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장식(藏識)은 모든 식(識)의 물결 이룬다 (강의)
장식은 모든 식을 이룬다.
감출 장(藏)자 알 식(識)자, 아뢰야식을 얘기합니다.
장(藏)자는 감추다, 창고를 의미하는데,
이 창고의 역할은 받아들이고 저장을 하고
밖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는 거죠.
받아들이고 내어주고, 그리고 저장을 하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것은 마음에 저장이 되는데
그 마음이 아뢰야식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저장시키는 게 아뢰야식이라는 것인데
풀이하면 장식(藏識)이 됩니다.
저장되어 있는 정보가 그냥 있는 게 아니고
경계 따라서 나타나서 다시 현행(現行)을 합니다.
저장된 정보가 바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10년, 20년 뒤에, 또는 다음 생에 발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과(因果)가 이루어질 수 있는 근본 장소가 장식입니다.
내가 나쁜 짓을 하면 즉각적이든 10년, 20년 뒤에든, 그 다음 생에든
과보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내 마음에 나쁜 짓을 한 것이 저장이 되어 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면 발아가 되어서 과보를 받는 거거든요.
10년 전, 20년 전 또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이 아뢰야식이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기억하는 겁니다.
그런데 장식이라는 게 여기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근본 마음은 불가지(不可知)라 해서 의식상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수행을 해서 의식이 묘관찰지로 바뀌면
그때 비로소 이 아뢰야라는 마음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알 수 있는 게
보고 듣고 하는 모든 마음의 작용들이 장식의 물결이라는 거죠.
그래서 마음의 물결이 아뢰야식에서 비롯된다 이거죠.
아뢰야라는 마음을 바다에 비유한다면
바람에 의해서 일렁이는 그 물결은 전부다 칠식이에요.
그래서 제목에 ‘장식은 모근 식의 물결을 이룬다’ 이렇게 얘기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누가 비난을 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면 장식에서 마음의 물결이 일어나는 거예요.
칭찬을 하면 좋아하는 파도가 치고 이러는 겁니다.
그렇지만 남이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물결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죠.
이런 사람들은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누가 비난을 하든 칭찬을 하든,
어떤 경계를 만나도 마음에 동요가 없습니다.
그게 마음에 파도가 일지 않는다는 거죠.
이렇게 마음에 파도가 일지 않을 때를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 이런 말을 씁니다.
일상생활에서 마음에 동요가 없다면 동정일여입니다.
꿈속에서 무슨 영상이 생기더라도 마음에 동요가 없다, 몽중일여라 하고
더 깊은 잠속에서도 마음이 깨어 있는 상태다 그러면 숙면일여라 그럽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이 일생을 살다가 죽어서 저 세상에 갈 때도
마음에 동요도 없다면 그것을 중유일여(中有一如)라 그럽니다.
중유(中有)는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얘기 합니다.
그리고 동요 없이 어머니 태속에 들어가는 것을 입태일여(入胎一如)라 하고,
어머니 뱃속에 들어 앉아 있을 때도 마음에 동요가 없으면 수태일여(受胎一如),
태어날 때도 역시 마음에 동요가 없고 의식이 깨어 있다면
출태일여(出胎一如)라고 합니다.
이 정도의 경지에 가면 영겁일여(永劫一如)라고 하는데,
여기서 일여(一如)라 함은 동요가 없음을 얘기 합니다.
이런 경지가 분명하게 있지만 사람들은 이게 안 된다 이거예요.
동정일여도 안 되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나에 동요되는 말만 하면
이내 그 마음이 밖으로 출렁출렁 일어나는 거예요.
직접원인은 내 안에 있고 간접원인은 바깥 대상에 있는데,
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하더라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 자신한테 있는 거예요.
이런 동정일여도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실제 수행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장식은 모든 식의 물결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이런 수행을 전제로 해서 하는 얘기에요.
자 봅시다.
『능가경』 게송에서 말하였다.
비유하면 바다의 거친 물결이
사나운 바람으로 일렁이면서
파도로 깊은 바다 솟아 오르며
잠시도 중단되어 쉴 틈 없듯이.
장식의 바다가 상주하여서
바깥 경계 바람으로 움직여지고
여러 가지 모든 식의 물결 이루며
솟구치고 일렁이며 변화해 간다.
이 내용은 너무나 멋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것을 달달달 외우면 좋습니다.
이 게송을 외워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여러분들이 마음이 출렁거리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
상대방이 비난이나 칭찬에 있어서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는 것을 잠재울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바다’라는 것은 아뢰야라는 마음을 얘기하고
‘거친 물결’이라는 것은 아뢰야의 마음에 물결치는 모습인데,
그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말나식
이렇게 일곱 개의 마음을 얘기 하고
‘바람’이라는 것은 『능가경』에서는 경계의 바람이라고 하고
「대승기신론」에서는 진리가 하나인줄 모르는
무명의 바람이라고 얘기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람이 불고 파도치는 것은
<유식30송>에서 세친보살이 ‘우리 마음은 폭포수와 같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와 같은 겁니다.
몇 번 한 얘긴데,
『능가경』게송을 보면,
경계의 바람이 불면 털구멍 땀구멍을 통해가지고
일곱 개의 마음이 파도를 친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에게 누가 화를 내게 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서 몸을 부들부들 떨잖아요, 그죠?
이렇게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전부 심리현상들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이 세속을 이룬다는 것을 빨리 알아서
여기서 벗어날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뒤에 가면 ‘모든 것이 마음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 밖에 따로 뭐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준다 이러는데,
알고 보면 영향 주는 그 놈도 자기 마음인거예요.
다른 사람이 욕을 해도 그 욕이 자기 마음의 작용입니다.
이런 이치를 알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해요.
여러분들이 사유를 좀 하고 이래야 됩니다.
그렇게 알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마음만 존재하지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때
비로소 그 이치를 알게 되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에게 마음이 없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욕을 하고 칭찬을 한다 하더라도
마음이 없는데 욕을 하고 칭찬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욕을 해도 알고 칭찬을 해도 아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마음이 상대로부터 들어오는 경계의 바람에 폭 덮어 씌워가지고
재구성하는 것이 마음 담당입니다.
그리고 비난하고 칭찬하는 그 사람 역시
칭찬도 마음이고 비난도 마음인거예요.
그래서 나의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교류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뢰야연기(賴耶緣起), 아뢰야식연기다 이렇게 얘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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