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千手經

『 천수경 』 - 【천수경 강의】- 3. 얼마나 사랑하기에 -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1)

경호... 2011. 10. 17. 02:33


        【천수경 강의】
           3. 얼마나 사랑하기에
          -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1) 千手千眼 觀自在菩薩 廣大圓滿 無碍大悲心 大陀羅尼 啓請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에 '경' 자를 붙인 것이 『천수경』의 구체적인 본래 이름입니다. 여기서부터 경의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됩니다. 여기서<광대원만>이란 『천수경』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지혜가 담겨 있어서 넓고 크고 원만하여 막히는 데가 없이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적인 정분(情分)에 얽매이면 대가를 바라게 되고 자기도취에 빠지거나 분별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관세음보살의 자비는 이런 인간적인 사랑이나 정을 뛰어 넘어서 자비로 승화되었기 때문에 아무 걸림이 없는<무애대비심>인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 등 불보살님을 항상 높은 곳에 올려놓고 늘 바라보기만 합니다. 보살펴 주기를 바라고 무언가 베풀어 주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말하자면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께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소극적인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불자라면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자비롭고 훌륭한 관세음보살의 삶을 본받아서 자기 자신도 관세음보살처럼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불자라면누구나 개개인이 관세음보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관세음보살이 우리에게 바라는 진정한 마음입니다. 관세음보살의 마음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자비스러운 어머니라고 하여 '대성자모(大聖慈母)'라고도 표현합니다.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가 일일이 보살펴 주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부모와 똑같이 행동해야 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이 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부모가 자식을 어릴 때처럼 보살핀다면 그것은 잘못된 부모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훗날 부모처럼 어엿한 자라나고 또 어른답게 행동하라는 뜻에서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관세음보살도 우리가 힘이 없고 부족할 때 자비로써 보살펴 주고, 우리는 그 보살핌을 받습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 누구나 자기 자신도 관세음보살의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근본적인 마음이며, 관세음보살이 우리에게 바라는 바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으로 삼아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의 본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관세음보살처럼 자비스럽고 지혜롭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부처님을 뛰어넘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으로 살겠다는 굳은 각오와 용기가 있을 때 우리의 공부는 성큼 한 단계 높이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관세음보살을 찾는다면 관세음보살이 참으로 흐뭇하게 볼 것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의 흉내를 내려고 포부를 가지고 행동할 때 그 아버지의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은 흉내내기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흉내가 자꾸 계속되면 그것은 이미 흉내가 아닌 자기 것이 되고 맙니다. 관세음보살의 흉내를 자꾸 내다 보면 우리도 관세음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5분간 맹인 흉내를 낸다면 그 사람은 그 5분 동안은 맹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5분간 관세음보살의 흉내를 내었다가 이것이 24시간 계속된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습이나 흉내를 결코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계속되는 보호 안에서 자식이 더 이상 자랄 수 없듯이 관세음보살의 보살핌을 받는 입장에서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다라니>라고 하는 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이르는 말인데 자비의 공덕을 담고 있는 『천수경』의 핵심이며 심장부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다음으로 <계청>이란 '이제부터 다라니 열기를 청한다'는 뜻으로서, 이것은 괄호 안에 넣어서 원칙적으로는 읽지 말아야 하지만, 흔히 관습상 읽고 있습니다. <계청>은 경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