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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도솔암 [동양학 박사 조용헌의 靈地(영지) 기행 ⑥]

경호... 2012. 7. 1. 10:34

[연재 | 동양학 박사 조용헌의 靈地(영지) 기행 ⑥]

구름 속 도솔천의 세계 ‘달마산 도솔암’

 

동북아 神仙설화 발전한 전형적인 水火旣濟의 땅끝 산

 

 

▲ 주변에서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절벽 위 구름 속에 솟아 있는 듯한 도솔암 전경.

무림의 고수들이 1년에 한 번씩 회합을 가질 법한 그런 곳에 자리 잡고 있다.

 

 

50대가 되니까 자연이 눈에 들어온다. 연두색의 신록이 마음을 환하게 만든다. ‘오십 이전에는 신록이 신록인줄 몰랐지만, 오십 이후에는 신록이 신록임을 알겠구나’라고 해야 할까. 숲길 옆에 피어 있는 자그마한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숲에 들어가면 소나무의 송진 냄새가 아랫배까지 내려오도록 깊이 호흡을 해본다. ‘자연이 좋구나!’ 왜 이 맛을 이제야 느끼는 걸까? 20~30대부터 알았으면 내 인생이 훨씬 더 풍요로워졌을 것 아닌가! 왜 배터리가 방전되는 50대에 들어와서 이 맛을 알게 된 것일까!

 

해남의 달마산 도솔암 가는 숲속의 산길에 피어 있는 철쭉꽃을 보면서 가슴속에 들어와 뭉친 소회(所懷)이다. 인간이 50대 이전에는 오로지 자기 앞만 보고 자기만 알고 바쁘게 살다가, 이후가 되면  비로소 옆길에 뭐가 있는지 쳐다보면서 주변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배터리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절감하면서, ‘인생 별 것도 없네’라는 이치를 깨달으면서, 자연이 갖는 무한함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경외로운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일까? 하루살이같이 유한한 존재가 영겁의 무한한 천지자연에 대하여 갖는 질투와 부러움이란 말인가?


 

해남의 도솔산은 물건이다. 높이는 비록 500m도 안 되지만, 산 전체에는 영기가 가득 차 있다.

<陋室銘>(누실명)에 나온다.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則名)’이라고. 산이 높다고 장땡이 아니다.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라고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은 갈파하지 않았던가. 달마산은 신선이 살  만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땅끝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땅끝’이라는 단어는 어감이 다르다. 끝이라는 것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뜻이다. 한반도의 땅끝인 해남, 그리고 그 해남을 관통하는 달마산은 ‘땅끝 산’이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더 이상 가면 바다이다. 산이 바다를 만나면 거기서 멈추어 선다. 그리고 기운을 만든다. 화기와 수기의 교류가 그것이다. 주역에서는 수화기제(水火旣濟)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닷가에 있는 바위산들이 명산이고, 이런 지점에서 동북아시아의 신선 설화들이 발전했다. 중국 산동의 노산(?山)이 그렇다. 해상선(海上仙)의 발원지가 바로 노산인 것이다. 조선의 금강산, 남해 금산(錦山)도 역시 그렇다. 신선이 좋아하는 산은 대개 바다를 바라 볼 수 있는 산들이다.

달마산이 이것이다.

풍수가에서는 ‘천리행룡 일석지지(千里行龍 一席之地)’라고 표현한다. 용맥이 천리를 내려오다가 그 끝머리에 자리 하나를 만든다. 호박 열매가 끝자락에 열리듯이 기운이 뭉친 명당도 끝자락에 만들어진다. 끝자락에 영양가가 있는 셈이다. 끝이라는 어감은 비장한 감도 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니 꼼짝 달싹 할 수 없다는 느낌도 준다. 갈 데가 없구나!

그러나 반대로 새로운 차원이 열릴 수도 있다. 갈 데까지 간 만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궁즉변(窮則變)이요, 변즉통(變則通)이라 하지 않았던가.

달마산이 상징하는 것은 이러한 양면성이다. 궁(窮)도 있고, 변(變)도 있는 것이다.

 

 

▲ 도솔암 가는 이정표. ‘땅끝서 만나는 하늘끝’이란 문구가 가슴에 다가온다.

 

 

바위가 단단하면 센 기운 나와

 

나는 산에 가면 바위의 질을 본다. 단단한가? 무른가? 화강암인가? 석회암인가? 현무암인가? 맥반석인가? 산에 다니려면 바위에 대한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위 이름 10개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산지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바위에 따라 기운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위가 단단하면 기운도 단단한 기운이 나오고, 무르면 기운도 부드럽다.

화강암에서 도인이 많이 나온다. 화강암은 단단한 돌이다. 단단한 기운이 몸속에 들어가면 한계상황을 돌파하는 힘이 비축되기 마련이다. 일본은 화산지대가 많아서 한국보다 돌이 무르다. 한국은 화강암이 많다.

그래서 무당도 한국 무당이 일본 무당보다 세다. 적어도 무당세계에서 만큼은 조선무당이다. 산의 바위 강도 때문이다.

 

달마산의 도솔암 가는 숲길에서 돌출된 바위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규석(硅石)이 많다. 쌍토 ‘규’(圭)자가 들어간 이름이다. 바위의 결이 평평하게 나 있어서, 깨질 때도 네모나게 깨진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나 싶다. 규암(硅巖)이라고도 한다. 약간 흰 색깔을 띠면서 바위 표면이 매끌매끌한 암석인데, 강도는 아주 단단한 편이다. 화강암보다 약간 더 단단할까? 규암에서 추출한 성분은 용광로에서 높은 온도의 불을 견디는 방화재(防火材)로 사용된다. ‘조선내화’(朝鮮耐火)라는 회사에서 생산되는 방화재는 대부분 이 규석에서 채취한다고 들었다.

아! 도인들이 좋아할 산이겠구나! 영양가 많겠구나!

단백질이 부족한 사람은 이 산에서 도 닦으면 단백질을 대거 보충할 수 있겠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도솔암은 비범한 자리에 있다. ‘머털도사’가 머무르는 암자가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 위에 솟아 있는, 주변에서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절벽 위에 있는 암자 말이다. 그런가 하면 무협지에 나오는 무림의 고수들이 1년에 한 번씩 회합을 가질 때 바로 이런 장소에서 하면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의 장소다.

50~60m 높이의 절벽 위 아슬아슬한 지점에 축대를 쌓아 암자를 지어 놓은 것이다. 절벽 위는 마치 거대한 창검(槍劍)처럼 뻗은 바위들이 직립으로 솟아 있었고, 그 직립한 바위 속에 조그만 암자를 지어 놓았다. 원래 자연 공간은 겨우 한 칸짜리 암자만 지을 수 있고, 마당은 나올 수 없는 입지였지만, 절벽 틈 사이에 돌 축대를 10m가량 다져 넣어서 7~8평쯤 되는 마당 공간이 나올 수 있었다. 아래쪽에서 보면 아주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인다. 거기에 한 칸짜리 자그마한 암자 하나가 자리 잡고 있으니, 자연과 인공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100% 자연만 있는 것보다는 이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인공이 약간 섞여 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달마산 신선이 산다면 어디에 살겠는가. 이런 곳에서 살아야지.

 

 

▲ 땅끝마을 해남의 달마산 꼭대기에 있는 도솔암으로 가는 길은 사람이 일일이 돌로 조성해 놓았다.

 

 

난공불락 요새에 자리… 자연과 인공의 완벽 조화

 

원래 이 도솔암 법당 터는 400년 동안이나 비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암자가 있었지만, 명랑해전에서 패한 왜군들이 이 달마산으로 후퇴하면서 여기에 있던 암자와 절들을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400년 동안 빈터로 있었다. 터가 좋으니까 무속인들이 몰려와 치성 드리는 장소로 이용되어 오다가, 2002년에 조계종의 법조(法照) 스님이 와서 터를 정화하고 법당을 지었다.

 

“어떻게 이런 신선들이 살 법한 곳에 법당을 지었는가? 가장 전망이 좋은 때는 언제인가?”

 

“내가 여기서 10년을 살아 보았다. 1년 중에 평균 5번 정도는 이 터에서 제주도의 한라산이 아스라하게 멀리 보인다. 그 꼭대기 부분이 보인다. 주로 청명한 가을에 잘 보인다. 이곳은 일몰과 일출이 모두 보이는 장소이다. 법당은 서향(西向)이다. 서쪽으로 있는 진도 앞바다가 보인다. 섬들 사이로 석양이 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특히 석양의 빛이 간접조명을 아래에서 위로 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장관이다.

해가 수평선에 거의 다다를 무렵, 바다 밑에서 하늘의 구름들을 향해 붉은 노을을 반사시킨다. 이때 노을이 붉은 물감처럼 하늘의 구름들을 물들인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다가온다.

‘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잘했구나!’하는 느낌이 온다. 요사체는 남향에 가깝다. 완도 앞바다 쪽이 보인다. 새벽에 올라오는 해는 에너지를 준다. 바다 밑에서 올라오는 해를 보면 의욕이 생긴다.”

 

“해는 그렇다 치고 달이 뜰 때의 풍광은 어떤가?”

 

“완도 앞바다에 보름달이 뜨면 바다 전체가 하얗게 보인다. 월광이 바다에 물들면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이 하얀색이 달마산의 바위 전체를 비춘다. 그러면 바위도 하얀색으로 보인다. 산속에 혼자서 바다와 산 전체가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년 사계절이 다 나름대로 특색과 분위기가 다르지만, 겨울이 되면 특히 더 좋은 것 같다. 추위 속에서 바라보는 자연이 장엄하고 인간을 숙연하게 만든다.”

 

 

 

▲ 하늘끝 절벽에 둘러싸여 있는 도솔암 지붕 기와.

 

 

1년에 5번 정도 제주도 한라산 보여

 

불교의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이라는 경전에 보면 16가지 관법(觀法)이 나온다. 관법은 도 닦는 방법을 일컫는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일몰관(日沒觀)이다.

석양의 해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뜨는 해는 잠깐이지만, 지는 석양은 한 시간 가까이 볼 수 있다. 대낮의 태양은 눈이 부시어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저녁 무렵의 석양은 눈이 부시지 않아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 석양을 한 시간 정도 바라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평화스러운 마음이 든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가 받은 상처, 내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가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이 상처들이 치유받는 시간은 석양을 바라볼 때가 아닐까. 그래서 16관법 중에 제1번에 배당시켜 놓았지 않았나 싶다.

 

사람 사는 게 상처의 연속이다. 어렸을 때 마음은 깨끗하고 구김살이 없는 명주천 같다고 한다면, 나이가 들고 먹고 산다고 발버둥치면서 마음이 걸레가 된다. 누더기처럼 여기 저기 터져 있고, 찢어져 있다.

이 누더기를 다시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방법이 바로 일몰관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허함과 상처를 치료하려면 명산에 올라와 석양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장엄한 장소에서 봐야 효과가 있다. 장엄함을 자주 겪을수록 마음이 펴진다. 마음의 주름살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것은 역시 자연밖에 없는 것이다.

 

도솔산 절벽 위에 머털도사가 사는 암자처럼 지은 도솔암. 깎아지른 절벽 위의 도솔암 마당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것은 정신병 치료에 해당한다. 우리 모두 정신과 환자 아니던가! 필수사항이 풍광이 장엄한 장소를 많이 알아 놓는 일이다. 시간 날 때마다 그 장엄한 장소에 달려가 해를 보고 달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듣고, 바다를 바라보아야 산다.

“인적이 드물고 신도도 별로 없는 이런 외진 곳에 혼자 사니까 스님은 춥고 배고플 것 같다.

특히 전라도 땅은 쿠르드족(族)이 사는 데 아닌가!

경상도야 불교 신도가 많지만, 전라도는 불교 신도가 적다. 무엇을 먹고 사는가?”

 

 

▲ 조용헌 박사(오른쪽)와 도솔암 스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은 외로워야 한다.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는 말이 있다. 춥고 배고파야 도 닦을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등 따습고 배부르면 도는 멀어진다.

그런 점에서 경상도 절에 있으면 스님이라고 대우받지만, 전라도에 있으면 대우 못 받는다. 도는 전라도에서 닦아야 제대로 닦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살아야 마음이 가라앉고 사물을 관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눈 오고 추운 겨울에 이 산 꼭대기 절벽 위에 있으면 엄청나게 춥다.

밥을 할 때도 물이 얼어버려서 눈으로 했다. 얼음을 깨서 밥을 한다. 물이 없으니까 샤워도 못 하고, 겨우 뒷물 정도 하는데, 그 뒷물도 눈으로 할 때가 많았다. 손으로 얼음을 깨고, 눈을 뭉쳐야 하니 손이 시렸다. 손으로 전달되는 그 고통스런 느낌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다. 시린 느낌을 겪으면서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천지와 감응되는 것이다.

자연을 통해서 천심(天心)과 지심(地心)을 느낀다. 천심, 지심을 알아야 도를 느끼는 것 아니겠는가. 중 노릇을 하려면 자연 속에 푹 파묻혀서 어느 정도 세월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이 달마산에 와서 알았다. 편하게 살면 고통을 모르고, 자연을 모르고, 도를 모른다.” 

 

 

법조 스님이 빈터로 남아 있었던 달마산 도솔봉에 와서 암자를 짓게 된 사연이 있었다. 2002년에 오대산 상원사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통한 꿈을 세 번이나 연거푸 꾸었다.

 

첫 번째 꿈은 ‘놋쇠 요강’이 나타났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오래된 터로 이사 가는 꿈이었다. 옛날에 요강은 여행 다닐 때 휴대하고 다니던 물품이었다.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방에 요강을 두고 잠을 잤던 것이다. 놋쇠는 오래되었다는 뜻으로 해몽했다.

 

두 번째 꿈은 밑에 소(沼)가 있고, 그 위 절벽에 칡넝쿨이 있어서 거기에 스님이 매달려 있었는데, 시커먼 용이 소에서 올라와 스님 어깨에 기대는 꿈이었다. 도솔암 터에 와서 보니까 법당 터 밑에 물이 나오는 샘터가 있고, 이 샘터 위로는 절벽이니까, 꿈에 본 장면하고 도솔암 터가 맞아 떨어졌다.

 

세 번째 꿈은 바닷가에서 숭어가 펄쩍펄쩍 뛰어 오르는데, 모래사장을 한참 지나고 보니까, 검정 돼지가 나타나 그 숭어를 껴안았다. 한참 후에 그 검정 돼지가 50대 남자로 변하는 꿈이었다.

이 세 번째 꿈은 미래를 예시하는 꿈으로 해석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경관이 기가 막히고 영험한 터는 반드시 꿈이 있기 마련이다. 영지(靈地)는 영몽(靈夢)을 꾸게 만든다.

 

진도와 완도 앞바다에서 올라온 해무(海霧)가 끼어 있는 달마산 도솔암의 숲길. 군데군데 피어 있는 붉은색의 철쭉꽃을 보면서 한국이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명산이 많고, 가 볼 데가 많은 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월간산

 

 

 

 

해남 달마산

달마가 해남 땅끝으로 온 까닭

 

 

▲ 도솔봉은 가히 달마산이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이유를 보여준다.

 

 

고려 때 중국의 사신이 해남 땅끝으로 와 한 산을 가리켰다.

“내가 듣기에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 하는데 이 산이 그 산인가.”

주민들은 `그렇다’ 했다. 사신은 산을 향해 예를 행하고 그 산을 그림으로 그려갔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만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할 뿐인데 그대들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부럽다. 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

해남 달마산. 정말 달마가 해남으로 왔을까. 중국에 건너가 선종을 창시한 달마는 모함을 받고 죽음에까지 이른다. 그런데 달마가 죽은 지 3년, 소문이 퍼진다. 부처의 몸이 되어 짚신 한 짝을 지팡이에 꿰어 차고 서천(인도)으로 갔다는. 달마가 인도로 갔다는 게 널리 알려진 달마 전설이다. 그러나 달마산 기슭에 자리한 미황사의 옛 기록들은 달마가 인도로 간 것이 아니라 해남 땅끝으로 왔다고 주장한다. 미황사를 달마대사의 법신이 계시는 곳이라 소개하고 있고, 달마산이라는 이름 유래 또한 그러하다.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하다. 그슥한 숲, 수많은 기암괴석과 수려한 암봉, 푸른 바다가 훤하고, 섬과 섬 사이로 붉게 지는 해넘이. 산행을 마치면 달마가 해남 땅끝으로 왔다는 전설에 `한 표’를 던지게 된다.
 

`햇살 전각’을 세운 미황사

절천년고찰에 든다. 미황사(美黃寺). 소 울음소리가 아름답게 울릴 것 같은 고요한 절, 우전국의 왕 금인(金人)이 점지해준 절. 아침, 금인은 햇살이다. 산등성 너머 와 곱게 내려앉았다. 숲에, 절 마당에 따뜻한 `햇살 전각’을 세웠다.

자하루(紫霞樓) 계단을 따라 올라서니 하늘이 먼저다. 하늘 아래 반듯한 대웅보전이 수더분하게 있다. 대웅전 마당에 서서 둘러본다. 전각 뒤로 펼쳐진 달마산의 우뚝한 기암. 거대한 수석을 세워놓았다. 산과 가람의 어울림, 웅장한 조화가 편안하다.

대웅보전 아래서 놀고 있는 물고기, 게, 거북이 자라. 대웅보전 4개의 초석에는 바다 속인 것 마냥 헤엄치는 바다생물이 생생하다.

대웅보전에 들어 절 삼배를 올려야 한다. 그것만으로 소원 하나가 이뤄진다 한다. 법당에서 3배를 하면 3천불이며, 법당 밖에서 3배를 하면 3만배. 절 안에는 일천 부처가 그려진 천불도가 있다. 달마산 희유한 봉우리는 일만 부처에 비유된다. 미황사 사적비문에 일만 부처 얘기가 있다.
 
달마대사가 머물고도 남을 비경 꼭꼭 숨겨둔 산

산에 오른다. 달마산은 산악미가 넘치는 산. 들쑥날쑥한 바위꼭대기에 올라섰다가 에돌았다가 다시 올라 서 기암절벽을 타고 가야한다.

고려 때 미황사 무외스님이 말한 `혹 사자가 찡그리고 하품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용과 호랑이가 발톱과 이빨을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는 암벽을 다 거쳐야 한다. 밧줄 잡고 오르고 낭떠러지 위를 걸어야한다.

하루 산행으로 미황사에서 불썬봉에 올라 다시 미황사로 내려오는 3시간 정도의 코스가 일반적이지만 달마산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용과 호랑이의 발톱 같고 이빨 같은 능선을 다 올라봐야 한다. 무외스님은 미황사 사적기에 적었다. `상쾌하고 아름다움이 속세의 경치가 아니니라’. 달마대사가 머물고도 남을 비경을 산은 꼭꼭 숨겨뒀다. 미황사에서 불썬봉, 문바위재, 떡봉으로 해서 도솔암으로. 족히 5시간이 걸리는 산행이지만 온갖 재미로 발걸음이 가볍다.

달마산은 높이 489미터로 그리 높지 않은 산. 동백숲 따라 오르면 달마산 주봉인 불썬봉이 금방이다. 불썬봉에 오르면 달마산의 묘미를 바로 알아차리게 된다. 뾰족뾰족한 기암이 등줄기 따라 줄지어 솟아올랐다. 그 너머로 둥글게 내보이는 푸른 다도해. 완도가 전체 모습을 드러내고, 소안도 청산도가 이어진다. 고개 돌리면, 산중턱에 단아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미황사와 멀리 바다 건너 진도의 바다와 섬들. 가슴이 활짝 열린다.

불썬봉에는 봉수대가 있다. 완도의 숙승봉과 해남 북일면 좌일산에서 횃불을 이어받았다. `불썬봉’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연유됐다. `불을 썼던(붙였던) 봉우리’. 봉수대는 산 아래 사람들이 극심한 가뭄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아슬아슬한 바윗길, 돌아서면 일망무제

문바위재는 그 아래로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조금만 올라서면 `꼭꼭 숨겨둔 비경’이 있다. 문바위재에 올라서면 미황사에서 올려다봤던 거대한 수석 같은 바위에 올라 선 것인데, 절벽 아래 툭툭 솟아오른 바위기둥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깎아놓은 것처럼 여러 개의 바위기둥이 솟구쳐 있다. 홀아비바위는 외롭게 서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바위능선길은 문바위재부터 험해진다. 아슬아슬한 바윗길이 긴장케 한다. 그러나 앞에도 뒤에도 날카로운 칼바위들 위압적이고, 바위를 끼고 돌아서면 일망무제의 바다. 완도 바다는 푸르고 진도 바다는 햇빛에 은빛으로 빛난다. 한 고개 넘어설 때마다 새로운 풍광이 반겨준다.

꼭 찾고 싶었던 것이 달마산 `금샘’이었다. 말 그대로 금빛을 두른 채 반짝이는 신비의 샘이다. 작은금샘, 큰금샘이 바위틈 사이에 숨어 있다. 보는 순간 환상에 젖을 수밖에 없단다. 과학적으로 따지면 석영의 주성분인 석질의 영향으로 금빛을 연출한다고 한다. 그러나 산꼭대기 신비한 샘, 보고픈 마음 간절했으나, `천 길이나 되는 벽 아래 미타혈이라는 구멍에서 남쪽으로 백여 보를 가면 높은 바위 아래 네모진 연못’이 있다는데 끝내 찾지 못했다.

바람도 풍경도 도솔천으로 흐르는 도솔암

산행 끝지점에서는 가히 `작은 금강산’임을 실감케 하는 풍경을 만난다. 위엄찬 바위들이 연달아 솟아 조화를 이룬 도솔봉. 석양빛에 엉긴 바위들은 신비함을 연출해낸다.

그리고 깎아지른 바위 벼랑 사이에 차곡차곡 돌을 쌓아올려 다진 터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자그마한 암자, 도솔암. 어느 이의 말처럼 `어느 천상도(天上圖)가 여기에 비길 수 있을까’.

도솔암은 의상대사가 미황사를 세우기 전에 수행정진하려 지었던 암자라 한다. 정유재란 당시 사라지고 2002년 오대산 월정사에 있던 법조 스님이 새로 지었다 한다. 원효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수행을 했으며 서옹스님 청화 스님도 도솔암에서 참선정진을 했다고 하니 예사로운 터가 아닌 듯싶다. 도솔암은 작은 마당에 서면 바람도 풍경도 도솔천처럼 안겨든다.

도솔봉에서 해는 땅끝 바다 너머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다도 하늘도 온통 붉은 세상, 그 찬란함에 어두워져도 쉽게 자리를 뜰 수 없다. 

 

글·사진=김창헌 자유기고가

가는 길:

나주 13번 국도 → 영산포 → 영암 → 해남 → 완도방향 13번 국도(왼쪽) → 현산면 → 송지면 → 미황사.


▲땅끝 너머로 하늘도 바다도 붉다. 도솔봉에서 내려다본 해넘이.

 

 

▲미황사 대웅전 뒤로 병풍처럼 기암괴석이 솟아 있다.

 

 

▲`어느 천상도(天上圖)가 여기에 비길 수 있을까’. 바위 벼랑에 자리 잡은 암자, 도솔암.

 

/ 광주드림.

 

 

 

 

 

陋室銘누실명 / 劉禹錫유우석

 

山不在高 有僊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斯是陋室 惟吾德馨

苔痕上階綠 草色入簾靑

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

可以調素琴閱金經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 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

孔子云 何陋之有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이름난 산이요.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있으면 신령한 물이라지.

이곳은 비록 누추한 집이나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네.

이끼 낀 계단은 푸르고, 풀빛은 발을 통해 파랗고,

담소하는 선비가 있을 뿐, 왕래하는 백정은 없도다.

거문고를 타고 불경 뒤적이며, 음악은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관청의 서류로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아, 남양 제갈량의 초가집이요, 서촉 양자운의 정자로다.

공자께서도 "(군자가 거처함에)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 라고 하셨다

 

▶諸葛(제갈) 諸葛亮(181~234). 중국 蜀漢의 정치가 자는 孔明.

▶子雲(자운) 중국 前漢때, 학자이자 문인 揚雄(B,C53~A,D18)의 자.

 

僊 춤출 선,신선 선 1. 춤추다 2. 춤추는 모양 3. 신선(神仙) 4. 불로 장생하는 사람. 上僊 : 상선(上仙)

苔 이끼 태.

簾 발 렴,발 염.1. 발(햇빛 등을 가리는 물건) 2. 주렴(珠簾: 구슬 따위를 꿰어 만든 발) 3. 주막기(주막의 표지로 세우는 기). 翠簾 취렴. 푸를 대오리로 엮어 만든 발. 푸른빛의 발

鴻儒 홍유. 巨儒. 학문과 덕행이 높이 이름난 유학자.

白丁 ① 평민 ② 보통 사람 ③ 재산도 지위도 없는 사람. 가문이 천한 사람.

素琴 아무런 장식(裝飾)도 없는 소박(素朴)한 거문고. 줄이 없는 거문고.

閱 볼 열,셀 열 1. 보다 2. 검열하다(檢閱--) 3. 가리다, 분간하다(分揀--) 4. 읽다 5. 지내다 6. 모으다 [동사] (책을) 보다. 읽다. 훑어보다.

金經 불경. 금광명경

絲竹 : 관현(管絃) [음악] 현악기와 관악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음악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案牘안독 관청의 문서 牘 서찰 독1. 서찰(書札: 글씨를 쓰는 나무조각) 2. 서판(書板: 종이 밑에 받치는 널조각) 3. 문서(文書)

子雲 : 揚子雲. 揚雄 . 蜀의 성도출신.법언 [法言]을 지었다.《논어(論語)》의 체재를 모방한 문답체의 수상론집.

 

劉禹錫 유우석 : 중국 당대(唐代)의 문학자·철학자

자는 몽득(夢得). 뤄양[洛陽: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뤄양 시] 사람이다. 일찍이 왕숙문(王叔文) 개혁단체에 참가하여 환관(宦官)·번진(藩鎭) 세력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에 실패한 후, 낭주사마(郎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가 후에 연주자사(連州刺史)가 되었다. 이후 배도(裵度)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태자빈객(太子賓客) 겸 검교예부상서(檢校禮部尙書)가 되어 세간에서는 '유빈객'(劉賓客)으로 불렸다.

유종원(柳宗元)과 교분이 매우 두터워서 '유유'(劉柳)라고 병칭되기도 했으며, 항상 백거이(白居易)와 시문(詩文)을 주고받는 등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유백'(劉白)이라고도 병칭되었다. 그의 시는 통속적이면서도 청신하며 〈죽지사 竹枝詞〉가 유명하다.

철학저작인 〈천론 天論〉에서는 천·인(天人)의 구별에 대해 논증했다. 즉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음덕설(陰德說)을 반박하고 '하늘과 인간은 상승(相勝)한다'는 설과 '상용(相用)된다'는 설을 주장하여 하늘이 인간 세상의 길흉화복을 더이상 주재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유신론(有神論)에 대한 근원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즉 법제가 잘 행해져서 상벌이 분명하다면 사람들은 천명(天命)에 바라는 것이 없겠지만, 만일 법제가 흐뜨러져 있어서 상벌이 분명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오로지 천명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말년에 불교에 대해서도 타협적인 자세를 보였다. 저서로는 〈유빈객집 劉賓客集〉(〈유몽득집 劉夢得集〉이라고도 함)이 있다.

 

 

 

陋室銘(누실명) / 許筠(허균, 1568-1618)

 

房闊十笏  넓어야 십홀(十笏) 쯤 방에

南開二戶  남으로 두개의 문이 열렸네

午日來烘  한낮 볕이 들이 쪼여

旣明且煦  밝고도 따뜻하네

家雖立壁  집이라야 벽만 섰지만

書則四部  사부서(四部書)를 갖추었네.

餘一犢鼻  쇠코잠방이로 넉넉하니

唯文君伍  탁문군(卓文君)의 짝이라네

酌茶半?  차 반 사발 따르고

燒香一炷  향 한 심지 피우네

偃仰棲遲  마음대로 편안히 지내며

乾坤今古  천지 고금을 살피네

人謂陋室  남들은 누추해서

陋不可處  살 수 없다 말하지만

我則視之  내가 보기에는

淸都玉府  청도(淸都)와 옥부(玉府)네.

心安身便  마음 편하고 몸 편하니

孰謂之陋  누가 누추하다 말하는가

吾所陋者  내가 누추하다 여기는 것은

身名竝朽  몸과 이름이 함께 섞음이네

廬也編蓬  집이래야 쑥대로 엮었지만

潛亦環堵  도연명 또한 담만 둘렀다네

君子居之  군자가 산다면

何陋之有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惺所覆?稿卷之十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