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책]/클래식

모짜르트 / 교향곡 제35번 `하프너`|

경호... 2015. 8. 1. 05:52

 

 

 


 

Symphony No.35 in D major, K.385 "Haffner"

모차르트 / 교향곡 35번 D장조 "하프너"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전곡 연속듣기

 

<하프너 교향곡>은 잘쯔부르크의 명문 하프너가의 의뢰를 받아 만든 것으로, 1782년 모짜르트가 가장 다망한 해의 작품이다. 이때부터 모짜르트는 가극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작곡에 전념하고 있었고, 또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한 직후이어서 이 교향곡의 주문에는 엄밀히 말해 적극적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튼 상대는 하프너 가문이라 거절치 못하고 마지못해 응한 것이 이 곡이었는데, 작곡이 진척됨에 따라서 모짜르트도 끌려가다시피 하여 2주일 동안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반년 쯤 지나자 모짜르트는 이 곡의 훌륭함에 스스로 놀라, 이런 걸작은 없다고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적기까지 했다.

 

 

 

 

제1악장 Allegro con spirito. 먼저 축하의 양식이 첫머리에 나타난다.


 

1악장 (Allegro con spirito)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말 열화와 같이 연주해야 해요!”라고 했던 이 첫 악장은 실로 장대하고 화려하여 이 교향곡이 원래 ‘축전용 음악’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동시에 단일 주제의 대위법적 전개로 진행되는 이 악장은 모차르트가 하이든과 바흐의 음악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도달한 새로운 경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제2악장 Andante.

 

 

 

2악장 (Andante)

이 밝고 우아하며 유머러스한 완서악장은 다분히 빈(Wien) 풍인데, 어쩌면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 있는 친구들에게 빈에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분위기를 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두 개의 주제에 기초한 소나타 형식의 악장으로, 첫 번째 주제는 사뿐한 스타카토가 가미된 16분음표의 반주 위에서 편안하게 노래하는 듯하며, 두 번째 주제는 마치 조잘거리며 키득거리는 듯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한다.

 

 

 

제3악장 Menuett. 무곡, 미뉴에트조가 사용되고 있다. 교향곡 속에 이 미뉴에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당시의 관례인데, 특히 이 교향곡의 것은 길고 또 트리오가 대조적으로 중앙에 삽입되어 있다.


 

3악장 (Menueto)

궁중무곡을 연상시키는 격조 높은 미뉴에트 악장이다. 위풍당당한 미뉴에트 사이에 제1바이올린, 오보에, 파곳이 어우러지는 리트(lied, 가곡) 풍의 트리오가 삽입된 이 악장을 가리켜 어떤 이는 ‘구김살 없는 음악이 낳은 작은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제4악장 Presto. 축제의 클라이맥스를 나타내는 악상이 들뜬 기분을 흘러 넘치게 하면서 쾌활하게 급히 연주되고, 바이올린의 힘찬 화현은 극도의 소탈함과 떠들썩함을 유지하면서 마친다.

 


4악장 (Presto)

 

론도 형식과 소나타 형식이 교묘하게 융합된 이 악장도 빈 시절 모차르트의 완숙한 양식을 잘 보여준다. 모차르트는 이 악장을 ‘가능한 한 빠르게’ 연주하기를 바랐는데, 이 질주하는 듯한 악장은 징슈필 <후궁 탈출>에 나오는 오스민의 아리아에서 따온 제1주제와 ‘터키 풍’ 분위기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주제와 삽입구들이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흐름을 이어가다가 힘차게 마무리된다.

 

 

 

1781년 빈에 정착한 이후, 모차르트의 창작활동의 무게중심은 다분히 실용적인 이유에서 피아노 협주곡 쪽으로 옮겨지고, 교향곡 창작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여덟 살 때부터 교향곡 분야에 발을 들여 놓았던 그는 빈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40편 이상의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빈에 정주한 10년 동안에는 불과 여섯 편의 교향곡을 남겼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섯 편은 제각기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모차르트의 완숙한 교향곡 양식을 대변하며, 나아가 하이든의 작품들과 더불어 고전파 교향곡을 대표하는 걸작들로 추앙되고 있다. 일명 ‘하프너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35번 D장조는 그 중 첫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위대한 후기 교향곡 세계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이 교향곡의 탄생 과정은 무척 상세히 알려져 있는 편이다. 일단 기원은 1782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월 중순,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트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그 편지에는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 친구인 지그문트 하프너의 작위 수여식을 축하하기 위한 세레나데를 새로 작곡해서 잘츠부르크로 보내라는 요구가 담겨 있었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친구 하프너의 작위 수여식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되었다.

하지만 당시 모차르트는 얼마 전 발표해서 성공을 거둔 징슈필 <후궁 탈출>을 하르모니(Harmonie, 관악 앙상블)용 음악으로 편곡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그 요구에 곧바로 응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7월 23일에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8월 4일에는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식을 올리는 등 모차르트로서는 생애에서 가장 정신없는 나날들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따라서 모차르트는 그런 사정을 알리며 양해를 구하는 편지를 쓰는 한편, 수차례에 걸친 아버지의 독촉 편지를 받으면서 틈틈이 작곡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한 악장씩 마무리되는 대로 우편으로 아버지에게 부치는 식으로, 수 주 간에 걸쳐 새로운 미션을 완수해냈다. 비록 세레나데가 작위 수여식에서 적절히 활용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레오폴트는 아들의 신작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 신작 세레나데는 모차르트가 1776년에 작곡한 <하프너 세레나데>(K.250)와는 다른 별개의 작품이었다.

세레나데를 교향곡으로 전용하다

그런데 그 해 연말,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여름에 보냈던 세레나데의 악보를 돌려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자신이 빈에서 열게 될 콘서트의 무대에 올릴 요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레오폴트는 아들의 요청에 즉각 응하지 않았고, 모차르트는 원본이든 복사본이든 가능한 한 빨리 보내 달라는 편지를 거듭해서 띄워야 했다. 결국 2월 15일에 가서야 그는 아버지의 호의에 감사하는 편지를 쓸 수 있었는데, 그 편지에는 정신없던 와중에 급히 작곡했던 세레나데의 충실한 완성도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공연의 성공을 자신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 교향곡은 축전 음악다운 웅장하고 화려한 느낌이 특징이다.

“저의 새로운 ‘하프너 교향곡(세레나데)’은 좋은 의미에서 저를 놀라게 했어요. 왜냐하면 이 곡의 음표를 하나도 남김없이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이 곡은 틀림없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거예요.” 모차르트는 여섯(또는 다섯) 악장으로 구성돼 있던 세레나데에서 행진곡 악장과 미뉴에트 악장 하나를 제외하고, 그렇게 정리된 네 악장 중에서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에 플루트 파트와 클라리넷 파트를 추가하는 등의 손질을 가했다. 하지만 악기 편성의 변경은 총주를 보강하는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세레나데를 거의 고스란히 전용한 셈이었다.

새롭게 정리, 보강된 ‘하프너 교향곡’의 초연은 1783년 3월 23일,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모차르트 자신의 지휘로 치러졌다. 이 공연은 그의 예상대로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특히 황제인 요제프 2세가 친히 참석하여 축의금까지 하사했기에 그는 기쁨은 배가 되었다.

 

 

 

Symphony No. 35 "Haffner" in D major, K. 385

유럽의 연극이나 가극에는 연인에 대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노래하는 장면이 때때로 나온다. 그러나, 18세기의 후반이 되면 이 세레나데라는 말은 더욱 더 확대되어 다른 종류의 음악을 가리키게 되었다.

당시 유럽의 귀족이나 부호는 풍요로운 경제적 여유로 여러 가지 규모의 악단을 고용하고 축하행사나 파티 때에 그 무드를 북돋기 위한 음악을 연주시켰다. 현재로 말하자면 배경음악과 같은 것으로, 이와 같은 기회에 연주된 음악의 하나가 세레나데인 것이다. 이때 연주된 음악으로는 디베르티멘토(희유곡)나 카사치온 등도 있는데 그것들과 세레나데와의 용도나 형식상에서의 구별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음악은 대개는 그때마다 작곡되어 사용하고 버려졌다. 그와 같은 호화로운 생활에 제 정신을 잃고 있던 왕후, 귀족들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모차르트가 생애에 디베르티멘토를 20곡 이상 세레나데를 13곡 카사치온을 몇 곡 정도 작곡하였다. 그 13곡의 세레나데 중에서는 이 <하프너 세레나데>와 현악합주를 위한 <아이네 클라이네나하트 무지크>의 2곡이 가장 유명하다.

이 <하프너 세레나데>는 모차르트가 고향인 잘츠부르크에 있었던 20세 때의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일가가 친하게 지내고 있던 잘츠부르크의 명문 하프너가의 영양 마리아 엘리자베트의 혼례전야의 축하연 음악으로서 작곡된 것이다. 그런데 모차르트에게는 <하프너>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이 이 곡 이외에 또 한 곡이 있다. <교향곡 제35번>이 그것인데 이것은 <하프너 세레나데>가 쓰여진 6년 후에 하프너가의 그 당시의 주인인 지크몬트 하프너 2세가 귀족의 칭호를 받게 되었던 것을 축하하는 음악으로서 작곡된 것인데, 최초는 역시 세레나데의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후에 불필요한 악장을 제거하여 교향곡으로서 발표되었던 것이다.

이 <하프너 세레나데> 쪽은 그와 같은 화촉의 연회에 어울리는 화려함을 갖는 음악으로 한층 분위기를 돋우는 이와 같이 전아한 음악을 연회장의 한구석으로부터 흐르게 하면서 열렸던 하프너가의 혼례 축하연이 얼마나 호화스러운 것이었는가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 곡은 배경음악으로서는 대단한 규모의 대작으로 8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어 연주하는데 1시간 가까이는 넉넉히 걸린다.

오늘날 연주회에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연주되는게 보통이지만 당시에 이와 같은 곡은 적당히 분할되어 연주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훌륭한 음악을 배경으로 먹거나 얘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이 곡의 일부는 당시의 습관에 따라 바이올린 협주곡의 형상으로 쓰여져 있기도 하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9세 때부터 작곡하기 시작한 교향곡은 그 수가 50여 곡에 달한다. 작품 목록에 정식으로 자리잡은 41곡의 교향곡을 살펴보면 초기의 교향곡은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 서곡이나 전고전 시대의 J. C. 바흐의 교향곡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점차 만하임 악파와 빈 고전파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빈에 정착하기 이전인 1773년 말부터 1774년 초에 작곡된 G단조(K.183)와 A장조(K.201)에는 질풍노도 양식의 강한 감정표현이 나타난다. 주제의 통일과 형식의 확장은 이미 고전양식에 숙달되었음을 보여 준다. <파리>교향곡(K.297)과 잘츠부르크에서 쓴 C장조(K.338)는 잦은 여행을 통해 얻은 성과로 보여지며 이후 빈에 정착하면서 작곡한 6개의 교향곡은 고전 교향곡의 걸작품들이다.

세레나데로 작곡된 곡을 교향곡으로 전용(轉用)한 <하프너>교향곡(K.385), 느린 서주부가 1악장에 삽입되어 하이든적(的)이라는 평을 받는 <린츠>교향곡(K.425), 서주부가 있는 3악장의 <프라하>교향곡(K.504), 그리고 모차르트 최후의 3대 교향곡 Eb장조(K.543), G단조(K.550), C장조(주피터, K.551) 등이 이 6개의 교향곡에 해당된다. 1788년, 불과 40여일 만에 작곡된 마지막 3대 교향곡은 모차르트를 대표하는 교향곡일 뿐만 아니라 고전 시대 교향곡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백조의 노래'라는 별명이 붙은 제39번 Eb장조 K.543)는 전형적인 고전주의 형식으로 하이든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우아하면서도 경쾌함이 있는 이 작품의 미뉴에트 악장은 특히 유명하다. 제40번 G단조(K.550)는 우울한 서정성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전개된다. 비극적 우아함으로 표현되는 페이소스(pathos)적인 감동은 낭만주의 음악을 예견케 한다. 제41번 C장조(K.551)는 <주피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교향곡이다. <주피터>라는 제목처럼 스케일이 크고 장려하다. 제1악장에 나타나는 목관악기의 대위선율과 제4악장의 푸가 기법은 이 작품을 화성 양식과 대위법 양식의 융합으로 이끌어 가는 모차르트의 독창적인 창작기법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