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문 . 조사들의 공부법
● 홀로 고요한 방에 앉다
도안(道安) 대사는 홀로 고요한 방에 앉아 열두 해 동안 정성을 다해 생각하고서 마침내 신비한 깨달음을 얻었다.
[평] 이 노인은 정성을 다해 생각한 끝에 신비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 그저 고요히 앉아 있기만 하고서 깨달은 것이 아니다.
● 절벽 위 나무 아래에 앉다
정림(靜琳) 선사가 강(講)을 버리고 선(禪)을 배울 적 일이다. 혼침이 마음을 흐리게 하자. 천 길 되는 절벽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옆으로 뻗어 이는 것을 보고는 그 아래 풀을 깔고 앉아 일심으로 생각을 모았는데 걸핏하면 밤을 새우곤 했다.
죽음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깊었으므로, 다른 생각 없이 정신을 오롯이 쏟다가 마침내 대오했다.
● 풀을 먹고 나무에 의지하다
통달(通達) 선사는 태백산에 들어갈 때 양식을 가져가지 않았다. 배고프면 풀을 먹고 쉴 때는 나무에 의지하면서, 단정히 앉아 다섯 해 동안 현묘한 도리를 쉬지 않고 생각하더니, 어느 날 나무로 흙덩이를 쳐 흙덩이가 부서지는 것을 보고, 확연히 대오했다.
[평] 그대가 풀을 먹고 나무에서 살더라도, 현묘한 도리를 생각하지 않고 덧없이 수많은 세월만 보낸다면, 깊은 산에 사는 야인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 허리띠를 풀지 않다
금광 조(金光照) 선사는 열세 살에 출가하여, 열아홉 살에 홍양산에 들어가 가섭화상을 의지했는데, 세 해 동안 부지런히 정진하며 허리띠를 풀지 않고 자리에도 눕지 않았다. 뒤에 고야산에 있을 때도 이와 같이 하여 마침내 활연히 깨달았다.
● 송곳으로 제 몸을 찌르다
자명(慈明), 곡천(谷泉), 낭야(廊倻) 세 사람이 도반을 맺고 분양 화상 회상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때 하동(河東)은 매우 추워서 대중을 꺼려했으나 자명(慈明)만이 뜻이 도에 있어 밤낮으로 힘써 정진하되, 밤에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제 몸을 찌르며 정진하더니, 나중에 분양 화상을 이어 도풍을 크게 떨쳐 ‘서하(西河)의 사자’라고 불렸다.
● 어두운 방에서도 소홀함이 없다
굉지(宏智) 선사가 처음 단하 순(丹霞淳)를 모실 때였다. 어느 날 대중과 함께 공안을 따져 묻다가 자기도 모르게 크게 웃으니, 순 선사가 꾸짖기를 “네 웃음소리 한 번으로 많은 좋은 일을 잃고 말았다. ‘잠시라도 화두 들기를 놓치면 죽은 사람과 같다’ 한 말씀을 듣지 못했느냐?” 하니, 굉지 스님이 두 번 절하고 마음 속에 새겼다.
그 뒤에는 비록 어두운 방에 있을 때라도 소홀함이 없었다.
[평] 옛사람은 도를 논하다가 웃은 일도 꾸짖었는데, 요즘은 세상의 우스갯소리를 듣고 배를 안고 크게 웃는 일도 거리낌이 없이 하니, 단하가 이것을 보면 뭐라고 할까!
● 저녁이 되면 눈물을 흘리며 울다
이암 권(伊庵權) 선사는 공부를 맹렬히 하고서 저녁이 되면 눈물을 흘리며, “오늘도 또 이렇게 헛되이 지나갔으니 내일 공부가 어찌 될지 알 수 없구나!” 하고 탄식하곤 했다.
선사는 대중과 함께 살면서 사람들과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 세 해 동안 힘써 행하다
회당 심(晦堂心) 선사가 말씀하기를, “내가 처음 공부할 때는 매우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황룡(黃龍) 선사를 뵌 뒤에 일상의 공부를 곰곰이 살펴보니 실제(理)와 모순되는 것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세 해 동안 힘써 행하되, 큰 추위나 더위에도 굳은 뜻을 바꾸지 않았더니 비로소 현상계의 차별적인 현상(事事)이 이(理)와 다를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기침을 하거나 침을 뱉고 팔을 흔드는 것도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다” 했다.
● 둥근 목침으로 잠을 쫓다
철(喆) 시자는 잠잘 때면 늘 둥근 나무토막을 베개로 삼아, 잠깐 자다가 목침이 구르면 깨어나 다시 일어나 앉곤 했다.
누가 “용심이 너무 지나치다” 하면, “나는 반야와 인연이 얕아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혹시나 망습(妄習)에 끄달릴까 두려워서 그런다” 하고 대답했다.
● 비가 내리는데도 알아채지 못하다
전(全) 암주(庵主)는 밥 먹고 쉴 틈도 없이 열심히 공부했다. 하루는 난간에 기대어 ‘구자(狗子)’ 화두를 간하다가 비가 내리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더니, 옷이 흠씬 젖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 이부자리를 펴지 않기를 맹세하다
불등 순(佛燈珣) 선사가 불감(佛鑒) 화상 회상에서 살 때였다. 하루는 대중을 따라 법요를 물었지만 까마득하기만 하고 입처(入處)가 없자, 탄식하여 “금생에 철저하게 깨닫기까지 맹세코 이부자리를 펴지 않으리라” 하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사십구 일 동안 마치 어머니라도 돌아가신 듯이 노주(露柱 : 선원의 경내에 있는 돌 또는 나무로 만든 둥근 기둥)에 기대어 땅에 서서 정진하더니,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었다.
● 편지를 내던지고 돌아보지 않다
철면 병(鐵面昺) 선사가 행각할 때였다. 고향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업사(受業師 : 득도한 후 처음 가르침을 받은 스승)에게서 “하룻밤에 불이 나서 집이 다 타버렸다네” 하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편지를 땅에 내던지며, “쓸데없이 사람 마음만 어지럽히는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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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닫기를 굳게 맹세하다
영원 청(靈源淸) 선사가 황용 심(黃龍心) 화상을 처음 찾아 뵙고 대중을 따라 문답하는데, 까마득해서 실마리조차 알 수 없었다. 밤에 부처님 앞에 나아가 “몸과 목숨을 다하여 법으로 단(檀 : 불, 보살 등을 안치하고 공양물, 공양구 등을 설치하는 수법단(修法檀))을 삼으리니, 원하옵건데 어서 깨달음을 얻어지이다” 하고 맹세했다.
뒤에 <현사어록>을 보다가 피곤해서 잠시 벽에 기대었다가 일어나 경행하는데, 걸음이 빨라 신이 벗겨졌다. 몸을 숙여 신을 다시 신다가 문득 크게 깨달았다.
● 공부 아닌 다른 반연은 없었다
원오 근(圓悟勤) 선사는 동산 연(東山演) 화상에게 두 번 참예 한 뒤에 시자가 되어 깊이 참구하고 힘써 궁구했다. 어느 때 스스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산승은 대중 속에서 잠시도 다른 반연을 두지 않았더니, 열 해 만에야 비로소 철저히 깨달았다.”
[평] 원오 근 선사는 열 해 동안 잠시도 공부 아닌 다른 반연 없이 살았다니, 그대들에게 묻겠다. 오늘 하루 동안 다른 반연이 얼마나 있었던고? 그러고서 언제 철저히 타파할 수 있겠는가!
● 잠시도 잊지 않다
목암 충(牧菴忠) 선사는 처음에 천태교를 배우다가 나중에 선종에 뜻을 두고 용문 안(龍門眼) 화상에게 참예하여 잠시도 화두를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물방앗간을 거닐다가 편액에 ‘법륜이 항상 구른다(法輪商戰)’라고 적힌 것을 보고 홀연히 대오했다.
● 나루에 다다른 것도 모른다
경수 형(慶壽亨) 선사는 정주에 있는 보조 보(普照寶) 화상에게 참예하여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해 정진했다. 하루는 일이 있어 휴양(畦陽)으로 가다가 조도(趙渡)를 건너는데, 의정이 흩어지지 않아 나루에 다다른 것도 몰랐다. 동행이 “여기는 나루터입니다!” 하고 깨우쳐 준 순간에 환하게 깨달았다.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채 보 스님에게 이 일을 말하니, 스님이 “이 송장아! 아직 멀었어!” 하고는, ‘일면불(日面佛 : 어느 날 마조 도일이 병이 들어 누워 있는데, 원주가 찾아와서 “화상께선 요즘 건강이 어떠십니까?” 하고 물으니, 마조는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이라 답했다) 화두를 참구하게 했다.
어느 날 승당에서 정좌하고 있다가 판(板) 소리를 듣고 대오했다.
● 침식을 모두 잊다
송원 악(松源岳) 선사는 처음에 거사의 몸으로 응암 화(應菴華) 화상에게 참예했으나 깨닫지 못하자 더욱 분발하여 정진했다.
나중에 밀암 걸(密菴傑)을 뵈었는데 물으면 묻는 대로 대답하니, 밀암이 “황양목선(黃楊木禪 : 깨달은 곳에 주저앉아 활용하는 솜씨가 없는 사람을 꾸짖는 말)이로군!” 하고 탄식하니, 분발하고 더욱 간절하여 침식을 잊을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밀암의 방에 들어갔다가, 어떤 스님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 것을 곁에서 듣고 대오했다.
● 말도 몸도 모두 잊다
고봉 묘(高峯妙) 선사는 회중에서 자리에 눕지 않고 말도 몸도 모두 잊으니, 어느 때는 변소에 갔다가 속옷 바람으로 나오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함을 열었다가 닫지 않고 가곤 하더니, 나중에 경산사에서 승당으로 돌아가 대오했다.
● 모든 반연을 끊다
걸봉 우(傑峯愚) 선사는 처음에 고애, 석문 두 스님에게 참예하여 법요를 듣고 밤낮으로 정진했으나 계합하지 못하자, 뒤에 지암(止巖) 화상에게 참예하니, 스님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들어 보였다.
이로부터 의정이 더욱 간절해져서 마침내 모든 반연을 끊고 잠자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모두 잊으니, 마치 기절한 사람과도 같았다.
하루는 저녁부터 좌선하여 한밤중에 이르렀다. 곁에 있는 어떤 스님이 <증도가를 읽는데 “망상도 여의지 않고 참(眞)도 구하지 않네” 하는 것을 듣고는,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듯 활연히 깨달았다.
“한밤중에 홀연히 달 가리키는 손가락 잊으니, 허공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르네” 라는 게송을 남겼다.
● 문을 닫고 힘써 참구하다
이자 초재(移刺楚材) 승상은 만송 노인에게 참예하여, 집안 일을 물리치고 인적을 끊었다. 날이 몹시 춥거나 무덥거나 참구하지 않는 날이 없고, 등불을 밝혀 밤낮으로 침식을 잊고 정진한 지 거의 새 해 만에 마침내 인증(印證)을 얻었다.
[평]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도를 증득했으니, 과연 ‘재가 보살’ 이라 할 만하다. 요즘 사람들은 배부르도록 고기를 실컷 먹고 와서 스님을 찾고 선(禪)을 논하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다
중봉 본(中峯本) 선사는 사관(死關)에서 고봉 화상을 모시고 밤낮으로 정진했는데, 곤하면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곤 했다. 하루는 <금강경>을 외다가 “여래의 아눗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지게 될 것이다” 라는 대목에 이르러 환하게 개오(開悟)했다. 그러나 “증득한 바가 아직 구경에 이른 것이 아니다” 하고는 더욱 힘써 정진하여 부지런히 법을 묻고 결택하더니, 어느 날 흘러가는 물을 보고 있다가 마침내 크게 깨달았다.
[평] 스스로 “증득한 바가 아직 구경에 이른 것이 아니다” 했으니, 그런 까닭으로 마침내 지극한 곳에 이르렀다. 요즘 길 위에 있으면서도 집에 다다른 것으로 여기는 이가 많으니, 딱하다.
● 사관(死關)에 들어 힘써 정진하다
독봉 선(毒峯善) 선사는 육계(淯溪)에서 사관(死關)에 들어가 침대를 두지 않고 오직 걸상 하나만 놓고 정진하는 것을 법칙으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은 저녁부터 졸다가 밤중이 된 줄도 몰랐음을 알고는, 걸상마저 치워 버리고 밤낮으로 서서 참구했다. 또 어느 때에는 벽에 기대어 졸았음을 알고는, “벽에도 기대지 않으리라” 맹세한 뒤로 마냥 걷기만 하니, 심신이 피로하여 수마가 더욱 심해졌다.
그리하여 부처님 앞에 나아가 슬피 울며 온갖 방법을 써서 노력하니 공부가 날로 진취했고, 어느 날 종소리를 듣고 홀연히 자유로움을 얻고는 이렇게 게송을 지었다.
조용하고 조용하여 시위(施爲)가 끊어졌더니
쿵! 하고 울리는 뜻밖의 종소리, 우레와 같네.
천지를 진동하는 이 한 소리에 소식 다하니
해골은 가루가 되고 꿈에서 깨어났네.
●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다
벽봉 금(璧峯金) 선사가 진운 해(晉雲海) 화상에게 참예하니, ‘만법귀일’ 화두를 참구하게 해서 세 해 동안 의심했다.
하루는 나물거리를 캐는데 문득 화두가 오랫동안 성성했다. 해(海) 스님이 “네가 정(定)에 들었느냐?” 하고 묻기에, “정(定)과 동(動)이 상관없습니다” 하고 답했다.
해 스님이 다시 “정과 동이 상관없는 것이 어떤 놈이냐?” 하고 묻자, 금 스님이 광주리를 들어 보였다. 해 스님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시 광주리를 땅에 내던져도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그 뒤로 공부가 더욱 간절해져서, 옆구리를 바닥에 대는 일 없이 한 번씩 앉으면 이레가 지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벌목하는 소리를 듣고 대오했다.
● 홀로 둔한 공부법을 지키다
서촉의 무제(無際) 선사는 처음 공부할 때, 손가락 네 개를 합친 것만큼 큰 서첩도 보지 않으며 오직 까막눈인 채로 둔한 공부만을 이어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철대오를 얻었다.
[평] 말씀의 뜻은 지극히 옳지만, 교리에 밝지 못한 사람은 흉내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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