疑情의 성립과정에 대하여
- 中國禪宗 수행법을 中心으로 -
이상호
Ⅰ. 서론
일반적으로 疑心 또는 疑情의 뜻은 ‘믿지 못해 이상하게 여기는 마음이나 생각’등을 말한다.
인도의 禪定사상에서는 단지 버려야 할 번뇌의 일종이었지만, 중국 宋代의 看話禪 수행법에서는 화두를 성성하게 들어 깨닫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한다.1 그러나 의정이 간화선에서만 강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깨닫기 위해서는 의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이미 당대에 활동한 六祖慧能(638~713)의『六祖壇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2 여기서 말하는 의정은 간화선처럼 객관적으로 제시되는 화두에 대한 의정과는 달리, 구도심과 같이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갖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간화선에서는 이러한 의정도 화두에 대하여 일으키는 의심을 깨뜨리면 다함께 타파되는 것이라고 보기는 하지만, 그 둘이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3 예를 들면 生死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후 간화선을 접하여 화두에 대한 의정을 일으킬 수 있고, 혹은 먼저 화두에 대한 의정이 생긴 후, 문득 생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돌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위의 두 가지 종류의 의정을 구분하여 중국선종 수행법에서 疑情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고, 특히 간화선 수행법에서 화두에 대한 의정이 필수적인 요소로 성립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洪 喬祖 編, 通光 譯註, 『高峰化尙禪要?語錄』, (서울: 불광출판사, 1997), p.118.
“第一要有大信根 明知此事 如?一座須彌山 第二要有大憤志 如遇殺父 直慾便如一刀兩斷 第三要有大疑情 如暗地做了一件極事 正在慾露未露之時”
2 ?敦煌本 六祖壇經? 卷1, (?大正藏? 48, p.342, 上)
“但自去非心 打破煩惱碎 若欲化遇人 是須有方便 勿令破彼疑 卽是菩提見”
3 ?大慧普覺禪師書? 卷28, (?大正藏? 47, p.930, 上) 千疑萬疑 只是一疑話頭上疑破 則千萬疑一時破
Ⅱ. 주체적 의정과 의도적 의정
여기서 의정은 화두를 기준으로 주체적 의정과 의도적 의정으로 나누고자 한다. 즉, 간화선 수행에서 화두를 풀기 위해서 문제의식의 역할을 하는 의정을 ‘意圖的 疑情’이라 하고,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로서 생사번뇌 등에 대하여 스스로 일으키는 의정을 ‘主體的 疑情’이라고 한다.
물론 ?大慧普覺禪師書?(이하 ?書狀?으로 함)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정은 생사번뇌와 같은 근원적인 문제의식까지도 포함하고 있다고 하지만,4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에서 밝힌 바와 같다. 이 차이점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 大慧(1089~1163)가 門下의 居士와 儒臣등의 질문에 答하여 禪의 要旨를 說한 書簡文 26편을 제자 惠然과 黃文平 居士가 모아 南宋 乾道 2년(1166)에 발문을 붙여 간행한 것.
첫째, 직접 接하는 對象이 다르다. 주체적 의정은 생사 등 자신의 문제에 직접 당면하여 일으키는 내면적 심리과정에 따르지만, 의도적 의정은 일정하게 제시되는 화두를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는다.
둘째, 의정을 갖게 되는 때가 다르다. 주체적 의정이 생기는 때를 일정하게 정할 수 없지만, 의도적 의정은 화두를 가지고 그 화두에 대하여 의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셋째, 의정이 주어지는 계기와 점검의 과정에서 차이가 생긴다. 주체적 의정은 주체적 입장에서 스스로 일으키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계기에 의하여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기적인 점검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의도적 의정은 화두를 제시하는 스승을 따르게 되므로 일단은 외부로부터 계기를 만들게 되는 것이며, 수행의 과정에서는 스승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넷째, 그 절실함에서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의도적 의정은 자신의 문제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므로 처음에는 절실함이 부족할 수 있지만, 당장 절실한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화두에 대한 의정을 중심으로 쉽게 禪 수행에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주체적 의정은 자신의 문제를 전제로 하므로 그 답을 찾고자 하는 절실함은 깊을 수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인 매개로 사용하여 수행하기가 어렵다.
이와 같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선종에서는 이 두 가지의 의정을 적절히 이용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의정들이 수행법의 발전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Ⅲ. 禪宗 수행법에 나타난 疑情의 성립 과정
중국선종의 역사 속에서는 각각 특색 있는 수행법의 시대가 있었다. 菩提達磨(?~495?)를 중심으로 하는 初期禪宗 시대를 거쳐 祖師禪, ?照禪, 看話禪 등이 그것이다. 이 수행법을 중심으로 疑情의 전개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기선종 시대에는 보리달마의 禪思想에서 主體的 疑情에 대한 입장이 나타난다. 보리달마는 주체적 의정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수행에 방해되는 망상으로 다루었다.
둘째, 六祖慧能(638~713)에서부터 시작되는 祖師禪의 시대는 주체적 의정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방편으
로 삼아 긍정적으로 사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당대는 禪師들의 선문답과 깨달음이 가장 왕성하고 활발하였으며, 이때 깨달음의 機緣들이 宋代에 본격적으로 편찬된 公案集 마련의 풍부한 자료가 되었다. 공안집의 편찬에 따른 文字禪의 등장은 主體的 의정의 약화와 이를 대체하는 意圖的 의정의 등장을 요구하게 되는 상황들이 형성된다.
셋째, 간화선 성립과 비슷한 시기에 ?照禪이 먼저 성행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좌선 그 자체에 집착하고 더 이상의 깨달음을 부정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경향은 主體的 疑情을 거부하거나 억제시켜 결국 수행력의 質的 저하를 초래하게 되었다.
넷째, 大慧宗?(1089~1163)가 ?照邪禪의 경향을 심각한 폐단이라고 비판하고서 話頭參究와 깨달음의 중요성을 다시금 고취시켰으며, 이것은 결국 화두에 대한 意圖的 疑情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1. 初期禪宗 시대 : 主體的 疑情의 부정
주체적 의정은 어느 특정 시대나 혹은 지역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존재하는 모든 인간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초기선종 시대 菩提達磨(?~495?)(?~495?)와 혜가(487~593)가 처음 만나는 斷臂求法의 古事를 살펴보면 혜가의 강렬한 구도심을 엿볼 수 있고, 이것은 主體的 疑情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혜가가 말하기를, '제 마음이 아직 평안치 못합니다. 스승님께서 평안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菩提達磨(?~495?)가 이르기를, ’마음을 가져오너라 너에게 평안을 주겠노라‘ 하자, 혜가가 한참 침묵하다가 아뢰기를, ’마음을 찾아도 얻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혜가가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평안한 마음을 다 주었노라‘ 하였다“5
5] 脂月錄, 卷4, 1868 重刊本, p.6.
"可曰, 我心未寧 乞師與安 祖曰 將心來 與汝安 可良久 曰 覓心了不得 祖曰 我與汝安心竟"
여기서 혜가가 평안한 마음을 구하는 주체적 의정을 표현하지만 菩提達磨(?~495?)는 그것이 오히려 평안한 마음에 방해되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보리달마의 禪思想的 입장이 잘 나타나 있는 『理入四行論』 無所求行에서도 이러한 사상이 제시되고 있다.6
6] 菩提達磨(?~495?)가 직접 著作으로 남긴 것은 아니지만, 菩提達磨의 제자 曇林이 쓴 ?略辯大乘入道四行幷序?에 菩提達磨의 親說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정각(683~750?)이 저술한 ?楞伽師資記』에 수록되어 있다.
“구하는 것은 모두가 괴로움이니 구하지 않음으로써 樂에 이른다.” 7
7]『續高僧傳』, 卷16, (?大正藏? 50, p.551, 下)
“三名無所求行 世人長迷處處貪著 名之爲求 道士悟眞理與俗反 安心無爲形隨運轉 三界皆苦誰而得安 經曰 有求皆苦 無求乃樂也“
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오히려 망념이 되어 眞性을 가리는 장애가 되는 것이니, 이 장애만 제거하면 眞性은 그대로 드러난다고 말한 것과 같다.8 이것은 인도의 禪定思想에서 의정을 번뇌의 일종으로써 장애물로 다룬 것과 비슷하다.
8] 『續高僧傳』, 卷16, (?大正藏? 50, p.551, 下)
“深信含生同一眞性 客塵障故”
그러나 혜가는 오로지 이 주체적 의정에 몰두하여 一念을 이루었기에 菩提達磨(?~495?)의 言下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본다. 주체적 의정에 대한 보리달마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그 의정에 대한 부정 자체가 이미 깨달음을 위한 방편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보리달마가 二入論에서 말하는 바, “宗으로 깨달아 들어가는 것은 ‘捨妄歸眞’으로 이루고 ‘捨妄歸眞’하려면 凝住壁觀하라고 하라”는 도리와도 통한다.
“妄想을 버리고 眞性에 돌아가고자 하건대, (마음을)뭉쳐서 머물러 흐트러짐 없는 壁과 같이 觀하라”9
9] 박건주 譯, ?楞伽師資記?, (서울: 운주사, 2001), p.87.
“若也捨妄歸眞 凝住壁觀”
‘凝住’라는 것은 妄念을 다스려 마음을 뭉쳐서(집중해서) 一念이 이루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 구하려는 마음으로 一念을 이룬다면, 즉 순수하게 主體的 疑情에만 몰두해 있다면 그 자체가 凝住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壁觀’이라는 것은 차별 없고 흐트러짐 없는 벽과 같이 오직 觀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대상을 두는 觀이 아니므로 차별세계를 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眞性을 그 바탕으로 하는 것이므로 아무런 疑惑없이 一味로 觀하는 것이다.
이 凝住와 壁觀은 看話禪 修行法에서 화두에 대하여 疑情을 형성시킴과 동시에 화두를 타파하기 위하여 參究하는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즉, 화두에 대한 의정은 곧 一念으로 뭉치는 것 혹은 집중하는 것으로서 凝住와 비교되며, 처음에 상대적 대상으로 여기던 화두가 점차 자기와 일체가 되어버리는 경지에서 타파할 때까지 궁구하는 참구는 壁觀과 비교된다.
그러나 看話禪에서는 화두를 깨뜨리기 위하여 意圖的으로 의정을 일으키게 만들고 그 의정은 지속적으로 수행을 이끌어 가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반면에, 凝住壁觀에서는 화두와 같은 객관적인 대상으로 의도적인 틀을 세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內面的 욕구인 求道心으로 나타나는 主體的 의정도 버려야 할 망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외견상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선종에서 主體的 疑情에 일단은 주목하고서 그것이 바로 妄念임을 깨달아 벗어남으로써 眞性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구하려는 마음 혹은 주체적 의정을 부정하면서도 수행법의 논의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2. 祖師禪 : 主體的 疑情의 긍정
菩提達磨(?~495?)로부터 시작된 중국 선종은 六祖慧能(638~713)에 이르러 본격적인 중국선종의 특징을 지니게 된다. 이 무렵에는 인도선의 習禪的 경향에서 벗어나 일상생활 속에서 禪 수행을 강조하였다. 이때부터 祖師禪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는데, 祖師禪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仰山慧寂(807~883)이다.10
10] 董群 著, 金鎭戊 譯, ?祖師禪?, (서울: 운주사, 2000), pp.18~21, 참조.
이 혜능의 禪사상이 담겨 있는『六祖壇經』에서 의정과 관련하여 두 가지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의정을 가지고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이고11 둘째, 스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11] ?敦煌本 六祖壇經? 卷1, (?大正藏? 48, p.342, 上)
“惠能歸漕溪山 衆生若有大疑 來彼山間 爲汝破疑 同見佛 世合座官寮道俗禮拜和尙
먼저『六祖壇經』에서 말하는 의정은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집중하는 주체적 의정이다. 혜능은 의정을 망상과 같이 선정의 장애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수행의 방편이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無想頌에서 이렇게 말한다.
“단지 자신의 잘못된 마음만 버린다면 煩惱를 타파하여 부숴 버린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을 敎化하고자 하면 이는 반드시 方便이 있어야 한다. 그의 疑心을 깨뜨리려 하지 마라. 곧, 이것으로써 깨닫게 되리라” 12
12] ?敦煌本 六祖壇經? 卷1, (?大正藏? 48, p.342, 上)
“但自去非心 打破煩惱碎 若欲化遇人 是須有方便 勿令破彼疑 卽是菩提見”
이 主體的 疑情을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 즉, 중생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체적 의정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사용한 것은 그 이전의 선정사상에서 바라보는 의정에 대한 관점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의정을 깨뜨려 깨닫고자 함은 돈오 사상을 전제로 하기에 가능하였다. 중국 선종의 돈오설에 많은 영향을 끼친 竺道生(?~434)은 돈오에 대한 정의를 “찰나에 망념을 모두 없애고 오로지 진실한 반야실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제법실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바로 성불이라고 여겼다.13 이 제법실상에 대한 이치의 탐구는 求道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그 구도심을 스스로 일으킨다면 主體的 疑情과 다름없으며, 그 의정을 깨뜨리는 것은 곧 돈오적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13] 洪修平?孫亦平 共著, 노선환?이승모 共譯, ?如來禪?, (서울 : 운주사, 2002) pp.190~192 참조.
또 한 가지의 특징은, 主體的인 疑情으로 인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인정하고 있음과 동시에, 만약 스스로 깨우치지 못할 경우에는 반드시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받아서 一大事 큰 인연 맺기를 권장함으로써 스승의 역할을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각자 마음을 觀해서 스스로 本性을 몰록 깨닫게 하라.
(…)
最上乘法을 알아서 이 바른 길을 곧바로 찔러주는 이가 大善知識이며 큰 因緣이다.
(…)
一切의 선한 법은 모두가 大善知識으로 인하여 發하고 일어난다.
(…)
自性을 깨닫지 못하거든 모름지기 見性을 말하고 보여주는 善知識을 얻어라. 만약 스스로 깨달은 자는 바깥으로 善知識을 구하지 말라.”14
14] ?敦煌本 六祖壇經? 卷1, (?大正藏? 48, p.340, 下)
“各自觀心 令自本性頓悟
(…)
解最上乘法直是正路 是大善知識 是大因緣
所爲化道令得見佛 一切禪法 皆因大善知識能發起
三世諸佛十二部經 云在人性中 本自具有 不能自姓悟 須得善知識示道見性 若自悟者不假外善知識”
一切의 善한 법이 모두가 大善知識으로 인하여 일어난다는 말은, 선지식 곧 스승이 가진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상을 나타내주며, 또한 다양한 수행 방편이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은 혜능 이후 제자들에 의하여 선종이 번창하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즉 수행자 개개인이 갖는 강렬한 주체적 의정에 대한 긍정과 함께 스승의 적극적인 교화방식에 대한 사상이 기본적으로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본다.
3. ?照禪 : 主體的 疑情의 억제
혜능으로부터 시작하여 五家七宗의 조사선 시대를 거치면서 臨濟宗 楊岐派에서 看話禪이 갈라져 나오고 曹洞宗의 禪風을 이어받은 ?照禪이 등장하였다. 묵조선 주창자는 宏智正覺(1091~1157)이다. 묵조선은 간화선보다는 조금 일찍 유행한 禪宗修行法이다. 묵조선에서는 坐禪을 통한 ?照로써 物我具亡의 경지를 顯現할 수 있고, 一切의 진리가 본래부터 완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本證에 대한 自覺, 즉 본각 사상에만 치우쳐서 靜坐?究하는 행위에만 집착하게 된다면 坐禪은 형식적 행위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나타난 것에 대하여 간화선 주창자인 大慧宗?는 ?照邪禪이라고 하며 거세게 비판을 가하게 된다.
?照邪禪을 비판한 것은 묵조선 그 자체의 思想的 배경의 잘잘못을 논하기 보다는 수행의 과정에서 깨달음을 인정하지 않거나 혹은 무시하려는 병폐 때문에 형식적인 수행법으로 전락하게 된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15 그러한 병폐는 수행자 개개인의 主體的 疑情을 거부하거나 억제하게 되고, 결국 생기있는 수행법을 놓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15] ?大慧普覺禪師書? 卷30, (?大正藏? 47, p.941, 下)
“亦謂之?而常照 爲禪者 如此等輩 不求妙悟 以悟爲落在第二頭 以悟爲?謔人 以悟爲建立 自旣不曾悟 亦不信有悟底”
또한 묵조선이 靜坐?究로써 출발점을 삼는 완전한 자각은 그만큼 완전한 믿음을 근거로 삼는 바, 이것은 看話禪에서 疑情에 疑情을 더하여 話頭一念으로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 도달하는 경지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는 길은 스스로 직접 체득하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믿음이라는 것은 믿고자 하는 의지에 의하여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완전한 자각에 이를 때 가능해지는 것이며, 완전한 자각은 강열한 구도심 또는 주체적 의정으로부터 비롯된다.
물이 차가운지 혹은 뜨거운지는 스스로 마셔봐야 안다는 말이 있듯이 간화선에서 화두에 대한 의정을 통하여 깨닫게 될 때는 완전한 믿음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묵조선을 주창하는 선각자의 입장에서는 깨달음의 체험을 바탕으로 本證自覺的 사상을 설파할 수 있겠지만, 만약 이것이 敎條化되어 의정 그 자체가 거부되거나 억제된다면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깨달음의 체험 없이 말로서만 本證自覺을 찾을 것이니 그 생명력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
이것은 初期禪宗에서 主體的 疑情을 부정한 것과는 다르다. 菩提達磨(?~495?)는 疑情의 부정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이끌고자 하였으나, ?照邪禪에서 깨달음을 부정하는 것은 의정을 갖는 것,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두 경우는 서로 같다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주체적 의정을 거부 또는 억제하는 ?照邪禪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깨달음을 강조하게 되는 간화선이 발전하게 되었고, 화두에 대한 의정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看話禪 : 意圖的 疑情의 성립
1) 成立 背景
疑圖的 疑情이 성립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은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산발적인 公案들을 모은 公案集이 편찬되었다는 점과 둘째, 이를 계기로 文字禪의 등장과 함께 主體的 疑情이 약화되고 그 대안으로써 意圖的 疑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공안은 화두와 같은 의미로도 쓰이며 禪僧들이 때와 장소에 구애 없이 臨機應變的인 活作略으로 제자를 깨침에 이르도록 인도하였던 機緣들을 禪宗의 원리적인 것으로 발전시킨 것인데,여기에 별도의 著語, 拈古, 頌古 등 비판을 붙여 만든 것이 公案集이 되었다.16
16] 李喜益, ?坐禪?, (서울: 경서원, 1988), p.43 참조.
가장 대표적인 公案集으로는 北宋 初期 1004년에 承天道原이 1700여 公案을 수록하여 편집한 ?景德傳燈錄?이며, 여기에는 禪宗의 역사와 師資相承의 機緣이 기록되어 있어 본격적인 최초의 禪宗史書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看話禪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17 公案集이 편찬됨에 따라 전문적인 수행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士大夫 계층에게도 공안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켜서 士大夫들의 교양을 풍부하게 하고 광범위한 지식층이 參禪을 접하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일정한 공안을 참구함으로써 마침내는 公案을 이용한 修行法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公案集이 편찬되면서 공안을 해석하고 감상하면서 즐기거나 傳乘하는 일에 안주하게 됨에 따라 당시 지배층이던 士大夫들에 의하여 교양정도로 여겨지게 되고, 화두에 대한 禪問答이 점차로 형식적이고 문학적으로 戱論하는 것으로 변질된 부정적인 측면이 더욱 강하였다.18
이것을 ‘文字禪’이라고도 하는데, 宋代 初期 雪竇重顯(980~1052)이 편집한 ?百則頌古?는 宋代 문자선의 개막을 의미하였다.19 宋代 文字禪의 경향은 唐代에서 신선하고 구체적이었던 生活佛敎의 매력을 엷어지게 하였다.20 이에 따라 公案 본래의 意義를 되찾고자 노력한 것이 공안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이었고, 공안 또는 화두를 參究하는 수행법으로써 간화선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화두 참구시 필수적인 요소로 강조된 것이 바로 疑圖的 疑情이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疑情을 거부하거나 억제하였던 ?照邪禪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하여 깨달음이 강조되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이 깨달음의 강조는 결국 화두에 대한 의도적인 의정의 성립을 촉진시켰다고 볼 수 있다.
17] 야나기다세이잔 著, 안영길?추만호 譯, ?禪의 思想과 歷史?, (서울:민족사, 1989), p.248.
18] 鄭性本, ?禪의 歷史와 思想?, (서울: 佛敎시대사, 2000), pp.442~443.
19] 야나기다세이잔 著, 안영길?추만호 譯, ?禪의 思想과 歷史?, (서울:민족사, 1989), p.250.
20] 야나기다세이잔 著, 안영길?추만호 譯, ?禪의 思想과 歷史?, (서울:민족사, 1989), p.250.
2) 意圖的 疑情의 성립
간화선은 大慧宗?(1089~1163)에 의하여 확실하게 수행법으로써 체계화되었으나, 그에 앞서 五祖法演(1024~1104)의 설법에서 이미 話頭參究와 疑情이 강조되기 시작함을 볼 수 있다.
『法演禪師語錄卷下』에 의하면 趙州(778~897)의 狗子無佛性의 ‘無’字 話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參究하도록 권하고 있다.
“상당하여 들었다.
‘僧이 趙州從諶(778~897)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佛性이 있습니까?’ 하니 趙州從諶이 ‘없다’ 하였다
(…)
‘대중들이여, 평상시에 어떻게 해서 계합하려 하는가?
(…)
만약, 이 하나의 글자를 투득한다면 天下의 사람들이 그대를 어쩌지 못할 것이니, 그대들은 어떻게 투득하려는가?(…)
나는 ‘있다’는 것을 말하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없다’고 말하는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하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말하려는가?‘ “21
21] 『法演禪師語錄卷下』, (?大正藏? 47, p.965, 中)
“上堂擧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僧云 一切衆生皆有佛性 狗子爲什?? 無州云 爲伊有業識在
師云 大衆爾諸人 尋常作?生會
老僧尋常只擧無字便休
爾 若透得這 一箇字 天下人不柰爾何 爾諸人 作?生透
還有透得徹底? 有則出來道看 我也不要爾道 有也不要爾 珍重”
五祖法演은 이 上堂法門에서 많은 公案 가운데 無字公案 하나만 參究하여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공안을 하나만 參究하도록 한 것은 여러 개의 공안으로 頌古하거나 着語, 비판하며 戱論하던 경향과는 완전히 차별이 생긴다. 하나의 화두를 參究함으로써 수행자는 그 話頭에만 집중하여 몰입할 수 있게 되고, 그 집중을 위하여 화두에 대한 意圖的 의정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이 의도적 의정을 촉발시키고 극대화시키려는 방편으로써 五祖法演은 否定論法을 이용하여 學人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가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大慧宗?(1089~1163)는 간화선을 체계적으로 정형화시키고 동시에 화두에 대한 의정의 중요성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게 되었으며, 이후 禪師들에 의하여 갈수록 강조되었다. 元代 高峰原妙(1238~1295)는 의정을 憤心, 信心과 더불어 간화선 수행의 필수적인 三要素로 규정하였다.
Ⅳ. 결론
간화선 수행은 화두가 그 중심에 있지만, 그 내면의 심리작용은 화두에 대한 의정이므로 화두와 의정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의정이 수행법의 방편이 된 것은 중국선종 수행법에서 주체적 의정에 주목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 주체적 의정의 약화에 따른 병폐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화두에 대한 의도적 의정이 대두되었다고 볼 수 있다.
意圖的 疑情이 갖는 장점은 직접 생사와 같은 문제를 대면하지 않더라도 화두를 가지고 언제라도 수행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무리 화두에 대한 의도적 의정이 절실하다 할지라도 자신이 당면한 문제만큼이나 절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간화선 수행에서 화두를 자신의 문제로 완전히 내면화 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며, 거기서 의도적 의정은 주체적 의정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의정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중국선종 수행법에 대한 분석적 시도는 수행법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써 유효하리라고 본다. 즉 다양한 종류의 수행법에서 외견상 차이점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수행법의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적 흐름을 읽어내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수행의 길에 들어서는 인간을 더욱 더 깊이 이해하려는 것임과 아울러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행법도 함께 세심한 변화와 발전을 도모해야 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선종수행법에서 의정에 대한 변화의 흐름은 결국 수행법이라는 것도 인간의 심리적 흐름과 발맞추어 모자란 부분은 채우고 남는 부분은 덜어내어서 그야말로 중도의 길로 발전해나가야 함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요약
疑情은 主體的 疑情과 意圖的 疑情으로 나눌 수 있으며, 話頭에 대한 의도적 의정이 성립되기 이전에 중국선종 수행법에서는 주체적 의정이 깨달음의 방편이 되어왔다. 初期禪宗 시대에는 구도심과 같은 주체적 의정이 妄想으로 여겨졌으나, 그 망상을 버림으로써 眞性에 돌아갈 수 있다고 한 것은, 곧 주체적 의정의 부정, 그 자체를 수행법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意義가 있다. 반면에 六祖慧能에 이르러서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의도적으로 주체적 의정을 가지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권장함으로써 수행법의 한 방편으로 활용하였다. 宋代에 들어 文字禪이나 혹은 ?照禪이 성행함에 따라 깨달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었고, 이에 따라 주체적 의정이 거부되거나 억제됨에 따라 수행의 생기를 잃게 되는 폐단이 생겼다. 다시금 깨달음을 강조하면서 나타난 수행법이 看話禪이며, 이 때 화두에 대한 意圖的 疑情이 부각된다. 간화선이 체계화되면서 화두에 대한 의도적 의정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로써 더욱 강조되었다.
이상과 같이 중국선종 수행법의 발전과정은 구도심과 같은 주체적 의정이 점차 화두에 대한 의도적 의정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제어] 의도적 의정, 주체적 의정, 조사선, 묵조선, 간화선
ASTRACT
A Study on the Formation process of Yiqing(疑情)
- According to the discipline of Chinese Dhyana Sect-
Lee Sang-ho
Ph.D.Candidate, Sogang Univ.
The 'Yiqing(疑情)' can divide into the subjective Yiqing originated from internal desire and the intentional Yiqing in the Koan Meditation means a factor of consistent and typical discipline. The subjective Yiqing or seeking mind was regarded as delusion that obstructs the true mentality from the viewpoint of Damo the first founder of Chinese Dhyana Sect, so those might be eliminated. It connoted that the manifestation of subjective Yiqing, because Damo's idea meant that pays attention to the subjective Yiqing, which was already generated, and arranges that mind.
Huineng, the 6th founder of Zen Buddhism, said that edification is established on the basis of the 'Yiqing(疑情)'. However, as the Literal Meditation and 'Mozhao Meditation (?照?)' were being prevailed in the Song Dynasty, The subjective Yiqing was abated. So the Koan Meditation was established by Great Dahui, the Koan Chase was fully begun and the intentional Yiqing was emphasized.
The Yiqing shown in Koan Meditation Discipline is not suddenly generated in Chinese Dhyana Sect, and it had been intermittently stated long ago. As previously stated, Development process in Chinese Dhyana Sect shows that the subjective Yiqing is replaced by the intentional Yiqing
[Key Words] Yiqing, Koan Meditation, intentional Yiqing, subjective Yiq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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