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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大慧)와 지눌(知訥)
?지눌의 대혜 계승과 이탈, 그리고 복귀?
변 희 욱
(서울대학교 철학과 동양철학 전공 박사 졸업)
Ⅰ. 머리말
이 연구는 대혜(大慧, 1089?1163)1)의 선과 지눌(知訥, 1158?1210)2)의 선을 재조명하기 위한 글이다. 재조명의 실마리는 지눌이 읽었다는 「대혜어록(大慧語錄)」구절이다.
지눌의 선과 대혜의 선에 관한 연구는 적지 않다. 하지만 대혜의 선과 지눌의 선의 관련을 다룬 연구는 결코 많지 않다. 그 마저도 대혜의 간화선(看話禪)과 지눌의 경절문(徑截門)의 연관에 집중해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대혜는 간화선을 제시했음에 틀림없고 지눌도 이를 채택했지만, 정작 지눌이 「대혜어록」을 보고 공부의 마지막 관문을 돌파했던 구절은 간화라는 수행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기본 정신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절에서 대혜가 말한 선의 근본정신이란 선은 존재하는 언제 어디에서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며, 선은 시끄러운 곳 즉 일상의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혜가 생각하는 선의 근본정신과 이로부터 선을 제대로 체득한 지눌 선의 성격, 둘 사이의 관련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논구한 연구는 아직 없다.
바로 이 주제가 본 연구가 추적하는 문제이다.
“과연 지눌이 발견한 대혜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나?”
“지눌은 그 말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대혜의 말과 지눌의 이해는 선의 근본정신에 충실한가?”
이들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먼저 대혜와 관련된 지눌의 말과 지눌이 읽었다는 대혜의 말을 지눌의 저술인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과 「수심결(修心訣)」, 그리고 대혜의 어록인「대혜어록」에서 발굴하여 그 의미를 탐색할 것이다.
1) 大慧는 號이고, 諱는 宗? , 別號는 妙喜또는 雲門이며, 字는 曇晦, 謚號는普覺, 塔號는 普光이다.
2) 自號는 牧牛子이고, 諡號는 佛日普照이며, 塔號는 甘露이다.
Ⅱ. 대혜와 지눌의 만남
대혜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지눌하면 또 무엇을 생각하는가?
대혜와 지눌은 몇 천억 겁의 인연을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눌의 선이 한국 선불교의 철학적 기초라고 평가3)받게 한 데에 대혜가 있었다. 그리고 지눌이 간화선을 한국에 소개할 수 있었던 데에도 대혜가 있었다. 지눌이 대혜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대혜를 만났기에 그는 수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 선의 주인공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3) Shim, Jae-ryong,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Korean Zen Buddhism: the Integration of S?n and Kyo by Chinul,”1979.
지눌이 대혜를 만났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이렇게 독백한다.
"내(知訥)가 보문사에 거처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 비록 뜻을 얻고 수행함에 소홀하지 않았지만, 정견(情見)이 아직 채 가시지않아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있는 것처럼 마치 원수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지리산에 거처할 때에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선은 고요한 곳에만 있는 것도 시끄러운 곳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일상생활 가운데만 있는 것도 분별적으로 사고하는 가운데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고요한 곳과 시끄러운 곳, 일상생활 하는 것과 분별적으로 사고하는 것[모든 상황에서] 참구하라. 이렇게 하면 홀연히 눈이 열려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본래적 완전성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대목에서 계합하여 깨치게 되니 자연스러워져서, 그 물건이 마음에 장애가 되지 않았고 원수와 한 자리에 있지 않게 되어 바로 편안해졌다".4)
4) 金君綏撰, 「昇平府曹溪山松廣寺佛日普照國師碑銘幷序」, 「普照全書」,p.420,
予自普門已來, 十餘年矣. 雖得意動修, 無虛廢時, 情見未忘, 有物? 膺,如讐同所.
至居智異, 得大慧普覺禪師語錄云,
禪不在靜處, 亦不在鬧處, 不在日用應緣處, 不在思量分別處.
然第一不得捨却靜處鬧處, 日用應緣處, 思量分別處? , 忽然眼開, 方知皆是屋裡事.
予於此契會自然, 物不碍膺, 讐不同所, 當下安樂耳.
지눌이 체험한 이 짧은 일화가 한국에 대혜와 그의 어록인 「대혜어록」이 소개된 사건이다. 그러면 지눌에게 원수를 물리치는 희열을 선사한 그 구절은 무슨 의미일까. 지눌은 대혜의 말을 제대로 알아 듣고 기뻐했던 것일까. 이 두 의문을 풀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여정이 될 것이다.
대혜는 말한다. 그리고 지눌은 이 말을 보았다.
“선은 고요한 곳에만 있는 것도 시끄러운 곳에만도 있는 것도 아니다. … 이렇게 하면 홀연히 눈이 열려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본래적 완전성임을 알게 될 것이다.”
대혜가 말한 선, 그리고 공부해야 하는 상황은 조용한 곳과 시끄러운 곳을 가리지 않는다. 만일 그것을 가린다면 일상성을 중시하는 선의 강령에 위배된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진속불이 정신에도 어긋난다.
대혜는 일상에서 행해야 하는 모든 활동 자체가 공부의 상황이라고 본다. 공부는 조용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에 한정될 수 없고(不在靜處, 亦不在鬧處), 조용한 곳과 시끄러운 곳을 가리지 않는다(不得捨却靜處鬧處). 또한 공부의 내용 역시 일상의 현실생활(日用應緣處)과 사고 활동하는(思量分別處) 모두를 포함한다.5)
5) 「大慧語錄」, 「示妙證居士」, T47:893c-894a, 禪不在靜處, 亦不在鬧處,不在日用應緣處, 不在思量分別處. 然第一不得捨却靜處鬧處, 日用應緣處, 思量分別處? , 忽然眼開, 方知皆是屋裡事.
그런데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시끄러운 곳은 무엇이고 조용한 곳은 무엇인가?
“시끄러운 곳”은 정치를 포함하여 존재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을 가리킨다. 대혜는 공부를 통해 얻는 궁극적 경지는 현실과 격절된 적정을 얻을 때가 아니라, 일상의 현실생활에서의 직분을 수행하면서(日用塵勞中) 조작과 강제가 없이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낄 때(漸漸省力時) 체득한다고 보았다.6)
6) 「大慧語錄」, 「答張提刑(暘叔)」, T47:927b, ? 覺日用塵勞, 中漸漸省力時, 便是當人得力之處, 便是當人成佛作祖之處.
일찍이 도시의 번잡함과 사람들의 명예욕과 지적 허영이 싫어 산으로 들어갔던 지눌은, 대혜의 이 말을 보고 대오각성한 것이다. 선은 시끄러운 곳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곳을 떠나서는 선을 공부할 수 없다.
Ⅲ. 대혜의 계승과 이탈, 그리고 복귀
1. 계승 혹은 이탈
일상 언제 어디서든 선을 공부해야 한다는 대혜의 주장은 “일상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돈오선의 강령에 충실하다. 그의 선은 돈오선을 온전히 계승한 것이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는 성격도 있다.
대혜가 제시하는 일상생활에서의 활동에는 당시 공부하는 사람이 학문하면서 수행해야 하는 공부과제가 모두 망라되어 있다. 그중 불교적인 내용으로는 성불하고 조사가 됨과 조용히 좌선함 그리고 생사의 문제에 초탈함이 예시되어 있고, 유학적인 내용으로는 가정과 가문에서의 직분 수행과 사회적 교류 그리고 사회적 직분의 수행이 모두 포함된다.7)
7) 대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사람이라도 진실로 하나의 이해하지 못한 일을 붙잡아 밤낮으로 힘써 노력하기를,차 마시거나 밥 먹을 때나, 기쁘거나 노여워할 때나, 정갈한 곳이거나 더러운 곳이거나, 처자식이있는 곳이거나, 손님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접객하는 경우에나, 관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나, 가문의혼사를 주관하는 경우에나, 모두 무엇보다도 공부를 하여 깨달으려했던 시절이다. 옛날에 이 문화 도위는 부귀더미 속에 있으면서 禪의 대철대오를 참구해내었고, 梁文公이 禪을 참구할때는 한림원에서 재직할시기이었다. 張無盡이 禪을 참구할때는 강서의수송담당관이었다. 이 세 어른들은 곧 일상세계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고도 실제의 양태를 담론할 수 있었다. 또 어찌 일찍이 반드시 처자를 버리고 관직을 쉬고 직분을 버리고, 풀뿌리를 씹어야만 가능하겠는가?”「大慧語錄」, 「示徐提刑(敦濟)」, T47:899c.
특히 사회적 직분 수행은 정치참여로 구체화되고, 정치참여는 정치?역사적 사건에 대한 개입을 의미한다. 대혜가 유배에서 해제된 다음 해인 1157년(69세) 아육왕사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서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일상의 현실생활에서 이 가르침을 널리 펼쳐 임금이 어진이를 등용하여 천하를 편안케하고자 하는 뜻에 보 답한다면, 진실로그대가 아는 바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바라건대 [일상의 현실생활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당하고 견디어 내어, 끝까지 지금처럼 일을 수행해 나간다면, 불법과 세간법을 하나로 일치시킬 수 있다. 한편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한편으로 농사지으면서 불법을 오랫동안 익힌다면, 한꺼번에 두가지 일을 다하는것이다. 어찌허리에 십만 관을 두르고 학을 타고양주(楊州) 고을의 관리가 됨이 아니겠는가?8)
8) 「大慧語錄」, 「答汪狀元(聖錫)」, T47:939c,
日用應緣處, 便恢張此箇法門, 以報聖主求賢安天下之意, 眞不負其所知也. 願種種堪忍, 始終只如今日做將去, 佛法世法, 打作一片. 且戰且耕, 久久純熟, 一擧而兩得之. 其非腰纏十萬貫騎鶴上楊州乎.;
같은 의미의 글이다른곳에도기재되어있다. 「大慧語錄」, 「答榮侍郞(茂實)」, T47:939c,
左右… 在世界上, 可謂千足萬足. 苟能於此箇門中, ? 身一擲, 何止腰纏十萬貫, 騎鶴上揚州而已哉. 昔楊文公大年, 三十歲見廣慧璉公, 除去? 膺之物, 自是已後, 在朝廷居田里, 始終一節. 不爲功名所移, 不爲富貴所奪, 亦非有意輕功名富貴. 道之所在, 法如是故也.
놀랍게도 대혜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까지도 수행이라고 주장한다.
선사가 대중들에게 전쟁에 참여하라고 촉구하고 전쟁참여도 일종의 수행이라고 규정하는 태도는 참으로 충격적인 사실인데, 대혜는 분명 전쟁을 포함하는 정치의 장도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규정하고있다. 대혜는 말 그대로 일상 현실의 모든 조건이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며, 일상 현실에서의 모든 대응 활동이 수행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대혜는 일상 현실 속에서의 진리 추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세간의 현실적 모습을 무시하지 않고 실상에 대해 담론한다. 그리고 이 진리는 법위(진리 차원)에 있으면서도 세간의 현실적 모습에 상주한다.”9)
일상 현실에서의 공부는 일상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9) 「大慧語錄」, 「示張太尉(益之)」, T47:906a,
佛自有言, “不壞世間相而談實相.”又云,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사대부에게만 일상의 현실사회가 수행의 장소인 것이 아니다. 선사에게도 일상의 현실사회를 벗어난 수행은 독해이다. 선사 대혜는 스스로 세상일에 개입함으로써 선사에게도 일상의 현실사회가 공부의 장소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선의 일상성을 계승했던 대혜는 서서히 이탈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2. 복귀
위에서 본 것처럼 대혜가 말하는 시끄러운 곳이란 일상의 현실이고 시끄러운 곳에서의 공부란 사회적 실천까지를 포함한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선사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공부는 선불교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마음공부를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실천은 당연히 마음공부에 근거되어야 한다.
대혜는 이러한 연계의 논리적 근거로 대승불교의 전통적인 진속불이(眞俗不二)의 논리와 중국철학계의 전통적인 삼교일치 혹은 유불일치의 논리를 사용한다. 그는 이 두 가지 전통적인 논리를 전개하면서 핵심 용어로 “발휘?적용(用)”을 자주 등장시킨다.
먼저 대혜가 진속불이의 논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자. 대혜는 “세간에 들어가서 출세간을 추구한다”고 하고, 또 “세간법이 불법이고 불법이 세간법이다”고 한다. 두 구절을 연결시켜 해석하면,
“현실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 들어가서 [현실의 굴레에 감금되지 않고] 현실을 초월하는 지향을 추구한다면, 현실세상의 진리가 불법이요 불법이 현실세상의 진리이다”10)라고 할 수 있다.
10) 「大慧語錄」, 「答汪內翰(彦章)」, T47:929c, 入得世間, 出世無餘, 世間法則佛法, 佛法則世間法也.
대혜가 현실의 진리와 불법의 진리를 하나로 보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진속불이의 사고이다. 진속불이는 불법과 세간의 통일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그래서 대혜 역시 “세간법과 출세간법은 하나라고 말해서도 안 되고 둘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하나’나 ‘둘’혹은 ‘있다’나 ‘없다’로 보는 견해는 병통에 따라 적당한 처방을 받아야 한다”11)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진속불이는 수행 혹은 공부의 필요성까지 부정하는 ‘불법과 세간의 무차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말하는 세간법과 불법 일치의 진속불이 사고에 따르면, ‘현실사회 속에서 공부해야 한다’와 ‘그 속에서 현실에 감금되지 않는 지향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며, 그럴 경우에만 현실세상의 진리가 불법이라는 것이다.
11) 「大慧語錄」, 「示鄂守熊祠部(叔雅)」, T47:898c,
世間出世間法, 不得言一,不得言二, … 作一二有無之見者, 對病醫方耳.
이처럼 대혜 역시 진속불이의 전형적인 논리체계를 따르고 있다. 그러면 이 논리체계가 마음공부와 사회적 실천의 통일을 추구하는 대혜의 사상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대혜는 마음공부와 현실 속에서의 공부 그리고 현실 개입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①" 다만 시끄러운 곳(현실사회)에 있으면서도 대나무 의자와 부들방석에서 공부할 때의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② 평소에 마음을 올곧게 고요히 간직하는 것(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바로 시끄러운 곳에서 발휘?적용시키기 위함이다. 만일 시끄러운 곳에서 힘을 내지 못한다면, 마음을 고요히 간직하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12)
12) 「大慧語錄」, 「答曾侍郞(天游)」, T47:918c, 正在鬧中, 不得忘? 竹椅蒲團上事. 平昔留心靜勝處, 正要鬧中用. 若鬧中不得力, ? 似不曾在靜中做工夫.
*大慧普覺禪師書卷第二十五
正在鬧中。不得忘?椅蒲團上事。平昔留心靜勝處。正要鬧中 用。若鬧中不得力。?似不曾在靜中做工夫
一般。
① "이 도는 한계가 없다. 세간의 번뇌도 한계가 없다.
다만 당사자의 일상 현실에서 지향하는 내용이 어떠한가를 보아야 한다.그래서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뭇 세간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물들거나 집착하는 것이 없어 모든 존재의 참된 모습을 두루 관찰하고,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려는 큰 서원을 일으켜서 대승을 향한 의지와 서원을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며, 모든 편견을 없애고 보살의 평등한 행위와 서원을 닦는다”고 하였다.
이른바 평등한 행위와 서원이라는 것 또한 한계가 없는 마음이니, 지향하는 곳마다 걸림이 없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② 세간의 ‘일’을 공부함에 마음을 쓰지(발휘?적용하지) 않으면 공부가 성취된 것이 아니다. 출세간의 ‘진리’를 공부함에 마음을 쓰지 않고 짐짓 마음을 쓰는 척만 하고 추구한다면, 천리만리나 떨어져서 세간의 일과 관계함이 없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이 마음의 발휘?적용이 없고 모색이 없으며 힘쓰는 노력이 없을 경우가
바로 딱 힘써야 할 상황이다."13)
13) 「大慧語錄」, 「示智通居士(黃提宮伯成)」, T47:893b,
此道無限劑, 世間塵勞亦無限劑.
但看當人日用所向如何爾. 故華嚴經云,
“於諸世間, 心如虛空, 無所染著, 普觀諸法眞實之相, 發大誓願, ‘滅衆生苦. 永不厭捨大乘志願, 滅一切見. 修諸菩薩平等行願.”
所謂平等行願, 乃亦無限劑心. 所向處無障無? 是也.
學世間事, 用心不到, 則學不成. 學出世間法, 無爾用心處, ? 擬用心推求, 則千里萬里沒交涉矣. 雖然如是, 無用心處, 無摸索處, 無著力處, 正好著力.
*大慧普覺禪師法語卷第十九
學世間事。用心不到。則學不成。學出世間法。無爾用心處。?擬用心推求。則千里萬里沒交涉矣。雖然如是。無用心處。無摸[打-丁+索]處。無著力處。正好著力。
공부에는 ‘세간의 일에 대한 공부’와 ‘출세간의 진리에 대한 공부’가 있다. ①과 같이 대혜는 시끄러운 곳, 세간 즉 현실사회에서 활동하면서 마음공부 즉 근본공부를 간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대혜는 마음공부에 근거하지 않은 현실참여를 부정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대혜가 제시하는 공부론은 전형적인 돈오선의 그것이라 하겠다.
그러면서도 ②와 같이 마음공부는 현실에서 작용력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에서의 수행이 진정한 수행이며, 그 이후에 이어지는 현실에의 발휘?적용이 공부 완성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세간의 일에 대한 공부나 출세간의 진리에 대한 공부는 서로가 서로를 요청하며, 세간의 일에 대한 공부와 출세간의 진리에 대한 공부 모두 공통적으로 초월이 아닌 일상의 현실(日用, 世間)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대혜의 공부론에서 진과 속의 불이의 논리는 마음공부와 세간의 일의 불가분성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대혜의 이러한 마음공부와 사회적 실천을 연계시키는 노력은 그의 독특한 삼교일치론 ?실제로는 유불일치론을 낳게 되었다. 대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교의 성인이 세운 교는 비록 다르지만, 그 도는 일치로 귀결된다. 이는 만고불변의 뜻이다.”14)
14) 「大慧語錄」, 「示張太尉(益之)」, T47:906b, 三敎聖人立敎雖異, 而其道同歸一致. 此萬古不易之義.
이것은 중국 철학사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삼교일치론과 같은 의미이다. 그런데 삼교 일치론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을 뿐 아니라, 그 다양한 형태는 또 상이한 의도와 의미를 내포한다. 다음의 말은 대혜가 말하는 삼교일치론의 특색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삼교의 성인이 가르치신 교화에 선함을 권면하고 악함을 경계하고 사람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지 않은 것이 없다.”15)
15) 「大慧語錄」, 「示成機宜(季恭)」, T47:912b, 三敎聖人所說之法, 無非勸善誡惡正人心術.
삼교의 모든 가르침이 도덕적 교화에 있다는 이 구절은 “성인”이라는 유학의 용어를 차용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권선징악을 거론한다는 점에서 선사가 아니라 유학자가 내세울 만한 삼교일치론이다.
그렇다면 대혜는 무슨 목적으로 유학자가 내세울 만한 삼교일치론을 언급했을까? 대혜가 선사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유학적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삼교일치론을 주장하는 것은 그가 그만큼 도덕적 교화와 사회적 실천을 중시한다는 뜻일 것이다. 다음 구절에는 대혜가 불교의 마음공부와 사회적 실천을 연계시킴으로써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나타난다.
"보리심이 곧 충의심이다. 이 둘은 이름만 다르지 본질은 같다.
이 마음이 의로움과 만난다면 출세간과 세간을 조금의 모자람이나 남김없이 한꺼번에 이루어낼 수 있다. 비록 내가 불교를 공부했지만 군주를 사모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충의로운 사대부와 똑 같다. 힘이 부족하여 세월만 흘렀을 뿐이다. [그러나] 올바름을 좋아하고 옳지 않음을 증오하는 의지는 선천적으로 지녔다. …
마음가짐이 바르면 어떠한 해독이나 삿된 이론에도 오염되지 않는다. 계공(成機宜)이 유학 공부에 뜻을 세웠으면 모름지기 확충해야한다. 그런 연후에 채운 결과를 미루어 사물에까지 미쳐야 한다.
왜냐하면 공부가 지극하지 못했으면 공부했다고 할 수 없고, 공부가 지극해도 발휘?적용이 없으면 공부했다고 할 수 없으며, 공부가 사물을 교화하지 못했다면 공부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부가 철저함에 이르면 문도 그 안에 있고 무도 그 안에 있으며, 사(事)도 그 안에 있고 리(理)도 그 안에 있다.
충의와 효도 나아가 자기를 다스림, 남을 다스림, 제 영역을 안정시킴, 온나라를 안정 시킴의 방법이 모두 그 안에 다 있다.
…
군주에 충성하면서 부모에 효도하지 않는 자는 아직 없다. 또 부모에 효도하면서 군주에 충성하지 않는 자는 아직 없다. 다만 성인의 칭찬에 의거해서 행동해야 하고, 성인의 꾸지람을 감히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러면 충, 효, 사, 리에서 자기를 다스림, 남을 다스림이 두루 다 잘 이루어지며 명료해진다.16)
16) 「大慧語錄」, 「示成機宜(季恭)」, T47:912c-913a,
菩提心則忠義心也, 名異而體同.
但此心與義相遇, 則世出世間, 一網打就, 無少無剩矣. 予雖學佛者, 然愛君憂國之心, 與忠義士大夫等. 但力所不能, 而年運往矣. 喜正惡邪之志, 與生俱生.
…
心術正則種種雜毒種種邪說, 不相染汚矣. 季恭立志學儒, 須是擴而充之, 然後推其餘可以及物.
何以故, 學不至不是學, 學至而用不得, 不是學, 學不能化物, 不是學.
學到徹頭處. 文亦在其中, 武亦在其中, 事亦在其中, 理亦在其中.
忠義孝道乃至治身治人安國安邦之術, 無有不在其中者.
…
未有忠於君 而不孝於親者, 亦未有孝於親而不忠於君者. 但聖人所讚者依而行之. 聖人所訶者 不敢違犯.
則於忠於孝於事於理, 治身治人無不周旋, 無不明了.
“보리심이 곧 충의심이다. 이 둘은 이름만 다르지 본질은 같다”라는 이 한마디만큼 대혜가 말하는 유불지향 일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대혜가 말하고자 한 것은 불교의 마음공부도 결국에는 “충의”, “효도”, “나라를 안정시킴”등의 사회적 실천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곧 공부의 “발휘?적용(用)”인 것이다.
대혜는 유불일치 자체를 목표로 하거나 이론적으로 유불일치를 논증하려한 것이 아니다. 그의 말 속에 보이는 유불 지향 일치의 성격을 “일치적 융화론”과 “범종교 운동”으로 해석하는 견해17)가 있지만, 그가 유불의 지향이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목적은 종교나 사상을 통합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유불일치 혹은 삼교일치는 표면으로 드러난 구호일 뿐이고, “삼교의 성인이 가르치신 교화에 … 사람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지 않음이 없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을 교화하고 세상을 구제하기 위함 즉 사회적 실천이 그 의도라고 할 수 있겠다.
17) 蔡楨洙, 「大慧宗? 의 思想硏究」, 1975, p.13.
이상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대혜는 마음공부 이후의 사회적 실천을 요구했는데 이를 대혜 자신의 말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공부가 지극하지 못했으면 공부했다고 할 수 없고, 공부가 지극해도 발휘?적용이 없으면 공부했다고 할 수 없으며, 공부가 사물을 교화하지 못했다면 공부했다고 할 수 없다.”
이 말에서 파악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대혜의 공부론에서는 “공부(學)”와 “발휘?적용(用)”이 핵심적인 개념이다. 대혜의 글에는 “學”이라는 어휘는 빈출하고 있으며, “用”이라는 어휘도 “學”과 짝을 이루면서 등장하는 없어서는 안 될 중심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學”은 일차적으로는 마음공부 즉 근본공부를 의미하며, “用”은 외부에 대한 지향과 개입을 의미한다. 그런데 “用”은 근본공부로 확인된 본성의 발휘적? 용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연구에서는 “用”을 발휘?적용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곧 근본공부로 확인된 본성의 발휘?적용이 바로 외부에 대한 지향과 개입이며, 마음공부 이후에 이어지는 사회적 실천인 것이다.
요컨대 대혜는 “學”이란 어휘로 공부론의 골격을 말하고 있으며, 공부를 완성하는 데에 필수적인 사회적 실천을 본성의 발휘?적용이란 의미로서 “用”이란 어휘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혜는 마음공부와 사회적 실천을 연관시킴에 발휘?적용이란 의미의 “用”을 중심개념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겠다.
대혜는 공부는 사회적 실천으로 넓혀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이전에 마음공부(心術正)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그가 요구하는 마음공부는 선불교의 그것이다. 이 점에서 대혜는 선불교를 온전히 계승한 것이며, 유학적 실천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탈의 면모를 보이다가도 궁극적으로는 선불교로 복귀하는 것이다.
Ⅳ. 지눌의 계승과 이탈, 그리고 복귀
1. 계승 혹은 이탈
지눌은 대혜의 말에서 깨달음의 마지막 언덕을 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혜의 간화 공부를 돈오의 지름길로 채택했다. 이 점에서 지눌은 대혜를 온전히 계승했다. 그런데 대혜 선의 핵심은 바로 간화와 마음공부와 실천의 연계이다. 그는 대혜가 요구한 시끄러운 곳에서의 공부를 모든 상황에서의 간화 공부로 해석했으며, 대혜가 요구한 실천을 보살도로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옛 스님이 말씀하시길, “보살은 본래 남을 제도하려 하기 때문에 먼저 선정과 지혜를 닦는다. 한가하고 고요한 곳이라야 선정을 이루기 쉽고 욕심이 없는 두타행이라야 성인의 도에 들어갈 수있다”라 했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이미 남을 제도할 서원을 세웠으면 먼저 선정과 지혜를 닦으라. 도력이 있으면 자비를 구름처럼 펼치고, [보살]행의 바다에 물결을 출렁거리게 하여 미래세가 다 하도록 중생의 온갖 괴로움을 구제하고 삼보에 공양하여 불가의 사명을 이을것이니, 어찌 고요함에만 탐착하는 무리들과 같겠는가?18)
18) 「勸修定慧結社文」, 「普照全書」, p.22,
先德曰, “菩薩本爲度他, 是以先修定慧. 空閑靜處, 禪觀易成, 少欲頭? 能入聖道.”此其證也.
旣發度他之愿, 先修定慧. 有道力則雲布慈門, 波騰行海, 窮未來際, 救拔一切苦惱衆生, 供養三寶, 紹佛家業, 豈同趣寂之徒也.
* ? =陀
지눌은 결사문에서 자부심을 표출하고 있다. 자신을 비롯한 결사 참여자는 다른 수행승과는 다르게 고요함에만 탐착하지 않고 “중생의 온갖 괴로움을 구제하고 삼보에 공양하여 불가의 사명을 이을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지눌이 말한 자부심의 핵심은 불가의 사명을 이었다는 것이며, 그 내용은 중생의 고통 구제이다. 그리고 중생 구제의 선결 요건으로 선정과 지혜를 닦는 공부를 요구하고 있다.
이 역시 대혜가 실천 이전에 근본 공부를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지눌은 대혜 공부론인 <마음공부-자기 청정성 확인-실천>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눌의 선은 대혜의 선과는 현격하게 다르다. 대혜는 유학의 윤리실천 덕목을 실천의 내용에 포함한다. 그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충효를 말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직분 수행과 방어 전쟁에의 적극적인 참여도 실천으로 포섭한다.19) 요컨대 대혜의 선에서 실천은 사회적 실천이고, 사회 속에서의 실천이다. 반면 지눌은 결사의 취지로 중생구제를 말하지만 그 내용은 철저히 불교적이고 유학적인 성격은 없다. 그는 대혜와 다르게 사회적 관계 속의 실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지눌의 선은 자신에게 돈오의
기쁨을 느끼게 해준 대혜의 말대로 “시끄러운 곳에서의 선”을 실행했다는 점에서 대혜의 선을 계승한 것이지만, 그 내용이 철저히 불교적이고 유학적인 성격이 없다는 점에서 대혜의 선을 이탈한 것이다.
19) 대혜선의유학적성격에관해서는, 졸고, 「사대부 학문비판을통해본, 대혜의 유학적 선」, 2004를 보라.
2. 복귀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지눌은 보살도 실행 이전에 마음공부를 요구한다. 그가 요구하는 마음공부는 선정과 지혜이어서 정혜불이(定慧不二)의 본래 청정성 확인을 천명하는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의 공부론과 완전히 일치한다.
지눌은 「수심결(修心訣)」에서 마음공부의 비결을 이렇게 제시한다.
"슬프다. 지금 사람들은 미혹한 지 이미 오래이므로, 제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제 본성이 바로 참 법임을 알지 못하여, 진리를 구하려 하면서도 멀리 성인에게 미루고 부처되기를 구하려 하면서도 제 마음을 보지 못한다.
만일 마음밖에 부처가 있다 하고 본성밖에 진리가 있다 하여, 그런 생각을 고집하면서도 부처의 도를 구하려 한다면, 티끌처럼 많은 세월을 지나도록
… 갖가지 고행을 닦더라도 그것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수고만 더 끼칠 뿐이다. 다만 제 마음만 알면 갠지스강의 모래처럼 많은 법문과 끝없는 묘한 이치를 구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얻어질 것이다.
… 이로써 이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과거의 모든 부처도 다만 마음을 밝힌 사람이요,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마음을 닦는 사람이며, 미래의 공부할 사람들도 마땅히 이런 법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사람은 부디 밖에서 찾지 말라. 마음의 본성은 오염되지 않아 본래 완전히 갖추어졌으니, 다만 헛되게 외부에 얽매여 있는 것만을 벗어버리면 부처가 된다."20)
20) 「修心訣」, 「普照全書」, p.31,
嗟夫. 今之人迷來久矣, 不識自心是眞佛, 不識自性是眞法, 欲求法而遠推諸聖, 欲求佛而不觀己心,
若言心外有佛, 性外有法 堅執此情, 欲求佛道者, 縱經塵劫.
… 修種種苦行, 如蒸沙作飯, 只益自勞爾. 但識自心, 恒沙法門無量妙義, 不求而得,
… 是知離此心外, 無佛可成.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未來修學人當依如是法. 願諸修道之人, 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여기서 지눌은 “마음의 본성은 오염되지 않아 본래 완전히 갖추어 졌다”고 말하는데, 이는 「육조대사법보단경」의 본래 청정성과 일치하고 대혜의 본성론과도 동일하다.21)
뿐만 아니라 완전한 본성이 이미 확보되어 있으니 “밖에서 찾지 말라”는 주문도 대혜가 외부로 치닫는 공부태도를 경고하는 다음의 말과 같은 취지이다.
“사람마다 원래 그대로 진실함을 본디 지니고 있다.
… 그런데도 거꾸로 외부로 나아가 따로 [자기] 집을 찾고 늘 [다른] 사람의 집안에서 [자기의] 형제에 대해 묻는다.
… 아직 물어보지 않았을 때에 다행히 스스로 집안에 앉아 있는데도, 그가 누구인가를 묻기만 하면 바로 본연의 자리를 벗어나 문 밖으로 나간다.
비유하자면 마치 다른 사람에게 ‘그대는 집안에 있는가?’라고 묻고 ‘집안에 있어라’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 집에서 [자기] 집안의 자식에 대해 묻고 [자기] 집을 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22)
21) 대혜의 본성론에 관해서는, 졸고 「大慧看話禪연구」, 2005,pp.143-153을 보라.
22) 「大慧語錄」, 「鄭成忠請普說」, T47:887abc,
人人本有, 各各天眞.
… ? 去外頭, 別覓家舍, 尋常室中問兄弟.
… 未問時幸自在家裏坐, ? 問他是甚? . 便離? 本位, 走出門前.
譬如問人, “爾在那裏”, 云, “在家裏”, ? 問他屋裏家兒事子, 便忘? 家.
*大慧普覺禪師普說卷第十八
徑山能仁禪院住持嗣法慧日禪師臣蘊聞 上進
*人人本有。各各天?。只?無始時來無明業識所覆所以不能現前。却去外頭。別覓家舍。尋常室中問兄弟。不是心不是佛不是物。是甚?。
未問時幸自在家裏坐。?問他是甚?。便離却本位。走出門前。
譬如問人 爾在那裏。云在家裏。却問他屋裏家兒事子。便忘却家。
이렇게 지눌은 대혜와는 다르게 중생교화를 유학적인 사회적 실천으로 구체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혜를 이탈한 것이지만, 그는 본성론과 공부론의 근본 기조에서는 다시 대혜로 복귀한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대혜의 선이 유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선의 본래 청정성 확인 공부에 충실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지눌의 선은 대혜의 선을 계승했으며 대혜의 선은 돈오선의 종지를 계승한 것이라고 말할 수있다.
Ⅴ. 대혜와 지눌 다시보기
지눌은 대혜가 제창한 간화선을 경절문이라는 이름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한국 선불교는 간화선 일색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바로 이 경절문이란 이름의 간화선은 지눌로 하여금 한국 선불교의 대표 선사로 인정받게도 한 것이다. 하지만 지눌의 수행론인 돈오점수는 바로 그 간화선 때문에 비판받기도 했고 논쟁의 소용돌이에서 휩싸여 있기도 하다.
현대 한국 선불교에서 실제 수행되어 온 간화선은 분명 의문의 여지없이 돈오돈수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그 간화선의 제창했던 대혜의 어록인 「대혜어록」에서 말하는 수행론은 돈오돈수보다는 돈오점수에 가깝다. 「대혜어록」에서는 돈점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치상으로는 한꺼번에 깨달아야한다. [이치적으로는] 깨달음을 타고서 모두 소진된다. 사실적으로는점차제거된다. 단계적으로 소진되는 것이다. … 「화엄경」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불법과 세간법의 참된 실상을 보기만 하면, 조금의 차별도 없다.”역시 이 이치[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 차별은 사람에게 달려있지,법에 달려있지 않다.23)
이치상으로는 한꺼번에 깨달아야 한다. 깨달음을 타고서 모두 소진된다. 사실적으로는 점차 제거된다. 단계적으로 소진되는 것이다. 행주좌와에서 절대로 [이치상으로는 한꺼번에 깨달아야 하지만 사실적으로는 점차 제거해야 하는 의미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24)
23) 「大慧語錄」, 「示成機宜(季恭)」, T47:912c,
理則頓悟, 乘悟倂銷. 事則漸除, 因次第盡.
… 華嚴云, “佛法世間法, 若見其眞實, 一切無差別.”亦此理也. 其差別在人不在法也.
24) 「大慧語錄」, 「答李參政(漢老)」, T47:920a,
理則頓悟, 乘悟倂銷. 事則漸除, 因次第盡. 行住坐臥, 切不可忘了. 같은의미를 말하는구절은여러번기재되어 있다. 「示妙心居士(孫通判長文)」, T47:903b, 理則頓悟, 乘悟倂銷.事非頓除, 因次第盡.
위의 말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대혜는 ‘점차’와 ‘단계’가 수반된 공부를 말하고 있다. 이 점에서 대혜의 수행론은 돈오돈수라기보다는 돈오점수라고 해야 한다. “이치적으로는 한꺼번에 깨달아야 하지만 사실적으로는 점차”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돈오점수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대혜는 “도를 공부함에는 모름지기 먼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25)라고 주장한다. 깨달음은 공부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말이다. 이 역시 전형적인 돈오점수적인 발상인 것이다. 여기서 지눌의 돈오점수적인 수행론은 대혜의 그것과 유사한 성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지눌의 돈오점수적 수행론과 대혜의 수행론의 연관을 검토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25) 「大慧普覺禪師普說」, 「方外道友請普說」, 卍正藏59:857a, 學道先須有悟.
Ⅵ. 제언
대혜는 사대부와 선사를 호칭할 때마다, “공부하는 사람(學者)”이나 “도를 공부하는 사람(學道者)”이라고 불렀다. 대혜가 이런 호칭을 사용한 까닭은 그가 현실의 사람에 주목하여 누구나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눌로 하여금 원수와 같은 물건을 사라지게 했다는 그 구절은 일상 현실에서의 공부를 의미한다. 대혜는 초월적이거나 본원적 상태보다는 현실적인 상태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의 선은 현실에서 출발한다.
지눌은 이를 본 것이다. 지눌은 다른 선사들과 다르게 보살행을 특히 강조하면서 공부는 보살행으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그가 보살행을 강조하는 취지는 현실의 불완전성과 사람들의 현실적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 아닐까? 지눌이 간화를 채택하면서도 그것은 최상 근기의 소유자를 위한 것이라고 설정하면서, 끝내 돈오점수적인 수행론을 견지하는 까닭은 그가 최상 근기를 소유하지 못한 현실의 사람에서 출발하는 선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지눌의 선 역시 현실 사람의, 현실의 사람을 위한 것이다.
돈점론 논쟁이라는 연극에서 지눌과 대혜는 분명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극중 역할과 성격 묘사는 그리 쉽게 단정지울 수 없다. 두 주인공에 대한 평론은 좀 더 엄밀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대혜어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찬찬히 읽는 것이 그 ‘지름길’일 것이다. 부디 전체의 1/5에 불과한 「서장(書狀)」만을 읽고 「대혜어록」을 다 독파했다고 오해하는 오류만은 범하지 않길 바란다.26)
26) ≪大正新修大藏經)≫ 47 책에 수록된 30권 본을 기준으로, 「대혜어록」은 권 1-12의 어록, 권 13-18의 보설(普說), 권 19-24의 법어(法語), 권 25-30의 서(書)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가 한국 선불교의 교육과정인 사집과(四集科)에 포함된 「서장(書狀)」이다.
* * *
대혜가 있었기에 지눌이 공부의 희열을 만끽할 수 있었듯이, 필자에게 고인이 계셨기에 그 희열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한동안 필자에겐 지눌과도 같이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있는 것처럼 마치 원수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고인의 온화한 미소가 그것을 없애 주었다.
필자가 15년간의 공부를 총 점검하여 마지막 힘을 모으고 있었을 때, 고인은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면서 남은 그 힘을 필자의 미약한 분투에 보태주었다. 원수 같았던 그 날 이후에도, 고인은 때때로 나타나 내 앞에 놓였던 관문을 뚫어주었다.
이 글은 그런 고인의 은덕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작디 작은 정성을 모은 것이다.
大慧와 知訥
참고문헌
大慧, 「大慧普覺禪師語錄」(30卷本), 蘊聞編, T47.
____, 「大慧普覺禪師普說」, 慧然?蘊聞編, 祖慶校勘, 卍正藏59.
知訥, 「勸修定慧結社文」, 「普照全書」, 普照思想硏究院編, 서울:불일출판사, 1989.
____, 「修心訣」, 「普照全書」, 普照思想硏究院編, 서울: 불일출판사, 1989.
金君綏撰, 「昇平府曹溪山松廣寺佛日普照國師碑銘幷序」, 「普照全書」, 普照思想硏究院編, 서울: 불일출판사, 1989.
「六祖大師法寶壇經」, 宗寶本, T48.
李通玄, 「新華嚴經論」, T36.
변희욱, 「사대부 학문 비판을 통해 본, 대혜의 유학적 선」, 「불교학연구」8, 2004.
______, 「大慧看話禪연구」,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2005.
蔡楨洙, 「大慧宗? 의 思想硏究」, 동아대 박사학위 논문, 1975.
Shim, Jae-ryong,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Korean Zen Buddhism: the Integration of S?n and Kyo by Chinul,” University of Hawaii Ph. D. dissertation,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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