파묻히고 무덤이 쌓이고 빙점을 넘어서도 차가운 체온을 나누며 한 계절은 견디겠지 어쩌면 천상에서의 삶이 다하기 전에 온 몸을 쥐어 짜 지상에 복제품을 만드는 중인지도 현관 앞에 세워진 눈사람은 정말 눈의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그들의 종말 이후 며칠쯤은 살아남을지라도 눈의 착륙은 한없이 처절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추락해야 하는 결정주의가 모태 신앙이며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모순이 생의 철학 적막강산 눈 받아들인다 저리 많은 체념 다 받아들인다 잠깐이나마 잘 지내다 가라는 말은 침묵한 채 . . . 詩 / 윤의섭

'#시 > 영상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늙으려고 / 조창환  (0) 2013.02.17
누가 묻거던/ 석향 김경훈  (0) 2013.02.16
그대 생각  (0) 2013.02.06
길 끝에 서면 모두가 아름답다 / 이상윤  (0) 2013.02.06
말씀 / 김영석   (0) 2013.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