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碧巖錄

「벽암록(碧嚴錄)」 제20칙 용아서래무의(龍牙西來無意) - 용아화상과 달마가 오신 뜻

경호... 2011. 10. 20. 00:28

    제20칙 용아서래무의(龍牙西來無意) - 용아화상과 달마가 오신 뜻


      <벽암록(碧巖錄)> 제20칙에는
      용아(龍牙) 화상이 취미(翠微)선사와 임제(臨濟) 선사를 찾아가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질문하는 공안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용아 화상이 취미 선사에게 질문했다.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무엇입니까?”
      취미 선사는 “나에게 선판(禪板)을 건네주게나.!”라고 말했다.
      용아 화상이 선판을 취미 선사에게 갖다 드리자,
      취미 선사는 선판을 받자마자 곧바로 후려 쳤다.
      용아 화상은 말했다.
      “치는 것은 선사 마음대로 치시오.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용아 화상은 다시 임제 선사에게 질문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임제 선사는 말했다.
      “나에게 방석을 건네주게!”
      용아 화상은 방석을 임제 선사에게 갖다 드리자, 임제 선사는 곧장 후려쳤다.
      용아 화상은 말했다.
      “치는 것은 선사 마음대로 치시오.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擧. 龍牙問翠微, 如何是祖師西來意. 微云, 與我過禪板來.
      牙, 過禪板與翠微. 微, 接得便打. 牙云, 打卽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牙, 又問臨濟, 如何是祖師西來意. 濟云, 與我過蒲團來.
      牙, 取蒲團過與臨濟. 濟, 接得便打. 牙云, 打卽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용아 화상은 동산양개의 법을 이은 거둔(居遁: 835~923)선사로
      호남 용아산 묘제선원에서 선풍을 떨친 선승이다.
      그의 전기는 <조당집> 제8권, <송고승전> 제13권에 전하고 있는데,
      여기에 제시한 공안은 <전등록> 제17권과 <임제록>,
      <굉지송고> 제80칙 등에도 전하고 있다.

      <벽암록> 제4칙에 덕산이 위산영우선사를 참문한 것처럼
      용기가 충천한 젊은 수행자 용아 화상은
      먼저 취미 선사을 방문하여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취미 선사는 단하천연(丹霞天然) 선사의 법을 이은 당대의 유명한 무학(無學)선사이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祖師西來意]’은 <벽암록> 제17칙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선승들이 많이 사용하는 정형구의 질문이다.
      수행자가 정면에서 돌파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불법의 근본문제이다.

      그런데 취미 선사는 “저기 있는 선판을 건네주게!”라고 말했다.
      선판은 좌선 수행 중에 잠시 턱을 기대고 쉴 수 있는 도구이다.
      용아 화상은 “예!”하고 노스님이 시키는 대로 정직하게 선판을 건네주자,
      취미 선사는 선판을 받는 순간 곧장 후려쳤다.
      ‘이 멍청한 녀석! 조사의 뜻을 알기나 해?
      지금 나에 선판을 건네주는 그 지혜작용의 일이
      바로 살아있는 조사의 뜻이라는 사실을 체득해야지!’라는 친절한 훈계다.

      용아 화상은 “때리는 것은 노스님 맘대로 하세요.
      그러나 조사의 뜻은 없군요”라고 말하고 곧장 나가 버렸다.
      용아 화상은 “번뇌 망념이 한 생각도 없는 무념무위(無念 無爲)의 경지가
      조사가 오신 뜻[祖師意]”이라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취미 선사를 점검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취미 선사가 조사의 뜻을 직접 친절하게 행동으로 보여준 법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시 젊은 패기로 당시 유명한 임제 선사를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제시하며 임제의 안목을 점검하고 있다.

      임제 선사는 “나는 지금 좌선을 하려고 하는 참인데,
      그대는 나에게 방석을 건네주게!”라고 말했다.
      임제는 조사의를 체득한 경지의 삶을
      지금 여기서 좌선하는 자신의 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용아 화상은 역시 임제의 법문을 파악하지 못하고
      “예!”하며 방석을 건네주고 있다.
      임제는 방석을 건네받는 즉시에 “이 멍청한 놈!”하고 주장자로 후려쳤다.
      용아 화상은 역시 “때리는 것은 노스님 맘대로 하시오. 조사의는 없군요!”라고
      자기 나름대로 임제의 선기(지혜작용)를 점검하고 있다.

      원오는 “귀신의 소굴에서 살림살이하고 있군”이라고 착어했는데,
      용아 화상이 ‘조사의 뜻[祖師意]은 없다’고 하는 고정관념에 떨어져
      지혜작용이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즉 용아 화상이 ‘조사의’가 없다고 하는 주장은
      ‘일체의 생각을 텅 비운 공무(空無)의 경지가 조사의 뜻이라는 편견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자신의 일을 통한 지혜의 작용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또한 용아 화상은 ‘조사의 뜻[祖師意]이 없다’고 하는 한 생각에만 사로잡힌 편견으로
      취미와 임제 선사를 점검하려고 하는 승부심에 떨어져 있는 것인데,
      이기고 지는 승부심을 가지고 선문답을 하는 것은
      주객(主客)의 차별심에 떨어진 중생의 삶을 살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용아 화상이 뒤에 선원을 열고 수행자들을 지도할 때에
      어떤 스님이 질문했다.
      “화상이 취미와 임제 선사를 참문 하였는데 그 두 존숙을 인정하십니까?”
      용아 화상은 “두 존숙이 불법을 체득한 경지를 인정하지만
      단지 조사의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생각하는 편견으로 점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산어록>에 의하면 용아 화상은 동산 선사를 참문하여 똑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동산 선사는 “동수(洞水)의 물이 역류할 때에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라고 말하자
      곧바로 깨닫고 동산의 법을 계승하게 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용아 화상은 한결같이 제방의 선지식을 두루 찾아다니며
      선법과 인격을 탁마하였으니
      후대에 수행자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설두 화상의 게송을 살펴보자.
      “용아산의 안목 없는 용이여!”
      이 말은 용아 화상이 취미와 임제 선사를 점검하러 가는 기세는
      용아(龍牙)라는 이름에 걸맞게 훌륭한 용(龍)의 모습이었는데,
      두 존숙의 지혜법문을 체득하지 못한 것은
      불법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썩은 물속에서 어떻게 고풍(古風)을 떨칠 수가 있으랴!”
      용아 화상은 자신이 조사의는 없다는 무념무상(無念 無想)의 적멸(寂靜)세계가
      불법을 깨달은 경지로 생각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물에 빠져있는 눈알(정법의 안목)이 빠진 용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취미가 선판을 제시하고, 임제가 방석을 제공해도
      그러한 도구를 조사의로서 활용할 수 있는 안목이 없게 되었으니
      그 선판과 방석을 나 설두(盧公)에게 넘겨 주시오라고 읊고 있다.

      설두는 “이 늙은이(용아)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군(絶)!
      또 하나의 게송을 더 지어야 겠네!”하고 게송을 짓고 있다.
      설두는 앞의 게송에서 용아는 참된 불법의 깨달음을 체득하지 못하여
      안목 없는 선승으로 취급했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완
      전히 죽여 버리는 것(絶)은 아까운 인물이다.
      미련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하나의 게송을 더 첨가한다고 하고 있다.
      초절(絶)은 <서경>에 나오는 말로 ‘소멸시키다’라는 의미이다.

      “선판과 방석을 나 설두[盧公]에게 넘겨준들 어찌 의지할 것이 있으랴!
      방석에 앉거나 선판에 기대어서 조사의 등불을 계승하려 하지 마오.”
      나는 앞의 게송에서 용아 화상에게 선판과 방석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나에게 건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판과 방석을 받으면 불법을 전해 받았다는 분별심을 일으키기 쉽지만,
      나는 이러한 정식(情識)을 끊었기 때문에 방석과 선반을 의존하지 않는다.
      방석 위에 앉아서 9년 면벽하며 좌선한 달마와 같이
      조사의 흉내를 낸들 조사의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며,
      의미 있는 일도 아니며,
      또한 선판에 기대어 피로를 푸는 일도 모두 쓸데없는 일이다.

      ‘조사가 오신 뜻[祖師意]’이란
      좌선 수행을 하는 자세나 모양을 취한다고 체득되는 것이 아니며
      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옛날에는 황벽과 임제처럼, 선판과 방석이 전법의 인가증명으로 활용된 적은 있지만,
      나 설두는 그것보다 달마가 중국에 오기 이전의 소식을 존중하고 싶다.
      설두는 참된 조사의를 세계를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로서 제시했다.
      “저녁 구름은 돌아가느라 모여들지 않나니,
      먼 산은 아득히 푸르름에 쌓여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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