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의 CEO 풍수갤러리]
⑤ 정정길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편
건물이 기댄 청계산 능선이 비교적 평탄하게 펼쳐진 모양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학문과 인재를 배출할 지세다.
본격적 장마철이 지나가는 결에 잠깐 소강상태에 빠진 맑게 갠 날 성남시 분당구에 자리 잡은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을 찾았다. 이곳은 한국학의 본산이다. 우리의 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하며 진흥하고자 설립된 재단법인으로 종래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알려졌던 곳이다. 지난 2005년 지금의 명칭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오래전부터 연구원이 위치한 이 일대는 명당 터로 소문이 났다. 겉보기에도 양지바른 좋은 터에 연구원을 조성했다는 느낌이 든다. 택지도 견고하고 토질도 좋아 보인다. 풍수에서 양택(陽宅)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환경을 연구하는 분야인데 자연친화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학문을 지향하고 있다. 예컨대 거주하는 공간에 공기가 원활하게 소통되는지, 빛이 충분히 들어오는지,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중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상은 다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다. 흔히 ‘양택을 본다’고 하면 건물 내부의 배치나 장식, 주로 인테리어에 국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건물의 외부와 내부를 모두 포괄하는 게 양택풍수다. 이때 건물의 외부는 내부보다 더 중요하다. 건물이나 주택을 볼 때는 먼저 외부를 보고 난 뒤에 내부를 보는 원칙이 있다. 만약 외부가 몹시 불리한 형세면 비록 내부를 조정해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외부 환경이 본(本)이고 건물 내부는 말(末)이므로 본말이 전도돼서는 안 된다.
고서에 이르길 이기(理氣:건물의 좌향으로 생기의 소재를 파악하는 방법)를 입으로만 말하고 만두(灣頭:산수의 형세를 보아 생기의 소재를 판단하는 이론)를 논하지 않으면 진정한 풍수가가 아니라고 했다. 정통 풍수에서 만두는 양택의 중추가 되므로 외부 환경이 우수하면 이에 따라 선택된 건물이나 주택은 복가(福家)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중연의 첫출발이 좋았다. 건물이 산을 기댄 모습이기 때문에 일단 합격점이다. 보통 건물 뒤에 크게 높지 않은 산이나 산비탈이 있으면 건물이 산에 기대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런 형국은 사업을 안정시키면서 재물을 모이게 하고 거주민을 평안하게 만든다. 특히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지형에 지은 건물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본다. 이는 자연스럽게 바람을 막고 생기를 모으는 길지(吉地)일 가능성이 높다.
판교는 존경받는 학자가 나는 풍수지리
연구원을 쉽게 찾으려면 분당의 판교(板橋)라는 지명을 대면 한결 수월하다. 판교 신도시에 접어들면 따로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넉넉한 느낌을 주는 기관의 위용을 접하게 된다. 애초부터 이곳의 자연조건이 좋았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겨울에도 햇살이 잘 들어 눈이 쌓이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비교적 풍수에 관심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곳을 명당으로 눈여겨보았다는 것이다.
연구원의 전임으로 재직 중인 이창일 박사의 전언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 지관(地官)을 대동하고 청계산 밑 현장에 임해 직접 잡은 자리가 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이란다. 이때만 해도 판교 일대는 한갓 시골 마을에 불과했다. 판교라는 지명도 옛날 일원의 하천인 운중천 위에 판자로 다리를 놓고 건넜다고 해서 주민들이 ‘널다리’ 내지 ‘너드리(너더리)’라고 불렀다는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글자 그대로 널빤지, 판(板)으로 보면 그럴싸한 얘긴데 다른 의견도 있다. ‘너들’이나 ‘너드리’는 ‘너르다’란 뜻으로 널찍하고 광활한 땅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판교라는 지명은 성남시 이외에도 전국에 꽤 많은 편인데 다리(橋)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판교가 성남시로 편입되기 전의 지명은 광주군 낙생(樂生)면이었다. 지금은 낙생이라는 마을 이름이 없어지고 낙생고등학교가 흔적처럼 남아 있다.
근래 들어 판교 신도시는 ‘즐겁게 산다’는 낙생이라는 지명의 위력답게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은 추세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어쨌거나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판교 일대 초고가 주택들 사이에서 풍수지리를 부각시킨 ‘명당마케팅’이 늘고 있다. 풍수에 민감한 부자들을 겨냥해서일까. 초고가 주택의 주 소비층인 VVIP 고객들이 풍수지리에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해 일반적으로 진행해 오던 주택 조망과 입지조건을 강조한 기존 마케팅에서 나아가 풍수를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예상됐던 현상이다.
화교권 국가는 물론 서구에서도 풍수가 결합된 부동산 비즈니스가 선보인지 이미 오래다. 근래에는 은행 PB센터에서 풍수 강연 및 컨설팅이 꽤 유행한단다. 별스럽다면 한국의 풍수마케팅에는 일반인들에게 생경한 형국(形局)의 명패가 붙어있다. 일종의 선전 구호로 쓰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이니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용마음수형(龍馬飮水形)’등의 수식이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 판교 풍수마케팅에는 이런 용어들이 구분 없이 다 붙어있는데 선인독서형 이외엔 걸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선인독서형은 한마디로 신선이 책을 펼쳐 놓고 읽은 땅 모양을 말한다. 대표적인 곳이 이회창 선진한국당 전 총재의 선친묘소가 있었던 충남 예산군 녹문리 일대다. 또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이 어린 시절을 보낸 강원도 영월군 와석리 일대를 들 수 있다. 신선의 형국은 보통 학자가 많이 배출되는 지리로 볼 수 있다.
산수(山水)는 곧 풍수와 의미가 통한다. 산수화를 로비나 거실의 감상하기 좋은 위치의 벽면에 걸어두면 재운을 고양시킨다. 책상 위의 산수화는 생뚱맞은 배치다.
명색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사택부지 정도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이러한 지형에서는 대개 존경받는 학자가 난다. 학업이 우수한 인재의 산실 정도로 의미를 두면 족한 것인데 용이나 말, 금계까지 거론해서 재물, 권세, 인기, 후손의 영광까지 과대 포장하면 타이틀이 너무 거창하다. 산이 둘러싼다고 해서 무조건 봉황이나 황금 닭이 포란(抱卵)할 리 없다. 산기슭에 하천만 있으면 용마음수(용과 말이 만나서 물을 마시는 형국)가 적용되는 게 아니다. 모 건설사는 귀인과 부자가 끊임없이 배출된다는 완사명월형(浣紗明月形)까지 거론했는데 이건 좀 심했다. 판교는 한남동이나 성북동과는 차별되는 풍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을 통할하는 정정길 원장을 인터뷰한 날은 비갠 뒤 화창한 오후였다. 그래서인지 기관은 더욱 맑은 자태를 드러냈다. 본관의 현관을 들어서기 직전 나침반을 꺼내드니 현관이 정남(正南)으로 향해있다. 정북(正北) 방향을 등지고 정남향을 바라보는 자좌오향(子坐午向)의 복가(福家) 배치다. 자(子)는 정북, 오(午)는 정남의 방위를 뜻한다. 풍수에는 삼대에 걸쳐 적선을 해야 자좌(子坐) 건물에 오향(午向) 대문을 낼 수 있는 행운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실로 깊이 풍수가 개입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경복궁이나 청와대가 연상될 정도다. 아무나 주인이 될 자리가 아닌 듯싶다.
봉건 시대에는 임금이나 군주만이 자좌오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어느 촌락이나 대갓집에도 정좌자(正子坐)를 한 가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능히 자좌(子坐)를 할 수 있는 자리도 서북방의 건좌(乾坐)나 동북방의 간좌(艮坐) 가상(家相)을 택했다. 좌향(坐向)을 다소 틀어놓은 것이다.
사무실의 자리에도 이 같은 원리는 적용된다. 남쪽에 출입구를 내고 북쪽에 사장 자리를 배치하는 것이 가장 좋다. 대기업일수록 이런 배치가 필요한데 빌딩의 현관 남쪽으로 내고 집무실을 현관의 대각선 방위에 두면 기업의 성공이 빠르고 승승장구한다. 현관 입구에서 이창일 박사를 만나 요약 보고와 몇 가지 자료를 건네받았다. 곧이어 비서의 안내로 2층에 위치한 원장실로 향했다.
종내 교육자로 대성하는 명
정정길 원장을 대면하니 첫눈에 느껴지는 인상이 정정했다. 사전에 예감했던 전형적인 관료풍이나 학자풍의 이미지와 달리 따뜻한 배려가 느껴진다. 매끄러운 말솜씨나 사교적인 친절로만 설명되지 않는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곧은 자세와 저력 있는 음성도 건강하게 기운에 차 보였다.
정 원장은 임오생(壬午生)으로 경남 함안 생이다. 서울대 법과대학과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와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객원 교수 등의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다. 2000년대 들어 서울대 대학원장과 울산대 총장을 거쳐 2008년 6월에는 청와대 대통령실 실장에 임명됐다. 오랜 기간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셈이다. 지난해까지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장을 역임한 뒤 올해 4월 한중연의 제15대 원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2014년 4월까지 3년이다. 지금까지 지내온 경로나 경력을 살피면 크게 관료와 강단의 길을 오갔다.
계유일(癸酉日)에 났는데 월건(月建)은 을사(乙巳)고, 시진(時辰)은 갑인(甲寅)으로 계수(癸水) 일원(日元)의 갑을목(甲乙木) 식상(食傷)이 모두 투(透)했다. 이렇게 팔자에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의 양 성분이 기세 좋게 드러나면 한 우물을 파기 어렵다. 달리 말해 물줄기가 양 갈래로 뻗어 고목과 화초를 다 키우는 격이라 진로가 무궁무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개 거침없는 변설과 뛰어난 직관을 가진다.
세간에는 정 원장이 학자 출신의 관리형에 무난한 인사로 기억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글쎄다. 팔자는 분명 다르다고 말한다. 시상(時上), 갑목(甲木)의 상관(傷官)이 건록(建祿)을 얻었다. 세가 이러하면 소탈한 가운데 통찰력이 뛰어나다. 한마디로 수가 앞서는 인사다. 기획과 전략 공히 탁월하다. 팔자의 격국(格局)은 인봉식상(印逢食傷)의 귀국으로 종내 교육자로 대성하는 명이다. 특이한 점은 생월과 생일의 사유합작(巳酉合作)으로 인수(印綬)가 주조(鑄印)된 물형이다. 이것은 옥새(玉璽)의 권위와 유관함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국가 기관이나 거대 단체의 핵심 인물로 중용될 명운을 타고 난 셈이다.
정정길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주인(鑄印), 기관이나 단체의 중추적 지위를 차지하는 명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원장 임기는 다 채우기 어렵다고 본다. 이유가 간단하다. 정 원장이 말띠인 까닭이다. 범띠나 말띠, 개띠가 정남향(午馬의 방향)으로 대문이 난 건물에 들면 오랜 인연을 맺지 못한다. 빠르면 올해 양력 8월경을 전후해 신상에 변동의 기운이 포착된다. 늦어도 11월 말 이전이다. 내년 임진년(壬辰年)은 인보상관(刃補傷官)의 도약과 비상이 기대된다. 귀인의 출현이다. 직관이 신성한 힘과 통하는 강력한 운기를 예고한다. 노익장 정도의 수사로는 걸맞지 않을 상당한 관록을 보일 기세다.
국사봉과 운중천에 둘러싸인 배산임수의 명당 터
통론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국사봉과 운중천에 둘러싸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 터에 위치했다. 운중천은 서출동류(西出東流: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는 물)로 서울의 청계천 명당수와 같은 길수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동고서저형의 지형지세로 하천의 대부분이 동출서류이므로 서출동류는 희귀한 편이다. 물이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른다는 것은 지세가 북서쪽이 높고 남동쪽이 낮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마을의 북서쪽은 산으로 막아주고 남동쪽은 트였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하천이 서출동류하면 차가운 겨울철의 북서계절풍을 막고 따뜻한 남향이나 동향의 입지조건을 갖추는데 취락입지의 이상적 형태가 된다. 그래서 ‘명당수는 서출동류’라는 말이 나왔다. 청계산을 등 뒤로 기대고 바라산을 바라보는 양지바른 곳의 노른자위에 연구원의 본관이 자리를 차지했다.
청계산을 등지고 대략 연구원의 중심 지점에서 바라산을 마주보니 의외로 높다. 한참을 바라보니 전망이 더욱 넓게 확 트이지 않은 느낌이다. 연구원의 앞뒤로 산의 정상 부위는 평탄한 일자문성을 이루어 신선의 형국임에는 틀림없는데 그 꿈이 원대하게 펼쳐지는 상은 아니다. 굳이 형국의 문패를 붙이자면 선인취회형(仙人聚會形)이랄까. 다시 말해 분수나 본분을 지키면서 평온한 생활을 누리기엔 최선이지만 혁신이나 도전은 잘 통하지 않을 지형이다. 보수(保守)의 기운이 강하다는 얘기다. 청계산 줄기인 국사봉이 만든 서판교 일대는 조선 시대 한양이 청계천을 앞에 둔 것과 흡사하다. 앞의 산들은 말잔등 같은 평탄한 모양으로 관료들이 태어나거나 거주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이처럼 평탄한 지세를 두고 새의 이름이나 날개를 등장시키는 형국 명칭을 쓰면 안 된다. 반면 동판교 일대는 운중천과 탄천이 감고 나가는 입지로 진취적인 기상이 강하다.
본관의 현관을 나서면 이내 운동장 너머로 큰 부속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올 7월 초 신축 개관한 장서각(藏書閣)이다. 조선 왕실의 아카이브(기록보관소)라 할 수 있는 장서각은 원래 왕실도서관으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민간에서 소장한 사대부의 문헌까지 수집함으로써 명실 공히 조선시대 국가왕실과 민간을 아우르는 고문헌의 보고가 됐다. 장서각 자료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박사의 안내로 정 원장과 함께 장서각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연구원 주변은 조경이 아름답고 귀한 나무들이 많다. 이들이 말없이 연구원의 역사를 서사한다. 남향으로 난 현관 입구를 들어서면 자못 숙연해진다. 비교적 안정된 토형(土形)의 건물에 천장이 높으므로 내부의 기운이 편안한 편이다. 권위적이거나 폐쇄적인 느낌은 들지 않고 시설을 이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는 것 같다. 박한 예산 탓인지 디테일은 약간 부족한 감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은 아닌 것 같아 정적이다.
풍수적 시각으로 보면 장서각의 위치는 본관과 마주하는 안산(案山: 집터 맞은편에 있는 산)의 기능을 하는데 전반적으로 어울리지 않게 돼 있다. 신축 건물에 비해 본관이 꽤나 왜소하므로 주객이 맞지 않다. 부속동과도 조화가 되지 않아 이래저래 한중연의 풍수 점수를 깎아 먹는 요소. 향후 혹 사소한 시비나 대립의 빌미가 될 공산이 있다.
안산은 다른 말로 저산(低山) 내지 책상산(書床山)으로 일컫는데 책을 읽는 사람 앞에 놓인 책상처럼 크기가 아담하고 작아야 발전하고 화합한다. 현재로선 책상이 너무 크다는 얘긴데 장서각의 규모를 문제 삼기보다는 향후 본관을 확충하면서 교정돼야 할 문제일 듯싶다.
책상 없이 책을 읽으면 올바른 독서 자세가 되지 않듯이 명당에 안산이 없으면 반쪽 명당이나 다름없다.
안산과 관련해 형국론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면 예컨대 소가 누운 모양새의 와우형(臥牛形)에서는 풀 더미처럼 생긴 안산이 이상적이다. 선녀가 산발을 했거나 단장하는 형세에서는 머리빗을 닮은 안산이 제격이다. 뱀이 개구리를 쫓는 형국인 장사축와형(長蛇逐蛙形)도 마찬가지. 뱀 앞에는 개구리나 쥐 모양을 닮은 안산이 있어야 명당이 된다는 식이다. 호랑이 앞에 누워있는 개 형국의 안산, 이런 지세를 복호형(伏虎形)의 명당이라고 한다.
풍수인테리어와 관련이 깊은 호랑이 그림
민속에 호랑이 그림은 액막이로 각광받았다. 원숭이띠나 쥐띠, 용띠에게 이 그림은 맞지 않고 사나운 느낌이 들면 해로울 수 있다.
장서각 로비에는 한국 문화의 디지털화를 상징하는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이 걸려있다. 역동적인 사진과 그림들이 교차되며 생동감을 더한다. 풍수갤러리는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 풍수적 결함을 보완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볼 수 있다. LED를 활용한 패널이나 액자는 매우 훌륭한 풍수 교정물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은 착상이 일었다. 여기에 꽃이나 다양한 색조, 산수, 풍경의 그림을 입력하면 동시에 빛 교정의 효용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예고 없는 방문에도 금세 말쑥한 차림새의 이완우 관장과 임직원들이 정 원장을 맞이했다. 이 관장의 안내로 자료실과 서고 내부를 보게 됐다. 차분하고 학구적인 분위기다. 이곳 폐가식 서고에서 어느 직원이 조심스레 운반해 온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를 직접 보게 됐다. 의궤는 조선시대에 왕이나 왕비의 능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의식·절차와 행사의 경위 및 전말 등을 기록한 책으로 현재 국내외에 모두 28종이 전해진다고 한다. 이중 3종을 대략 보게 됐는데 주로 전장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 청룡·백호·주작·현무 등 네 방위를 맡은 신의 그림)를 구경했다. 이때 서책은 형광 조명 아래 흰 장갑을 끼고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주로 호랑이 그림이 눈에 띄었는데 민속의 범 이미지나 호랑이 그림은 풍수인테리어와 관련이 깊다. 정 원장과 같은 말띠에게 호랑이는 장생(長生)에 해당되는 동물로 행운의 기물로 활용될 수 있다. 반면 잔나비띠나 쥐띠, 용띠에게 호랑이 그림은 겁살(劫煞)에 속하므로 궁합이 맞지 않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주는 인연은 장성의 띠를 가진 사람
앞에서 건물의 현관 방위와 정 원장의 생년 띠로 인연의 깊고 얕음을 논했는데 독자들도 쉽게 응용하고 체감할 수 있는 실용 가치가 높으므로 이번 기회에 정리해 보겠다.
먼저 본명(本命)은 목화금수(木火金水)의 네 가지 그룹으로 나누는데 돼지띠와 토끼띠, 양띠는 목명(木命)에 배당하는 식이다. 명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범띠와 말띠, 개띠는 화명(火命)이다. 뱀띠와 닭띠, 소띠는 금명(金命)이고 잔나비띠와 쥐띠, 용띠는 수명(水命)이다. 각 그룹의 중간띠에 해당하는 글자는 각 기운의 가장 강렬한 세력을 띠게 되는데 이를테면 화명의 범띠와 말띠, 개띠에서 말에 해당되는 오(午)의 글자가 화기(火氣)를 대표한다. 이런 글자를 두고 왕지(旺地) 내지 장성(將星)이라는 살성(煞星)으로 표현한다.
다시 말해 돼지·토끼·양띠에 해당하면 卯가 장성이고 범·말·개띠라면 午가 장성이다. 뱀·닭·소띠 생은 酉가 장성이고 원숭이·쥐·용띠에겐 子가 장성이다. 이때 卯는 동쪽, 午는 남쪽, 酉는 서쪽, 子는 북쪽 방위에 속한다. 시계의 12시 방향을 정북(正北)에 맞추었을 때 돼지·토끼·양띠에 해당하면 3시, 범·말·개띠는 6시, 뱀·닭·소띠는 9시, 원숭이·쥐· 용띠는 12시 방향이 장성에 속한다.
장성이란 이른바 삼합의 중간 글자로 사령부와 같다. 사령부는 전방에 두는 것이 아니라 후방에 두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건물의 현관이 장성 방향으로 나면 인연이 길게 가지 않는다. 이를테면 수험생의 생년 띠를 기준으로 진학하는 대학교의 정문이나 본관 현관이 장성 방향으로 나면 합격해도 곧 휴학하기 쉽다. 취업을 해도 오래 가지 않는다. 장성이란 글자 그대로 높은 지위의 우두머리와 같아 쉽게 노출되거나 공격의 대상이 되어선 위태하다는 뜻이 있다. 까닭에 가옥이나 영업장의 대문이 장성 방위로 나면 항시 외부의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격이라 큰 타격을 입기 쉽다.
집의 대문 방향이나 침실의 방문 방향도 장성 방향으로 나면 본인이나 가족이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로 나타날 때가 많다. 의상이나 이불, 요 등이 장성에 해당되는 색상이어도 좋지 않다. 묘(卯)는 오행(五行)의 木으로 청색(靑色)이고 오(午)는 火로 적색(赤色)에 속한다. 유(酉)는 金으로 백색(白色)이고 자(子)는 水로 흑색(黑色)에 속한다. 그러므로 돼지띠가 청색의 옷을 즐겨 입거나 범띠가 적색의 옷을 즐겨 입으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병이나 탈이 나기 쉬울뿐더러 각종 재액(災厄)이 침범하기 쉬우니 삼갈 일이다. 공교롭게도 시험이나 면접 같이 신상에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장성의 색상으로 된 옷을 입고 응시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결과가 좋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장성(將星)에는 양인(羊刃)이라는 성분이 작용한다. 인(刃)은 자신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자 비장의 무기가 돼야 한다. 드러내 놓고 위세를 부리다간 보통 크게 당하기 십상이다. 포태(胞胎)로 장성은 제왕(帝旺)의 자리다. 제왕의 자리는 반드시 후방에 안전하게 위치돼야 마땅하다. 왕이나 장군이 다치면 졸개들은 자멸하게 되는 이치로 장성은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되는 것이다.
사무실이나 영업장의 출입구가 장성 방향으로 나면 망하게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반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주는 인연은 장성(將星)의 띠를 가진 사람이다. 장성은 이름을 듣기만 해도 위엄이 있다. 돼지·토끼·양띠에게는 토끼띠가, 범·말·개띠에겐 말띠가, 뱀·닭·소띠에게는 닭띠가, 원숭이·쥐·용띠에게는 쥐띠가 각각 장성의 인연이 된다. 복잡한 법적 문제로 시달리거나 송사에 연루되면 장성의 띠에 해당되는 변호사를 찾아 해결을 시도하는 게 좋다. 사경을 헤매는 사람을 치료해 준 사람은 거개가 장성의 띠에 속하는 의사다.
[이수의 CEO 풍수갤러리]
⑥ 벽초지문화수목원, 박정원 대표
벽초지 연못
푹푹 찌는 한여름 오후, 나무가 우거진 파주시 광탄면의 벽초지문화수목원(BCJ Gardens)을 찾았다. 여타 수목원과 달리 평원에 있어 접근이 수월한 편인데도 첫 느낌은 유적했다. 도로변의 넓은 주차장이 목적지임을 쉬이 알려주지만 입구에 높고 길게 늘어진 대흑색의 담장은 벽초지 정원의 풍경을 가리고 있었다. 외부와 잘 교류하지 않는 인상을 준다.
가만 보니 담을 쌓아 올릴 때 쓰인 돌의 검은빛이 예사롭지 않다. 전해 듣기로 보령 남포면의 오석(烏石)을 구해와 지었다고 한다. 오석은 까마귀 깃털처럼 검고 윤기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령 일대에서만 생산된다. 신라 시대부터 최고급 비석과 벼루를 만드는 데 쓰는 돌로 정평이 났다. 그래서인지 비오는 날 이곳을 찾으면 빗물을 머금은 담벼락의 오묘한 색채로 한결 아취를 자아낸다고 했다.
풍수(風水)에서 검은색은 곧 물로 수기(水氣)에 속하며 재물과 연관이 깊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간직하고 저장하는 속성을 지녀 보통 대문이나 현관에는 잘 적용하지 않는 색상이다. 희소식이나 길한 인연과의 교류를 촉발시키는 활기가 묻히는 까닭인데, 내실을 다지는 측면에선 특장이 있다. 게다가 수기는 목기지모(木氣之母)가 되니 수목원을 잘 보호하고 간수해 남기는 보존적 차원에선 상책일 수 있다. 다만 번화하게 창성하는 데는 일말의 장애 요소가 되므로 개방과 보존이라는 난제에 봉착하기 쉽다.
불길한 기를 반사시키는 거울과 유리
분홍색 후록수꽃
성문처럼 보이는 공원의 문을 여는 순간 바깥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내부 공간의 아름다움이 보기에 색다른 데가 있다. 전통적으로 검정색 대문을 고수하는 화이트홀의 영국 수상 관저와 비슷하다. 아름다운 꽃과 솔로 어우러진 풍치는 잔잔한 바람을 일으켜 열기를 식히는 기분이다.
정원의 첫인상은 곱고 깨끗했다. 정문의 좌측으로 살짝 숨었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탁 트인 잔디 광장과 연못 건너편의 숲속 별장은 풍요롭고 평화로운 정경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공원은 연못과 나무, 화초가 조화를 이루며 동양식과 서양식 정원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못의 이름은 벽초지(碧草地).
간단히 말해 푸른 풀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인데 물가에 늘어진 풍성한 수양버들 가지와 연못을 가득 덮은 연꽃의 경관은 온통 녹색천지다. 각각의 테마로 조성된 공간 또한 동서양의 명칭들로 섞여 있다. 이를테면 무지개원이나 나래길, 연리지 등의 예스러운 이름들과 채플 돔, 체스 가든, 캐슬 게이트 같은 외어들이 혼용됐다. 이곳의 서양식 명칭은 우리말의 고아한 표현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조가 떨어지는 감이 있다.
수목원에 들어서면 BCJ 플레이스라는 간판을 내건 유리 외벽 건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원 전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본부 건물이자 쉼터로 활용되는 곳이다. 지하에는 갤러리가 있고 로비에는 카페, 위층에는 레스토랑 및 연회장 같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외벽에 온통 유리를 두른 건물은 여름철에 유난히 더워 ‘전기 먹는 하마’란 별칭이 붙을 만큼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간단히 말해 여름철엔 더 덥고 겨울철엔 더 춥다는 얘기다. 하지만 외관이 보기 좋다는 이유로 유리 건물 짓기는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한편 유리 건물은 꽤 긍정적인 풍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거울이나 유리는 외부 환경의 위협적이고 불길한 기를 반사시키고 내부를 보호하는 작용을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날로 위압적인 초고층 건물들이 늘어서는 대도시와 같은 환경에서 위협에 노출되는 낮은 건물들은 외벽에 거울을 부착하거나 유리를 둘러 살기를 무력화시키는 대응책을 강구한다. 하지만 수목원 어디에도 이 유리 건물을 위협하는 구조물은 찾아볼 수 없다. 본관 건물은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좋지만 수목원의 미관에 일조하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높은 풍수 점수를 매기기는 어렵다. 다만 건물의 외벽 모서리가 직각으로 모나지 않고 둥근 형태로 건축된 점은 다행한 일이다. 토형(土形)의 가상(家相)에 원형의 금기(金氣)로 상생돼 안정감은 특별하다.
재물 성취에 힘을 기울이고 욕심내는 부자의 팔자
본관의 1층 휴게실 뒤편 가장자리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수목원의 박정원 대표와 대담을 나눴다. 첫눈에 느껴지는 인상은 차분하고 강직해 보였다. 낮은 목소리를 침착하게 이어가는 모습은 모진 굴곡을 겪어도 꺾이지 않는 강한 기세를 내포한다. 원숙한 유연함이라기 보단 어떤 유혹도 이겨 낼 꼿꼿한 정신에 가까운 기운이다. 박 대표는 1947년 정해(丁亥)생으로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다. 10년의 세월을 뚝심으로 준비해 2005년 가을경에 수목원을 개원했고 현재도 여전히 조용한 열정을 수목원에 쏟아 붓고 있다.
박정원 벽초지문화수목원 대표. 신미(辛未)의 재고귀인(財庫貴人), 부명(富命)으로 완고한 성정이 특징이다.
박 대표는 갑진(甲辰)월, 신미(辛未)일, 경인(庚寅)시에 태어났다. 갑목(甲木)은 팔자에 뚜렷하게 투(透)하여 드러난 재(財)의 성분으로 ‘재물과 처, 건강’을 주관하는 용신(用神)의 생명과 같은 글자다. 여기에 을목(乙木)의 기를 암장한 미토(未土)의 재물 창고가 더해져 재물의 성취에 힘을 기울이고 욕심을 내는 부자의 팔자로 두터운 재복(財福)을 타고났다. 경남 함양 출신의 박 대표는 29세 때 서울에서 양화점을 시작한 뒤 20년 동안 다양한 서비스업을 해봤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이 전성기. 경기도 부천과 대구 등에서 스포츠센터와 관광호텔 등을 운영했고 인천에서는 1400가구가 넘는 아파트를 성공적으로 분양하기도 했다고. 다만 왕자입묘(旺者入墓)라, 팔자에 재물 창고가 있는 가운데 강력한 재물의 글자가 드러나면 때에 따라 크게 재산이 산실(散失)되는 우여곡절을 겪게 마련이다.
큰 재산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처궁(妻宮)의 우환이나 치명적인 질환이 따라붙는다. 팔자명리(八字命理)는 명운(命運)에 담긴 이러한 이치를 물상대체(物象代替) 내지 상보(相補) 관계로 표현한다. 그래서 크게 손재해도 그나마 건강이 무탈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또 처가 집을 나서면 덕분에 재산이나 건강을 지킨 셈으로 친다. 명(命)을 아는 자, 하늘과 타인을 원망하지 않는 이치가 바로 이런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박 대표의 팔자는 재고(財庫)인 미토(未土)를 타격하는 축(丑)이나 술(戌)의 시점에 삼형(三刑)이 성립돼 법적 송사(訟事)를 야기하며 산재(散財)하는 경우가 많다. 재물 창고가 열리면서 가진 재산을 이리저리 써서 없애 버린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1999년 정축(丁丑)년이 크게 불운했다. IMF 경제위기 때를 전후해 투자했던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수천억원에 달하던 재산을 다 잃었다는 것이다. 사업이 망한 뒤 지금껏 송사에 시달리고 있을 만큼 여파가 매섭고 독했다. 상심이 깊었던 시기에 지금의 수목원 별장으로 들어와 심신을 달래다가 문득 소나무에 마음이 사로잡혔단다. 실패하고 보니 “변치 않는 나무가 바로 내 재산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20년 동안 돈만 악착같이 벌다가 이내 나무와 돌에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1996년부터 농장 주변에 흉물처럼 흩어져 있던 축사를 사들이고 전국을 돌며 소나무와 자연석 등을 모았다. 정원 곳곳에 숭숭 구멍이 난 시커먼 현무암도 꽤나 인상적. 그는 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들어온 돈마저 고스란히 수목원에 투자해 왔다. 융자까지 보태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이 대략 300억원이 넘는다. 수목원 정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굴절된 모양의 두 그루의 노송과 대면하게 된다. 300년이 넘는 세월의 한파를 이겨낸 소나무가 심겨진 정원은 빛솔원으로 명명돼 수목원의 상징이 됐다.
어떻게 보면 이들 소나무는 불굴의 집념과 끈기로 인고의 세월을 버텨낸 주인장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굴곡은 졌지만 꺾이지는 않은 소나무의 강한 기상이 느껴진다. 물형으로 갑목(甲木)에 비유되는 소나무는 박 대표에게 생명과 같은 용신(用神)의 의미가 있다. 사업이 무너진 뒤의 절망감을 소나무를 통해 이겨낸 셈이 됐다.
색에 따라 달라지는 꽃 풍수
벽초지수목원은 12만㎡(약 3만6000평)의 평지에 소나무와 지리산 주목, 각종 야생화 등 1400여 종의 식물과 자연석이 장관을 이룬 정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호화스런 사계절 꽃의 향연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각종 드라마와 CF 촬영의 명소로 부상했다.
풍수에서 꽃은 특별하다. 아름다운 꽃은 행복을 날라주는 힘이 있다. 꽃 풍수는 보통 크기나 색채에 따라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을 구분해 밸런스를 맞추는 식으로 활용된다.
예컨대 해바라기나 수선화, 민들레 같이 노란색 계열의 꽃은 토(土) 기운에 속해 금(金)의 금전운을 높이는 데 응용한다. 이때 해바라기는 양(陽)에 속하고 수선화나 민들레는 음(陰)에 속해 전자는 재정의 원활한 운용이나 융통, 후자는 주로 저축이나 재산 증식 등의 의미와 연계된다.
장미나 튤립 같은 붉은색의 꽃은 대개 양화(陽火)의 기운으로 건강과 활력, 번영의 파워를 지닌다.
핑크색의 벚꽃이나 카네이션은 인연을 불러들이는 기운이 담겨 애정운을 고양시킬 때 주로 쓰인다.
주홍색의 팬지나 히비스커스는 사교의 꽃이다. 목(木) 기운의 보라색 제비꽃이나 파란색 나팔꽃 등은 창의와 성장의 에너지를 나타낸다. 공간의 동쪽이나 남쪽 영역에 두면 번영을 가져온다.
싱싱한 초록의 관엽식물도 적용법이 같다. 백합과 같은 흰색의 꽃은 금기(金氣)에 속하여 이성과 결단성을 키운다. 사교에서도 수직의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꽃 풍수의 상식으로 꽃이나 화분을 침대 가까이 두는 것은 좋지 않다. 적어도 반경 1m를 벗어나야 한다. 꽃 자체가 주변의 생기를 흡수하는 까닭인데 피지 않은 상태의 난이나 식물은 가까이 둬도 무방하다. 대개 공간의 구석진 곳이나 모난 곳에 사기(死氣)가 조성되는데 이런 곳에 화분이나 꽃을 두면 해로운 기운을 흡수해 정화하는 작용이 있다. 효능 면에서 생화가 가장 뛰어나지만 조화도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꽃그림이나 꽃무늬도 같은 맥락에서 활용된다. 기분을 좋게 하는 사물이나 소품은 다 같이 좋은 풍수의 뜻을 담기 때문이다.
이국적 정취를 자아내는 서양식 정원. 마치 신화의 땅 아테네에서 신비로운 옛이야기를 만난 느낌이다.
퀸즈 가든의 우측 편으로 놓인 오색길을 따라가면 조각공원으로 향하는 유럽식 정문인 B CJ 성문(城門)이 나타난다. 이 부근에 유럽식의 호사스런 공원이 조성됐다. 성문에서 그린하우스로 이어진 좁은 통로에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백색의 조각상과 스탠더드 장미가 늘어서 맑고 깨끗한 흥취를 자아낸다.
푸른 잔디가 가득한 정원의 중앙에는 유럽식 분수대가 있고 그 너머로 허브가든과 워터가든, 원형 지붕 형태를 갖춘 채플돔이 위치한다. 이 주위로 물방울가든, 음표가든, 체스가든 등이 흥미롭게 조성됐고 멀리 보이는 자작나무숲도 볼만하다. 성문에서 바라볼 때 정원의 우측 편에는 신상(神像)이 모인 제우스 가든과 허브를 주제로 한 자연체험학습장이 자리한다. 끝자락에는 야외 웨딩가든도 구색을 갖춰 드라마 촬영지로 최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공원에는 분수대나 워터가든과 같이 물을 주제로 한 공간이 적지 않다. 여기에는 구형의 검은색 큰 돌이 떡하니 놓여 있는데 물이 나오면 스스로 돌아가는 형태로 설계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양식 정원에선 물을 구경할 수 없었다. 분수나 돌은 작동되지 않고 멈춘 상태로 정지돼 있다.
풍수에서 물은 곧 돈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물이 좋으면 재운 또한 상승한다는 얘기다. 건물의 현관 밖에 분수대를 설치하면 대개 길하다. 그러나 건물 내부에 분수대를 설치하면 좋지 않을 경우가 더 많다. 분수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폭포의 활수(活水) 형태가 최적이다.
최근에는 건물 앞에 설치한 인공 폭포나 워터스크린(water screen) 등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좋은 배치는 현관에서 마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계단식으로 물이 고였다 흘러넘치는 식이 가장 좋다. 계단식 인공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흘러 다시 아래의 연못으로 들어간다. 연못이 가득 차면 이 물이 다시 높은 곳으로 흘러가 순환하게 된다. 이렇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순환하면 재물의 원천이 끊이지 않는다.
물이 세차게 치솟거나 소리가 크면 사나운 기상이 돼 급속하게 재산을 잃게 될 우려가 있다. 정원의 큰 돌은 자칫 혼사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딱딱한 돌은 그 성질이 음(陰)에 속하므로 앞뜰에 커다란 돌을 놓아두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 현관 앞에 커다란 돌을 놓아두면 재운(財運)을 가로 막고 사건사고를 야기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뒤뜰이나 집의 양쪽에 커다란 돌을 두는 것은 괜찮다. 만약 돌이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면 불리하다.
풍수와 연관이 깊은 연꽃
하이라이트는 벽초지다. 수목원의 문패로 정해졌을 만큼 그림 같은 연못이다. 연못가에는 파련정이라는 아담한 육각정자가 제법 운치가 있게 자리 잡아 고풍스런 분위기를 더한다. 바로 이 정자에서 장년의 유명 가수 두 명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라고 대사하는 모 제약회사의 광고가 제작됐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벽초지 하나만 봐도 이곳의 주인장이 정원 가꾸기에 얼마나 세심한 열성을 기울였는지 짐작이 간다. 흔히들 수련을 한자로 수련(水蓮)이라 쓰기 쉬운데 수련(睡蓮)이 맞다. 햇빛이 환한 낮에만 피고 밤에는 꽃송이를 오므리고 잠이 든다고 해서 자오련(子午蓮), 또 오후 세시 전후인 미시(未時)에만 꽃이 핀다 해서 미초(未草)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이름에 졸음 수(睡)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이날 필자는 타이밍을 놓쳐 연꽃의 개화를 보진 못했다.
연꽃은 풍수와 연관이 깊다. 이를테면 형국론(形局論)에 종종 거론되는 연화부수형(連花浮水形)이나 연화출수형(連花出水形)과 같은 용어는 물 위에 뜬 연꽃의 모습을 말한다. 교과서적으로 물이 사방으로 둘러싸 가옥을 한 바퀴 돌아 나가면 연꽃형의 길지로 보는데 보통 평탄한 지형이면 연화부수형이 되고 경사면을 이루면 연화도수형(連花到水形)으로 구분한다. 연꽃은 오성으로 화성(火星)에 속하며 민간에서는 가운데 씨방에 씨가 많아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겼다. 더러운 물속에서도 고결함을 잃지 않는 특성으로 이런 곳에서는 출신이 한미해도 출셋길에 올라 고귀한 인물이 될 수 있는 길지의 형상으로 봤다. 서울의 봉원사와 전남의 실상사는 연화부수형의 대표적 명당 터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다 연못이 있다. 연꽃은 불교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처염상정(處染常淨). 연꽃은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청정한 자태를 나타낸다. 불가에서 부처는 곧 연꽃에 비유됐다.
둘째, 화과동시(花果同時). 이 말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힌다는 뜻인데 원인과 결과가 늘 함께 한다는 불교의 진리를 설명한다.
셋째, 종자부실(種子不失). 연꽃의 씨앗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물속에 떨어진 연꽃 씨앗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고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움터 꽃을 피운다는 불성을 상징한다. 풍수 인테리어 분야에서도 연꽃 모양의 향로나 문양, 연꽃을 담은 수반(水盤) 등은 재운(財運)의 고양이나 후손의 번영을 꾀하는 의미로 활용되는 소품군에 속한다. 풍수에서 물은 정원을 꾸미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집 마당에 우물이나 못을 파는 게 매양 좋은 게 아니다. 오히려 크게 흉할 때가 많다. 또 보통의 가옥에서 연못을 조성하기란 쉽지 않은 얘기다. 이때는 큰 돌을 파서 물을 부어 쓰도록 만든 석기인 석조(石槽)로 대신하면 훌륭한 풍수 처방이 된다.
석조에 물을 담아 두거나 연꽃을 피우면 규모의 조화로 해로움이 없고 이로움만 있다.
이수 / 명리학자
/ 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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