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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근처에 외로이 서있는 당간지주

경호... 2012. 12. 19. 01:43

일주문 근처에 외로이 서있는 당간지주

 

조명래 / 불국사 문화유산 해설사

 

 

사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아주 오래된 고찰이나 절터의 일주문 부근에서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서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당간지주는 사찰에서 삼문 형식이 정착되기 이전에 사찰의 존재를 표시하는 것
으로 경내의 바깥쪽에서 위치하여 지금의 안내간판과 같은 역할을 하던 유물이다.

당간(幢竿)이란 기둥 위쪽에 도르래 장치를 해서 당(幢)을 부착할 수 있도록 제작된 기둥으로 나무 또는 철이나 구리 등과 같은 금속으로 만들었다. 당간에 부착하는 당이란 깃발과 같은 장엄물로서 천으로 만들어 길게 늘어뜨리는 번(幡)과 같은 표찰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수 십 미터 높이의 당간에 그 절의 소속 종파나 특정행사와 관련된 깃발을 내걸어 장엄했다고 한다.

 

 

당간의 기원

 

당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인도 기원설과 중앙아시아 기원설 두 가지가 있다. 인도 기원설에는 불탑을 장엄하는 일산(日傘)과 깃발 등의 장엄물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즉, 불탑을 장엄하던 깃발 중에서 일부가 당간으로 변했다는 주장이나 설득력이 약하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당간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기원설은 솟대에서 비롯된다. 중앙아시아 샤먼들은 신성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해 신장대를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솟대’이다.

솟대란‘소도(蘇塗)’라는 신성한 지역을 나타내기 위해 세운 기념물로 그 위에 새를 조각해서 얹어 놓았다. 여기서 새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동물로 침엽수ㆍ사슴과 더불어 중앙아시아 샤먼들의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새를 상징하는 V자형 관식(冠飾)

 

 

중앙아시아 샤먼문화는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신라금관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라금관은 신령한 나무와 사슴뿔의 상징으로 만들어져 있고, 새를 상징하는 V자형 관식(冠飾)과 서봉총(瑞鳳塚)1)에서 출토된 금관에서 발견된 새 등을 미루어 볼 때 신라금관은 중앙아시아 샤먼문화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다.

 

지금도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강신무(降神巫)들은 점집 앞에 대나무로 신장대를 세우고 그 끝에 오색천으로 장식하고 있는데 중앙아시아 샤먼문화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각주 1) 서봉총(瑞鳳塚):경주 소재 고분군의 일련번호로는 노서동 129호분이다. 1926년에 발굴되었는데 마침 일본을 방문 중이던 스웨덴의 황태자이며 고고학자인 구스타브 공작이 참관, 출토된 금관을 손수 채집하였고, 이 금관의 관에 세 마리의 봉황 모양이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스웨덴[瑞典]의‘서(瑞)’자와 봉황의‘봉(鳳)’자를 따서 서봉총(瑞鳳塚)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불국사 당간지주

 

 

당간과 불교

 

당간문화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에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불교가 전파되면서 이 당간문화를 흡수하여 신성한 구역인 소도를 나타내기 위해 세웠던 솟대가 부처님이 계신 성스러운 장소를 나타내는 당간으로 변한 것으로 보이며, 또한 삼문형식이 정립된 이후에는 일주문으로 변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도에 대한 불교의 연관성에 대해『삼국지위서동이전』삼한편에,“ 나라의 수도에 각 한사람이 천신에게 제사지냄을 주제하는데, 이를 천군이라 한다. 또한 나누어진 읍이 두는데 이를 소도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았다. 소도란 뜻은, 서역의 부도와 같은데, 그 선악을 행함에는 다름이 있다”라고 하고 있어 소도는 부도, 즉 사찰과 같은 곳이라 하여 천군(天君)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신성한 구역인 소도의 역할을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 사찰이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좌우당간과 건당

 

우리나라의 당간은 절의 입구에 하나를 세운 반면에 중국의 당간은 경내에 쌍으로 세운 것이 다르다. 중국불교는 북로라고 불렀던 중앙아시아의 신장대 문화보다는 인도의 당문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던 까닭에 금당좌우에 당간을 세웠는데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좌우당간(左右幢竿)2)이다.
그리고 좌우당간은 당간지주가 쌍으로 되어 있어 좌우가 같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도 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

 

건당(建幢)이란 깨달은 선사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전수받아 일가를 이루게 되었음을 뜻한다. 즉, 당을 세운다는 것은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만 천하에 알리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확인을 받아들이고 후학을 지도하겠다는 의미이다.

 

중국에서는 어느 정도 성취하였다는 표현으로 논어에서 공자가 자로에게 했다는‘입실(入室)’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여기에 불교용어인 건당과 합하여‘입실건당(入室建幢)’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런 점을 고려
할 때 좌우당간이란 말은 중국 표현을 차용한 것으로 하나의 당간을 세우는 우리나라의 당간문화와는 다르기 않기 때문에‘좌우지간(左右之間)’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각주 2) 좌우당간(左右幢竿): 좌우지간(左右之間), 하여튼, 여하튼 등의 뜻을 가진 말.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_ 부석사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장식이 많지 않아 소박한 느 낌을 준다. 보물 제255호 지정되어 있다.

 

 

당간지주

 

원래‘당간지주’는 당간을 세우기 위해 만든 두 개의 돌기둥이다. 당간지주는 당간과 짝을 이루어 사찰의 입구 또는 일주문 근처에 세우고 여기가 부처님이 계시는‘진여(眞如)의 세계’임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당간’을 장대라고 하고 만든 재료에 따라 돌로 된것을 석장(石墻), 구리로 만든 것을 동장(銅墻), 무쇠로 만든 것을 철장(鐵墻)이라 하였다. 당간지주 사이에는 당간이라고 하는 긴 장대를 세우고
위에는 용머리 모양의 장엄물을 올리고 여기에 긴 줄을 연결하여‘당(幢)’이라고 하는 커다란 깃발을 달았다.

 

예전에는 통신수단이 빈약하기 때문에 깃발의 색깔을 달리함으로서 절에서 하는 행사를 알렸다고 한다. 예를 들면 붉은 색 깃발은 법회가 있는 날이고, 흰색 깃발은 큰 스님의 법문이 있는 날이라는 식이다.

 

장대를 높이 세우기 위해서는 땅속 깊이 두개의 돌기둥을 파묻어 세우고는 두 기둥 사이에 장대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던 것이 바로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에 나있는 구멍은 당간을 고정시키는 용도로 사용하였으
며, 또한 당간지주는 사찰의 규모와 비례하여 크기가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법당 앞 좌우에 당간지주와 모양은 비슷하나 크기는 작고 2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돌기둥 2개가 한 쌍으로 하여 각각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간혹 이것을 당간지주로 착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것은 야외 법회시 괘불을 걸 때 사용하던 것으로 괘불대(掛佛臺)라고 한다.

 

충북 청주에 있는 국보 제41호 용두사지철당간(?頭寺址鐵幢竿)과 호암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136호 용두보당(?頭寶幢), 그리고 보물 제256호 계룡산 갑사의 당간은 대표적인 당간지주와 당간이다.

 

길가 또는 논밭에 홀로 서있는 당간지주를 보게 되면“아! 아주 오래전에는 이곳에 규모가 큰 절이 있었구나”하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법왕사

2012. 11 | Vol. 222호

 

상기 PDF문서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