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문정희 ㅡ 미친 약속 외

경호... 2012. 11. 28. 02:56

 

 

 

 

 

 

 

 

 

 

 

 

 

물시 / 문정희

 

 

 

나 옷 벗어요
그다음도 벗어요

가고 가고
가는 것들 아름다워서

주고 주고
주는 것들 풍요로워서

돌이킬 수 없어 아득함으로
돌아갈 수 없어 무한함으로

부르르 전율하며
흐르는 강물

나 옷 벗어요
그다음도 벗어요

 

 

 

 

 

 

 

 

 

 

 

 

 

 

 

 

 

미친 약속

 

 

 


창밖 감나무에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풋열매가 붉고 물렁한 살덩이가 되더니
오늘은 야생조의 부리에 송두리째 내주고 있다
아낌없이 흔들리고 아낌없이 내던진다

그런데 나는 너무 무리한 약속을 하고 온 것 같다
그때 사랑에 빠져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미친 약속을 해버렸다

감나무는 나의 시계
감나무는 제자리에서
시시각각 춤추며 시시각각 폐허에 이른다

어차피 완성이란 살아 있는 시계의 자서전이 아니다
감나무에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은
파도처럼 끝없이 몸을 뒤집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몸을 뒤집을 때마다
악기처럼 리듬이 태어나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암각화를 새기는 것이다
그것이 대단한 창조인 양 눈이 머는 것이다
바람에 온몸을 부딪치며
쉬지 않고 바위에게 흰 손을 내미는 것이다
할랑이는 지느러미가 되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순간마다 착각의 비늘이 돋는 것이다

 

 

 

 

 

 

 

 

 

 

 

 

 

 

 

 

 

 

짐승 바다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나뿐인가
그래서 고독은 이리 깊은가

성난 발톱으로 달려드는 절벽 아래
밤바다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바다뿐인가

내 안에서 일어서고
내 안에서 무너지는
천둥의 깊이

해골과 남루와 유랑의 불빛 출렁이는
밤바다를 생포하면 알 수 있을까

지옥보다 외로운
내 안의 내가 보일까

 

- 부분-

 

 

 

 

 

 

 

 

 

 

 

 

 

 

 



1. Johannes Brahms,

 "Abendständchen", op. 42 (Drei Gesänge) no. 1
2. Johannes Brahms, "In stiller Nacht", WoO. 33 no. 42
3. arr. Friedrich Silcher, "Untreue 배신"
4. Sting and Dominic Miller, "Shape of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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