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의 즐거움 / 이건창(李建昌)
子將奚以修乎(자장해이수호), 그대는 장차 어떻게 닦아 수리할 것이며
修其奚先乎(수기해선호)? 수리한다면 또 무엇부터 수리할 것인가.
寢乎子之所休也(침호자지소휴야) 침실은 그대가 휴식을 취해야 할 공간이요
門乎子興賓客之所由也.(문호자흥빈객지소유야) 문호는 그대와 손님들이 드나들어야 할 곳이며
壇乎又冠盜之所朝夕何而謀也(단호우관도지소조석하야모야) 담장은 또 도둑들이 수시로 넘보면서 훔치기를 꾀할 곳이다.
孰非子之居(숙비자지거), 어느 것인들 그대의 거처가 아닐 것이며
孰可以一日而不修(숙가이일일불수) 어느 것인들 하루라도 수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粉其壁而藻其공(분기벽이조기공) 담벽에 회칠하고 서까래에 단청을 올린다고 해도
而不知搖其棟(이불지요기동) 그 기둥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雖日己修(수일기수) 비록 이미 수리했다고 말하더라도
吾必調之不可以用(오필조지불가이용) 나는 반드시 쓸 수 없다고 말하리라.
紛乎其馳也遑乎其求也(분호기치야황호기구야) 분주하게 벼슬길로 내달리고 허둥지둥 외물을 추구하는데
而可以語比者多乎不乎(이가이어비자다호불호) 닦아서 수리하였음을 말하는 것이 훌륭한 일이겠는가 아니겠는가.
子幸不以余言爲狂(자행불이여언위광) 그대가 행여 나의 말을 미쳤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합興余而交修(합흥여이교수) 나와 함께 조용히 마음을 닦아서
無爲堂之羞(무위당지수) 이 집 수당의 부끄러움이 되지 마세나.
- 이건창(李建昌)이 이남규(李南珪)를 위해 지은 수당기(修堂記) 중에서 -
구한말 청백리였떤 이건창(李建昌 1853~1898)이 조선 말기의 의사(義士) 이남규(李南珪 1855~1907)에게 쓴 글이다.
당색으로 보면 이건창은 소론이고 이남규는 남인이다. 두 사람은 서울 미나릿골에 세살면서 만나 의기투합하였고 누추한 곳에 우거(禹居)하면서 보고 싶기만 하면 언제든지 문을 두드렸다.
"옷을 걸치고 미처 옷고름을 매기도 전에 벌써 상대방의 거처에 이르게 되는가 하면, 몇 잔의 술을 데우면서 쪽지를 주어 달려 보내어서 부르면 미처 그 술이 다 데워지기도 전에 벌써 입이 활짝 벌어진 웃는 얼굴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건창은 이남규를 위해 수당기를 적으면서 교유의 즐거움을 그렇게 적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뱃길로 서로의 고향을 (이건창은 강화도가 고향이고 이남규는 대호(의림지)가 고향) 오고가면서 드넓고 맑은 경계를 닦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당색의 제한 때문에 올바른 정치이념을 구현하지 못하고 이건창은 마흔일곱의 짧은 생을 마친 뒤, 그의 시문은 불꽃 같은 지식인들의 입으로 옮겨지고 손으로 베껴지다가 1917년 중국에서 명미당집(明美堂集)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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