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碧巖錄

「벽암록(碧嚴錄)」 제24칙 철마도위산(鐵磨到 潙山) - 유철마가 위산을 참문하다

경호... 2011. 10. 20. 00:31

    제24칙 철마도위산(鐵磨到潙山) - 유철마가 위산을 참문하다


      <벽암록> 제24칙은
      유철마(劉鐵磨)라는 비구니가 위산영우 선사를 참문하는 일단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유철마가 위산에 이르자, 위산 화상이 그 비구니에게 말했다.
      ‘이 늙은 암소, 그대 왔는가?’
      유철마가 말했다.
      ‘내일 오대산에서 큰 대중공양[齋]이 있답니다.
      스님! 가시겠습니까?’
      위산 화상이 자리에 옆으로 누웠다.
      철마는 곧장 법당 밖으로 나가 버렸다.”

      擧. 劉鐵磨, 到潙山. 山云, 老牸牛汝來也. 磨云, 來日臺山大會齋. 和尙還去. 
      潙山, 放身臥. 磨, 便出去.



      이 공안의 출처는 잘 알 수가 없지만
      <연등회요> 제7권 위산영우전에 설두의 게송을 함께 수록하고 있으며,
      <선문염송집> 제10권에도 전하고 있다.
      위산 화상은 <벽암록> 제4칙에서 언급한 것처럼,
      백장의 법을 계승하여 호남성 장사(長沙)에 있는 위산 동경사에서
      선법 펼친 당대의 명승 영우(靈祐: 771~853) 선사이며
      선종 오가(五家) 가운데 최초로 개성 있는 선법을 펼친 위앙종의 조사이다.
      원오는 ‘평창’에 위산과 유철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위산스님은 노승이 죽은 뒤에 산 아래 신도집의 암소로 태어날 것이다.
      왼쪽 옆구리에 다섯 글자, ‘위산승모갑(潙山僧某甲)’이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
      그 때 위산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암소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라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물어도 확실히 대답하지 못한다.
      유철마는 오랫동안 참구하여 기봉이 높고 준엄하였음으로
      사람들은 그를 유철마라고 불렀다.
      그는 위산에서 10 리 떨어진 곳에 암자를 세웠다.”

      유철마는 위산과 앙산을 참문하여 대오(大悟)한 비구니로서
      성이 유씨, 철마(鐵磨)는 별명으로 쇠로 만든 절구통이라는 의미이다.
      즉 유철마의 선기가 뛰어나 닥치는 대로 모두 절구통에 집어넣고
      부수는 선풍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걸출한 비구니이다.
      유철마에 대해서는 <벽암록> 제17칙, 설두의 게송에 언급되었고,
      <전등록> 제17권에는 자호(子湖) 선사와의 선문답도 전하고 있다.

      유철마가 어느 날 위산영우 화상을 찾아뵙고 인사 올리자,
      위산이 ‘늙은 암소[老牸牛], 그대 왔는가’ 라고 친밀감이 넘치는 말로 맞이하고 있다.
      자우(牸牛)는 새끼를 기르는 어미 소(암컷)라는 의미이다.
      위산이 철마를 ‘늙은 암소’라고 부른 이유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위산은 평생 자기 자신을 ‘수고우(水牯牛)’라고 부르고,
      죽은 뒤에 천당에나 극락에도 가지 않고
      산 아래 신도집의 소로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유철마도 자기와 똑같은 무리[同類]로서 친밀감을 가지고
      ‘늙은 암소’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원오는 위산이 ‘늙은 암소, 그대 왔는가’ 라는 말에
      ‘탐간영초(探竿影草)’라고 착어하고 있다.
      이 말은 <임제록>에서 주장하는 말로,
      장대 끝에 깃털을 묶어서 고기를 몰고 다니는 도구와
      풀 더미를 물속에 넣어두어 고기들이 모여 들도록 하는 고기 잡는 수단이다.
      즉 위산 화상은 유철마의 안목을 시험하기 위해서 던진 한마디라는 의미이다.

      그러자 유철마는 곧장 위산 화상에게
      “내일 오대산에 큰 대중공양[齋]이 있는데, 스님! 가시겠습니까?”라고 여쭙고 있다.
      오대산은 중국의 북쪽 산서성(山西省)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화엄경> ‘보살주처품’의 설법에 의거하여
      옛날부터 일만의 보살과 함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성지로 신앙화 된 곳이다.
      많은 불교인들이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순례하는 영험의 도량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대법보기>와 <임제록>에는
      “오대산에는 문수보살이 없다”고 하면서
      마음 밖을 향해 오대산을 찾아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는 수행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대중공양[大齋會]은
      보살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일종의 무차대회(無遮大會)라고 할 수 있다.
      유철마가 오대산에 대중공양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임제록>에 보화 화상이 요령을 흔들며,
      밝은 것이나 어두운 것이나 일체의 모든 것을 쳐 날린다는 말을 하고 다니자,
      임제가 시자를 시켜서, “아무것도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라고 묻자,
      보화는 “내일 대비원에 대중공양이 있다”고 대답한 것을 연상케 한다.
      즉 일체의 명암(明暗)과 차별경계에 떨어지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떨쳐버리는
      초월적인 경지를 행동과 말로 표현하고 있다.
      보화가 “내일 대비원에 대중공양이 있다”고 한 것은
      ‘그대도 일체의 차별경계를 초월한 깨달음의 세계에서 사는 보살이라면
      대비원에 와서 공양이나 하라’는 의미이다.
      번뇌 망념을 초월한 성자 아라한[應供]은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호남에 있는 위산과 산서성에 위치하고 있는 오대산과의 거리는
      수만리나 되는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이다.
      당시 걸어서 간다면 몇 달이 걸리는데,
      내일 오대산의 대중공양에 참석 할 수가 있을까?

      <벽암록종전초>에는
      “사바세계를 두루하여 자취가 없는 자는
      멀고 가까이[遠近]를 문제로 하지 않는다”라고 주석하고 있다.
      이는 절대 깨달음의 경지는
      멀고 가까이, 높고 낮은, 깊고 얕음을 문제로 삼지는 않는 다는 뜻이다.

      그런데 위산 화상은 ‘몸을 옆으로 누워 버렸다.’
      위산은 자신의 본래면목인 물소[水牛]의 모습으로 벌렁 누웠다.
      배도 부른데 대중공양을 하기 위해 밖으로 멀리 오대산까지 갈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은 여기서 나는 좀 누워서 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위산 화상은 오대산이고 대중공양이고,
      선이나 깨달음도 지금 나에게는 관심 없는 일이야.
      나는 지금 누워서 쉬는 내 할일이 있네! 라고 하면서
      일체의 차별경계를 초월하여 무사무심(無事無心)의 경지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원오는 위산이 벌렁 누어버린 행동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쿵저러쿵 사량분별로 위산의 경계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고 착어하고 있다.

      이러한 위산 화상의 모습을 보고,
      유철마는 ‘곧장 법당 밖으로 나가 버렸다.’
      유철마도 위산을 참문한 일이 끝났기 때문에 그곳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다.
      아무런 사량분별도 없이 위산은 위산, 철마는 철마,
      각자 지금 여기서 자신의 일을 무심의 경지에서 살고 있다.

      설두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고 있다.
      “유철마는 철마(鐵馬)를 타고 겹겹이 쌓인 성을 쳐들어갔으나,
      여섯 나라가 이미 평정되었다는 칙명을 전해 듣게 되었네.
      그래도 쇠 채찍 움켜쥐고 돌아오는 길손에게 묻지만,
      깊은 밤 누구와 함께 대궐의 뜰 앞을 거닐까.”

      원오는 ‘평창’에
      “총림에서 설두스님의 이 게송을 최고로 여기고 있다.
      송고(頌古) 100칙 가운데 이 게송이 논리가 가장 잘 갖추어졌고
      특히 지극히 오묘하며 본질을 명확하게 읊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처음 철마(鐵馬)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몇 겹의 성을 넘어
      천자가 있는 곳까지 뛰어 들은 여장군의 모습을 읊고 있는데,
      유철마가 위산 화상을 참문 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성에 들어가 황제의 칙명을 받아보니
      벌써 여섯 나라는 평정되었다고 하네.
      여기서 말하는 여섯 나라(六國)는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에 반항한 한(韓), 위(魏), 연(燕), 제(齊), 초(楚) 나라를 말하는데,
      지금은 천하태평의 시대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육적(六賊: 六識)을 말한 것이다.

      유철마가 위산 화상을 참문하자,
      위산은 “늙은 암소, 그대 왔는가?”라고 한 말에
      원오는 “개가 칙서를 물었다”라고 착어하고 있다.
      이 말은 <후한서>에 나오는 고사인데,
      변방의 장군 유철마가 기세당당하게
      여섯 나라(六國: 六賊)을 쳐부수기 위해 황제(위산)를 친견했지만
      위산의 한 마디(칙서)에 천하태평으로 장군으로서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유철마는 모처럼 전투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 그 냥 돌아 갈 수가 없어,
      ‘내일 오대산에 공양이 있다’고 말하며 채찍을 한번 쥐고 휘둘렀다.
      ‘천하태평이라고 칙명을 내렸는데 이 무슨 소리냐?’하고
      위산은 누어 버리고 철마는 나가 버린 행위를
      설두는 ‘천하태평한 고요한 밤에 누구와 함께 궁궐의 뜰을 산책할까?’ 라고 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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