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金剛經

持經功德分 第十五

경호... 2012. 2. 13.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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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 布施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  布施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  布施  如是無量 百千萬億劫 

 以身布施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  勝彼 

 何況書寫  受持讀誦  爲人解說

 須菩提  以要言之  是經  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

如來爲發  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若有人  能受持讀誦廣  爲人說如來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則爲荷擔  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何以故  須菩提  若樂小法者  著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則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閒天人阿修羅  所應供養 當知此處

 則爲是塔  皆應恭敬  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持經功德分 第十五
須菩提야 若有善男子善女人이 初日分에 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며

中日分에 復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며 後日分에 亦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야 如是無量百千萬億劫을 以身布施어든 若復有人이 聞此經典하고

信心不逆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何況書寫受持讀誦하야 爲人解說이

須菩提야 以要言之컨댄 是經이 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하니

如來가 爲發大乘者說이며 爲發最上乘者說이니라

 

若有人  能受持讀誦廣  爲人說如來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則爲荷擔  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樂小法者는 著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則於此經에 不能聽受讀誦하야 爲人解說하리라

須菩提야 在在處處에 若有此經하면 一切世間天人阿修羅의 所應供養이니

當知此處는 卽爲是塔이라 皆應恭敬  作禮圍繞하야 以諸華香으로

而散其處하리라

 

 

 

 

 

 

 

 

持經功德分 第十五 (지경공덕분 제십오) 경을 지니는 공덕

 

 

 

※ [경문]

須菩提 야 若有善男子 善女人 이 初日分 에 以恒河沙等身 으로 布施 하고 中日分 에
수보리    약유선남자 선여인    초일분    이항하사등신      보시      중일분

復以恒河沙等身 으로 布施 하고 後日分 에 亦以恒河沙等身 으로 布施 하여
부이항하사등신      보시      후일분    역이항하사등신      보시

如是無量百千萬億劫 을 以身布施 이나 若復有人 이 聞此經典 하고
여시무량백천만억겁    이신보시      약부유인    문차경전

信心不逆 하면 其福 이 勝彼 하리니 何況書寫受持讀誦 하여 爲人解說 이리오.
신심불역      기복    승피        하황서사수지독송      위인해설

須菩提 야 以要言之 컨덴 是經 은 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 하나니.
수보리    이요언지      시경    유불가사의 불가칭량 무변공덕

如來爲發 大乘者說 이며 爲發 最上乘者說 이니라.
여래위발 대승자설      위발 최상승자설

若有人 이 能受持讀誦 하여 廣爲人說 하면 如來 悉知是人 하며
약유인    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 실지시인

悉見是人 하여 皆得成就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 하리니
실견시인      개득성취 불가량 불가칭 무유변 불가사의공덕

如是人等 은 則爲荷擔如來 阿樓多羅三邈三菩提 니라.
여시인등    즉위하담여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

何以故 오 須菩提 야 若樂小法者 는 着我見人見衆生見 壽者見 이라
하이고    수보리    약요소법자    착아견인견중생견 수자견

則於此經 에 不能聽受讀誦 하여 爲人解說 이니라.
즉어차경    불능청수독송      위인해설

須菩提 야 在在處處 에 若有此經 이면 一切世間 天人阿修羅 의
수보리    재재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 천인아수라

所應供養 이니 當知此處 는 則爲是塔 이라 皆應恭敬 하며
소응공양      당지차처    즉위시탑      개응공경

作禮圍요 하고 以諸華香 으로 而散其處 하니라.
작례위요      이제하향      이산기처

 

 

 


[주석]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  布施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  布施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  布施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  勝彼  何況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

 



須菩提 야 若有善男子 善女人 이 初日分 에 以恒河沙等身 으로 布施 하고 中日分 에
수보리    약유선남자 선여인    초일분    이항하사등신      보시      중일분

復以恒河沙等身 으로 布施 하고 後日分 에 亦以恒河沙等身 으로 布施 하여
부이항하사등신      보시      후일분    역이항하사등신      보시

如是無量百千萬億劫 을 以身布施 이나 若復有人 이 聞此經典 하고
여시무량백천만억겁    이신보시      약부유인    문차경전

信心不逆 하면 其福 이 勝彼 하리니 何況書寫受持讀誦 하여 爲人解說 이리오.
신심불역      기복    승피        하황서사수지독송      위인해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항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 하고,

낮 에도 다시 항하 모래와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 하고,

저녁 때에도 또한 항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같이 한량 없는 백천 만억겁을 몸 으로써 보시할 지라도,

만약 다른 어떤 사람은 이 경전을 보고 신심으로 거슬리지 아니하면,

그복이 저보다 승할 것이어늘 항차 이경을 등 하고 수지 독송하고, 남을 위하여 일러 줌이 겠는가.

 

 


초일분(初日分): 불교에서는 하루 중 자는 시간을 뺀 새벽부터 초저녁까지를 셋으로 나누는데,

새벽 3시(寅時)부터 아침 9시(辰時)까지를 초일분(初日分)이라 한다.

중일분(中日分): 오전 9시(巳時)부터 오후 3시(未時)까지를 말한다.

후일분(後日分): 오후 3시(申時)부터 9시(戌時)까지를 말한다.

[해설]

이렇게 백천 만억겁을 두고, 사람의 몸을 수생 (受生) 하기를 헤아릴수
없이 많이한 그 몸으로, 승사공양(承事供養) 하여 보시할 지라도,

이경을 얻어듣고, 진심으로 믿는 복덕만 못하다는 말씀이니, 더군다나
서사수지독송 (書寫受持讀誦) 하고, 남을 위하여 일러주는 공덕이야
말할수가 있겠는가, 하신 말씀 이시다.

 




[주석]

 

須菩提  以要言之  是經  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



須菩提 야 以要言之 컨덴 是經 은 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 하나니.
수보리    이요언지      시경    유불가사의 불가칭량 무변공덕

수보리야, 한 말로써 하자면, 이경이 가히 생각할수 없고,

가히 측량 할수 없는 한없는 공덕이 있나니,


[해설]

아무리 부처님께서 천언 만어로써 이 경의 공덕을 찬탄 하실지라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니,다만 자기본심을 반조(返照) 하여 스스로 얻음이 있기를 바란다.

물을 마시는 사람만이 차고 더운줄 아는 것이다.

 

 




[주석]

 

 如來爲發  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如來爲發 大乘者說 이며 爲發 最上乘者說 이니라.
여래위발 대승자설      위발 최상승자설


여래가 대승을 발한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요,최상승을 발한자를 위하여
설한것 이니라.


[해설]

불교에는 대승소승 (大乘小乘) 이란 말이 있으니,

본래 이 자리는 대소, 고하가 없는것이나,사람의 근기에 따라 대 소승 으로 비교한 것이니,

대승은 기차와 같고, 소승은 자전거와 같다.

기차는 대승을 위한 것이요, 자전거는 소승을 위한 것이다.

 

나도 건지고 남도 건지는 것은 대승이요, 나만을 건지려고 하는것은 소승이다.

이법을 수행함에 있어, 상에 집착하여 닦는것은 소승이요,

상을 여이고 닦는것은 대승이다.

지옥을 싫어하고 천당을 좋아하며, 닦는것은 소승이요,

천당과 지옥이 둘 아닌것을 알고 닦는것은 대승이다.

 

여기 최상승(最上乘)이란 말이 있으니,

배움도 없고, 함도 없어 망상을 제하지도 않고, 참을 구하지도 않는것은 최상승이다.

그런데 이경은 대승심을 발한자와 최상승심을 발한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라고 하셨다.

 

과연 그렇다. 나무를 얻어 가지 만지기가 기특한 일이 아니라,

천만길 되는 절벽에서 붙잡았던 손을 탁 놓아 버리는것이, 장부의 일인 것이다.

 

조그만 빕새가 어찌 대붕(大鵬)의 뜻을 알수가 있으랴.

백척 간두(百尺竿頭)에서 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鷽鳩笑大鵬(학구소대붕) 작은 비둘기가 대붕을 비웃는다는 뜻으로, 소인이 군자의 행위()를

비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

 


[주석]

 

若有人 能受持讀誦 廣爲人說  如來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則爲荷擔  如來  阿耨多羅三藐三菩提



若有人 이 能受持讀誦 하여 廣爲人說 하면 如來 悉知是人 하며
약유인    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 실지시인

悉見是人 하여 皆得成就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 하리니
실견시인      개득성취 불가량 불가칭 무유변 불가사의공덕

如是人等 은 則爲荷擔如來 阿樓多羅三邈三菩提 니라.
여시인등    즉위하담여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수지 독송하고, 남을 위하여 일러주면,

여래가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아 헤아릴수 없고, 일커를수 없고,
한없는, 가히 생각지못할 공덕을 다 얻어 성취 하리니,

이러한 사람들은 여래의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를 짊어진 것이 되나니라.

 

荷擔(하담) 짐을 짐 . 荷擔人  짐을 나르는 사람  

擔 멜 담.㉠메다 맡다 화물 .荷 멜 하.㉠메다 화물  


[해설]

이경을 능히 수지독송 하고, 여러 사람을 위하여 일러주는 사람은, 이가 곧 여래의
둘도없는 가장 잘사는법을 자신있게 짊어지고,몸을 바쳐가며 전법도생(傳法度生)을

하는 대승보살이니,작은 선(善) 에나 집착하여 지옥을 피하고, 천당을 원하며,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는 소승따위의 유가 아니다.

 



[주석]

 

何以故  須菩提  若樂小法者  著我見人 見衆生 見壽者見

 則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何以故 오 須菩提 야 若樂小法者 는 我見人見衆生見 壽者見 이라
하이고    수보리    약요소법자    착아견인견중생견 수자견

則於此經 에 不能聽受讀誦 하여 爲人解說 이니라.
즉어차경    불능청수독송      위인해설

나타날 저, 입을 착  .㉠나타나다 분명하다 붙다 생각하다 쌓다 짓다 자리 입다 (착) 붙다 (착) 다다르다 (착) 손대다 (착) 신다 (착)  

着 붙을 착.㉠붙다 입다 쓰다 신다 다다르다 시작하다 

 

 
어찌한 연고이냐, 수보리야.

만약 작은 법을 좋아하는 자는, 아견과 인견과 중생견과 수자견에 착하여,

곧 이경을 능히 알아듣고, 읽고, 외운다 든지 남을 위하여 해설하여 주지 못 하느니라.


[해설]



소승은 항상 작은나(소아<小我>를 근본으로 하여 수행하기 때문에,

사상<四相>의 견해<見解>를 여이지 못하고,상<相> 있는 작은 과<果> 를 좋아 하므로,

감히 과가 없는 불과<佛果>를 얻음이 없이, 얻을 생각을 하지 못하므로,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는, 이 경이,귀에 들어가지를 않기 때문에,읽어 외울 생각도 없거니,

어찌 자기도 모르는것을 남에게 일러 줄수가 있을 것인가 말이다.

 


[주석]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閒 天人阿修羅  所應供養 

當知此處  則爲是塔  皆應恭敬  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須菩提 야 在在處處 에 若有此經 이면 一切世間 天人阿修羅 의
수보리    재재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 천인아수라

所應供養 이니 當知此處 는 則爲是塔 이라 皆應恭敬 하며
소응공양      당지차처    즉위시탑      개응공경

作禮圍요 하고 以諸華香 으로 而散其處 하니라.
작례위요      이제하향      이산기처


수보리야, 간데마다 만약, 이 경만 있으면,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가,

응당 공양하는 바이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탑묘가 됨이니, 응당 다 공경하여,

예를 지어 둘러 싸며 모든 꽃과 향 으로써 그 곳을 흩어 덮나니라.

아수라(阿修羅) :
범어(梵語) Asura 아소라(阿素羅)라고도 쓰며 줄여서 수라(修羅)라고도 한다.
'단정하지 못하다'고 번역. 육도의 하나이며,
팔부중(八部衆)의 하나에 속한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자주 제석천과 다퉜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수라는 아주 호전적인

악신 만은 아니다. 그중에는 발심하여 부처님 설법을 듣고 불법을 옹호하는 선신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팔부에 속하는 아수라다.

 

(天) :
자기가 지은 업인(業因)에 따라서 중생들이 윤회하는 길을 여섯으로 나누어 6도(六道)라 하는데,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阿修羅) · 인간 · 천(天)'의 여섯을 말한다.
天(천)은 데바(Deva)로서 천상이라고도 하며, 천에 태어나는 것은 인간세상보다 더 좋은 과보를

 받는 것이지만 그 곳에도 차별이 있어 욕계천 · 색계천 · 무색계천이 있다고 한다.
여기(금강경)서 말하는 天은 그러한 6도의 천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주재하는 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어떤 특정한 신이라기 보다는 신적인 존재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아수라(阿修羅) :
원어 아수라(Asura)의 음역.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의 하나. 인도 고전의 하나인 '리그베다

(Rig-veda)'에서는 가장 수승(殊勝)한 성령(聖靈)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중기 이후에 와서

는 무서운 귀신으로 변화·인식되었다.
성품이 사나와 성을 잘 내고 덕이 모자라서 싸우기를 좋아하는 악신(惡神)이라고 생각되어 늘

무서운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는 아수라는 '아소라(阿素羅)·아소락(阿素洛)·아수륜(阿須倫)'이라

음역하기도 하고 '비천(非天)·비류(非類)· 부단정(不端正)'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탑묘(塔廟) :
탑(塔)은 범어 스트우파(Stupa)의 음역이지만, 廟(묘)는 한자어이다. 그러므로 범어와 한자어의 합성어라 하겠다.
☞원어는 차이트야 부후다(Caitya-bh ta)이다. 차이트야는 묘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에서 불타와 불제자들의 유골을 담은 거대한 무덤을 스트우파(Stupa), 즉 탑이라 부르며

유골을 묻지 않으며, 그 밖의 다른 성물인 발우·경전 등을 넣어 보관하는 건물을 차이트야(Caitya)

라 불러 구별해 왔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 이 두가지를 혼용하게 되었다.

즉 탑묘란 말의 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인 사리탑을 말하는 것이고,

는 불상이나 경전 따위를 모신 곳 곧 절을 말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圍繞 (위요)①(어떤 지역()이나 현상()을)둘러쌈. 빙 둘러앉음 ②요잡(匝)

③혼인() 때에 가족()이나 일가 중에서 신랑이나 시부를 데리고 가는 사람.

상객(). 요객(). 후배(). 후행()  

圍 에워쌀 위.㉠에워싸다 두르다 둘러 싸다 둘레 포위 아람(양 팔을 벌려 낀 둘레)  

繞 두를 요.㉠두르다 얽히다 감기다

華 ㉠빛나다 머리 세다 번성하다 나라 이름 香 ㉠향기 향기로움 

 

 


[해설]

그러므로 알아라, 수보리야, 어느곳을 막론하고,

이경의 진리를 신해수지 하는이만 있으면,

이 곳이 곧 부처가 계시는 도량 인지라.

모든 세간의 하늘이며,사람이며, 아수라들이, 다 모아 공양하며,받들고 절하고
에워싸고, 꽃이며 향으로써, 그 곳에다 흩어놓게 된다는 말 이시다.

 


 

 

백천만억겁(百千萬億劫):

원문은 칼파 코티 니유타 사타 사하스라니(Kalpa-koti-niyuta- ata-sahasr y)이다.

 

겁(劫)은 칼파(Kalpa)의 번역어로서 겁파(劫波, 劫破, 劫파) 또는 갈랍파(갈臘波)라고 음역하고

분별시분(分別時分), 분별시절(分別時節), 장시(長時), 대시(大時) 등으로 의역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일겁(一劫)은 범천(梵天)의 하루가 되고, 인간세계의 4억 3200만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일겁은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긴 시간, 즉 무한한 긴 시간을 표시하는 말이다.

 

코티(Koti)는 십만억(十萬億)으로 번역되고,

니유타(Niyuta)는 나유타((Nayuta)라고도 하는 것으로서 조(兆) 또는 나유타(那由他)라고

그대로 음역해 사용하기도 한다.

사타( ata)는 百이고, 사하스라(sahasr )는 千이다.

 

그래서 원문을 직역하면 "백의 천의 십만억조의 많은 겁", 즉 "백 곱하기, 천 곱하기, 만 곱하기, 십만 곱하기, 억 곱하기, 조 또 그 많은 겁"이라는 말로 표시할 수밖에 없다.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뜻하는 말이라 하겠다.

불교에서 겁이란 말에 대해서는 개자겁(芥子劫), 반석겁(磐石劫)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일개자겁(一芥子劫)은, 그 둘레가 40리가 되는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장수천인

(長壽天人)이 3년마다 한 알씩 가지고 가서 죄다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일반석겁(一磐石劫)이란, 둘레가 40리나 되는 바위를 천인이 무게가 3수(銖)되는 천의(天衣)로써

3년마다 한번씩 스쳐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한편 겁에는 대·중·소의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둘레 80리를 일중겁(一中劫), 둘레 120를 일대겁(一大劫)이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의 나이가 8만 4000세부터 백년마다 한 살씩 줄여서 10세에 이르고 다시 백년마다

한 살씩 늘여 그 나이가 8만 4000천세에 이르는,

즉 한 번 줄고 한 번 느는 동안을 일소겁(一小劫), 20소겁을 일중겁(一中劫), 4중겁을 일대겁

(一大劫), 또 한 번 늘거나 한 번 주는 것을 일소겁, 한 번 늘고 한 번 주는 동안을 일중겁,

성겁(成劫), 주겁(住劫), 괴겁(壞劫), 공겁(空劫)이 각각 20중겁 합하여 일대겁이라 말하기도

한다.

 

 

대승(大乘)·최상승(最上乘):

대승은 마하야나(Mahayana)의 한역. 마하연나(摩阿衍那)라고 음역한다.

승(乘)이란 "타다", "태우다" 또는 "싣고 운반하다"의 뜻이다.

중생을 태워서 나고 죽고 하는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게 한다는 뜻에서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 말을 쓰는 것이다.

 

대승은 불도를 깨달아서 제 한 몸을 건지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서 일체 중생까지도 건지기를 바라는 교리인데, 이런 교리를 가지는 불교를 대승불교라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법을 수행함에 있어서 相에 집착하여 닦는 것이 소승이다.

 

대승은 상을 떠나서 도를 닦고 지옥과 극락이 둘이 아님을 깨닫고 닦는데 비해, 지옥을 싫어하고

 극락을 좋아하여 도를 닦는 것이 소승이다.

이 대승 가운데서도 가장 도가 높은 것이 최상승이다.

최상승에 대해, {금강경오가해}에서 육조 혜능은

"때묻은 법, 싫어해야 할 속된 법을 보지 않는 것이며, 구해야 할 거룩한 법을 보지 않는 것이고,

 구해야 할 중생을 보지 않는 것이다. 또한 열반이 있어서 증득한 것을 보지 않고,

중생을 제도했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또한 중생을 제도하지 않았다는 마음도 두지 않는

것이니, 이를 최상승이라 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일본의 불교학자 나카무라(中村元)는,

"대승이라는 것은 중생들을 태우고 생사의 고해를 건너 불교의 이상경(理想境)인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는 교법 가운데서 그 교리나 교설이 크고 깊어서 이것을 받아들이는 그릇도

큰 그릇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대승이라 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대승에는 권대승(權大乘)과 실대승(實大乘) 두 가지가 있다.

 

권대승은 권교대승(權敎大乘)이란 말로서, 여래의 진실한 교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중생을 진실한 교법으로 끌어들이려는 방편수단이다.

법상(法相)·삼론(三論) 등의 교의를 설하는 대승교법을 의미하고, 이상경인 피안에 이르게 하는

 교법 중에서 교(敎)·리(理)·행(行)·과(果)들이 모두 깊고 넓고 커서 이를 수행하는 승려나 중생들

이나 구도자가 대기이근(大器利根)인 기류(機類)를 요하는 것을 말한다.

 

실대승교는 대승교 중에서 방편을 겸하지 아니한 교의를 말한 교이다.

천태종(天台宗)·화엄종(華嚴宗)·선종(禪宗) 등이 이에 속한다.

 

 

대승과 반대되는 것이 소승인데,

소승에는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 두 가지가 있다.

성문승은 사체(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사과(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하고,

연각승은 12인연을 깨달아 벽지불과(僻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교체로 하고 있다.

인도의 상좌부, 대중부 등 20분파와 동토(東土)의 구사종(救士宗), 성실종(成實宗), 율종(律宗)

등이 있다.

 

 

작은 법을 즐기는자(樂小法者):

원문은 h n -dh maktikaihsattvaih. 하이나(h n )를 "열등한"이라고 번역하고 하이나야나(hinyana)를 "소승"이라고 번역하듯이, 이 원문의 하이나는 소법 즉 작은 법이라고 의역한다.

소법(작은법)이란 소승을 말하는 것이다.

소승을 즐기는 자란, 자기 한 몸의 열반과 극락세계에 태어나겠다는 생각만 하는, 도를 구하는

생각이 좁고 작은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과 같은 4상의 주견을 버리지

못 하고 상에 집착하여 상이 있는 작은 과(果)만 생각할 뿐 과가 보이지 않는 불과(佛果)를 얻을

 생각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경이 귀에 들어가지 않아서 이것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또 남에게 설하지도 못 한다는 것이다.

 

둘러싸고 돌며(作禮圍繞):

작례(作禮)는 예배드린다는 말이고, 위요(圍繞)는 둘레를 빙빙 도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그 둘레를 빙빙 돌면서 합장하고 예배한다는 뜻이다.

인도에서는 오체투지(五體投地)라 하여 두 팔, 두 다리와 머리의 오체를 땅에 던지고 절하는

풍습이 있고 또 어떤 존경의 대상을 중심으로 하여 둘레를 돌면서 절하는 예법이 있는데,

이것은 귀의(歸依)의 뜻을 표하는 것이다.

또 이밖에도 우요삼잡(右繞三잡)이라 하여 귀인에게 존경의 뜻을 표할 때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귀인쪽으로 향하여 그 주위를 세 번 도는 예법이 있다.

또 군대가 개선해서 돌아왔을 때에도 귀국하는 즉시 성벽의 주위를 세 번 오른쪽으로부터 돌고

 성안으로 들어가는 예법도 있다고 한다.

보리수(菩提樹) 등을 향해 예배할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한다.

아시아 각국의 불교에서는 이 규정을 지켜 탑이나 본존불을 중심으로 오른쪽 어깨를 향한 채

도는 행사를 행하는 풍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탑을 중심으로 돌면서 예배하는

 탑돌이 행사도 여기에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언해본】

“須菩提야!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初日分에 恒河沙 같은 (수의) 몸으로 布施하고, 中日分에 또 恒河沙

같은 (수의) 몸으로 布施하고 後日分에 또 恒河沙 같은 (수의) 몸으로 布施하여 이같이 無量百千萬億 겁

에 몸으로 布施하여도 만약 또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信心이 거스르지 아니하면 그 福이 저기에 (몸을

 布施한 福보다) 더하리니, 하물며 (經典을) 베끼며, 받아 지니며, 읽고 외워 사람을 爲하여 새겨 이름에

 있어서랴???
“須菩提야! 緊要함으로 (要約해서) 말하건댄, 이 經이 가히 生覺하지 못하여, (生覺할 수 없고) 가히

헤아리지(도) 못할 끝없는 功德이 있으니, 如來께서 大乘을 발할 사람들을 爲하여 말씀하시며 最上乘을

 발할 사람들을 爲하여 말씀하시니, 만약 사람이 能히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널리 남을 爲하여 말하면 如來께서 이 사람을 다 알며, 이 사람을 다 보니, 다 이루 헤아리지 못하며 가히 칭찬치 못하며 끝없는

不可思議 功德을 이루리니, 이 같은 사람들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짊어짐이니, 어째선가?

 須菩提야! 만약 작은 法을 즐기는 사람은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에 執着하므로 곧 이 經에 能히

들어 받아 읽으며 외워 남을 爲하여 새겨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須菩提야! 있는 곳곳마다 (어느 곳이든지) 만약 이 經이 있으면 一切 世間과 天人 阿修羅가 供養할

것이니, 반드시 알라. 이 곳이 곧 이 塔이다.
모두 恭敬하여 禮拜하고 둘러서서 꽃과 향으로 그 곳에 흩을 것이다.”

 

 


【범어본】

또 實로 須菩提여, 어떤 女子나 男子가 오전 중에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치고, 낮에도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치고, 저녁에도 또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이와 같이 無限한 긴 時間 동안 몸을 바친다 하더라도, 이 法門을 듣고 誹謗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그

因緣에 의해서 더욱 많은 無量 無邊한 福德을 쌓게 될 것이다. 하물며 베껴 쓰고, 受持하고, 讀誦하고,

학수하고 그리고 남을 爲해서 상세히 說明해 들려주는 자가 있다면, 더욱 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須菩提여, 實로 이 法門은 不可思議로서 比較할 바가 없다. 그리고 須菩提여, 如來는 이

法門을 最上乘에 나아간 사람들을 爲해서, 最上乘에 나아간 사람들을 爲해서 說한 것이다. 이 法門을

받아들이고, 受持하고, 讀誦하고, 학수하고 게다가 다른 사람을 爲해 상세히 說明해 들려주게 될 사람을 須菩提여, 如來는 불지로써 알고 있다.
須菩提여, 如來는 佛眼으로써 이러한 사람들을 보고 있다.
須菩提여, 如來는 이러한 사람들을 자각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람들은 無量한 福德을 갖게 될 것이다.

 不可思議로서 比較할 수 없고, 가히 헤아릴 수 없고, 가히 측량할 수 없는 福德을 갖추게 될 것이다.
須菩提여, 이러한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깨달음에 들어說 것이다.
왜냐하면 이 法門은, 小法을 信解)는 자로서는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我見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衆生見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菩薩의 서원을 세우지 않는 사람들은 이 法門을

받아들이거나, 受持하거나, 讀誦하거나, 학수하거나 할 수 없다. 그러한 理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實로 須菩提여, 어떠한 地方에서든지 이 經이 說해 들리는 地方은, 하늘(天)·사람(人)·阿修羅들

을 포함하는 世界가 供養하는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地方은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면서 禮拜되는 곳이

될 것이며, 塔廟와도 같은 곳이 될 것이다.

誹謗(비방) 남을 헐뜯어 말함. 學修  학문()을 닦음  

 


【몽고본】

또 수부티여, 士夫 혹은 婦女가 朝食時에 항가하의 모래수와 같은 양의 몸을 모조리 施捨하고,

日中時·夕刻時에도 恒伽河 沙數와 같은 양의 몸을 모조리 施捨하여 이와 같이 次例로 百千那由陀俱底劫

의 동안 몸을 모조리 施捨하는 것보다도 이 法門을 듣고서 放念하지 않는 자가 그 因으로 하여 더 많은

 無數 無量의 福德을 生기게 할 것이다. 하물며 書寫하고 受持하고 讀誦하고 憶念하여 他人에게 널리

참으로 잘 說하는 자에 있어서는 물론이니라.
또 수부티여, 이 法門은 不可思議이며, 比較할 수도 없으며, 이것의 果도 不可思議임을 알지어다.

이 法門은 最上乘에 참으로 들어가려고 정근하는 有情을 爲하여, 至極乘에 참으로 들어가려고 정근하는

 一切有情을 爲하여 如來가 說하신 것이다.
이 法門을 受持하고 憶念하고 憶持하여 他人에게 널리 참으로 說하는 그들을 如來는 알고 계신다.

如來는 그들을 보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들 一切有情은 限量없는 福德聚를 이루고, 不可思議, 無等同無

限 때의 福德聚를 얻을 것이다. 그들 一切 有情은 나의 菩提果를 얻을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부티여, 비천한 信仰을 가지는 有情은 이 法門을 聽聞하고, 受持하고, 讀誦하고,

憶念하는 것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 같은 것은 存在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수부티여, 이 經典을 敎設하는 자가 있는 그 地方에는 天人 및 阿修羅 등의 世間 供養되는 地方이다.
其 等의 地方은 禮拜되고 韋繞될 것이다.
其 等의 地方은 供養의 塔處와 같이 될 것이다.

捨 버릴 사.㉠버리다 베풀다 

那由(나유) 那由他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말 . 


【티베트본】

“또한, 쑤부띠여, 어떤 장정이나 아낙네가 아침에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의 몸을 犧牲시키고, 한낮과

저녁에도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의 몸을 犧牲시키고, 이러한 方法으로 無量한 百千萬億劫동안 몸을

犧牲시키는 것보다 누군가 이 法門을 듣고 버리지 않으면 그는 그것을 바탕으로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功德을 낳는다. 누군가가 하물며 글자를 써서 얻어서 받아 지니고 讀誦하고 記憶해서 다른

사람에게 널리 올바로 가르친다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또한, 쑤부띠여, 이 法門은 헤아릴 수 없고 견줄 데가 없다. 그 果報도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法門은 最上乘에 올바로 든 뭇 삶을 위하고 지극승에 올바로 든 뭇 삶을 위해 如來가

설한다. 이 法門을 얻어서 받아 지니고 讀誦하고 記憶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세히 올바로 가르쳐 주는

사람을 如來는 알아주고 如來는 눈여겨본다. 이들 모든 뭇 삶들도 헤아릴 수 없는 功德의 쌓임을 갖추게

 될 것이다. 헤아릴 수 없고, 견줄 수 없고, 어디에도 없고, 한계가 없는 功德 쌓임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들 모든 뭇 삶은 나의 깨달음의 果報를 얻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저열한데 믿음을 지닌 자들은 이 法門을 들을 수가 없으며, 자아에의 알음얼을 지닌 자들은 뭇 삶에의

알음얼을 지닌 자들도 영혼에의 알음얼을 지닌 자들도 개인에의 알음을을 지닌 자들도 듣고 받아 지니고

讀誦하고 記憶할 수가 없다. 이러한 경우는 存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용성】

須菩提야 만일 善男子 善女人이 초일분에 恒河沙 같은 몸으로써 布施하고 중일분에 다시 恒河沙 같은

몸으로써 布施하고 후일분에 또한 恒河沙 같은 몸으로써 布施하되 이와 같이 限量없는 百千萬億 겁의

몸으로써 布施하여도 만일 다시 어떠한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信心으로 거스르지 아니하면 그 福이

저 福보다 勝하리니 어찌 하물며 글로 쓰고 인쇄하며 받아 가져서 讀誦하여 사람을 爲하여

해說함이겠느냐?
須菩提야 종요로이 말할진데 이 經이 不可思議 불가칭량 無邊功德이 있나니라. 如來께서 大乘 發한 자를

 爲하여 만일 어떠한 사람이 能히 受持 讀誦하여 넓게 사람을 爲하여 說하면 如來께서 다 이 사람을 알며

 다 이 사람을 布施나니 다 불가량·불가칭·무유변·不可思議 功德을 成就함을 얻으리니 이와 같은 사람들

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어깨에 멘 하담 함이니라. 어찌한 緣故인가 하면 須菩提야 만일 작은 法을 즐겨하는 자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着함이니 곧 이 經에 能히 청하여 받아 讀誦하며 사람을

 爲하여 해說하지 못하리라. 須菩提야 곳곳마다 만일이 經이 있으면 一切 世間·천·인·阿修羅가 應當 供養

하는 바이니 마땅히 알라. 이 곳은 곧 塔묘가 됨이라 다 應當 恭敬히 禮拜하고 위요하여 모든 꽃과

향으로써 그 곳에 흩으나니라.

 


【운허】

“須菩提야, 어떤 善男子나 善女人이 아침 나절에 恒河 모랫수 같은 몸으로 布施하고, 점심 나절에 또

恒河 모랫수 같은 몸으로 布施하고, 저녁 나절에 또 恒河 모랫 수 같은 몸으로 布施하기를 限量없는

백천만 겁 동안 布施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그르다고 하지만 아니하여도 그 福이 저 布施한 福보다 더 많거든 하물며 이 經을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에게 일러 주기

까지 함에 있어서랴.
須菩提야, 중요한 것을 들어 말하자면 이 經에는 말할 수 없고 生覺할 수 없고 측량할 수도 없는 많은

功德이 있나니, 如來는 大乘의 마음을 낸 이에게 이 經을 말씀하며 가장 높은 마음 낸 이에게 이 經을

말씀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經典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여러 사람들에게 일러 주면 如來가 이 사람을

다 아시고 布施나니 모두 限量없고 말할 수 없고 끝 없고 生覺할 수 없는 功德을 이룰 것이니 이런

사람은 如來의 아누다라삼먁삼菩提를 담당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須菩提야! 小乘法을 좋아하는 이는 내라는 所見·사람이라는 所見·衆生이라는 所見·오래

산다는 所見에 執着하므로 이 經을 듣지도 못하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고 남에게 일러주지도 못하느니라.
須菩提야! 어디 곳에나 이 經이 있거든 온갖 하늘사람·世上사람·阿修羅들이 마땅히 供養 올려야 하나니 이곳은 곧 부처님의 塔을 모신 데와 같으므로 모두 모두 恭敬하고 禮拜하고 돌면서 꽃과 향으로

그곳에 흩을지니라.”

 

 


【신소천】

須菩提야!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있어 아침에 恒河 모래 같은 몸으로써 布施하고, 낮에 다시 恒河 모래

같은 몸으로써 布施하고, 저녁에도 또한 恒河 모래와 같은 몸으로써 布施하여 이와 같이 限量없는

百千萬億劫을 몸으로써 布施할지라도 만약 다시 사람이 있어 이 經典을 듣고 信心으로 거슬리지 아니하면 그 福德이 저 福德 보다 나으려든 항차 베끼거나 受持하거나 讀誦하여 남을 爲하여 說明하여 줌이겠

는가?
須菩提야! 도틀어 말하자면 이 經이 가히 生覺할 수 없고 가히 칭량할 수도 없고 끝도 없는 功德이 있는

 것이다.
如來가 大乘에 發心 한 자를 爲하여 說한 것이며, 最上乘에 發心한 자를 爲하여 說한 것이니 만약 사람이

 있어 能히 受持 讀誦하여 널리 남에게 說明해 주면 如來가 이 사람을 다 아시고 이 사람을 다 布施어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끝할 수 없고 生覺할 수 없는 功德을 成就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가 등에 짊어졌고 어깨에 메어져 있는 것이니,
어찌한 緣故냐? 須菩提야! 만약 소法을 즐기는 자는 我見과 人見가 衆生見과 壽者見에 착하여 곧 이 經을

 알아들어 能히 외우지 못하며 또 남을 爲하여 풀어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須菩提야! 곳곳마다 만일 이 經이 있을지면 一切世間에 하늘과 사람가 阿修羅가 應當히 供養하는 바일

 것이다. 마땅히 알아라. 이곳은 곧 塔묘가 됨이니 應當 다 恭敬하여 예를 드리며 둘러싸여서 모든 꽃과

 향으로써 그곳에 헤치일 것이다.

 

 


【권상로】

須菩提야 만일 善男子 善女人이 있어서 첫 나절에 恒河沙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며 중간 나절에 다시

恒河沙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며 뒷 나절에 또 恒河沙 같은 몸으로 布施하여 이와 같이 한량없는

百千萬億劫에 몸으로써 布施하드라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經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스리지

아니하여도 그 복이 저보다 승하거든 하물며 서사하며 受持하며 讀誦하며 남을 爲하여 解說함이리오

須菩提야 긴요하게 써 말한다면 이 經이 가이 사의 할 수 없으며 가이 측량할 수 없는 無邊한 功德이

있으니 如來가 大乘을 發한자를爲하여 성하시며 最上乘을 發한 자를 爲하여 說하시니라 만일 어떤 사람

이 能히 受持하며 讀誦하며 널리 사람을 爲하여 설한다면 如來께서 이 사람을 다 알며 이 사람을 다

보아서 모두 가이 헤아릴 수 없고 가이 일컬을 수 없고 가이 없고 가이 사의할 수 없는 功德을 成就하리

니 이러한 사람들은 곧 如來의 아녹다라 삼막 삼菩提를 하담 함이 되나니라 어쩐 緣故냐 하면 須菩提야

 만일 작은法을 즐기는 자는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에 착해서 곧 이 經을 能히 들어 받으며 讀誦하며 남을 爲하여 해說하지 못함이니라 須菩提야 在在處處에 만일 이 經이 있으면 일체 세간 하늘이나 사람이

나 아수라들이 모두 마땅히 공양하리니 마땅히 알거라 이곳은 곧 이 塔이 되는 지라 모두 마땅히

恭敬하며 禮拜하고 위요하며 모든 꽃과 향으로 그곳에 흐틀지니라

 

 


【명봉】

須菩提야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아침때에 恒河 모래와 같은 몸으로써 布施하고 점심때에 다시 恒河

모래와 같은 몸으로써 布施하고 저녁때에 또 恒河 모래와 같은 몸으로써 布施하야 이와 같이 限量없는

 百千萬億劫에 몸으로써 布施하거든 다시 어떤 사람은 이 經典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슬리지 않으면 그 福이 저 보다 많을지 온 어찌 하물며 쓰고 受持 讀誦하고 남을 爲하여 해說함이겠는가.
須菩提야! 종요로움을 써 말하건대 이 經이 가히 사의치 못하고 가히 측량치 못할 가이 없는 功德이

있을 새니 如來께서 大乘 마음 發한 자를 爲하여 說하시며 가장 상승 마음 發한 자를 爲하여 說하시나니

라.
만약 어떤 사람이 能히 受持하여 讀誦하고 널리 남을 爲하여 說하면 如來께서 이 사람이 가히 限量없고

 가히 칭송할 수 없고 가이 없고 가히 사의할 수 없는 功德 成就함을 다 알고 다 布施 나니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걸머짐이 되느니라. 어쩜인고,
須菩提야! 만약 작은 法을 즐기는 자는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에 착하여 곧 이 經을 能히 들어 받아

讀誦하여 남을 爲하여 해說치 못할 것이니라.
須菩提야 있는 곳마다 이 經이 있으면 一切 世間과 천·인·阿修羅가 뻑뻑히 供養할 바이니 마땅히 알아라.

 이곳은 곧 이 塔이 됨이라. 다 뻑뻑히 恭敬하여 次例를 지어 돌고 모든 꽃다운 향으로 그곳에 흩을

지니라.

 

 


【기산】

須菩提야! 만일 善男子. 善女人이 초일 분에 恒河 沙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고 중 일분에 다시 恒河 沙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고 후 일분에 또 恒河 沙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여 이와 같이 無量 百千萬億 겁에

몸으로 布施할지라도 만일 어떤 사람이 이 經典의 法門을 듣고 淸淨한 信心으로 받들어서 어기지

아니하면 그 福이 그 보다 훨씬 승하거든 하물며 서사하여 受持 讀誦하면서 남을 爲하여 해說해

줌일까보냐.
須菩提야! 이것을 요약해 말한다면 이 經典에는 가히 사의하지 못하며 가히 칭량하지 못한 無邊한 功德

이 있는 것이니 如來가 大乘心을 發한 자를 爲하여 說한 것이며 最上乘심 發한 자를 爲하여 說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能히 受持 讀誦하면서 널리 남을 爲하여 說해줌이 있으면 如來가 이 사람들을 다 알며

이 사람들을 다 보아서 이루 헤아리지 못하고 일컫지 못하리 만큼 가이없고 사의하지 못할 功德을 成就

하게 하리니 이 같은 사람들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의 책임을 질만큼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須菩提야! 만일 小乘法을 즐기는 자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執着하여 이 經에 能히 청수

 讀誦하면서 남을 爲하여 해說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어디든지 만일 이 經典이 있으면 一切 世間의 천·인·阿修羅들의 供養을 응할 바가 될 것이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法塔이 되므로 반드시 恭敬히 禮拜를 드리고 옹호하며 가지가지의 꽃과 향으로

써 그 곳에 흩어서 供養을 할 것이다.

 

 


【해안】

須菩提야! 만약 어떤 善男子 善女人이 아침에 恒河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布施하고, 낮에도 다시

恒河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布施하고, 저녁때에도 또한 恒河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布施하여

이와 같이 限量없는 百千萬億劫을 몸으로써 布施할지라도 만약 다른 어떤 사람은 이 經典을 보고 信心으

로 거슬리지 아니하면 그 福이 저보다 승할 것이거늘 항차 이 經을 등하고 受持 讀誦하고 남을 爲하여

일러줌이겠는가?
須菩提야! 한 말로써 하자면 이 經이 가히 生覺할 수 없고 가히 측량할 수 없는 한없는 功德이 있나니,

如來가 大乘에 發한 자를 爲하여 說한 것이요 最上乘을 發한 자를 爲하여 說한 것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能히 受持 讀誦하고 남을 爲하여 일러주면 如來가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아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한없는 가히 生覺지 못할 功德을 다 얻어 成就하리니, 이러한 사람들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짊어진 것이 되나니라. 어찌한 緣故이냐 須菩提야! 만약 작은 法을

좋아하는 자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착하여 곧 이 經을 能히 알아듣고 읽고 외운다든지 남을

爲하여 해說하여 주지 못하느니라.
須菩提야! 간데 마다 만일 이 經만 있으면 一切世間의 하늘과 사람과 阿修羅가 應當 供養하는 바이니.

마땅히 알아라. 이곳은 곧 塔廟가 됨이니 應當 다 恭敬하여 예를 지어 둘러싸며 모든 꽃과 향으로써

그 곳에 흩어 덮나니라.

 

 


【청담】

“須菩提야! 만일 어떤 善男子 善女人이 아침에 恒河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몸으로 布施하고 한낮에 또

恒河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고 저녁때에 또한 恒河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여,

이와 같이 限量없는 百千萬億劫을 몸으로 布施하더라도, 만일 또 다른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信心으로

 거슬리지 아니했다면 그 福이 저보다 뛰어나리라.
하물며 이 經을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고 남을 爲해 해說해 줌이겠느냐.
須菩提야! 요긴하게 말하면 이 經이 가히 生覺할 수 없고 가히 헤아릴 수 없는 한없는 功德이 있나니,

如來가 大乘을 일으킨 이를 爲하여 說明한 것이요, 最上乘을 일으킨 이를 爲하여 說明한 것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能히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남을 爲해 일러 주면 如來가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

을 다 布施는 바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끝없으며 가히 生覺해 볼 수도 없는 功德을 다 얻어

成就하리니, 이러한 사람들은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짊어진 것이 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須菩提야!
小乘의 法을 좋아하는 이는 나라는 生覺·남이라는 生覺·衆生 살이라는 生覺·오래 살겠다는 生覺에

執着하여 이 經을 能히 알아듣고 읽고 외운다든지 남을 爲해 해說하여 주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야! 어느 곳이나 이 經이 있는 곳이면 一切 世間의 하늘과 사람과 阿修羅가 應當 供養하리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塔을 모신 곳이어서 應當 모두 恭敬하고 禮拜하고 돌면서 모든 꽃과 香을

그곳에 뿌리느니라.”

 

 


【탄허】

須菩提야! 만일 어떤 善男子 善女人이 초일분에 恒河沙等 신으로써 布施하며 중일분에 다시 恒河沙等

신으로써 布施하며 후일분에 또한 恒河沙等 신으로써 布施하여 이와 같이 無量한 百千萬億劫을 신으로

서 布施하거든 만약 어떤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信心이 거스리지 않으면 그 福이 저보다 勝하리니

어찌 하물며 서사하고 受持하고 讀誦하여 사람을 爲해 해說함이랴
須菩提야! 요로써 말하건대 이 經이 가히 思量할 수 없고 가히 칭량할 수 없는 無邊한 功德이 있으니

如來가 大乘 發한 자를 爲해 說하며 最上乘 發한 자를 爲해 說함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能히 受持하고 讀誦하여 널리 사람을 爲해 說하면 如來가 다 이 사람을 알며 다 이

사람을 보아서 다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의 功德을 成就함을 얻으리니 여시인 등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荷擔함이 되나니라.
어찌 쓴 緣故뇨. 須菩提야! 만일 小法을 좋아하는 이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着할 새 곧 此經에

能히 聽受하고 讀誦하여 사람을 爲해 해說하지 못하리라.
須菩提야! 在在處處에 만일 此經이 있으면 一切 世間·천·인·阿修羅으 ldmd당 供養할 바니 마땅히 알라.

此處는 곧 이 塔이 됨이라 다 應當 恭敬하고 作禮하고 圍繞하여 모든 華와 향으로써 그 곳에 흩으리라.

 

 


【광덕】

須菩提야! 만약 어떤 善男子 善女人이 있어 아침에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써 布施하고, 낮에 다시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며, 다시 저녁때에도 또한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여

이와 같이 無量百千萬億劫 동안을 몸으로써 布施하더라도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經典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슬리지 아니하면 그 福이 저보다 殊勝하리니 어찌 하물며 이 經을 베끼고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며 남을 爲하여 해說해줌이랴.
須菩提야! 간추려 말할진대 이 經은 生覺할 수도 없고 稱量할 수 없고 가없는 功德이 있느니라.
如來는 大乘에 發心한자를 爲하여 이 經을 說하며 最上乘에 發心한 자를 爲하여 이 經을 說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能히 이 經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널리 사람들을 爲하여 說明한다면 如來는 이

사람을 모두 알며 이 사람을 모두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끝 할 수 없고

生覺할 수 없는 功德을 成就하게 되리라.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짊어짐이 되나니 어찌한 까닭이랴. 須菩提야!

만약 작은 法을 즐기는 자라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착하게 되므로 能히 이經을 받다 듣고 읽고

외우며 사람들을 爲하여 해說하지 못하느니라.
須菩提야! 어떠한 곳이든 이 經이 있는 곳이면 一切 世間의 천상과 人間과 阿修羅 등이 마땅히 供養하는

 바가 되리니 마땅히 알라. 그 곳은 곧 塔이 됨이라. 모두가 應當 恭敬하고 절하며 에워싸고 가지가지

꽃과 香을 그곳에 흩뜨리게 되리라.

 

 


【월운】

“須菩提야, 어떤 善男子나 善女人이 아침 나절에 恒河沙 수 같은 몸으로 布施하고, 점심 나절에도

恒河沙 수 같은 몸으로 布施하고, 저녁 나절에도 恒河沙 수 같은 몸으로 布施하여 이렇게 限量없는

百千萬劫 동안 布施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그르다고 하지만 않아도 그 福

이 저 布施한 福보다 더 많거늘 하물며 이 經을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에게 일러 주기까지

함이겠느냐?
須菩提야, 중요한 뜻만 들어서 말하건대 이 經에는 말할 수 없고 生覺할 수 없고 측량할 수도 없는 많은

 功德이 있나니, 如來는 大乘의 마음을 낸 이를 爲하여 이 經을 말했으며 가장 높은 마음을 낸 이를

爲하여 이 經을 말했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經典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여러 사람들에게 일러

 주면 如來가 이 사람을 다 알고 보나니, 모두가 限量없고 말할 수 없고 끝 없고 生覺할 수 없는 功德을

이루리니, 이런 사람은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堪當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이겠는가? 須菩提야! 小乘法을 좋아하는 이는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의 所見에 執着되므로

이 經을 듣지도 못하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고 남에게 일러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야! 어디에나 이 經이 있으면 온갖 하늘사람·世上사람·阿修羅들이 供養을 올리리니, 이곳은 곧

부처님의 塔과 같으므로 모두가 恭敬히 禮拜하고 돌면서 꽃과 향으로 그 곳에 흩느니라.”

 

 


【무비】

“須菩提야! 만약 어떤 善男子 善女人이 아침에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고 낮에 다시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며, 다시 저녁에도 또한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여, 이와 같이 無量한 百千萬億 겁 동안을 몸으로 布施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믿는 마음이 거슬리지 않으면 그 福이 저 몸을 布施한 福보다 殊勝하리니, 어찌 하물며 經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워서 남을 爲해 해說해 줌이겠는가?
須菩提야! 요약해서 말할진댄 이 經은 生覺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끝없는 功德이 있느니라.

如來가 大乘을 發心한 자를 爲하여 이 經을 說하며 最上乘에 發心한 자를 爲하여 이 經을 說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能히 이 經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널리 사람들을 爲하여 說한다면 如來는 이 사람

을 모두 알며 이 사람을 모두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끝이 없고 生覺 할 수

없는 功德을 모두 成就하게 되리라. 이런 사람은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짊어짐이 되니라.
무슨 까닭인가 須菩提야! 만약 작은 法을 좋아하는 자는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에 執着하게 되므로

곧 이 經을 能히 받아듣고 읽고 외우며 남을 爲해서 해說하지 못하느니라.
須菩提야! 어느 곳이든지 만약 이 經이 있는 곳이면 一切 世間의 천상과 人間과 阿修羅 등이 供養하게

되리니, 마땅히 알라. 이 곳은 塔을 되이라. 모두가 恭敬히 禮拜하고 돌면서 여러 가지 꽃과 향으로써

그 곳에 흩으리라.”

 

 


【석진오】

須菩提여, 만일 善男子 善女人이 있어서 아침에 恒河의 모래알 수만큼의 몸으로써 布施하고, 점심에도

또 恒河의 모래알 수 만큼의 몸으로써 布施하고, 저녁에도 또 恒河의 모래알 수만큼의 몸으로써

布施하기를 無量 백천만 억겁 동안 몸으로써 布施한다고 하자.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스르지 않는다면, 이 福이 저것보다 뛰어나다. 하물며 서사하고, 受持하고, 讀誦하고,

남을 爲해 解說함에 있어서랴.
須菩提여, 요약해서 이것을 말한다면 이 經에는 不可思議, 不可稱量한 功德이 있다.
如來는 大乘에 나我가는 자를 爲해서 說하고, 最上乘을 일으키는 자를 爲해서 說하시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能히 受持하고, 讀誦하고, 널리 사람들을 爲해 說明한다면 如來는 이 사람을 남김없이 알고

이 사람을 남김없이 보아 모두 不可量, 不可稱, 끝이 없고 不可思議한 功德을 成就함을 이룰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즉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짊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須菩提여, 만일 小法을 즐기는 자는,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에 執着하여 이 經을 聽受하거

나, 讀誦하거나, 남을 爲해 解說할 수 없기 때문이다.
須菩提여, 在在處處에 만일 이 經이 있다면, 一切世間의 천·인·阿修羅가 마땅히 供養하는 곳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곳은 즉 塔이 되어 모두가 마땅히 恭敬하고 禮拜하고 주위를 돌며 여러 가지 꽃과 향으로

써 그곳에 뿌린다는 것을.

 


【홍정식】

須菩提야 만일 선남선녀가 아침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몸으로 布施를 하고 낮에도 또

갠지스 강 모래알과 같이 많은 몸으로 布施를 하고 저녁에도 또 갠지스강 모래알과 같이 많은 몸으로

布施를 하여 이같이 限量없는 百千萬億 겁을 통하여 몸으로써 布施를 하더라도 만일 다시 한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마음으로 믿어 거역 誹謗하지 않으면 이 사람의 福德이 앞의 사람보다 훨씬 크다.

그러니 하물며 이 經典을 붓으로 써서 베껴 항상 읽고 외며, 또 남을 爲해 풀어 說明해 주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須菩提야 간단히 말하면 이 經은 生覺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이 한없는 功德을 지니고 있다.
如來가 大乘의 마음을 發한 사람을 爲해 말씀한 것이고 最上乘의 마음을 發한 사람을 爲해 말씀한 것이

다. 만일 어떤 사람이 能히 이 經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며 널리 사람들을 爲해 說明해주면 如來가 이

사람이 하는 일을 다 알고 다 보고 있어 모두 헤아릴 수도 없고, 일컬을 수도 없고, 끝도 없고, 生覺할

수도 없는 功德을 얻어 成就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如來의 아누다라삼먁삼菩提를 짊어진

 것이 된다.
무슨 까닭이냐 須菩提야, 만일 작은 法을 좋아하는 사람은 我見과 人見과 衆生見과 壽者見에 執着되어

곧 이 經을 알아듣고, 읽고 외고, 남을 爲해 해說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어디든지 만약 이 經이 있으면 一切 世間의 하늘과 사람과 阿修羅가 다 供養하게 될 것이니

이곳이 곧 塔이 되어 모두가 恭敬하며 절하여 둘러싸고 모든 꽃과 향으로 그곳에 뿌리게 된다.

 

 


【김기추】

“須菩提야!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있어 아침에 恒河 모래 수의 몸으로써 布施하며 낮에 다시 恒河

모래 수의 몸으로써 布施하며 저녁에 또한 恒河 모래 수의 몸으로써 布施하여 이러히 限量없는

百千萬億劫을 몸으로써 布施할지라도 만약 다시 사람이 있어서 이 經典을 듣고 믿는 마음이 거스르지

아니하면 그 福이 저보다도 나으려든, 어찌 하물며 베껴 쓰거나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남을 爲하여

알도록 말함이겠느냐, 須菩提야! 요를 말할진댄 이 經은 좋이 生覺할 수도 없고 좋이 稱量할 수도 없는

가없는 功德이 있으니 如來가 大乘을 피운 자를 爲하여 말한 것이며 最上乘을 피운 자를 爲하여 말한

것이니라. 만약 사람이 있어 能히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널리 남을 爲하여 말하면 如來가 이 사람을

 다 아시고 이 사람을 다 布施나니 좋이 헤아릴 수 없고 좋이 일컬을 수 없고 가이없고 좋이 生覺할 수

없는 功德을 다 얻어 成就하나니,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阿?多羅三?三菩提를 질머짐이니라. 무슨 까닭

으로써 이냐. 須菩提야! 만약 작은 法을 즐기는 자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부침일 새, 곧 이 經을

 能히 듣고 받아 읽고 외워서 남을 爲하여 풀어 말하지 못하느니라. 須菩提야! 곳곳마다 만약 이 經이

있을 지면 온갖 世間의 하늘과 사람과 阿修羅가 應當 供養할 바이니, 마땅히 알지어다. 이 곳은 곧 이

塔인지라, 다 應當 恭敬하여 禮拜를 드리고 둘러싸서 모든 꽃과 향으로써 그곳에 뿌릴 것이니라.??

 

 


【이기영】

“須菩提여,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있어 아침 중에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고, 낮에도 다시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고, 저녁에도 또한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布施하여,

이렇게 셀 수 없는 백 천 만억 겁을 몸으로써 布施를 했다고 하자. 만약 다른 어떤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역하지 아니하면, 그 福德이 저 福德보다 나을 것이거늘 하물며 베껴 쓰거나,

지니고 외워서 남을 爲해 알도록 해 주는 사람에 있어서랴.
須菩提여! 잘라서 말한다면 이 經은 가히 生覺할 수 없고, 가히 측량할 수 없는 無邊한 功德을 지니고

있으니, 如來가 大乘을 發한 자를 爲하여 說한 것이요, 最上乘을 發한 자를 爲하여 說한 것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能히 받아 지니고 외워서 널리 남을 爲하여 說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如來가 이 사람

을 다 알고 다 보아서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限없고, 生覺할 수 없는 功德을 다 얻어 成就할 수

 있게 할 것이니라. 이러한 사람들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짊어짐이니,
왜냐하면 須菩提여,
만약 작은 法을 즐기는 자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執着하여, 이 經을 能히 알아듣고, 읽고, 외운다

든지, 남을 爲해 해說하여 주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여, 만약 가는 곳마다 이 經이 있다고 한다면, 一切 世間의 천과 인과 阿修羅가 應當 供養할

바이니, 마땅히 알지어다. 이곳은 즉 塔이 되어 모두들 應當히 恭敬하여 禮拜를 드리며, 둘러싸고,

모든 꽃과 香을 그곳에 뿌리게 되리라.

 

 


【송찬우】

“須菩提야, 未來의 世上에 善男子 善女人이 이 經典을 受持 讀誦할 수만 있다면 如來께선 즉시 부처님의

 智慧로 바로 이 사람의 마음을 다 알고 이 사람의 형체를 다 布施는데, 그들 모두는 限量없고 가없는

功德을 成就하리라.
須菩提야, 어떤 善男子 善女人이 오전에 恒河沙와 같은 몸을 布施하고, 대낮에 다시 恒河沙와 같은

몸을 布施하고, 오후 늦게 역시 恒河沙와 같은 몸을 布施했다고 하자. 이처럼 限量없는 百千萬億劫토록

몸을 布施했다 하자.
그러나 다시 어떤 사람이 이 經典의 말씀을 듣고 그의 福은 몸을 布施한 사람보다 相對的 比較가 불가능하게 능가한다. 하물며 서사하고 受持하고 讀誦하고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을 爲해 해說해 준 福이야

어떤하겠느냐?”
“須菩提야, 요점만을 말해 보겠다.
이 經典은 오직 스스로만 깨닫기 때문에 不可思議하며, 그 깨달음의 경지는 그 어떤 현실 差別相도

그것과 平等하거나 능가할 수 없기 때문에 名稱을 붙이거나 헤아리지 못할 가없는 功德이 있다.
如來께선 大乘에서 發心한 자를 爲해서 說하였으며, 最上乘에서 發心한 자를 爲해서 이 經典을 說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 經典을 受持 讀誦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爲해서 자세하게 演說한다면 如來께선

이 사람의 마음을 다 알고 이 사람의 형체까지도 다 布施는데, 그들 모두는 헤아리지 못하고 호칭하지

못할 정도의 가없는 功德을 만족하게 成就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自覺과 覺他의 두 가지 利益을 修行하여 부처님의 종자를 단절하지 않게 하므로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걸머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왜냐하면 須菩提야!
가령 小乘法을 즐기는 자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執着하여 修行하므로 그는 我執이 끊긴

平等般若를 이 經典에 있어서 듣고 받아들이고 讀誦하면서 다른 사람을 爲해 해說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어떤 處所이든 간에 가령 이 經典이 있다면 一切 世間과 천상·人間·阿修羅가 應當 供養을

해야만 한다. 마땅히 알라. 經典이 있는 그곳은 부처님을 모신 塔廟와 같으므로, 모두들 恭敬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禮拜를 올리고 그 주위를 돌면서 모든 꽃과 향으로써 그곳에 뿌리고 供養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제열】

“須菩提야, 어떤 善男子 善女人이 아침에 恒河의 모래알 수만큼의 몸으로 布施하고, 낮에 다시 恒河의

모래알 수만큼의 몸으로 布施하며, 저녁에도 또한 恒河의 모래알 수만큼의 몸으로 百千萬億 겁 동안

布施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經典을 듣고 진심으로 믿고 거스르지 아니하면 그 福이 앞의 것보다

殊勝할진대, 하물며 이 經을 베끼고 받아 지녀 읽고 외워 남을 爲해 자상하게 전해 준다면 그 福은

얼마나 크겠느냐!
須菩提야, 한 마디로 말하면 이 經에는 生覺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가 없는 功德이 있으니,

如來가 모두를 爲해 發心한 사람을 爲해 이 經을 말한 것이며 最上乘의 發心을 한 사람을 爲해 이 經을

말한 것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經을 받아 지녀 일고 외우며 사람들을 爲해 널리 전해 준다면

如來는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볼 것이리니, 모두가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가없으며,

生覺할 수도 없는 功德을 成就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짊어진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須菩提야, 小乘의 法을 좋아하는 자는 ‘나라는 生覺’, ‘남이라는 生覺’, ‘衆生이라는 生覺’,

‘오래 산다는 生覺’에 執着하여 이 經을 能히 알아듣고 받아 지녀 읽고 외워서 남을 爲해 전해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야, 어떤 곳이든 이 經이 있으면 一切 世間의 하늘과 사람과 阿修羅가 應當 供養하리니, 마땅히

알라. 이 곳은 곧 塔을 모신 곳이 되어 모두가 기꺼이 恭敬하며 절하고 에워싸 돌면서 가지가지 꽃과

香을 그 곳에 뿌릴 것이니라.”

 


【문제현】

須菩提야!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있어 아침에 恒河 모래 수만큼의 몸으로 布施하고, 낮에 다시 恒河

모래 수만큼의 몸을 布施하고, 저녁 때에 또한 恒河 모래 수만큼의 몸을 布施하여 이와 같이 百千萬億劫

동안 몸을 布施할지라도 이 經典을 듣고 믿어 마음에 어기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 福이 앞에서 몸을 布施

한 것보다 殊勝한데, 하물며 글로 쓰고 받아 지녀 읽고 외워서 사람을 爲하여 알도록 말하여 준 것이야 어떻겠느냐.
須菩提야! 요약해 말하자면 이 經에는 生覺으로 논할 수 없고 헤아려 일컬을 수 없는 끝없는 功德이

있느니라.
如來가 大乘의 마음을 낸 이를 爲하여 말하였으며, 最上乘의 마음을 낸 이를 爲하여 말하였느니라.

만일 能히 받아 지녀 읽고 외워서 널리 사람을 爲하여 말해 주는 이가 있으면, 如來는 이런 사람을 모두

 알며 이런 사람을 모두 보니, 이러한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는 끝없이 不可思議한

 功德을 成就하여 얻어서,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지닌 것이니라.
왜냐하면 須菩提야! 小乘 法을 좋아하는 이라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執着하기 때문에 이 經을

能히 듣고 받아 일고 외워 사람을 爲하여 알도록 말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야! 있는 곳곳마다 만약 이 經이 있으면 모든 世間의 하늘과 사람과 阿修羅들이 供養하리니,

마땅히 그곳은 곧 塔이 되느니라. 모두 마땅히 恭敬하고 예를 갖추어 돌며 모든 꽃과 향으로 그곳에

供養하게 되느니라.”

 

 


【김용옥】

“須菩提야! 여기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있어, 아침나절에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布施하고

 또 점심때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布施하고, 다시 또 저녁때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布施한다 하자! 그리고 또 이와 같이 매일매일 헤아릴 수 없는 百千萬億劫의 時間동안을 몸바쳐

布施한다 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있어, 이 經典을 듣고 믿는 마음이 우러나와 거슬리지 않는다면

바로 이 사람의 福이 저 사람의 福을 이기리니 하물며 이 經을 베껴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남에게

해說해주는 사람들에게 있어 서랴!
須菩提야! 요약하여 말하건대, 이 經은 가히 生覺할 수도 없고 가히 헤아릴 수도 없는 가없는 功德을

지니고 있으니, 如來는 이를 큰 수레에 發心한 자를 爲하여 說하고, 가장 좋은 수레에 發心한 자를

爲하여 說하느니라.
여기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經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널리 사람들을 爲하여 이를 說한다면

如來는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고 가없는 不可思議

功德을 成就할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은 사람들은 如來가 깨달은 阿?多羅三?三菩提를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
어째서 그러한가 須菩提야! 작은 法에 만족하는 자들은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執着하게 됨으로

이 經을 들어 自己 것으로 하지도 못하고, 읽고 외워 남을 爲하여 해說하지도 못하게 되느니라.
須菩提야! 어느 곳에든지 이 經이 있게되면 바로 그곳이 一切世間의 하늘과 人間과 阿修羅가 기꺼이

供養하는 곳이라. 마땅히 알지니라! 이곳이 곧 塔이라는 것을! 모두가 기꺼이 恭敬하는 마음으로 절을

드리고 주위를 돌면서 온갖 꽃의 향기로써 그곳에 흩으리라.”

 

 


【조현춘】

須菩提야! ‘아침에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 여러 번 몸을 布施하고 낮에도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

여러 번 몸을 布施하고 저녁에도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 여러 번 몸을 布施하며, 百千萬億 겁 동안

몸을 布施하는 善男子 善女人’ 보다 ‘이 經을 듣고서, 거스르지 않고 믿는 사람 ’ 이 짓는 福이 더 많다.

하물며 이 經을 책으로 만들고 받아 지녀 읽고 외우며 남에게 전해 주는 사람이 짓는 福은 얼마나

많겠느냐!
須菩提야! 한 마디로 말해서, 이 經에는 想像할 수 없을 만큼 많고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많고 가이 없이

 많은 功德이 있다.
如來는 大乘의 마음을 낸 사람을 爲해, 最上乘의 마음을 낸 사람을 爲해 이 經을 說하는 것이다.
이 經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며 남에게 널리 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如來는 모두 알고 모두 볼 것이다.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측량할 수 없이 많고, 가이 없이 많고, 想像할 수 없이 많은 功德을 짓는 것이다. 이 사람은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이루게 될 것이다.
須菩提야! 작은 法을 좋아하여,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라는 生覺에 걸려 있는 사람은 이 經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지도 못할 것이며, 남에게 전해주지도 못할 것이다.
須菩提야! 이 經이 있는 곳은 어느 곳이든, 모든 世上의 하늘과 사람과 阿修羅들이 모두 供養을 올릴

것이다. 부처님의 塔처럼 恭敬하고 돌고 禮拜드리고 꽃이나 香을 올릴 것이다

 

 


【백성욱】

須菩提야! 만약 착한 男子나 착한 女人이 처음에 恒河 모래와 같은 몸뚱이를 가지고 남을 위하여 일할

수 있었고, 또 중간에 다시 恒河 모래와 같은 몸뚱이로 또 남을 위하여 일할 수 있었고 또 최후에 恒河

모래와 같은 몸뚱이로 布施해서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백이나 천이나 만이나 억의 겁에 몸뚱이로서

布施하고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서 믿는 마음이 거슬리지 않으면 그 복은 저 수억만 개 되는 몸뚱이를 가지고 남한테 布施한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 책을 쓰고 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워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야기한 것일까 보냐.
須菩提야! 한 말로 말하면 이 경은 가히 生覺하고 의논할 수 없으며 또 가히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는

功德을 가졌느니라. 如來는 대승을 발한 사람을 위해서 이것을 이야기했고 最上乘을 발한 사람을 위해서 이것을 이야기했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널리 남을 위해서 이야기하면 如來는 이 사람이 다 가히 헤아릴 수 없고 가히 일컬을 수 없고 또 갓이 없고 가히 生覺하고 의논할 수

없는 功德을 성취하는 것을 다 아시고 이 사람을 다 布施느니라. 이 사람은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짊어질 수 있게끔 된 사람이기 때문이니라. 왜 그런고 하니, 須菩提야! 만약 조그만 법을 즐거워하는

자는 나라는 生覺과 남이라는 生覺과 衆生이라는 生覺과 수자라는 生覺이 있으니까 그런 生覺 가지고는

 이 금강경의 마음 닦는 법이 꼭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須菩提야! 在在處處에 만약 이 경이 있다면 일체 세간 世上 사람이나 하늘 사람이나 아수라가 뻑뻑이

공양할 것이다. 이곳은 곧 부처님이 돌아가신 유골이니라. 모두 다 뻑뻑이 공양해서 예를 작하고 또

圍?하야 모든 꽃이나 향으로 그곳에 흩을 것이니라.

 

 


【김운학】

須菩提야, 만일 善男子 善女人이 있어 初日分에 恒河의 모래수 만큼의 몸을 가지고 布施하고, 中日分에

 다시 恒河의 모래 수 만큼의 몸으로 布施를 하며, 後日分에 또한 恒河의 모래 수만큼의 몸으로 布施를

 하여 이같이 무량의 百千萬億劫을 몸으로 布施한다고 할지라도 만일 다시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스르지 아니하면 그 복이 저보다 훨씬 낫다. 하물며 이 경을 쓰고 수지하며 讀誦하고

사람을 위해 해설해 주면 어떻겠느냐?
須菩提야, 요약해 말하면, 이 경은 불가사의하고 가히 헤아릴 수 없는 無邊의 功德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如來는 대승을 발하는 자를 위하여 설하며 最上乘을 발하는 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다. 만일 사람

이 있어 잘 수지하고 讀誦하며 널리 사람을 위하여 설하면 如來는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아

 가히 다 헤아릴 수 없고 가히 말할 수 없으며 가없는 불가사의한 功德을 성취시킬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如來의 阿?多羅三?三菩提를 짊어진 것이 된다.
왜냐하면 須菩提야 만일 작은 법을 즐기는 자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執着하여 곧 이 경을 능히

알아듣지도 받아 지니지도 讀誦하지도 사람을 위하여 해설해 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어느 곳에든 만일 이 경이 있으면 일체 세간의 천, 인, 아수라의 供養 받을 것이 될 것이다.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탑이 되어 마땅히 다 와서 공경하고, 절하고 둘러 돌며 모든 꽃과 향을 그곳에

부리게 될 것이다.

 

 


【오진탁】

"須菩提여! 未來에 어떤 善男子 혹은 善女人이 《金剛經》을 지니고 讀誦한다면 如來는 부처의 智慧로

 낱낱이 알고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아 그로 하여금 限量없는 功德을 成就하도록 할 것이다.
須菩提여! 어떤 善男子 혹은 善女人이 아침에 갠지스 강 모래알만큼이나 많이 肉身을 布施하고, 낮에

다시 갠지스 강 모래알만큼이나 많이 肉身을 布施하고, 저녁에 또다시 갠지스 강 모래알만큼이나 많이

 肉身을 布施하고, 더욱이 無限한 세월 동안 몸으로 布施를 행하더라도, 만일 어떤 사람이 《金剛經》을

 읽어 믿는 마음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을진댄 그의 福은 저 사람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하물며 《金剛經》을 직접 寫經하고 곁에 지녀 讀誦하며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는 경우야

두말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
"須菩提여! 《金剛經》의 핵심을 말하면 이 經典에는 헤아릴 수 없는 不可思議한 功德이 無限하게

갖추어져 있다. 이 經典은 如來가 大乘法을 닦는 修行인을 爲해 말씀했고, 最上乘의 眞理는 닦는 구도자

를 爲해 말씀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金剛經》을 항상 곁에 지니고 讀誦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면 如來는 그의 행동

을 낱낱이 알고 그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빠짐없이 보아 헤아릴 수 없는 不可思議한 功德을 無限하게

成就하도록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곧 如來의 最上의 올바른 깨달음을 自己 몸에 거뜬히 堪當하게

되리라.
왜 그럴까? 須菩提여!
小乘法을 즐기는 사람은 나라는 分別, 사람이란 妄想, 衆生이란 生覺, 存在란 환상에 執着하게 되어

이 經典을 듣지도 못하고 곁에 지니지도 못하고 讀誦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須菩提여! 어디든지 이 經典이 있는 곳은 모든 하늘, 사람, 阿修羅들이 供養을 올릴 것이다. 그곳은

곧 부처님의 塔이 있는 곳과 마찬가지여서 누구나 恭敬하고 주위를 돌면서 禮拜하고 꽃과 香을 거기에

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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