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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의 성품, 없고도 있고 있고도 없다.

경호... 2008. 8. 19. 10:15
공(空)의 성품, 없고도 있고 있고도 없다
     



    공(空)의 성품, 없고도 있고 있고도 없다.

     

     


     어느 공(空)이든 공(空)에서 모두 다 같은 것 같을지 모르지만 공(空)은 공(空)하여 없다할 수도 있고 또 있다할 수도 있다.

     


     색(色)을 여의고 공(空)에 이르렀다면 색이 공(空)하다하며 없다(無)하겠지만 색(色)이 공(空)한 곳(것)에 진실허공이 있으니. 없다 하되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색(色)에서 공(空)으로 ..... 공(空)에서 진실허공(空空)에 이르렀다면 진실허공은 없다(無)하겠지만 진실허공(空空)에 법과 진리가 있으니. 없다하되 있다(有)해야 할 것이다. 진실허공(空空)에서 법과 진리에 이르렀다면 법과 진리는 없다(空空空)하겠지만 법과 진리(空空空)에 여(如)가 있고 여여(如如)가 있으니 없다하되 있다(有)해야 할 것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여여(如如)에서 여여부동(如如不動)에 이르렀다면 여여(如如)는 없다(空空空空)하겠지만 여여부동에 자등명이란 빛이 있으니 없다(無)하되 있다(有)해야 할 것이다. 여여부동(空空空空)의 본성의 속성에서 본성이라고 하는 자등명(自燈明)이란 달(滿月)에 이르렀다면 달(滿月)은 없다(無:空空空空空)하겠지만 태양과 같은 본성이라고 하는 자등명이란 빛이 있으니 없다(無)하되 있다(有)해야 할 것이다. 자등명이란 만월(滿月)에서 자등명이란 태양과 같은 빛에 이르렀다면 태양과 같은 자등명이란 빛도 없다(無.:空空空空空空) 있다(有) 떠나 있어야 한다.

     


     사실 깨달음이 본성의 속성으로 하나 되는 것이다 보니. 깨달음을 얻어서는 자등명을 태양과 같이 보지를 못하고 마치 만월(滿月)처럼 보이기에 자등명이 만월이라고 하되 자등명은 만월이 아니라 태양과 같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공(空)은 공(空)에서 공공공공공(空空空空空) 5공(五空)이라 할 수 있겠으나, 깨달은 각자(覺者)가 달(滿月)과 태양(日)으로 보는 것은 깨달음을 얻어 본성의 속성에서 자등명과 멀리 떨어져서 있는 상태에서 본 것이고, 깨달은 각자가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수행 정진하여 자등명의 빛으로 다가갔기에 태양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수행을 통하여 공(空)을 체험이나 경험함으로 해서 한 경계를 넘어선 것이 모두 다 넘어선 것과 같을지라도 이는 마치 한 단계의 계단을 올라선 것과 같아서 걸림과 장애 없이 편안할지라도 또 수행 정진하여 가다보면 또 장애와 걸림을 맞게 된다.

     

     그럼에도 공(空)에 빠져 없다하면 있고 있다하면 없는, 없고도 있고 있고도 없는 것에서 없음(無)은 없음에 머물지 않고, 있음(有)은 있음에 머물지 아니함으로 없음도 아니고 있음도 아니다. 공의 성품에서의 이름과 의미가 없는 모양은 불가사의하다보니. 상(相)은 상(相)이 아닌 것이 상(相)이고, 상(相)으로 이름한 이름은 이름이 그러할 뿐 이름 없는 것이 이름이고, 의미(意味) 역시도 의미라 하되 의미 없는 것의 이름이 의미고, 상(相)이 의미라 말하지만, 의미는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공(空)에 빠져 공(空)의 성품을 말하는 분들이 많다.

     


     공(空)에서 공공(空空)으로 넘어가는 것은 일직선상이 아니라 마치 계단과 같고, 하나의 계단을 올라가 공(空)에 이르게 되면 이른 공(空)에서 또 다른 장애와 걸림을 만나 장애와 걸림을 제거하고 또 다른 공(空)을 체험하고 경험하기까지 오랜 수행정진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공(空)을 체험하거나 경험하고 지속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이 경험하고 체험한 공(空)이 전부인 듯하기가 쉽다. 그러다 보니 공(空)에서 공공(空空)을 보거나 알지 못하고, 공공(空空)은 공공공(空空空)을 보거나 알지 못하고, 공공공(空空空)은 공공공공(空空空空)을 보거나 알지 못하고, 공공공공(空空空空)은 공공공공공(空空空空空)을 이해하거나 보거나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빠져 있는 공(空)에서 공(空)의 성품(性品)을 다 안다고 공(空)에 대하여 말하며 자기 자신이 빠진 공(空)보다 더 높은 단계의 경지의 공공(空空)에서 말하게 되면 아래 단계의 공(空)에서는 위 단계의 공(空)을 알지도 보지도 이해도 못하니 엉터리니 틀렸다니 자신이 알고 있는 공(空)의 성품이 전부인 듯 말하는 분들 많지만, 수행의 높은 단계의 경지의 위 단계 공(空)에서 아래 단계의 공(空)을 볼 적에는 틀린 것이 보인다 하겠다.


     

     이러하기 때문에 공(空)을 체험하고 경험한 자의 경우에 있어서 자기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자가 말한다면 믿고 의지하여 수행 정진하겠지만 아니라면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는 공(空)의 성품이 다인지 안다. 그리고서는 화두 파타라는 빌미로 깨달음은 인가 받으려고 하는 것과 같이 인가 받으려하고, 인가해 주는 사람이 정말 깨달아 공공공공공(空空空空空)에 이르러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보고 바르게 잡아주겠지만 아니고 인가 받으러 찾아간 사람이 인가 받으러 찾아온 사람 보다 밑의 공(空)이라거나 아니면 같은 공(空)에 머물러 있다면 인가해 주게 되니 착각도인의 양산이라 할 것이다. 공(空)이 아닌 공공공공공(空空空空空)에 이르렀다면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깨달음에 대하여 의심이나 의문이 생기지 않아 누구에게 인가 받으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가 받을 필요도 없이 깨달음에 대하여 확연할 것이다. 공공공공공(空空空空空)에 이르지 못한 공(空)에서 체험하고 경험하였으되 깨달음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깨달음을 얻은 것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깨달음을 얻지 않았음에도 이것이 깨달음인지 아닌지 모르니 이미 깨달았다고 하는 각자에게 확인하여 인가를 받으려고 인가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다.


     

     공상(空相)에 빠져서는 아니 된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구나. 확연히 알 수 있고 깨달음에 대하여 더 이상 의심이나 의문이 없을 때까지 수행 정진하라. 그리고 깨달음을 얻고서도 법념처(法念處)을 말하며 법(法)에 머물러 여여(如如)한 여(如)에 머무름 없이 머무르지 말고, 육체와의 인연이 다하는 그 날까지 수행 정진하신 부처님과 같이 수행 정진하여 대광념처(大光念處)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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