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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 선종 어록에 나타난 몇 가지 語氣助詞 ?/ 송인성

경호... 2013. 1. 25. 02:22

唐宋 선종 어록에 나타난 몇 가지 語氣助詞 1]

 

Some Mood Particles in the Zen Dialogues during the Tang-Song Dynasty

 

 

송인성 (Song In-seong)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차 례?

1. 머리말
2. ‘那’
3. ‘摩(磨??)’
4. ‘?(??口爾)’
5. 맺는 말

 

 

1. 머리말

 

중국의 선종은 北魏시대에 중국(梁나라)에 온 印度僧인 菩提達摩(磨)(?~528 또는 ?~536)를 초조로 하고, 2조 慧可, 3조 僧璨, 4조 道信(580~651), 5조 弘忍(601~674), 6조 慧能(638~713)의 순서로 그 禪法을 전했다고 한다.2]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6조인 慧(惠)能(638~713), 즉 唐代(618~907) 초기에 와서야 선종을 불교의 일파로서 간주하기 시작했으며, 아울러 혜능의 ?육조단경?을 선종의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여기게 되었다.

 

1] 이 글은 1999. 8. 17. 新星大學에서 개최된 ‘韓國中文學會’ 第50次 定期學術發表會에서 발표한 草稿를 修正 補完한 것이다. 당시 토론에 참여해 주신 박영록 교수(충주대), 전광진 교수(성균관대), 임병권 교수(대전대) 등께 감사드린다.

附:본문에 출현한 몇 가지 문법 용어 대조표

漢語(中國語) 우리말

① 是非疑問句 ---------- 可否 疑問文

② 反詰疑問句 ---------- 反語 疑問文

③ 反復疑問句 ---------- 肯定/否定 疑問文

④ 特指疑問句 ---------- 指定 疑問文.

 

2]中國 禪宗의 성립 및 전개 과정에 관한 서적은 여러 권 출간되어 있으나, 중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것은 印順(1971)의 ?中國禪宗史?(臺北:自印)인 듯하며, 우리말로 된 것은 鄭性本(1991)의 ?中國禪宗의 成立史 硏究?(民族社)를 참조할 것.

 

 

선종은 혜능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점점 융성해져서, 唐末五代 및 北宋 시기가 그 전성기가 되었으며, 元明 이후에는 차츰 불교의 다른 종파와 결합되어 그 나름의 특색을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된다.

 

선종의 특색이란 소위 ‘불립문자’, ‘교외별전’, ‘이심전심’, ‘직지인심’, ‘견성성불’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종래의 전통적인 귀족 사회의 권위주의적 입장을 벗어난 인간의 자연 그대로의 존재를 강조하는 인간관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선종은 ‘불립문자’를 표방하였으나, 장기간의 발전 과정 중에 의외로 적지 않은 문헌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선종의 문헌, 그 중에서도 대화 부분은 그 당시의 입말(口語)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중국 및 일본 등지의 중국어학 연구자들의 관심 영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선 南宋 시기 雲門宗의 僧 正受(1146~1208)가 편찬한 ?嘉泰普燈錄?(1202년 편찬) 권25에 수록된 本覺法眞一禪師의 말을 보기로 한다.

 

 

"또 말했다. “禪家의 언어는 겉만 화려한 것은 숭상하지 않는다. 오직 순박하고 진실되어야 할 것이니, 모름지기 시골구석의 백성이나 아이들의 말과 비슷해야만 비로소 알맞을 것이다.

그것(선가의 언어)이 또한 어찌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는가? 이 道는 바로 순박함으로 돌아가려는 것이지, 총명함을 쓰지 않으며, 文字의 구속도 받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은 선가의 언어가 비속하다고 자주 비웃는데, 비웃음을 받지 않는다면 正道가 아닐 것이다.”

(又曰 “禪家語言不尙浮華, 唯要朴實, 直須似三家村裏納稅漢及?兒相似, 始得相應.

他又豈有許多般來? 此道正要還淳朴, 不用聰明, 不拘文字.

今時人往往嗤笑禪家語言鄙野, 所謂不笑不足以爲道.”)

 

 

이로 본다면 당시 사람들이 이미 禪宗 言語의 순박함 내지는 비속함이라는 특색을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바로 이러한 언어의 특색 때문에 선종 문헌, 그 중에서도 선종 어록이 漢語 語法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자료로 부각되었다. 중국의 언어학자인 高名凱(1911~1965)가 1948년에 발표한 논문 ?唐代禪宗語錄所見的語法成分?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다.

 

 

"현대의 白話文은 실제로는 唐宋 시대의 ‘普通話’에서 발전되어 나온 입말(口語)이다.

白話의 역사를 추구하려면 가장 오래된 唐宋 백화문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 가장 오래된 백화문은 후세에 전해져 내려온 通俗文(宋代의 話本, 諸宮調, 大鼓詞 등을 가리킴--引用者)이 아니라, 禪家의 어록이다.

…… 아주 오래 전에 선승들은 스승의 설법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러한 기록들은 대부분이 백화문으로 씌어진 것으로, 우리가 소위 ‘어록’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現代的白話文其實是唐宋時代的‘普通話’所發展出來的口語.

要追究白話的歷史就 應當硏究最早的唐宋白話文

……最早的白話文?不是傳世的通俗文, 而是禪家的語錄

……?早的時候, 禪門弟子就養成了記錄老師的說法的習慣, 這些記錄多半是用白話文寫成的, 也是大家所稱的‘語錄’.)

 

 

당송 시기의 입말은 唐宋明淸 시기의 소위 ‘近代漢語’3]의 전반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그 중요성은 최근에 와서야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예를 들면 張相(1953)의 ?詩詞曲語辭匯釋?은 唐宋金元明 시기의 詩詞曲에 출현한 여러 가지 어휘를 수집, 풀이하였고, 蔣禮鴻(1959 초판, 1988 수정 4판)의 ?敦煌變文字義通釋?은 敦煌 變文에 나타난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를 先秦 이래의 각종 문헌을 참고하여 풀이하였으며, 王瑛(1990)의 ?唐宋筆記語辭匯釋?은 100여 종의 筆記 小說에 나타난 여러 가지 어휘를 풀이한 연구 성과물이다.

 

3] ‘近代漢語’의 시기 구분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蔣紹愚(1994:pp. 1~7), 江藍生(1994) 등을 참조할 것.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당송 시기의 입말을 그 어느 것보다도 충실히 반영하였던 선종 문헌에 대해서는 전혀 또는 거의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 중요한 이유는 선가의 독특한 사고 및 표현 방식 이외에, 현재에는 사용되지 않는 그 당시의 특이한 입말(선가에서만 사용되는 특이한 입말 포함) 때문에 관련 문헌의 해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간행된 ?漢語大詞典?(1987~1994. 색인 포함 모두 13권)은 표제어가 37만여 개나 되고 당송명청 시기의 어휘까지 싣고 있지만, 역시 선종 문헌에 나타난 입말은 거의 수록하지 않아, 앞으로 이 방면에 대한 연구가 매우 절실하다고 하겠다.

 

이 글은 당송 시대의 몇 가지 선종 문헌, 특히 그 중의 대화 부분에 속하는 부분인 넓은 의미의 선종 어록을 주요 대상으로 ‘那’, ‘摩(磨??)’, ‘?(?? 口爾)’ 등 3개 語氣助詞의 용법 및 역사적인 발전, 기원 등을 살펴봄으로써 현대 한어 어기조사의 근원을 탐구하기로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어기조사는 構造助詞와 더불어 이미 고대 한어에 존재한 조사의 한 부류인데, 唐五代에 이르면 새로운 助詞들이 출현하면서 그 전의 것들을 대체하는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근대 한어 어기조사의 경우, 많은 조사들이 하나 혹은 여러 개의 표기 방식 및 기능을 갖고 있으며, 후에는 여러 가지 변화를 거쳐 현대 한어 어기조사로 정착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어휘들은 현대 한어 사전은 물론 ?漢語大詞典?에도 전혀 등재되어 있지 않거나 또는 매우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는 실정으로 많은 연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 대상으로 선정한 주요한 선종 문헌으로는 오대 시기에 편찬된 ?祖堂集?(952)과 송대에 편찬된 ?景德傳燈錄?(1004~1007) 및 ?五燈會元?(1252) 등 禪宗史 관련 문헌이며, ?古尊宿語要???虛堂和尙語錄???圓悟佛果禪師語錄???佛果圓悟禪師碧巖錄???明覺禪師語錄???大慧普覺禪師語錄?? ?無門關? 등 송대에 간행된 어록도 포함시켰다. 이 외에 당송 시기의 다른 문헌은 물론 그 이전, 이후의 문헌도 부차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각 인용 문헌의 판본은 맨 뒤의 ‘참고문헌’에 밝혀 놓았다.

 

한 가지 밝혀 둘 것은 元明 이후에도 선사 어록은 계속 간행되었으나 先人들의 언어를 그대로 모방하는 등의 이유로 언어 연구 대상의 자료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판본 문제인데, 문헌의 정확한 간행 시기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袁賓(1992)이 編한 ?中國禪宗語錄大觀?에서 당송 시기의 경우를 주로 ?조당집???경덕전등록???오등회원?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또한 현존하는 唐五代 선사들의 어록은 대다수가 송대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後人들이 수정, 보완한 것이고, 어떤 것은 심지어 여러 차례 수정, 보완을 거친 것으로 그 당시의 입말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당오대의 언어 연구 대상에서는 제외시켰다.4]

 

4] 이에 대해서는 劉堅(1982) 및 蔣紹愚(1994:pp. 20~21)를 참조할 것.

 

 

2. ‘那’

 

어기조사 ‘那’는 주로 의문 및 긍정 어기를 표시하는 것으로, 각각 현대 한어의 동일한 어기조사 ‘?’?‘?’와 비슷하다.

 

어기조사 ‘那’는 六朝 시대부터 당대까지 소수의 용례가 출현하였는데, 그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5]

5]예문 (1), (2)는 太田辰夫(1958[中]:p. 337)에서 인용하였고, 예문 (3)~(5)는 曺廣順(1995:p. 161)에서 인용하였다.

 

 

(1) 疲倦向之久, 甫問君極那? (魏, 程曉詩)

피곤함이 줄곧 오래 되어 감히 여쭙겠는데, 君께서는 (피곤함이) 심하십니까?

 

(2) 公是韓伯林那? 乃不二價乎? (後漢書, 韓康傳)

公이 韓伯林입니까? 그래서 정찰 가격입니까?

 

(3) 陳舞復傳語曰:“不孝那! 天與汝酒飮不肯飮, 中有惡物耶?” (全晉 文, 廢太子?, 遺王妃書)

陳舞가 다시 말을 전하며 “불효로구나! 하늘이 당신에게 술을 주어 마시게 하는데 마시지 않으려 하니 그 안에 나쁜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이냐?”라고 했다.

 

(4) 得寶弘農野, 弘農得寶那! (陸龜蒙, ?得寶歌?)

보물을 얻으려면 농토를 넓혀야 하고, 농업을 진흥하면 보물을 얻을 수 있구나!

 

(5) 誰知彭澤意, 更覓步兵那? (王積, ?贈學仙者?)

누가 彭澤의 뜻을 알아, 다시 步兵을 구하겠습니까?

 

 

예문 (1), (2), (5)는 의문을 표시하며, 모두 可否 의문문에 사용되어, 현대 한어의 같은 종류의 의문 어기조사 ‘?’(우리말로는 ‘~합니까’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음)와 비슷하다. 그리고 예문 (3), (4)는 긍정을 표시하여 현대 한어의 동일한 긍정 어기조사 ‘?’(우리말로는 ‘~하구나!’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음)와 비슷하다.

* ? 꾸짖을 마. 의문 조사(助詞) ? 사랑할 아.어조사(語助辭)

 

현재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六朝부터 당대까지 위와 같이 겨우 5개의 용례가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로 본다면 ‘那’가 당시에 새로 출현한 조사임을 알 수 있으며, 이 시기가 이 조사의 초기 단계임을 알 수 있다.

 

唐五代의 두 가지 중요한 문헌인 돈황 變文과 ?祖堂集?을 비교해 보면, 전자에는 어기조사 ‘那’가 전혀 출현하지 않으며, ?祖堂集?(이하 ?祖?로 약칭함)에는 어기조사 ‘那’가 모두 9회 출현하는데, 그 용법도 역시 위와 같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를 편의상 ‘那1’, ‘那2’라고 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1) ‘那1’:의문 어기

 

‘那’ 뒤에 바로 ‘作摩’가 연결되며, ‘那’는 앞 문장 끝에 사용되어 상대방을 힐난하면서 질문을 표시하는 反語 疑問文을 구성하고, ‘作摩’는 단독으로 1개의 문장을 구성하여 앞의 반어 의문문 어기의 기능을 강화시킨다. ?祖?에는 모두 아래와 같이 ‘那1’이 7차례 출현한다.

 

 

(6) 師曰:“汝因何從我覓?” 進曰:“不從師覓, 如何卽得?”

師曰:“何曾失 ?那? 作摩?” (1.153.05) 6]

스님이 “너는 어째서 내게 찾는가?” 하니, “스님께 찾지 않으면 어떻게 얻습니까?”라고 덧붙였다.

이에 스님은 “언제 전에 잃은 적이 있었던가? 뭐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6] ?祖堂集?은 모두 20권으로 되어 있으며, 예문 뒤 괄호 안의 세 단위 숫자는 각각 卷數, 페이지, 행을 가리킨다.

 

(7) 師問僧:“我尋常道 ‘莫道道不得, 設而道得十成, 猶是患?.’ 旣道得十成, 爲什摩?成患??”

僧云:“從來豈是道得底事那? 作摩?” (3. 088.05)

스님이 어느 스님에게 “내가 늘 ‘말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설사 100% 말할 수 있더라도 말더듬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미 100% 말할 수 있는데 어째서 말더듬이가 되었는가?”라고 물으니,

그 스님이 “본래 어찌 말할 수 있는 일입니까? 뭐 하는 겁니까?”라고 말했다.

 

(8) 進曰:“旣然如此, 六葉從何來?”  師云:“豈是有紋綵那? 作摩?” (3.111. 13)

다시 말하기를 “그렇다면 여섯 개 잎사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니, 스님은 “어찌 무늬가 있겠는가? 뭐 하는 거야?”라고 말하였다.

 

(9) 或時見僧入門來, 云:“患癲那? 作摩?” 僧便問:“未審過在什摩處?” (3.120.10)

언젠가 스님이 문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지랄병이 걸렸는가? 뭐 하는 거야?”라고 하니, 그 스님은 바로 “잘못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물었다.

 

(10) 僧問西堂:“有問有答則不問, 不問不答時如何?” 答曰:“?爛?那? 作摩?” (4.057.05)

어떤 스님이 西堂에게 “물음이 있고 답이 있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물음이 없고, 답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하니, “썩을 것을 걱정하는가? 뭐 하는 거야?”라고 답하였다.

 

(11) 師謂衆曰:“是?諸人患癲那? 作摩?” (4.133.09)

스님이 대중에게 “당신들은 모두 지랄병이 걸렸는가? 뭐 하는 거야?”라고 하였다.

 

(12) 和尙云:“……只如佛法到此土三百餘年, 前王後帝, 飜譯經論可少那? 作摩?…….” (5.073.12)

스님이 말했다. “…… 佛法이 이 땅에 온 지 300여 년인데, 앞뒤의 임금들이 경론을 번역한 것이 결코 적었던가? 뭐 하는 거야? …….”

 

 

2) ‘那2’:긍정 어기

 

陳述文 끝에 사용되어 긍정 어기를 나타낸다. ?祖?에는 아래와 같이 ‘那2’가 2회 출현한다.

 

 

(13) 師與道吾舡子三人受山下人請齋,

一人云:“齋去日晩.” 一人云:“近 那, 動步便到.”

師云:“有一人不動步便到, 作摩生?” (2.012.11)

스님과 道吾, 舡子 세 사람이 산아래 사람의 齋에 초청을 받았는데,

한 사람은 “재에 가려면 해가 지겠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가까워! 발을 내디디면 곧 도착해”라고 하였다. 스님은 “어느 한 사람은 발을 내디디지 않고도 도착하네, 어떤가?”라고 하였다.

 

(14) 師問:“汝去什摩處?” 僧云:“禮拜大?.”

師云:“近那, 吃飯了去也.” (5.104.07)

스님이 “자네 어디 가나?” 하고 물으니, 그 스님이 “大?에게 예배하러 갑니다” 하였다.

이에 스님은 “가까워! 밥이나 먹고 가게” 하였다.

 

 

송대의 ?경덕전등록???오등회원?(이하 각각 ?景???五?로 약칭함) 등 선종 어록에는 어기조사 ‘那’가 대량 출현하는데, 그 중 의문 어기를 나타내는 ‘那1’의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5) 僧問:“佛界與衆生界相去多少?” 師曰:“道不得.”

僧曰:“眞個那?” 師曰:“有些子.” (?景? 卷13, ?州興陽詞鐸禪師)

어떤 스님이 “佛界와 衆生界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은 “말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 스님이 “정말입니까?” 하니, 스님은 “약간은”이라고 답하였다.

 

(16) 師云:“大小德山不會末後句,” 山聞, 令侍者喚師至方丈, 問:“爾不肯老僧那?” (?景? 卷16, 鄂州巖頭全豁禪師)

스님이 “크고 작은 德山이 마지막 구절을 알지 못했구나” 하니, (德)山스님이 이를 듣고는, 시자를 시켜 스님을 방장으로 오게 한 후, “자네는 나를 긍정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17) 師問僧:“什?處來?”, 曰:“江西.”

師曰:“學得底那?” 曰:“拈不 出.” (?景? 卷19, ?州保福從展禪師)

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어디서 오는가?”라고 물으니, “江西에서 옵니다”라고 답하였다.

이에 스님은 “배운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18) 陽曰:“汝解騰空那?” 曰:“不解騰空.” (?五? 卷14)

陽이 “자네는 騰空(自然에 맡기고 아무 욕심 없이 無爲한 상태)을 할 수 있나?”라고 물으니 “騰空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였다.

 

(19) 師問杏山:“如何是露地白牛?” 山云:“??.”

師云:“啞那?” 山云:“長老作?生?” 師云:“這畜生.” (?古尊宿語要?, 續藏經 卷118)

스님이 杏山에게 “어떤 것이 露地의 白牛인가?” 하니, 山은 “흠흠(소 우는 소리)” 하였다.

이에 스님이 “벙어리인가?”라고 물으니, 山은 “長老(법랍이 높은 고승을 가리킴)께서는 어떠하십니까?” 하고 묻고, 스님은 “이 짐승 같은 놈!”이라고 하였다.

 

(20) (南泉)?然起坐乃問:“爾是有主沙彌那?” 趙州云:“某甲不敢.” (?虛 堂和尙語錄?, 大正藏 卷47)

(南泉이) 벌떡 일어나서 “너는 主人이 있는 沙彌냐?”라고 물었다. 이에 趙州는 “그렇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위와 같이 ‘那1’은 주로 可否 의문문과 반어 의문문에 사용되고 있고, 지정 의문문에 사용되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경?의 경우, 의문 어기조사 ‘那1’이 모두 6회 출현하는데, 단지 예 (17)의 1회만이 지정 의문문이다.

 

또한 이 시기 ‘那1’의 특징은 <祖>에 출현하였던 ‘~那? 作摩?’라는 문형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景>?<五>에는 이러한 문형이 전혀 출현하지 않으며, 현재로서는 이 시기의 다른 문헌에도 보이지 않는다. <祖>에는 ‘~那? 作摩?’의 문형이 위와 같이 모두 7회 출현하였는데, 이 가운데 祖에 출현한 2회[예문 (6), (10)]의 예문이 景?五에도 출현하고 나머지 5회는 출현하지 않는데, 아래에 출현 용례를 서로 비교하기로 한다.

 

 

[A組]

(6) 師曰:“汝因何從我覓?” 進曰:“不從師覓, 如何卽得?” 師曰:“何曾失?那? 作摩?” (?祖? 1.153.05)

(21) 石頭曰:“汝何從吾覓?” 曰:“不從師覓, 如何卽得?” 石頭曰:“汝還曾失却??” (?景? 卷14, 京兆尸利禪師)

(22) 頭曰:“汝何從吾覓?” 曰:“不從師覓, 如何卽得?” 石頭曰:“汝還曾失??” (?五? 卷5, 京兆尸利禪師)

 

[B組]

(10) 僧問西堂:“有問有答則不問, 不問不答時如何?” 答曰:“?爛?那? 作摩?” (?祖? 4.057.05)

(23) 云:“有問有答, 不問不答時如何?” 西堂云:“?爛却作??” (?景? 卷6, 百丈和尙)

(24) 因僧問西堂:“有問有答卽且置, 無問無答時如何?” 堂曰:“?爛却那?” (?五? 권3, 百丈和尙)

 

 

두루 아는 바와 같이, 祖?景?五의 편찬 시기는 각각 952?1004 ~1007?1252년이며, 또한 그 시기의 구어를 상당히 반영하고 있는데다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어, 삼자 비교를 통한 당송 한어 비교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아래 예문은 긍정 어기를 표시하는 ‘那2’의 용례이다.

 

 

(25) 成都府範縣君者, ……後有省曰:“元來恁?地近那!” (?五? 卷19)

成都府(地名)에 範縣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 후에 깨달으면서 “원래 이렇게 가까웠구나!”라고 말하였다.

 

(26) 這僧那, 免受?胡, 有指示, 無指示, 韶石四楞榻地. (?五? 卷20)

이 스님은요, 塗炭에 빠지지 않고, 아무 지시도 받지 않아 돌이 자기 스스로 온전하게 위치해 있는 것 같습니다.

 

(27) 福云:“我不可作雪峰弟子不得那!” (?圓悟佛果禪師語錄?, 大正藏 卷47)

福이 “나는 雪峰 弟子가 되지 않으면 안 돼!”라고 하였다.

 

(28) 仰山指月云:“人人盡有這個, 只是用不得.”

師云:“恰是, 便請爾用那!” (?佛果圓悟禪師碧巖錄?, 大正藏 卷48)

仰山이 달을 가리키며 “모든 사람마다 이것을 가지고 있는데, 단지 쓸모가 없을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스님이 사용해 보십시오!”라고 말하였다.

 

(29) 看他手忙脚亂, 藏身露影, 去死十分, 爛泥裏有刺, 恁?那, ?我. (?佛果圓悟禪師碧巖錄?, 大正藏 卷48)

그 사람 바쁜 것을 보세요. 몸을 숨겼지만 그림자는 나타났고, 죽을 때가 가까운데, 진흙 속에 가시가 있고, 이러한 상황인데도요, 나를 속입니다.

 

 

이 예문들은 긍정 어기를 표시하는데, 이를 다시 세분한다면 (25), (27), (28)은 강조, 과장 등을 나타내며, (26), (29)는 休止 및 조정을 나타낸다.

이로 보면, 송대의 어기조사 ‘那’는 당오대보다 더 많은 용례가 발견되고, 또한 표시하는 어기도 풍부하다.

 

江藍生(1986), 曺廣順(1986, 1995), 劉堅 등(1992:pp. 166~182)에 의한다면, 元代에는 어기조사 ‘那’가 계속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그 기능 또한 당송보다 더욱 확대되었으며, 明代 이후에는 점차로 ‘?(?)’, ‘?’로 대체되어 소멸하게 된다.

 

 

3. ‘摩(磨??)’

 

가부 의문문 끝에 사용되어 의문 어기를 표시한다.

張相(1953)은 ?詩詞曲語辭匯釋? 卷三 ‘?(二) (磨, 摩)’ 항목에서 아래와 같이 기술한 바 있다.

 

 

"?는 의문사이다.

…… 唐五代 시기에는 音을 따라 한자 표기를 한 것을 안다고 하면, ‘??磨?摩’는 모두 그 音으로서 표기한 것으로 당시에는 아직 표기가 통일되지 않았다.

아마도 송대에 가서 ‘?’字로 표기 통일을 한 듯하다. 후에 어떤 사람들은 唐나라 사람들이 표기했던 ‘磨’字를 (‘?’ 대신에) 사용하였다."

(?, 疑問詞

……, 則知在唐五代時, 隨聲取字, ??磨?摩皆假其聲爲之, 尙未劃一,

似至宋以還始專用?字, 後乃或幷唐人所用之磨字而追改之矣.)

 

* ? 작을 마,작을 요. 磨 갈 마. 摩 문지를 마. 연마하다(硏磨ㆍ練磨ㆍ鍊磨--)

 

 

1차적인 조사에 의한다면, 의문 어기조사 ‘摩(磨)’는 당말오대의 詩歌?敦煌變文??조?에 출현하기 시작하는데, 돈황 변문에는 ‘磨’의 형태로 2회 출현하고, ?조?에는 202회 출현하며7], 모두 ‘摩’로 표기되어 있는바, 그 중 몇 개의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7] 王錦慧(1993:pp. 238~239)에 의하면, 돈황 변문에 ‘磨’?‘摩’가 각각 2회씩 모두 4회 출현하나, 본문에서는 ‘也摩’의 형태로 출현하는 2회의 ‘摩’는 副詞(문장 끝에 씌어 의문을 부정함)로 간주, 어기조사에서 제외하였다.

 

 

(1) 說空空說得, 空得道維摩? (杜筍鶴(846~904) 詩) 8]

空을 얘기하면 空은 말할 수 있고, 空은 空을 얻을 수 있는가?

8]예 (1)은 太田辰夫(1958[中]:p. 334)에서 인용하였는데, 다른 판본에는 ‘空?’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에 대해 太田은 원문이 “說空空說得, 空得到空摩”인데, 잘못 표기하여 후대에 ‘維摩’ 및 ‘空?’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한다. 본문에서는 太田의 추정에 의해 해석하였다.

 

(2) 和上後劫之中, 本得個孩子之身, 共爲夫妻之者得罪磨? (?敦煌變文集新 書?, p. 810)9]

화상이 후에 재난을 당해, 아이의 몸으로 환생하여, (나중에) 함께 부부가 되었는데 죄입니까?

9]예문 (2), (3)은 王錦慧(1993:pp. 238~239)에서 인용하였다.

 

(3) 逢妻, 妻布施, 得罪磨? (위와 같음)

처를 만나고, 처가 보시를 베푸는데, 죄가 됩니까?

 

(4) 和尙便下來, 拈起?兒云:“有人道得摩? 有人道得摩?” (?祖? 2.034. 14)

스님이 바로 내려오더니 고양이를 집어 들면서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누가 말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였다.

 

(5) 三日後問侍者:“這個師僧在摩?” 侍者云:“去也.” (?祖? 3.119.09)

3일 후에 시자에게 “이 스님이 있는가?”라고 물으니, 시자는 “가 버렸습니다”라고 말하였다.

 

(6) 洞山五日後辭師, 師云:“有事囑?梨, 得摩?” 洞山便禮拜云:“有什摩事?” (?祖? 4.055.01)

洞山이 5일 후에 스님에게 떠날 것을 고하니, 스님이 “?梨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데, 되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洞山은 바로 예배를 드리며 “무슨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7) 有人問:“請和尙上堂, 因什摩念經?” 師云:“佛弟子念經, 不得摩?” (?祖? 5.043.10)

누가 “스님이 上堂하면 왜 經을 읽으십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이 “佛弟子라 경을 읽는데, 안 되는가?”라고 말했다.

 

(8) 又云:“近前, ?認識文殊摩?” 云:“不識.” (?祖? 5.106.11)

또 “앞으로 가까이 오라. 너는 文殊를 아는가?”라고 물으니, “모릅니다”라고 답하였다.

 

(9) 師拈起杖子, 云:“還隔這個摩?” 對云:“不遙.” (?祖? 2.103.12)

스님이 주장자를 집어 들고 “이것만큼 떨어져 있던가?” 하니, “멀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

 

(10) 座主云:“心旣講不得, 將虛空還講得摩?” 師云:“虛空?講得.” (?祖?4.039.13)

座主가 “마음도 말할 수 없는데, 虛空을 말할 수 있습니까?” 하니, 스님은 “虛空은 오히려 말할 수 있네”라고 말하였다.

 

(11) 僧云:“師還聞摩?” 師云:“我若聞, 則敎誰擧?” (?祖? 5.023.01)

어떤 스님이 “스님은 들었습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은 “내가 만약 들었다면, 누구보고 말하라고 하겠는가?”라고 답하였다.

 

(12) 有時上堂云:“汝諸人來者裏覓什摩? 莫要相鈍致摩?” (?祖? 2.100.02)

어느 때는 上堂하여 “너희들은 여기 와서 무엇을 찾느냐? 서로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하였다.

 

(13) 師以手拔眉, 云:“莫不辜負摩?” (?祖? 3.141.09)

스님이 손으로 눈썹을 뽑으면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14) 疏山代云:“只到這裏, 豈是促得起摩?” (?祖? 2.060.14)

疏山이 대신 “단지 여기에 도착할 뿐이지, 어찌 들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15) 師勘東國僧, 問:“汝年多少?” 對曰:“七十八.” 師曰:“可年七十八摩?” 對曰:“是也.” (?祖? 1.181.05)

스님이 東國(우리 나라를 가리킴)의 스님을 시험하기 위해 “그대는 나이가 몇인가?”라고 물어보았다. 이에 “78세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스님이 “정말 나이가 78세란 말인가?”라고 물으니, “그렇습니다”라고 답하였다.

 

 

伍華(1987)의 통계에 따른다면, ?조당집?에 출현한 202회 용례를 아래와 같이 분류할 수 있는데, 뒤의 숫자는 출현 횟수를 나타낸다.

 

 

a) (不)VP摩 ---- 59 [예 (4)~(8)]

b) 還VP摩-------113 [예 (9)~(11)]

c) 莫(不)VP摩----19 [예 (12), (13)]

d) 豈VP摩 ------2 [예 (14)]

e) 기타-------------9 [예 (15)]

 

 

송대에 들어서서야 ‘?’가 출현하기 시작하였으며10], 또한 ‘摩’?‘磨’와 같은 표기법을 대체하게 되었는데, 몇 개의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10] 張相(1953:卷三 ‘?(二)’항목)은 ‘磨’라고 표기한 唐代 시인의 詩歌를 게재하였으나, 太田辰夫(1958[中]:p. 334)에 의하면, 이는 後人들이 개작한 것으로 파악한다. 본문은 두 가지 이유에서 太田설이 정확하다고 판단한다. 즉 (1) 비교적 오래된 唐詩의 판본에는 ‘?’라고 표기된 것이 없다. (2) 현재까지 발견된 용례가 너무 적다(당오대에 씌어진 돈황 변문에 ‘磨’라고 표기된 경우가 2회 출현하며, ?祖?에는 전혀 출현하지 않는다).

 

 

(16) 斜日綠陽枝上?, 還又問:“是蟬??” (宋 辛棄疾, ?江神子?)

해가 저무는 때 푸른 버드나무 가지 위가 시끄러우니, 또 묻기를 “매미입니까?” 하였다.

 

(17) 婆曰:“會??” 一合掌而立. (宋 ?五? 卷3, 浮杯和尙)

노파가 “할 줄 압니까?” 하고 합장을 하고 서 있었다.

 

(18) (正末云)婆婆, 我有句話敢說?? (元 武漢臣, ?老生兒? 楔子)

(正末이 말한다.) 시어머니, 제가 감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19) ?家搬在那裏好?? (古今小說 ?新橋市韓五賣春情?)

네 집이 어디로 이사가야 좋을까?

 

(20) 說著, 便問安公子道:“會騎驢??” (淸 ?兒女英雄傳? 제10)

한편으로는 말하고, 安公子에게는 “노새를 탈 줄 압니까?”라고 물었다.

 

 

청대에 이르러서야 ‘?’의 형태가 출현하였으며,11] 동시에 ‘?’ 등과 같은 표기 방식을 대체하였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11] 太田辰夫(1958[中]:p. 334)를 참조할 것. 예문 (21), (22)는 모두 太田의 것을 인용한 것이다.

 

 

(21) 這是爆竹?? (?紅樓夢? 22回)

이것은 爆竹입니까?

 

(22) 原來他也會這個?? (?紅樓夢? 87回)

원래 그 사람도 이것을 할 줄 알았는가?

 

 

‘摩(磨??)’의 근원에 관해서, 王力(1958), 太田辰夫(1958) 등은 모두 ‘無’에서 변화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王力(1958:p. 452)은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 ‘?’는 마땅히 ‘無’에서부터 변화된 것이다. ‘無’의 上古音은 m?wa이고, 그것의 文言音과 白話音은 서로 상이하다. 문언음은 점차로 輕脣化되었으며(m?ua→m?wu→v?wu→vu→wu), 백화음은 重脣의 m이 잔존하고 韻頭를 상실하였다. …… 어기사 ‘無’는 더욱 많은 본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기 때문에, 中古에서부터 현재까지 표준어에서는 줄곧 ma였다. "

 

 

太田辰夫(1958[中]:pp. 333~334)는 아래와 같이 주장하였다.

 

 

"‘無’는 ‘武와 夫의 反切’이고 微字母이다. 그러나 切韻 시기에는 明母의 일부로, m으로 읽었다. 그것이 明母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은 당말송초라고 파악된다. ‘無’가 ‘磨’ 혹은 ‘摩’라고 씌어진 것은, 이 어휘가 완전한 의문대명사가 되어12], ‘無’의 本義와는 무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마도 어떤 경우 사람들은 ‘無’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또한 아마도 微母가 성립된 후에도, 이 어휘는 여전히 明母이었기 때문에 非微母인 글자로 바뀐 것 같다. (또한 韻母가 변화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12]인용문 가운데 “이 어휘가 완전한 의문대명사가 되어”라고 했으나, 이는 ‘의문조사’를 잘못 번역한 것이다. 일본어 원서인 太田辰夫(1958:p. 361)를 참조할 것.

 

 

필자의 생각으로는 위 두 학자의 견해가 옳다고 보며, 만약 보충을 한다면 문장 끝에 사용되는 ‘無’는 唐代 이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그 용법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부사로 의문의 부정을 나타내며 13], 다른 하나는 조사로 의문 어기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13]부사용법으로 사용된 ‘無’에 대해서는 宋寅聖(1996:pp. 237~239) 참조.

 

 

(23) 眼中瘡校? 般若偈持? (貫休, ?秋寄栖一?)

눈 안의 종기는 나았는가? 般若揭는 지니고 있는가?

 

(24) 靑衫乍見曾驚? 紅粟難?得飽? (白居易 詩) 14]

푸른 制服(下位 官員의 제복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백거이 자신을 가리키기도 함)을 갑자기 보니 놀랐는가? 붉은 조밥(糧食을 가리킴)은 외상으로 빌리기가 어려운데 배가 불렀는가?

14](24)~(28)은 王力(1958:p. 453)에서 인용하였다.

 

(25) 江州司馬平安? 惠遠東林住得? (楊巨源 詩)

江州의 司馬는 평안합니까? 惠遠의 동쪽 숲은 살 만합니까?

 

(26) 肯訪浣花翁無? (杜甫 詩)

浣花의 老翁을 방문할까요?

 

(27) 晩來天欲雪, 能飮一杯無? (白居易 詩)

저녁 때 눈이 내리려 하니, 한 잔 마실까?

 

(28) 善眼仙人憶我無? (李商隱 詩)

선한 눈을 갖고 있는 仙人이 나를 기억할까?

 

 

위의 예문을 살펴보면 (23), (24), (25)는 부정부사 ‘未’?‘否’와 ‘無’가 대칭을 이루고 있어, ‘無’가 부정부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26), (27), (28)은 의문 어기를 나타내는 조사이다.

 

당오대의 문헌인 돈황 변문15]과 祖 16]에는 ‘無’로 끝나는 의문문이 각각 7회, 282회인데, 그 중 ‘無’ 앞에 ‘也’가 붙어 있는 것이 각각 2회, 279회이고, ‘也’ 없이 ‘無’로 직접 끝나는 것은 각각 5회, 3회이다.

15] 상세한 것은 劉子瑜(1994)를 참조할 것. 또한 예문 (29), (31)도 이 논문에서 인용하였다.

16] 상세한 것은 宋寅聖(1996:pp. 237~239)을 참조할 것.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9) 旣是巡營, 有號也無? (?敦煌變文集? 漢將 38)

이왕 幕舍를 돌아보는데, 암호가 있느냐? 없느냐?

 

(30) 石頭云:“大庾嶺頭一鋪功德, 還成就也無?” 對曰:“諸事已備, 只欠點眼在.” (?祖? 2.004.10)

石頭가 “大庾嶺 꼭대기에 하나의 공덕을 이루었는가? 이루지 못했는가?”라고 말하니, “모든 일이 준비되었으나, 단지 點眼만이 빠졌습니다”라고 답하였다.

 

(31) 僧便問:“彼中則如此, 此間還有也無?” 洞山云:“有.” (?祖? 5.001.09)

스님이 곧 “거기는 그렇지만, 이곳에도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물으니, 洞山은 “있다”라고 답하였다.

 

(32) 陵者蕃中有死色無? (?敦煌變文集? 李陵 93)

(李)陵은 오랑캐(흉노를 가리킴) 속에서 사색이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33) 僧云:“莫便是傳底人無?” 師云:“晉帝斬稽康.” (?祖? 3.098.14)

어느 스님이 “바로 전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하니, 스님이 “晉帝가 稽康을 베었느니라” 하였다.

 

 

위의 예문을 살펴보면, 예문 (29)는 “有號? 無號?”이고, (30)은 “(還)成就? 不成就?”이고, (31)은 “此間有? 無有?”이고, (32)는 “有死色? 無死色?”이고, (33)은 “是傳底人? 不是傳低人?”이라고 각각 이해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로 판단한다면, ?祖?의 문장 끝에 사용된 ‘無’는 아직 ‘완전한’ 조사가 된 것이 아니고, 반복 의문구 끝에 사용되어 ‘否?不?未’ 등과 함께 의문을 부정하는 부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17]

17] 상세한 것은 宋寅聖(1996:pp. 237~239)을 참조할 것.

 

한어 의문문의 발전을 고찰하면, 고대 한어에서는 부정부사 ‘不?否?未’가 동사구 뒤에 사용되어 ‘VP不(否?未)’의 긍정-부정 의문문을 구성한다. 당대에 이르러서는 부정부사 ‘無’가 출현하고, 中唐 이후에는 점점 虛詞化되면서, 동시에 ‘不’ 등을 대체하게 된다. 당말오대에 이르러서는 순수한 의문 어기조사인 ‘摩(磨)’가 출현하였으며, 동시에 ‘無’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리고 송대와 청대에 이르러서는 각각 ‘?’?‘?’가 출현하였다.

 

본문의 1차적인 연구에 의한다면, 현대 한어 의문 어기조사 ‘?’의 근원 및 그 발전 과정은 대략 아래와 같다.

 

 

1) 否(不?未) -- 否定副詞 ------------------------ 先秦부터 六朝

2) 無 ------------- 否定副詞 / 疑問 語氣助詞 ---- 唐代

3) 摩(磨) --------- 疑問 語氣助詞 ---------------唐末 五代 이후

4) ? ------------- 疑問 語氣助詞 ---------------宋代부터 淸代까지

5) ? ------------- 疑問 語氣助詞 ---------------淸代 이후부터 현재까지

 

 

당대에 ‘無’가 부정부사로부터 어떻게 의문 어기조사로 변화되었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더욱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4. ‘?(??口爾)’

 

‘?(??口爾)’는 문장 끝에 사용되어 의문 어기를 표시한다.

 

*? 부적 적,가리키는 모양 니,가리키는 모양 이 1. 부적(符籍) 2. 가리키는 모양 3. 어조사(語助辭) 4. 귀신(鬼神)이 죽어서 또다시 귀신(鬼神)으로 된 것 a. 가리키는 모양 (니)

*? 너 니,너 이.당신(當身) :[n?] [대명사] 너. 자네. 당신. 사람. 누구. [자신을 포함하여 막연히 사람을 가리킴]

 

1차적인 조사에 따르면, ‘?(?)’의 가장 오래된 용례는 ?祖?에 7회 출현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그 중 3회는 ‘?’의 형태이고, 4회는 ‘?’의 형태이다. 우선 ‘?’의 용례를 보기로 한다.

 

 

(1) 云:“此人意作摩生?” 云:“此人不落意.” 云:“不落意此人??” (2.146.04)

“이 사람의 뜻이 어떠합니까?” 하자, “이 사람은 槪念 意義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니, “이 사람이 槪念 意義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까?”라고 하였다.18]

18]선종에는 선법을 깨닫는 것과 개념 의의와는 무관하다고 여기는데, 개념 의의에 떨어진 것을 ‘落意’라고 한다.

 

(2) 後聞夾山, 直造?陽, ?展座具, 時夾山問:“這裏無殘飯, 不用展炊巾.”

對曰:“非但無, 有亦無者處.” 夾山曰:“只今??” 對云:“非今.” (3.001.07)

후에 夾山에 관해 듣고는, 곧바로 ?陽까지 가서 座具를 펴려는데, 그때 협산이 “이곳에는 남은 밥이 없으니, 밥 지을 때 사용하는 천을 펼칠 필요가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없을 뿐만 아니라,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에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협산이 “지금은?” 하고 물으니, “지금은 아닙니다”라고 답하였다.

 

(3) 仰山便去香嚴處賀喜一切後, 便問:“前頭則有如是次第了也, 旣然如此, 不息衆人疑.”

“作摩生疑??” (5.083.03)

仰山은 바로 香嚴 있는 곳으로 가서, 모든 것을 축하한 후에 바로 “전에는 이와 같은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여러 사람의 의혹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물으니,

“어떠한 의심입니까?”라고 하였다.

 

 

위의 용례를 살펴보면, 모두 명사(예 (1)의 “此人不落意”는 앞 문장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기 때문에 1개의 名詞性 성분으로 볼 수 있음) 또는 의문대명사 뒤에 사용되어 지정 의문문을 구성한다.

이 외에 4회 출현한 용례의 표기는 모두 ‘?’인데, 그 용법은 앞과 동일하다.

 

 

(4) 問:“罕如何假?” 師云:“不希夷.” 僧曰:“作何??” 師曰:“不申 ?.” (2.133.14) 19] 

“하늘은 어떻게 아름답습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은 “玄妙하지 않느니라”라고 하였다. 이에 그 스님이 “무엇을 하게요?”라고 물으니, 스님은 “웃지 않느니라”라고 답하였다.

19]이 문장의 해석은 楊聯陞(1982)의 “罕, 疑當作‘空’;申, 疑當作‘中’”에 따랐다.

 

(5) 慶?云:“不委太子登時實有此語? 爲復是結集家語? 直饒登時不與摩 道, 便是目視四方, 猶較些子.” 師問:“什摩處??” 慶云:“深領?梨 此一問.” (3.065.10)

慶이 또 “太子께서 당시에 실제로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결집하는 사람의 말인가요? 설사 당시에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눈으로 사방을 쳐다보았다고 하는 것은 그럴 듯한 얘기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어떤 곳이?”라고 물으니, 慶이 “스님의 이 물음을 깊이 이해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6) 師有歌行一首:“……只今起者便是心, 心用明時更何?? 不居方, 無處覓, 運用無?復無跡.…….” (4.068.06)

스님의 노래가 한 수 있다. “…… 지금 일어나는 것이 곧 마음이니, 마음씀이 밝을 때는 더욱 어떠한가? 사는 곳이 없으니 찾는 곳이 없으며, 운용하는 데 자취도 없고, 또 흔적도 없다. …….”

 

(7) 師問黃蘗:“笠子太小生.” 黃蘗云:“雖然小, 三千大天世界總在裏許.” 師云:“王老師??” (4.115.13)

스님이 황벽에게 “삿갓이 너무 작구먼”이라고 말하니, 황벽은 “비록 작긴 하지만, 三千大天世界가 모두 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王老師(南泉 스님을 가리킴)는?”이라고 하였다.

 

 

‘?’字를 ?廣韻?에서는 “止聲止韻, 乃里切, 指物貌也”라고 하였으니, 이로 보면 ‘?’와 音이 같음을 알 수 있고, ?正子通?에서는 “‘?’爲語物, 音‘?.’ 如禪錄云:‘何故??’ 云:‘未見桃花時??’ 皆語餘聲”이라 하였으니, 이로 보면 양자는 같은 어휘를 상이하게 표기한 것으로 판단된다.

 

돈황 변문에서는 어기조사 ‘?(?)’을 발견할 수 없을뿐더러, 이와 비슷한 어기조사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祖?의 이러한 용례는 매우 귀중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의 출현은 근대 한어, 더 나아가 현대 한어의 새로운 조사의 출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송대에는 ‘?’?‘?’ 외에 ‘口爾’가 선종 어록에 상당량이 출현하는데,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8) 師問南泉:“近離什?處來?” 云:“江西.” 師云:“將得馬大師眞來 否?” 泉云:“只這是.” 師云:“背後底??” 無對. (?景? 卷7)

스님이 南泉에게 “최근 어디에서부터 왔는가?”라고 물으니, “江西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이에 스님이 “馬大師의 초상을 갖고 왔는가?” 하니,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스님이 “등 뒤의 것은?” 하니, 대답이 없었다.

 

(9) 師一日見僧來, 師云:“是什?物與?來?” 僧云:“口痛祗對和尙不得.” 師云:“鼻孔??” 僧無語. (?明覺禪師語錄?, 大正藏 卷47)

스님이 어느 날 한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스님이 “입이 아파서 스님께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니, 스님이 “콧구멍은?”이라고 묻자, 그 스님이 말을 하지 못했다.

 

(10) 睦州升座云:“首座口爾?” 答云:“在.” “寺主口爾?” 答云:“在.” “維那口爾?” 答云:“在.” (?圓悟佛果禪師語錄?, 大正藏 卷47)

睦州가 자리에 올라 “首座는?” 하고 물으니,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寺主는?” 하고 물으니,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維那는?” 하니,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11) 祖曰:“如何是祖師西來意, 庭前柏樹子??” (?大慧普覺禪師語錄?, 大 正藏 卷47)

祖가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냐고? 마당 앞의 측백나무는?” 하고 물었다.

 

(12) 瑞岩老子自買自賣, 弄出許多神頭鬼面, 何故?? (?無門關?, 大正藏卷48)

瑞岩 늙은이는 스스로 사고 팔고 여러 가지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니 무슨 까닭인가?

 

(13) 第一說到行不到, 第二行到說不到, 第三?, 卓主杖, 人貧智短, 馬瘦毛長. (?虛堂和尙語錄?, 大正藏 卷47)

첫 번째는 말은 할 수 있으나 행동에 옮길 수는 없고, 두 번째는 행동에는 옮길 수 있으나 말은 할 수가 없고, 세 번째는 주장자를 치고는 사람이 가난하면 뜻이 초라해진다.

 

(14) 佛果擧似五祖, 祖云:“好也?!” (위와 같음)

佛果가 五祖에게 얘기하니, 五祖는 “좋구나!”라고 하였다.

 

 

위의 예문을 살펴보면 (8), (9), (10)은 名詞性 성분 뒤에 씌어 지정 의문문을 구성하니 ?祖? 용법과 동일하다. (11)은 앞 문장을 體詞性 성분으로 간주하여 질문하는 형식으로 앞 예문 (1)과 비슷하다. (12)는 형식상으로는 의문문이긴 하나 실제로는 자문자답 형식이다. (13)은 休止를 표시하여 의문과는 무관하며, (14)는 감탄을 표시한다.

 

종합하면, 송대의 ‘?’, ‘?’, ‘口爾’는 이미 의문?休止?감탄 등 여러 가지 어기를 표시하는 어기조사로 발전되어, 기본적으로 현대 한어의 동일한 어기조사인 ‘?’의 기능을 구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당송 시기의 ‘那1’과 ‘?’을 간략히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① 출현 시기를 비교하면, ‘那1’은 六朝 시대이고, ‘?’은 오대 전후이다.

② 용법을 비교하면, ‘那1’과 ‘?’ 양자 모두 의문과 긍정 어기를 표시하나, 의문 어기가 주요한 기능이다.

 

또한 양자가 의문을 표시하기는 하나, ‘那’는 기본적으로 가부 의문문 및 반어 의문문에 사용되고 있으며, ‘?’은 지정 의문문에만 사용되고 있다.

元?明代에 오면 ‘?’가 출현하면서 ‘?’ 등이 점차 ‘?’로 대체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0]

20]예 (15), (16)은 각각 曺廣順(1995:p. 157) 및 江藍生(1986:p. 22)에서 인용한 것이다.

 

 

(15) 問道:“擔子??” 應道:“?在河裡.” ?擔?? “?在河裡.” (?萬秀娘仇報山亭兒?, 警世通言)

“짐은요?”라고 물으니, “江 안에 집어 던졌소”라고 하였다. “광주리는요?” 하니, “江 속에다 집어 던졌소”라고 하였다.

 

(16) ?娘?? ?老婆?? (?西遊記? 24.321)

자네 어머니는? 자네 마누라는?

 

 

현대 한어 어기조사 ‘?’는 그 어법 기능에 따라 대략적으로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하나는 의문을 표시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事實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지속을 나타낸다.

 

‘?’의 근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제시되었다. 呂叔湘(1941, 나중에 1984:pp. 58~72에도 수록됨)은 ‘?’는 ‘?’의 변형이고, ‘?’는 ‘在裏’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

 

太田辰夫(1958[中]:pp. 336~337)는 앞 문장의 의문을 표시하거나 의문을 강조하는 ‘?’는 五代의 祖에 나타난 ‘?’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那’의 일부 용법과 ‘?’와는 동일하다고 하였다.

王力은 처음(1958:pp. 454~457)에 ‘?’의 근원은 확정짓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였으나, 나중(1989:pp. 317~321)에는 ‘?’의 최초 형식은 ‘那’이고, 또 다른 하나의 근원은 ‘?’라고 하였다.

 

楊聯陞(1982)은 선종 어록 중의 ‘?’에 관해 약간 논술한 바 있고, 江藍生(1986), 曺廣順(1986)은 先人들의 연구를 기초로 한 걸음 더 진전된 견해를 발표하였다.

 

위와 같은 학설들을 종합한다면, 간략히 말해서 의문을 표시하는 ‘?’는 ‘?’에 근원을 두고 있고, 지속을 표시하는 ‘?’는 ‘在’?‘裏’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祖?에 ‘尼’라고 기재된 경우가 아래와 같이 1회 출현한다.

 

 

(17) 師問雲巖:“作什摩?” 對曰:“擔水.” 師曰:“那個尼?” 對曰:“在.” (1.172.06)

스님이 雲巖에게 “무엇을 하느냐?” 하니, “물을 짊어집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그것은?” 하고 물으니,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太田辰夫(1958[中]:p. 336)는 이 용례를 근거로 ‘?’부터 ‘?’ 사이의 중간에 ‘尼’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北宋 및 南宋本 ?景?에서는 이 용례가 아래와 같이 각각 ‘底’,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18) 師問靈巖:“作什??” 巖曰:“擔屎.” 師曰:“那箇底?” (北宋本 ?景? 卷14, ?州藥山惟儼禪師)

스님이 靈巖에게 “무엇을 하는가?”라고 물으니, “똥을 짊어집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그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19) 師問雲巖:“作什??” 巖曰:“擔屎.” 師曰:“那箇??” (南宋本 ?景? 卷14, ?州藥山惟儼禪師)

스님이 雲巖에게 “무엇을 하는가?”라고 물으니, “똥을 짊어집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그것은?”이라고 하였다.

 

 

즉 北宋本, 南宋本은 각각 ‘尼’를 ‘底’, ‘?’으로 표기하여 의문대명사 및 어기조사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曺廣順(1995:p. 160 註釋 ① 참조)의 조사에 따른다면, ?祖? 이외에는 훨씬 나중인 청대의 ?朴通事新譯?(1765)에 아래와 같이 단 1회 출현한다.

 

 

(20) 一百錢短一個也不賣, ???這?硬頭硬腦的尼?

(당신이) 100元에 단 한 푼이라도 부족하면 안 판다고 하니, 자네는 왜 이렇게 머리가 둔한가?

 

 

위와 같이 용례가 너무 적고, 이 외에도 청대에 ‘?’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사실 등으로 판단하면, 太田辰夫의 학설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좀더 확실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5. 맺는 말

 

당송 시기를 중심으로 어기조사 ‘那’, ‘摩(磨)’, ‘?(?)’을 살펴보았는데,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那’, ‘摩(磨??)’, ‘?(??口爾)’에 관하여:

① ‘那’는 육조 시기부터 출현하기 시작하였으나, 오대 이후에야 많은 용례가 출현하였으며, 주로 의문 및 긍정 어기를 표시하였으며, 명대 이후에는 ‘?(?)’?‘?’로 대체되어 소멸하였다.

② ‘摩(磨??)’는 당말오대에 이미 많은 용례가 출현, 의문 어기를 표시하였으며, 청대에는 ‘?’로 대체되었다.

③ ‘?(??口爾)’은 오대에 출현하기 시작, 의문 어기를 표시하였으며, 元明代에 이르러 ‘?’에 의해 대체되었다.

 

2) ‘那1’과 ‘?(??口爾)’의 比較:

① 출현 시기로 보면, ‘那1’은 六朝 전후이며, ‘?(??口爾)’은 오대 전후이다.

② 육조부터 당송 기간에서의 용법을 살펴보면, ‘那1’?‘?(??口爾)’ 양자 모두 의문과 긍정 어기를 표시하나, 의문 어기가 주요한 기능이다.

또한 양자가 의문을 표시하기는 하나, ‘那1’은 기본적으로 가부 의문문 및 반어 의문문에 사용되고 있으며, ‘?’은 지정 의문문에만 사용되고 있다.

 

3) 현대 한어 의문조사 ‘?’와 ‘?’의 근원:

각각 당말오대에 출현하기 시작한 ‘摩(磨??)’와 ‘?(??口爾)’이다.

 

 

참고 문헌

(*표시는 본문 인용 版本, **표시는 본문 작성시 참고한 影印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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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禪宗語錄所見幾個語氣助詞

 

唐宋禪宗文獻, 尤其是其語錄部分, 在同時代的各類文獻中, 含有非常?富的口語詞. 本文以?祖堂集???景德傳燈錄???五燈會元?等唐宋禪宗語錄爲主要材料, 探討下列三個語氣助詞的用法, 發展情況及來源等, 其結果如下:

 

① “那”始見於六朝, 但多見於五代以後, 主要表示疑問及肯定語氣, 明代以後被“?(?)”“?”取代.

② “摩(磨??)”已在唐末五代多見, 主要表示疑問語氣, 在淸代被“?”取代.

③ “?(??口爾)”始見於五代, 主要表示疑問語氣, 至元明代被“?”取代.

④ 現代漢語助詞“?”及“?”的來源分別是“摩(磨??)及”?(??口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