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산골 / 이용악
1
들창을 열면 물구지떡 내음새 내달았다
쌍바라지 열어제치면
썩달나무 썩는 냄새 유달리 향그러웠다
뒷산에두 ?나무
앞산두 군데군데 ?나무
주인장은 매사냥을 다니다가
바위틈에서 죽었다는 주막집에서
오래오래 옛말처럼 살고 싶었다
2
아히도 어른도
버슷을 반지며 히히 웃는다
독한 버슷인 양 히히 웃는다
돌아 돌아 물곬 따라가면 강에 이른대
영 넘어 여러 영 넘어가면 읍이 보인대
맷돌방아 그늘도 토담 그늘도
희부옇게 엷어지는데
어디서 꽃가루 날러오는 듯 눈부시는 산머리
온 길 갈 길 죄다 잊어바리고
까맣게 쓰러지고 싶다
3
참나무 불이 이글이글한
오지화로에 감자 두어 개 묻어놓고
멀어진 서울을 그리는 것은
도포 걸친 어느 조상이 귀양 와서
일삼든 버릇일까
돌아갈 때엔 당나귀 타고 싶던
여러 영에
눈은 내리는데 눈은 내리는데
4
소곰토리 지웃거리며 돌아오는가
열두 고개 타박타박 당나귀는 돌아오는가
방울소리 방울소리 말방울소리 방울소리
<1947년, 시집 '오랑캐꽃'>
물구지떡 : 무시루떡.무수리떡. 멥쌀가루나 찹쌀가루에 무를 가늘게 채 썰어 넣고, 콩, 팥 따위의 고물을 두고 시루에 안쳐 찐 떡
쌍바라지 : 좌우로 열어젖히도록 두 짝의 창문을 단, 바람벽 위쪽의 작은 창
썩달나무 : 썩은 나무. 함북 지방의 방언이다.
?나무 : 자작나무
소곰토리 : ??
소고도리 : 중간 크기의 고등어 새끼
지웃거리며 :??
기웃거리다 : 고개나 몸을 이리저리 자꾸 기울이고 무엇을 살피거나 엿보다, 이리저리 자꾸 기울여 살피거나 엿보다
나를 만나거든 / 이용악
땀 마른 얼굴에
소금이 싸락싸락 돋힌 나를
공사장 가까운 숲속에서 만나거든
내 손을 쥐지 말라
만약 내 손을 쥐더라도
옛처럼 네 손처럼 부드럽지 못한 이유를
그 이유를 묻지 말아 다오
주름 잡힌 이마에
석고처럼 창백한 불만이 그윽한 나를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
먹었느냐고 묻지 말라
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고
꿈 같은 이야기는 이야기의 한 마디도
나의 침묵에 침입하지 말아 다오
폐인인 양 시들어져
턱을 고이고 앉은 나를
어둑한 폐가(廢家)의 회랑에서 만나거든
울지 말라
웃지도 말라
너는 평범한 표정을 힘써 지켜야겠고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그 이유를 묻지 말아 다오
장마 개인 날 / 이용악
하늘이 해오리의 꿈처럼 푸르러
한 점 구름이 오늘 바다에 떨어지련만
마음에 안개 자옥히 피어오른다
너는 해바라기처럼 웃지 않아도 좋다
배고프지 나의 사람아
엎디어라 어서 무릎에 엎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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