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健康및生活常識]/藥草의 常識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약초, 삼칠

경호... 2012. 11. 21. 00:40

지인 한분이 간경화로 복수가 찼다. 극심한 독감까지 겹쳐 딱 죽을 지경이 되었다. 도리가 없이 병원에 입원을 했고 치료도중 내장출혈이 심해졌다. 혈액응고제를 써야 하는데 그러자니 심혈관을 틀어막는 혈전이 더 문제였다. 폐에서도 출혈이 생겼다. 지혈을 하면서 동시에 활혈(活血)을 할 수 있는 약은 현대의학엔 없다. 온갖 현대적 장비를 갖췄다지만 병원으로선 속수무책, 두 손을 들었다.

이 분은 2년여 지난 현재까지 건강하다. 그동안 운동도 열심히 해서 몸이 전보다 더 좋아지셨다. 병원에서 거의 사망선고를 받으신 분이 그냥 자연치유가 된 걸까. 당연히 아니다. 퇴원하고서 그이는 한가지 약물을 가루내어 계속 드셨다. 삼칠(三七)이라는 약초의 뿌리 삼칠근(三七根)이다. 이 약초가 난마같이 얽힌 그의 병을 해결해냈다.

완도에 사시는 환자 한분은 만성 C형 간염으로 고생을 하셨다. 인터페론이 듣지 않고 약물 부작용도 심했다. 만성 피로와 식욕부진, 근육통과 관절통을 호소했다. 삼칠근을 가루내어 3개월여 복용하게 했더니 혈액검사결과 C형 간염바이러스가 나오질 않았다. 피로감과 전신통증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중국에선 난치병의 하나인 재생불량성빈혈에 이 삼칠근을 투여하여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킨 사례가 꽤 있다. 그중 한 예다. 14세된 소년으로 기운이 없어서 말하기도 어려웠고 비위가 너무 약해져 음식도 먹지 못했다. 눈에도 총기가 없고 정신도 나른하여 생기가 하나 없었다. 잇몸에서도 피가 났고 피부에는 멍이 든 것처럼 자반이 생겼다. 골수검사결과 재생불량성빈혈로 진단됐다. 익힌 삼칠근을 가루내어 3개월을 복용하고는 모든 증상이 호전되었다.

 

 

 

‘북인삼(北人蔘) 남삼칠(南三七)’. 천하의 영약으로 이름난 인삼은 북방에서 나고, 삼칠은 남방에서 난다는 말이다. 삼칠이 대체 무슨 약초이길래 감히 인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성을 얻은 걸까. 우리에겐 생소한 약초이기도 하므로 좀 살펴봐야할 일이다. 청나라때 의가 조학민은 ‘본초강목습유’에서 이렇게 썼다. “인삼은 보기제일(補氣第一)이고, 삼칠은 보혈(補血)제일이다.” 인삼이 기를 보하는데 으뜸인 약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삼칠이라는 약초는 혈을 보하는데 으뜸이라는 것이다.

또다른 청대의 의가 진사탁은 이렇게 말한다. “삼칠근은 지혈(止血)을 시키는 신기한 약이다. 몸의 상 중 하의 출혈뿐 아니라 몸밖으로 새는 모든 출혈에도 이 약 한가지면 즉각 효과를 본다. 보혈하고 보기하는 약에 넣으면 더욱 그 효능이 신통하다.”

‘편자황(片仔黃)’이란 약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광동제약에서 한동안 편자환이란 이름으로 생산했다가 지금은 안만드는 모양이다. 중국인들이 ‘뻥’이 좀 심하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 약이 급만성 간염이나 간경화 등에 탁효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항생제가 안듣는 일체의 염증성 질환과 좌상, 화상, 등창을 비롯해 치주염, 중이염, 인후통 등과 같은 소소한 질환에도 효과가 크다. 이 약의 주된 약재가 삼칠근이다. 성분의 85%가 삼칠근이고 사향과 웅담 등이 소량 들어간다.

중국정부에서 그 처방 구성을 국가기밀로 숨기고 있다는 ‘운남백약(云南白藥)’도 삼칠근이 주된 약재다. 1924년 중국 운남성의 곡환장이라는 한 중의사에 의해 만들어져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운남백약은 타박으로 인한 골절과 출혈성 외상질환 등에 신통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70년대초에 이 운남백약은 주은래총리의 지시하에 운남백약 공장이 세워져 지금까지 외과의 성약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 삼칠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명나라때 이시진의 ‘본초강목’에서이다. 그러니까 16세기 전까지는 중국의 의가들도 이 약초에 대해선 잘 몰랐다는 얘기다. 근세에 와서야 본초서에 그 얼굴을 내민 약물인 것이다. 어쨌든 이시진은 “삼칠은 중국 광서성 반동(番?)의 깊은 산중에서 채취하는데, 뿌리를 햇볕에 바짝 말려 쓴다. 황흑색의 단단한 원추형의 덩어리가 마치 백급(白?)의 뿌리같다. 마디가 있다. 인삼의 맛과 흡사하여 미감(微甘)하고 쓰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이름으로 ‘금불환(金不換)’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금불환’은 금과도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그토록 귀중한 약초라는 말이겠다.

 

 

 

 

 

 

 삼칠은 오가피나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따지고보면 인삼과 한 집안식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분류상 인삼속이다. 또 삼칠의 뿌리, 삼칠근을 먹어보면 거의 인삼 맛이 난다. 잎사귀의 생김새나 열매도 인삼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래서 삼칠인삼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삼칠은 인삼과 달리 따뜻한 중국 남방에서만 자란다. 삼칠의 원산지는 중국 광서성의 덕보현으로 알려지는데, 이 지역은 연평균 기온이 15도~20도 되는 곳이다. 여름이 길고 다습하며 겨울도 온난하다. 애석하지만 우리나라는 기후조건이 맞지않아 애시당초 자생하지 않는다. 겨울을 나기가 어려워 노지에서 재배하기도 쉽지 않다.

삼칠의 원산지 덕보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운남성 문산(文山)이 있다. 요즘 중국에서 생산되는 삼칠근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나온다. 그밖에 광서성 오주, 강서성, 귀주성, 사천성 일부 지역에서도 나온다. 모두 운남과 인접한 중국 남방의 따뜻한 지역이다.

삼칠은 흔히 ‘전칠(田七)’이라고도 불린다. 덕보현에서 나오는 이 삼칠이 인근의 전주(田州)로 헌납되었기 때문에 이 곳의 유명한 약재라는 이유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산칠(山漆)’이라고도 한다. 칼이나 창, 화살에 살이 찢어지고 뼈가 상한 금창(金瘡)을 마치 칠(漆)이 부러진 나무를 붙이듯 신통하게 치료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삼칠근의 효능을 알아보기 전에 삼칠(三七)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은 곡절을 좀 살펴야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가지가 3줄기이고 그 가지에 잎이 7개씩 달려 그 형상을 따서 삼칠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3~7년간 자란 뿌리만 약효가 있고 1~2년근은 아무 효과가 없기 때문에 삼칠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이와 관련해 회자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옛날 중국 광서성의 어느 고을에 한 낭중(郎中:중국 남방에선 의사를 지칭)이 있었다. 이 고을 위사(衛士)가 자주 코피를 흘렸는데 낭중이 주는 가루약을 먹고 코 안에 그 가루를 뿌리면 곧 나았다. 눈치빠른 위사는 낭중이 무슨 약초를 쓰는지 눈여겨두었다. 어느날 고을 지부대인의 독자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의원들을 불러다 치료를 했으나 차도가 없었다. 위사는 신통하게 지혈하는 약초를 눈여겨 보았던 터라 그 뿌리를 캐가지고 지부대인에게 바치며 호언을 했다. “이 약초는 그 효과가 신통하므로 곧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약초를 달여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지부대인의 아들은 출혈이 멈추지 않아 마침내 죽고 말았다. 대노한 지부대인이 위사를 잡아들여 죄를 물었다. 위사가 저간의 사연을 토설하여 덩달아 낭중도 붙들려오게 됐다.

낭중은 위사가 캐온 약초를 보고는 한숨을 쉰 후 말을 했다. “이 약초는 반드시 3~7년을 자란 것을 써야 하는데 위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1년근을 썼으니 무슨 약효가 있었겠습니까.” 그리고는 곧 칼을 들어 자신의 팔에 크게 상처를 낸 후 가루약을 꺼내 일부를 먹고 일부는 상처에 뿌렸다. 그러자 곧 출혈이 멈추고 상처가 아물었다.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모두 놀랐다.

실제로 삼칠은 파종으로부터 수확까지 3년이상이 걸린다. 약효도 3~7년된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삼칠의 뿌리

 

 

 

 본초강목 등 고전의서에 나오는 삼칠의 효능은 출혈을 멈추는 지혈(止血), 어혈을 흩뜨리는 산혈(散血), 종기와 부은 상처를 삭히는 소종(消腫) 및 통증을 가라앉히는 정통(定痛)이다.

우선 삼칠은 지혈효과가 뛰어나다. 신체 내외의 모든 출혈증상에 즉각적인 효과를 보인다. 또 지혈후에도 어혈이 생기지 않게 한다. 지혈을 하면서도 산혈, 곧 활혈하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한, 삼칠의 돋보이는 효능이다. 지혈과 산혈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아직까지 현대의학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혈전이 두려워 지혈제를 쓸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이 때 삼칠근은 너무도 긴요한 약물이 된다.

타박상이나 골절, 도검상에 내복하거나 외용해도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이를테면 칼이나 흉기에 찔려 출혈이 그치지 않을 때 삼칠근 가루를 환부에 뿌리거나 내복하면 곧 지혈이 된다. 과거 전장에 나가서 도검에 베여 부상을 당한 병사들에게 삼칠근은 아닌 게 아니라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약일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운남백약은 삼칠의 이런 효능을 다른 약물을 더 넣어 극대화시킨 것이다.

위장이나 십이지장의 궤양으로 인한 토혈과 출혈, 대장출혈, 여성의 붕루(자궁출혈), 산후의 지속적인 출혈에도 당연히 효과가 크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옹종(몸의 안팎에서 피부나 장기가 곪고 붓는 증상)으로 통증이 심한 경우에도 삼칠근의 가루를 환부에 도포하면 곧 낫는다. 가히 혈병(血病)의 성약(聖藥)이라 할 만하다.

최근의 삼칠근 연구성과를 보자. 일본이나 중국에선 관상동맥성심장질환에 보조치료제로 쓴다. 삼칠근 가루를 2~4g씩 하루 2~3차례 복용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삼칠근에는 플라보노이드글리코시드라는 성분이 있어서 관상동맥의 혈류량을 크게 증가시켜 동맥압을 떨어뜨리며, 심근의 산소소비량을 감소시켜 심교통과 협심증을 치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고혈압을 떨어뜨리며 저혈압을 정상화시킨다. 만성간염과 간경화에도 효과가 있어서 GOT, GPT수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도 보고된다. 만성C형간염에도 두드러진 개선효과가 있다.

삼칠근의 효능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뇌혈관의 출혈을 멎게 한다는 것이다. 뇌출혈에 의한 반신불수를 흔히 중풍이라고 한다. 뇌출혈이 생기면 치료가 됐다고 해도 그 삶의 질은 거의 절단난다. 수족을 못쓰고 질질 끌고 다니거나 자리에 드러누운 채 영영 사람구실을 못하게 된다. 한번 뇌출혈이 생기면 또다시 재차삼차 내혈관이 터질 가능성이 많다. 삼칠근은 뇌혈관의 출혈을 멈추게할 뿐 아니라 뇌혈관파열후 혈액순환장애를 개선하고 혈압을 떨어뜨려 뇌혈관이 다시 터지지 않도록 한다. 몸이 마비가 된 경우에도 삼칠근을 복용하면 뇌의 혈액순환이 개선되므로 회복이 현저히 빨라진다.

얼마전 김근태씨가 뇌정맥혈전증 치료를 받다가 치료도중 뇌출혈이 생겨 사망했다. 혹시 이 삼칠근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오가피나무과의 삼칠과는 전혀 다른 삼칠을 기술한 대목이 나온다. 요즘 말하는 ‘국삼칠(菊三七)’이다. 이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또 한종의 삼칠이 있는데 잎사귀가 국화와 쑥의 그것을 닮았고, 늦여름에 노란 꽃이 핀다. 꽃이 금실처럼 생겨 완상할 만하다. 줄기가 1~2m 정도 크게 자라고 뿌리도 우엉뿌리처럼 크다. 예의 삼칠과 그 효능이 같아서 금창절상(金瘡折傷)과 출혈 및 상하(上下)의 혈병을 치료한다.”

국삼칠은 국화과에 속하는, 삼칠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그러나 약효는 삼칠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이시진도 이를 삼칠로 분류했다. 최근에 와서 오가피과의 삼칠과 구별하기 위해 국삼칠이라고 하고 있다. 이 국삼칠의 재배에 성공한 이가 국내에 한분 있다. 경북 영주에 사는 이병규씨다. 10여년전 중국에서 우연히 삼칠의 효능에 눈을 떠 그때부터 국삼칠 재배에 도전했는데, 우리나라 토양과 기후에 적응하기 어려워 그동안 실패를 거듭하다 최근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아직까진 뿌리를 약재로 내다 팔 정도는 아니다. 잎과 줄기를 효소화시켜 차로 만들어 내고 있다.

어쨌든 이 국삼칠도 운남이나 사천, 귀주같은 남방에서 주로 자라는 약초다. 이병규씨의 국삼칠 재배가 기후와 풍토의 차이를 극복하고 성공한 것을 보면 오가피나무과의 삼칠도 한번 재배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려 1000%나 되는 엄청난 관세를 물고 중국의 삼칠을 수입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기 때문이다.

자연마을한의원 김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