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유의 詩

선택의 가능성들

경호... 2010. 12. 7. 20:09

선택의 가능성들

 

영화를더 좋아한다.

강가의 떡갈나무들을 더 좋아한다.

인류를 사랑하는자신보다

인간을 사랑하는자신을 더 좋아한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실이 궤어진 바늘을 갖고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것을 비난하는 것이 곧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예외를 더 좋아한다.

일직 떠나기를 더 좋아한다.

의사와 다른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한다.

세밀한 선으로 그린 오래된 그림을 더 좋아한다.

시를 쓰지 않을 때의 어리석음보다

시를 쓸 때의 어리석음을 더 좋아한다.

해마다 맞이하는 특별한 기념일이 아닌

사랑으로 모든 날들을 기념하는 것을 더좋아한다.

내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지만

도덕적인 사람을 더 좋아한다.

너무 쉽게 믿는 친절보다

사려깊은 친절을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나라보다 정복당하는 나라를 더 좋아한다.

약간 주저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질서 잡힌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1면보다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들을 더 좋아한다.

꼬리의 일부를 잘라 내지 않은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색이기 때문에 옅은색 눈을 더 좋아한다.

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말한 많은 것들보다

여기에 말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더 좋아한다.

별들의 시간보다 벌레들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더 오래, 그리고 언제라고 묻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모든 존재가 그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을 더 좋아한다.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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