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碧巖錄

「벽암록(碧嚴錄)」 제22칙 설봉별비사(雪峰鼈鼻蛇) - 설봉화상과 독사 이야기

경호... 2011. 10. 20. 00:30

    제22칙 설봉별비사(雪峰鼈鼻蛇) - 설봉화상과 독사 이야기


      <벽암록(碧巖錄)> 제22칙은
      설봉 화상이 맹독의 독사를 제기하여 다음과 같이 법문 하고 있다.

      설봉 화상이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남산에 맹독을 가진 독사[鼈鼻蛇]가 한 마리 있다.
      그대들은 조심하도록 하라”
      장경혜능이 말했다.
      “오늘 이 법당 안에 큰 사람이 있는데, 몸이 상하고 목숨을 잃었다.”
      어떤 스님이 이 말을 현사스님에게 전달하자, 현사는 말했다.
      “혜능 사형이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어떤 스님이 질문했다.
      “그러면 스님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현사스님이 말했다.
      “남산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는가?”
      운문스님은 스승인 설봉화상 앞에 주장자를 던지면서 놀라는 시늉을 했다.

      擧. 雪峰示衆云, 南山有一條鼈鼻蛇, 汝等諸人, 切須好着.
      長慶云, 今日堂中, 大有人喪身失命. 僧擧似玄沙. 玄沙云, 須是稜兄始得.
      雖然如是, 我卽不恁. 僧云, 和尙作生. 玄沙云, 用南山作什.
      雲門以杖, 向雪峰面前, 作勢.



      본칙의 공안은 <조당집> 제7권 설봉화상전과 <전등록> 제18권 장경화상전,
      <현사광록> 등에도 전하고 있다.
      또 <굉지송고> 제24칙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설봉 화상의 법문에 대하여 그의 문하에 뛰어난 제자 장경혜능(長慶慧稜)과
      현사사비(玄沙師備), 운문문언(雲門文偃) 착어(코멘트)로 이루어진 공안이다.

      설봉(882~908) 화상에 대해서는 <벽암록> 제5칙에 이미 언급한 것처럼,
      언제나 공양주의 소임으로 대중을 봉양하는 수행자였다.
      세 차례나 투자산에 올라 대동 선사를 참문하고,
      아홉 차례나 동산양개 화상을 찾아가 법문을 청하는 진정한 구도자였다.
      뒤에 덕산 선감의 선법을 계승한 선승이다.
      특히 동문인 흠산과 암두 화상과 함께 행각 수행하다
      암두의 교시로 오산(鰲山)에서 불도를 이룬 이야기는 수행자의 귀감이 되고 있다.
      뒤에 설봉산에서 1500명의 수행자들을 지도한 당대 최고의 선지식이다.

      설봉 화상이 대중에게
      “남산에 맹독의 독사가 한 마리 있으니 그대들은 조심하라!”는 법문을 하였다.
      설봉이 말한 별비사(鼈鼻蛇)는 맹독을 가진 코브라 뱀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독사는 한번 물리면 목숨을 잃게 된다고 특별히 주의주고 있다.
      설봉이 제시한 독사는 수행자 각자의 불성(본래면목)으로 학인들이 자각하여
      생사대사를 깨닫도록 지시하고 있는 법문이다.
      독사이야기는 귀종지상과 대수화상의 법문에도 언급되고 있으며,
      <종용록> 59칙에 동산은 죽은 뱀을 법문으로 제시하고 있다.
      선어록에는 개[狗子]나 호랑이[大蟲], 뱀, 지렁이 등 많은 동물이 등장하고 있지만
      모두 수행자의 진여자성(본래면목)을 지칭한 것이다.

      만약에 설봉이 제시한 남산의 독사를 살아있는 독사로 생각한다면
      남산과 독사라는 모양과 경계에 떨어져 헤매고 있는 중생이 된다.
      선문답에서 제시한 어떤 사물이라도
      사물의 모양과 형체를 의식하고 경계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놈은
      밖을 향해서 불법을 구하려는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밖으로 향해서 경계를 쫓는 자기의 마음을
      안으로 되 돌이켜 근원적인 본래심을 자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나무 기둥이나 동물 등 여러 가지 사물을 제시하여 법문을 한다.
      이러한 법문을 사물을 가리켜서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도록 하는
      ‘지사문의(指事問義)’의 법문이라고 한다.
      일체의 만법과 자기는 본래 하나[萬法一如]이며
      만물과 자기는 일체[萬物一體]의 근본에서 불법을 체득하도록 제시한 것이다.

      만약 내가 일체의 만법을 차별과 대상으로 이해한다면
      나라는 주관과 아상(我相) 인상(人相)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차별심과 분별심을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영원히 중생심으로 업장을 만들며 삼계에 윤회하며 고통 받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자아의 존재에 대한 집착[我相]과 상대적인 경계에 차별이 없고
      일체의 만법과 자기와 하나가 된 절대 본래심의 입장에서
      일체의 상대적인 존재나 차별심이 없는 깨달음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설봉 화상은 수행자들에게 남산의 독사라는 사물(경계)에 떨어진 사람은
      선문답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번뇌 망념에 떨어져 자신의 본래면목을 잃어버리게 되니까
      상대적인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고
      순간순간 자신의 불성을 자각[念念自覺]하라는 법문이다.

      설봉 화상이 제시한 독사의 법문에
      그의 문하 제자들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먼저 장경이 “오늘 이 법당 안에 큰 사람이 있는데,
      몸이 상하고 목숨을 잃었다.”
      설봉의 법당에 독사의 맹독으로 완전히 죽은 한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대유인(大有人)’이라는 말을 ‘많은 대중’으로 이해하고
      법당 안에 많은 대중이 독사에 물려 목숨을 잃은 사람이 많다고 번역하면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대(大)’는 많고 적음[多少]의 의미가 아니라,
      ‘한 사람[一人]이 크게 목숨을 잃었다’는 의미이다.
      선어록에서 말하는 일인(一人)은 본래인(本來人), 무위진인(無位眞人)이며,
      여기서는 설봉을 지칭하고 있다.
      또한 장경을 비롯하여 모든 수행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말한다.
      목숨을 잃었다[喪身失命]는 말은 크게 한번 죽었다[大死一番]는 말과 같이
      자신의 자아의식(아상)과 상대적인 의식(인상) 등
      일체의 번뇌 망념을 죽인 살인도(殺人刀)의 입장을 말한다.

      원오는 장경의 말에 “보주인(普州人)이 도적을 전송하다”라고 착어했다.
      보주는 도적이 많기 때문에 보주인은 도적놈이라는 말인데,
      도적이 도적의 심정을 아는 것처럼,
      설봉의 법문을 곧바로 깨달은 장경의 안목을 칭찬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현사에게 이 법문을 전달하자 현사는
      “장경사형 정도의 안목을 갖춘 선승이 되어야 그렇게 말 할 수 있지.
      역시 장경의 안목은 대단해!”라고 평가하고 있다.
      원오는 “같은 구덩이에 다른 흙이 없지.”라고 착어하고 있다.
      이는 장경과 현사는 설봉의 제자니까 집안의 가풍은 서로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현사는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라고 하면서
      “남산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즉 설봉 화상은 남산에 독사가 있다고 했지만,
      그 독사는 시방세계에 함께하고 우주에 맹독이 꽉 차 있는데,
      남산이라는 한 장소를 말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미이다.
      현사는 ‘모든 시방세계가 그대로 사문의 밝은 구슬[明珠]’,
      혹은 ‘모든 시방세계가 모두 본래인의 진실한 몸(법신)’이라는 법문으로 유명한 선승인 것처럼,
      불법의 안목이 뛰어난 선승이다.
      장경과 비교해 볼 때 현사의 스케일이 훨씬 크고 뛰어난 점을 볼 수 있다.

      원오는 “목숨을 잃은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군!”이라고 착어 했다.
      현사는 제법 스케일이 큰 경지를 말하고 있는데,
      자신이 남산의 독사를 삼키고도 목숨을 잃은 줄 모르고 있는 것 같군!
      남산의 독사인 진여법신 여래의 손아귀 속에 살면서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손오공이 여래의 손바닥위에서 재주를 부린다는 <서유기>의 이야기와 같이
      만법과 하나 된 무심의 경지에 살고 있는 현사를 칭찬하고 있다.

      마지막에 운문은
      “주장자를 스승인 설봉의 면전에 내 던지며,
      ‘야, 독사다!’라고 말하고 두려워한 표정을 지었다.”
      주장자는 수행자의 필수 도구로 본래면목을 상징한다.
      즉 본래면목의 지혜를 자유롭게 사용하여 조금도 숨김없이 전부 드러내 보인 것인데,
      독사가 나오면 갑자기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본래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운문을
      원오는 “운문이 설봉의 첫째 제자”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다른 형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칭찬하고 있다.

      설두는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설봉산 상골암은 높고 높아 오르는 이 없는데,
      오르는 자라면 모두 독사를 마음대로 취급하는 명인이라야 한다.
      장경과 현사도 그 독사를 어떻게 할 수 없었는데,
      목숨을 잃고 불법을 체득한 자 몇이나 될까?
      운문은 독사를 잘 알고 있어 주장자로 풀 속에서 찾아냈다. 그
      독사는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없으니 밖에서 찾으면 볼 수 없다.
      운문의 지혜작용은 독사가 입을 벌리는 것이 전깃불과 같이 빠르니,
      사람들의 정식으로 볼 수가 없네.”

      끝으로 설두는 모든 사람들에게 “발밑을 살펴라!”고 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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