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佛敎에關한 글

唐宋 禪宗의 言語觀 / 송인성

경호... 2013. 1. 25. 02:21

唐宋 禪宗의 言語觀

 

 

송인성/고려대학교

 

 

Ⅰ. 머리말

 

中國의 禪宗은 北魏시대에 中國(梁나라)에 온 印度僧인 菩提達摩[磨]( ?­­528 또는 ? ­­536)를 初祖로 하고, 2祖 慧可?3祖 僧璨?4祖 道信(580­651)?5祖 弘忍(601­674)?6祖 慧能(638­713)의 순서로 그 禪法을 전했다고 한다. 1]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六祖인 慧[惠]能(638­713), 즉 唐代(618­907) 初期에 와서야 禪宗을 불교의 一派로서 간주하기 시작했으며, 아울러 慧能의 『六祖壇經』을 禪宗의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여기게 되었다.

 

禪宗은 慧能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점점 융성해져서, 唐末 五代 및 北宋시기가 그 전성기가 되었으며, 元明이후의 禪宗은 차츰 佛敎의 다른 宗派와 결합이 되어 그 나름의 특색을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된다.

 

唐宋 禪宗의 특색이란 소위 “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종래의 전통적인 貴族 社會의 권위주의적 입장을 벗어난 인간의 自然 그대로의 존재를 강조하는 人間觀의 革新이라고 할 수 있다.

 

唐宋 禪宗의 言語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不立文字”로, 아래에서는 “不立文字”의 出典과 그 意義 및 禪宗 言語觀의 歷史 變化를 간략히 고찰하기로 한다.

 

1]中國 禪宗의 성립 및 전개 과정에 관한 서적은 여러 권 출간되어 있으나, 中國에서 최초로 간행된 것은 印順(1971)의 ≪中國禪宗史≫(臺北:自印)로, 以後 中國 및 日本에서 출간된 관련 서적에 많은 영향을 끼친 名著임. 우리말로 된 것은 鄭性本(1991)의 ≪中國禪宗의 成立史 硏究≫(서울:民族社) 를 참조할 것.

 

 

 

Ⅱ. “不立文字”의 出典

 

中國 禪宗의 발전 과정 중에 저 有名한 “拈花微笑”란 것이 있다. 釋迦牟尼 부처가 靈鷲山 법회에서 많은 대중들 앞에서 沈?하고 다만 한 송이 연꽂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부처의 뜻을 알지 못했는데, 이 때 부처의 10대 弟子 중의 하나인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부처의 뜻을 알고는 홀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는 그 자리에서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진리에 대한 바른 안목[正法眼藏]과 열반으로 향하는 미묘한 마음[涅槃 妙心], 형상을 벗어난 실상[實相無相]과 지극히 미묘한 진리의 문[微妙法門],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不立文字], 경전의 법을 넘어선 가르침[敎外別傳]을 摩訶迦葉에게 전하노라...” 2]

2]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實相無常, 微妙法門, 不立文字, 敎外別傳, 付囑摩訶迦葉 <五燈會元>권1).

 

 

법회후에 부처는 迦葉을 탑 앞에 데리고 가서, 迦葉에게 法座에 오르게 한 후, 자신의 金? 袈裟를 迦葉의 몸에 걸치게 하고, 또한 그에게 “나는 진리에 대한 바른 안목[正法眼藏]을 너에게 전하니, 너는 잘 지켜서 전하거라”3]라고 부탁하였다.

3]吾以正法眼藏,密付於汝.汝當護持,傳付將來.五燈會元≫권1)

 

이렇게 하여 禪家에서의 소위 “衣, 法 雙授” 傳法儀式이 정식으로 완성되어, 摩訶迦葉은 “西天(印度) 禪宗의 제 1祖”가 되었고, “不立文字”는 자연히 禪宗의 言語觀이 된 것이다.

 

 

Ⅲ. “不立文字”의 意義

 

“不立文字”는 禪宗 文獻에서 “不執文字”, “不落語言”, “不落脣吻”, “不涉言詮”, “不立義解” 등등 여러 가지 형태로 출현하고 있으나, 그 의미는 大同小異하다.

 

“不立文字”란, 즉 禪宗의 오묘한 禪法은 언어로는 전달할 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五燈會元≫(1252)에는 德山宣鑑(?782­865)이 제자인 雪峰義存(822­908)을 깨우치는 아래 내용이 게재되어 있다.

 

 

"雪峰이 “위로부터의 宗風을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큰스님 (즉 宣鑑 禪師를 가리킴)이 한 대 때리면서 “뭐라고 말했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雪峰은 “스님이 말씀하시는 뜻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다음날 다시 雪峰이 宣鑑에게 배움을 청하자, “나의 宗에는 말이 없기에, 타인에게 어떠한 법도 전해 주지 않네.”라고 하였다. 이에 雪峰은 크게 깨달았다." 4]

4]雪峰問:“從上宗乘,學人還有分也無?” 師(宣鑑)打一棒曰:“道什?!” (雪峰)曰:“不會.”

至明日請益,師曰:“我宗無語句,實無一法與人.”峰因此有省. 五燈會元. 권 7. 德山宣鑒 禪師≫)

 

 

여기서 “나의 宗에는 말이 없다(我宗無語句)”라는 것은, 즉 禪宗은 “不立文字”를 추구함을 가리킨다.

禪宗 語錄에는 학승들의 질문에 禪師가 沈?을 지키고 말을 하지 않는 행위가 자주 출현하는데, 여기서는 아래에 1개만 예를 들어 본다.

 

 

"廣主가 “어떤 것이 禪입니까?”라고 물으니, 章 禪師는 침묵을 지키고, 말이 없었다." (廣主問:“如何是禪?” 師乃良久.) 5]

5]≪五燈會元≫권 15. 淨法章禪師.

 

 

“良久”는 古代 漢語 6]에서는 “아주 오래”라는 의미였으나, 唐?宋 시기의 일반 문헌 및 禪宗 語錄에서는 대개 “良久不語”, “良久思惟”, “沈吟良久”, “沈思良久” 등의 형태로 출현하여, 오래 사용되다 보니, “良久”라는 단어 자체가 “침묵하고 말을 하지 않다”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禪宗의 不立文字란 言語觀은 禪師들로 하여금 法堂에서 늘 오랫동안 침묵을 하게 하여, 이러한 것이 語錄에 기록되어 “良久”라는 어휘가 원래는 없던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것이 바로 宗敎 思想이 語彙의 의미를 변화하게 한 典型的인 예의 하나이다.

6]古代 漢語는 일반적으로 先秦?兩漢?六朝 시기의 漢語를 가리키며, 일반적으로 唐宋明淸 시기의 漢語를 近代 漢語라고 일컫는다.

 

 

여기서 唐代 藥山惟儼(?751­834)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어느 날 院主가 惟儼을 청하여 법문을 해 달라고 청하자, 惟儼은 응락하였다. 이윽고 학승들이 법당에 가득차자, 惟儼은 法座에 올라 잠시 아무 말도 없더니, 자리에서 내려와 方丈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자 院主는 급히 方丈으로 ?아가서 禪師에게 “上堂하여 법문을 해 주시기로 해 놓고는,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도로 方丈으로 돌아 가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惟儼은 “院主, 佛經을 講하는 것은 經師가 있고, 佛經의 論에는 論師가 있으며, 佛經의 律에는 律師가 있는데, 나를 왜 탓하는 거요?”라고 하였다.7]

 

7] 師曰:“院主!  經有經師, 論有論師, 律有律師,又爭怪得老僧?”

(≪景德傳燈錄≫권 14. ?州藥山惟儼禪師)

 

惟儼은 당시의 高僧으로, 이러한 행동은 즉 禪法은 말로 전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禪法은 傳統 佛敎와는 相異하여, 모든 불교 經典(經.論.律)이외의 것에 속하여, 禪家에서 말하는 소위 “敎外別傳”으로, 唐末五代의 禪師들은 佛經 읽는 것을 배척하였다.

 

 

Ⅳ. 禪宗 言語觀의 歷史 變化

 

宋代 이후 禪宗의 思想적 특색은 점차 쇠퇴해지고, 禪宗과 佛敎의 다른 宗派와 결합이 되면서, 禪宗의 言語觀도 상당한 변화를 갖게 되었다.

 

宋代의 많은 禪師들은 前代 祖師의 言敎를 매우 중시하여 이를 “公案”, “話頭”, 또는 “古則”이라고 불렀다. 당시의 禪師들은 학승들에게 평상시 부단히 사색하고 이러한 公案들을 갈고 닦도록 하였다. 이러한 것이 바로 “公案禪”, “看話禪”이다.

 

또한 禪師들은 說法시 늘 公案을 예로 들어, 나름대로의 의견들을 제시하곤 했는데, 이를 “拈古”, “頌古”라고 하였다. 先人들의 “問頭”(즉 “질문”을 말함)에 대하여 대신 답하거나 별도로 답하는 것을 “代語” 또는 “別語”라고 하였다. 禪院에서 上堂하여 說法할 때는 대개 질문에 답하거나, 偈를 지어 답하거나, 옛것을 들어 답하거나, 논리를 갖추어 길게 답하곤 하였다.당시의 寺刹에서는 “禪客”이라는 직책을 만들었는데, 이는 말을 잘하고, 임기 응변이 뛰어난 승려를 선발하여, 住持 스님이 上堂하여 說法할 때 서로 問答을 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禪風은 당시 사람들에 의하여 “葛藤禪”, “老婆禪”(“되풀이 하여 禪을 말하다”는 의미임)이라고 비판받았다.

 

또한 동시에 禪師 語錄의 編輯과 禪師들의 다른 저술도 점차 많아졌다. 唐末五代는 禪宗이 가장 興盛한 시기로 대다수의 중요한 禪師는 모두 이 200년 간에 활동하였지만 전해지는 語錄은 극히 드물고, 기타 著述은 더욱 드물다.8] 그러나 이 이후의 상황은 아주 相異하여, 禪師들의 개인 語錄이 점차 많아지고, 그 분량도 또한 많아졌다. 語錄 이외에도 기타 다른 體裁의 書面語 작품도 적지 않게 간행되었다.9]

 

8] 唐五代에 편찬된 것으로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으로는 ≪六祖檀經≫(敦煌本:9­10세기), ≪神會語錄≫, ≪祖堂集≫(952) 정도이다.

9]禪宗 文獻은 의외로 상당한 量에 달하는데 (예를 들면, 隋唐 이래의 中國.日本.韓國 승려들의 저술을 宗派별로 편집한 ≪續藏經≫ 諸宗部의 ⅔에 해당하는 239부,1009권에 달함), 袁賓(1995:95­109)에 따르면, 體裁에 따라, 1)傳燈錄 2)傳記 3)語錄 4)拈頌 5)詩歌 6)其他(論議類.筆記類.淸規類등)로 나누기도 한다.

 

 

北宋과 南宋이 교체하는 시기에 간행된『碧巖錄?(1128)은 禪宗 言語觀의 변화를 상징하는 커다란 標識이다. 이 이전에 北宋 初期에 설두중현 (雪竇重顯:980­1052)이 『頌古百則?을 간행하여, 100개 禪語(公案)를 詩偈의 형식으로 의견을 제시하여, 이미 “文字禪”의 시작을 의미하였으나, 이러한 詩偈는 아주 짧고 또한 의미가 뚜렷하지 않아, 不立文字 시기의 禪家 言語의 특출하고 간략한 스타일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圓悟克勤(1063­1135)은 ?頌古百則?의 기초위에다가 문제를 제기하는 성격의 “垂示”와 註釋을 다는 “着語” 외에, 또한 상당량의 해설 및 평가를 더하여 ?碧巖錄? 全 10卷을 편찬하였는데, 이는 不立文字를 추구하는 禪家의 宗旨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간행되자, 禪家에서 어떤 이들은 이 책의 저술 의도는 禪家의 宗旨를 벗어난 것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言語 文字로부터 禪義를 추구하게끔 한다고 비판하였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宗門第一書”라고 높게 평가하였다. 그러나 禪宗 言語觀의 변화는 이미 당시의 추세로, 반대자의 비판은 결코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元明 시기에 이르러서, 禪師들의 言語 文字에 대한 아래와 같은 견해는 禪宗 言語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1) 부처와 祖師가 남긴 一言 半句를 반드시 믿는다면, 불현듯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10]

10]須信佛祖留下一言半句,灼然有個悟處.

(元.惟則의 <示信維那>, ≪惟則語錄≫ 권 3에 수록됨)

 

2) 즉 言語 文字는 봄의 꽃과 같은 것이어서, 어떤 사람은 꽃을 버리고 봄을 찾으려고 하는데, 이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미친 것이다.11]

11]卽語言文字,如春之花,或者必棄花覓春,非愚卽狂也

(明.眞可 ≪紫栢老人集≫ 권 1≫)

 

3) 무릇 학자는 大藏經으로 자신의 맑은 안목을 열 수 있을 것이다.12]

12]夫爲學者,以一大藏敎,開自己淸淨眼目.

(明,元來<示雪?禪入>, ≪原來廣錄≫에 수록됨)

 

 

이렇게 부처와 祖師의 言敎를 높이 받들고, 言語 文字를 높이 평가하는 견해와 唐末 五代 시기에 禪師들이 佛經을 읽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배척하고, 심지어는 佛經을 불태워 버리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차이는 明若觀火한 것이다.

 

 

 

Ⅴ. 맺는 말

 

위에서 토론한 것을 간략히 요약한다.

 

1. 禪宗의 言語觀은 不立文字이다. “不立文字”의 의미는, 禪宗의 오묘한 禪法은 언어로는 전달할 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2. 禪宗은 唐末 五代 및 北宋시기가 그 전성기로, 이 시기에 禪師들은 佛經을 읽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배척하고, 심지어는 佛經을 불태워 버리는 등 不立文字의 정신을 따랐으며, 따라서 당시 간행된 禪宗 文獻은 극소수이다.

 

3. 北宋과 南宋이 교차하는 시기에 간행된『碧巖錄』(1128)은 禪宗 言語觀의 변화를 상징하는 커다란 標識로, 元明代 이후부터는 부처와 祖師의 言敎를 높이 받들고, 言語 文字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적지 않은 禪宗 文獻이 간행되었다.

 

 

 

※ 主要 參考 文獻

 

馮春田(2000) ≪近代漢語語法硏究≫ 濟南:山東敎育出版社
楊伯俊.何樂士(1992) ≪古漢語語法及其發展≫ 北京:語文出版社 
蔣紹愚(1994) ≪近代漢語硏究槪況≫ 北京:北京大學出版社
江藍生(1994) <試述呂叔湘先生對近代漢語硏究的貢獻>, ≪中國語文≫ 1994­1:16­21
張相(1953) ≪詩詞曲語辭匯釋≫北京:中華書局 (*臺北;世界書局 1962)
蔣禮鴻(1988) ≪敦煌變文字義通釋≫ [第4次增訂本] 上海:上海古籍出版社
王瑛(1990) ≪唐宋筆記語辭匯釋≫ 北京:中華書局
劉堅(1982) <古代白話文獻槪述>, ≪語文硏究≫ 1982­1:97­104
        [編](1985) ≪近代漢語讀本≫ 上海:上海敎育出版社
        [編](1999) ≪古代白話文獻選讀≫ 北京:商務印書館
 王力 (1958) ≪漢語史稿≫(修訂本) 北京:科學出版社  *香港:波文書局(출판년도 未記載)
        (1989) ≪漢語語法史≫ 北京:商務印書館
 何金松(1994) ≪虛詞歷時詞典≫ 武漢:湖北人民出版社
 劉堅等四人(1992) ≪近代漢語虛詞硏究≫ 北京:語文出版社
 呂叔湘(1955) ≪漢語語法論文集≫ 北京:科學出版社
        (1979) ≪漢語語法分析問題≫ 北京:商務印書館
        (1984) ≪漢語語法論文集≫ [增訂本] 北京:商務印書館
 蔣冀騁(1991) ≪近代漢語詞彙硏究≫ 長沙:湖南敎育出版社
 蔣冀騁.吳福祥(1997) ≪近代漢語綱要≫ 長沙:湖南敎育出版社
 袁賓[編](1990) ≪禪宗著作詞語匯釋≫ 南京:江蘇古籍出版社
       (1992) ≪近代漢語槪論≫ 上海:上海敎育出版社
       [編](1992) ≪禪宗語錄大觀≫ 南昌:百花洲文藝出版社  
       [主編](1994) ≪禪宗詞典≫ 武漢:湖北人民出版社
       (1999) ≪禪語譯註≫ 北京:語文出版社
胡竹安等 3명 [編] (1992) ≪近代漢語硏究≫ 北京:商務印書館
蔣紹愚, 江藍生 [編](1999) ≪近代漢語硏究(二)≫ 北京:商務印書館
江藍生.曺廣順[編](1997) ≪唐五代語言詞典≫ 上海:上海敎育出版社
袁賓 等四人[編] (1997) ≪宋語言詞典≫ 上海:上海敎育出版社
曺廣順(1995) ≪近代漢語助詞≫ 北京:語文出版社
王錦慧 (1993) ≪敦煌變文語法硏究≫ 臺北:臺灣師範大學國文硏究所碩士論文
       (1997) ≪敦煌變文與祖堂集疑問句比較硏究≫ 臺北:臺灣師範大學國文硏究所 博士論文
吳福祥(1996) ≪敦煌變文語法硏究≫ 長沙:岳麓書社
張美蘭(1998) ≪禪宗語言槪論≫ 臺北:五南圖書出版公司
周裕?(1999) ≪禪宗語言≫ 杭州:浙江人民出版社
楊曾文(1999) ≪唐五代禪宗史≫ 北京;中國社會科學出版社
董志翹.蔡鏡浩(1994) ≪中古虛詞語法例釋≫ 長春:吉林敎育出版社
孫錫信(1999) ≪近代漢語語氣詞≫ 北京:語文出版社
駒澤大學 ≪禪學大辭典≫ 編纂所[編](1985) ≪新版 禪學大辭典≫ 東京:大修館書店
大田辰夫(1988) ≪中國語史通考≫ 東京:白帝社(中譯本:江藍生.白維國譯1991 ≪漢語史通考≫ 中慶: 中慶出版社)
朴英綠(1999) <선어록 해석의 몇가지 문제점>, ≪白蓮佛敎論集≫ 9:149­176
      (2002) <선학과 논증>韓國佛敎 禪學 硏究院 제 4차 학술대회 발표논문(2002.4.13)
법장스님(1999) <佛典 번역과 우리의 현실>, ≪불교와 문화≫ 1999.가을:18­­29
조현춘(1999) <불경 번역 오류의 예와 대안>, ≪불교와 문화≫ 1999.가을:30­­42
김은중(1999) <불교계 번역의 오류와 제도적 과제>, ≪불교와 문화≫ 1999.가을:                43­­55
진현종(1999) <‘불경’프로젝트 시급하다>, ≪불교와 문화≫ 1999.가을:50­­55
朴敬勛(1998) <譯經­­東國譯經院을 中心으로> ≪月雲스님 古稀記念 佛敎學 論叢≫(서울:東國譯經院):715­­743
李哲敎. 一指. 辛奎卓 [編纂] (1995) ≪禪學辭典≫ 서울:佛地社
신규탁(2000) <선어록 독법의 문제점>, ≪불교평론≫ 2000­봄:48­­65
鄭景奎(1991) ≪禪宗과 言語 文字≫ 서울:동국대 禪學科 석사 논문
송인성(1996) ≪“祖堂集”虛詞硏究≫ [中文] 臺北:中國文化大學中文硏究所博士論文
      (2000) <唐宋 禪宗語錄 言語 硏究 現況과 과제>,≪白蓮佛敎論集≫10:33­80
      (2002) <唐宋 禪宗 語錄의 몇가지 口語 助詞>, 韓國佛敎 禪學 硏究院 제 4차 학술대회 발표 논문(2002.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