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와 빤쓰 / 손현숙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쓰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
집구석용 푸르댕댕 빤쓰는 벗어버리고
레이스팬티로 갈아입어야 한다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 두 다리에 살살 끼우면
약간 마음이 간지럽고 살이 나풀댄다
나는 다시 우아하고 예쁜 레이스공주
밖에서 느닷없이 교통사고라도 당한다면
세상에, 땡땡이 빤쓰인 채로 공개되면 어쩌나
비싼 쎄콤장치로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듯
유명 라펠라 팬티로 단단한 무장을 한다
오늘 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혹시라도 치마가 팔랑, 뒤집힌다면
나 죽어도 꽃무늬 레이스로 들키고 싶다
- 계간 <애지> 200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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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보이려는 여성의 무한 욕망과 그 표출의 과정이 남성으로선 매우 흥미로운데 여성에겐 ‘집구석용 땡땡이 물무늬 빤스’와 ‘레이스 팬티’ 사이에서 겪는 이중성의 혼란이 크다. 사람은 누구나 집 밖으로 나가면 집안에서의 헐렁한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을 가진다. 전업주부뿐 아니라 출근하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인정받으며 각광 받기를 원하고 알짜배기 내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내적 갈망에 불이 지펴지고 쉽사리 ‘아줌마’로 불리어지는 걸 용인하지 않으려 한다. 대책 없이 떠밀려 저만치 관심 밖으로 나가떨어져도 마음만은 늘 싱그럽다. 하지만 속절없이 나이가 들고 있다는 여러 징후가 얼굴과 근육과 체력 등에서 나타나며 몸의 변화가 감지된다. 많은 여성들이 나이 사십이 되는 것을 그토록 거부하며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언젠가 외화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여주인공 ‘브리’가 별거 중인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 입었던 ‘라벨라’ 팬티가 방영 직후 온라인 쇼핑몰에 주문과 문의가 쇄도했었다. ‘롤즈로이즈’가 아무나 탈 수 있는 차가 아니듯이 특별히 선택된 사람만이 착용 가능하다는 광고도 눈길을 끌었다. 자세히 볼 기회가 없어 잘은 모르지만 그 ‘팬티’가 하늘하늘하고 매끄러운 촉감으로 맵시와 섹시를 돕는 기능 말고도 ‘쎄콤장치로 만약의 위험에 대비’도 된다는 걸 보면 꽤나 꽉 조이는 물건인 것 같다. 허투루 터럭 하나 삐져나올 것 같지 않다.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의 지하철 통풍구 바람은 위기이면서 기회다. 이 때 펄럭이는 치마 속 ‘꽃무늬 레이스로 들키고’ 싶은 중년여성이라면 15만 원짜리 ‘팬티’의 호사도 누려볼만하다. 이보다 더 화려할 순 없을 만큼 화려해지는 속옷 패션엔 다 이유가 있다.
ACT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