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허균(許筠)
蓀谷山人李達字益之 : 蓀谷山人 李達선생의 字는 益之로
雙梅堂李詹之後 : 雙梅堂 李詹의 후손이다.
其母賤 : 그의 어머니가 賤人이어서
不能用於世 : 세상에서 재주 발휘함 어려웠다.
居于原州蓀谷 : 原州의 蓀谷에 살면서
以自號也 : 자신의 號로 하였다.
達少時 : 李達은 젊은 시절에
於書無所不讀 :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綴文甚富 : 지은 글도 무척 많았다.
爲漢吏學官 : 한리학관이 되었지만
有不合 : 합당치 못한 일이 있어
棄去之 : 벼슬을 버리고 가버렸다.
從崔孤竹慶昌 : 고죽 최경창과
白玉峯光勳遊 : 옥봉 백광훈과 함께 노닐며
相得懽甚 : 서로 마음이 맞아 아주 기뻐하고
結詩社 : 詩社를 결성하였다.
達方法蘇長公 : 李達은 蘇長公에 깊이 영향받아,
得其髓 : 그 요체를 터득하여
一操筆輒寫數百篇 : 한번 붓을 잡으면 문득 수백 편을 적어 냈으나
皆穠贍可詠 : 모두 농섬(穠贍)하여 읊기에 좋은 시들이었다.
一日思菴相謂達曰 : 하루는 사암 정승이 李達에게 말해주기를
詩道當以爲唐爲正 : "詩道는 마땅히 唐詩로 하는 것이 正道가 되네.
子瞻雖豪放 : 자첨의 시는 豪放하기는 하지만
已落第二義也 : 이미 당시의 아래로 떨어지네."하였다.
遂抽架上太白樂府歌吟 : 그리고는 시렁 위에서 李太白의 樂府ㆍ歌吟詩,
王孟近體以示之 : 王維ㆍ孟浩然의 近體詩를 찾아내서 보여주었다.
達矍然知正法之在是 : 李達은 깜짝 놀란 듯 정법이 거기에 있음을 알았다.
遂盡捐故學 : 드디어 전에 배운 기법을 완전히 버리고,
歸舊所隱蓀谷之莊 : 예전에 숨어 살던 蓀谷의 田莊으로 돌아갔다.
取文選太白及盛唐十二家 :"文選"과 이태백 및 盛唐의 十二家․
劉隨州 : 유 수주
韋左史曁伯謙唐音 : 위 좌사와 백겸의"唐音"까지를 꺼내서
伏而誦之 : 문을 닫고 외었다.
夜以繼晷 : 밤이면 날을 새운 적도 있었고,
膝不離坐席 : 온종일 무릎을 자리에서 떼지 않기도 하였다.
凡五年 : 이렇게 하여 5년을 지내자
悅然若有悟 : 어렴풋이 깨우쳐짐이 있었다.
試發之詩 : 시험삼아 시를 지었더니
則語甚淸切 : 어휘가 무척 淸切하여
一洗舊日熊 : 옛날의 수법은 완전히 씻어졌었다.
卽倣諸家體而作長短篇及律絶句 : 唐 여러 시인들의 詩體를 본받아 長篇ㆍ短篇 및 律詩ㆍ絶句를 지어냈다.
鍛字聲揣律摩有不當於度 : 글자와 구절을 鍛鍊하고 聲音과 韻律을 췌마(揣摩)하면서, 법도에 부당함 있으면
則月竄而歲改之 : 달이 넘고 해가 가도록 개찬(改竄)을 거듭하였다.
凡著十餘篇 : 그러한 노력을 기울여 10여 편을 지어서
乃出而詠之諸公間 : 비로소 세상에 내놓고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읊자,
諸公嗟異之 : 모두 감탄해 마지 않으며 깜짝 놀랐었다.
崔白皆以爲不可及 : 崔孤竹ㆍ白玉峯 등도 모두 따라갈 수 없다고 하였고,
而霽峯荷谷一代名爲詩者 : 제봉․ 하곡과 같은 당대에서 시로 이름난 분들이
皆推以爲盛唐 : 모두 성당(盛唐) 풍의 시를 짓는다고 추켜 세웠다.
其詩淸新雅麗 : 그의 시는 청신(淸新)하고 아려(雅麗)하여
高者出入王孟高岑 : 수준 높게 지은 것은 왕유ㆍ맹호연ㆍ고적(高適)ㆍ잠삼(岑參)에 버금하고,
而下不失劉錢之韻 : 수준이 낮은 것도 유장경(劉長卿)ㆍ전기의 운율을 잃지 않았다.
自羅麗以下 : 新羅ㆍ高麗 이래로
爲唐詩者皆莫及焉 : 唐詩를 지었다고 하는 사람 중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寔思菴鼓舞之力 : 정말로 사암(思菴)이 고무시켜 준 힘이었으니,
而其陳涉之啓漢高乎 : 그것은 진섭이 한 漢高祖의 창업을 열어 준 것이라고나 할까.
達以是名動東國 : 달은 이 때문에 이름이 우리나라에 울렸고,
貴之而捨其爲人 : 귀하게 여겨져 그의 신분은 놓아두고도
稱譽不替者 : 칭찬해 마지 않는 분들로
詞林三四鉅公也 : 詩文에 뛰어난 3-4명의 巨匠들이 있었다.
而俗人之憎嫉者 : 그러나 俗人들 중에는 증오하고 미워하는 자들이
比肩林立 : 줄줄이 이어 있어,
屢加以汚衊 : 여러 번 더러운 누명을 덮어씌우며
寘之刑網 : 형벌의 그물에 밀어 넣었지만
卒莫能殺而奪其名也 : 끝내 죽게 하거나 그의 명성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達貌不雅 : 李達은 용모가 아담하지 못하고
性且蕩不檢 : 성품도 호탕하여 검속(檢束)하지 않았다.
又習俗禮 : 더구나 時俗의 예법에 익숙하지도 못하여
以此忤於時 : 이런 것들 때문에 時流에 거슬렸었다.
而善談今古 : 그는 古今의 이야기를 잘했으며,
及山水佳致 :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이르면
喜酒 : 술을 즐겨 마셨다.
能晉人書 : 晉 나라 사람에 가깝도록 글씨도 잘 썼다.
其中空洞無封畛 : 그의 마음은 탁 트여 한계가 없었고,
不事產業 : 먹고 사는 생업에는 종사하지 않아서
人或以此愛之 : 사람들 중에는 이래서 더 그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平生無着身地 : 평생 동안 몸을 붙일 곳도 없어
流離乞食於四方 : 사방으로 유리(流離)하며 乞食까지 했으니,
人多賤之 : 사람들이 대부분 천하게 여겼다.
窮厄以老 : 그렇지만 궁색한 액운으로 늙어갔음은,
信乎坐其詩也 : 말할 나위도 없이, 그가 시 짓는 일에만 몰두했던 탓이었다.
然其身困而不朽者存 : 그러나 그의 몸이야 곤궁했어도 不朽의 명시를 남겼으니
豈肯以一時富貴 : 한 때의 부귀로
易此名也 : 어떻게 그와 같은 명예를 바꿀 수 있으랴!
所著殆失盡 : 지은 글들이 거의 다 없어질 지경인 데
不佞粹爲四卷以傳云 : 내가 가려서 4권으로 만들어 전해지게 하였다.
外史氏曰 : 外史氏는 논한다.
朱太史之蕃 : 太史 번은
嘗觀達詩 : 일찌기 李達의 시를 보았다.
讀至漫浪舞歌 : 만랑무가(漫浪舞歌)라는 시를 읽고서는
擊節嗟嘗曰 : 격절차상(擊節嗟賞)하면서 이르기를
斯作去太白 : "이 작품이 李太白의 시에서
亦何遠乎 : 또한 어찌 멀리 있겠는가."했으며,
權石洲韠見其斑竹怨曰 : 石洲 권필도 달의 斑竹怨이라는 시를 보고서,
置之靑蓮集中 : "청련의 시집 속에 넣어도,
具眼者不易辨也 : 眼目 갖춘 사람일 망정 판별하기 쉽지 않으리라."했었다.
此二人者 : 이 두 사람이
豈妄言者耶 : 어찌 妄言을 할 사람이겠는가.
噫達之詩 : 슬프다, 李達의 시야말로
信奇矣哉 : 진실로 높은 봉우리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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