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거시기의 노래 / 서정주

경호... 2015. 7. 14. 05:52

 

 







 

        거시기의 노래 / 서정주

        팔자 사난 「거시기」가 옛날 옛적에 대국으로 조공 가는 뱃사공으로 시험 봐서 뽑히어 배타고 갔네. 삐그덕 삐그덕 창피하지만 아무렴 세때 밥도 얻어먹으며.....,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그렇지만 요만큼한 팔자에다도 바다는 잔잔키만 하지도 않아, 어디만큼 가다가는 폭풍을 만나 거 있거라 으릉대는 파도에 몰려 아무데나 뵈는 섬에 배를 대었데.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제아무리 시장한 용왕이라도 한 사람만 잡수시면 요기될 테니 제비 뽑아 누구 하나 바치고 빌자" 사공들은 작정하고 제비 뽑는데 거시기가 또 걸렸네. 불쌍한 녀석.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비는 것도 효력은 있던 때였지. 바다는 잔잔해져 배는 떠나고 거시기만 혼자서 섬에 남았네. 먹을 테면 먹어봐라 힘줄 돋우며 이왕이면 버텨보자 버티어 섰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용왕이 나와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보다 센 마귀가, 우리 식구를 다 잡아먹고, 나와 딸만 겨우 남았다. 그대는 활 잘 쏘는 화랑 아닌가? 우리 다음은 네 차례니 맘대로 해라 "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거시기는 이판사판 생각을 했네...... "힘 안 주고 물렁물렁 먹히기보다 힘 다하다 덩그렇게 죽는 게 낫다 " 그래서 그들에게 마귀가 오자 젖먹이 힘 다해서 활줄 당겼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그럭허면 맞힐 수도 있기는 있지. 어째서 안 맞기만 하고 말손가? 배내기 때 힘까지 모두 합쳐서 거시가가 쏜 화살이 마귀 맞혔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그래설랑 그 상으로 용왕 딸 얻어 가슴팍에 꽃가지 끼리인 듯이 끼리고 살았다네, 오손-도손 사난 팔자 상팔자로 오손-도손 마누라도 없갔느냐, 오손-도손 거기기, 거시기, 저 거시기...... -시집 「푸르른 날」(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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