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산책]/한국화,동양화

조선 후기 아회(雅會)의 멋과 풍류 / 옛 그림에서 보는 민속문화

경호... 2015. 7. 4. 03:10

 

 

옛 그림에서 보는 민속문화

 

조선 후기 아회(雅會)의 멋과 풍류

 

김홍도의<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와 이인문의<송석원시회도(松石園詩會圖)>

 

본격적인 여름. 요즘 들어 나도 모르게 서울 인왕산을 자주 오르내리게 된다. 아마 그림 때문이리라. 한동안 인왕산의 육중한 바위를 볼 때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생각났었다. 그런데 인왕산 여름
숲을 오르내리다보니 더 자주 떠오르는 옛 그림이 있다.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년 이후)의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와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古松流水館道人 李寅文, 1745∼1821)의 <송석원시회도(松石園詩會圖)>다.

 

 

이인문, <송석원시회도>, 1791년, 종이에 담채, 25.6×31.8cm, 개인소장

 

이인문, <송석원시회도>,  부분

 

 

그림을 들여다보니, 경치 좋은 어딘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인왕산 자락 천수경(千壽慶, ?~1818)이라는 사람의 집 송석원(松石園)에서 있었던 시모임[詩會]을 운치 있게 묘사한 작품들이다. 같은 날 열린 시모임을 두
고 이인문은 낮 모습을 그렸고 김홍도는 밤 풍경을 그렸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수백 년 전 인왕산 계곡에서 어떤 풍류를 즐겼을까? 이들 그림을 볼 때마다 그런 궁금증을 가져 본다.

 

조선 후기 그러니까 18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중인계층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이 많았다. 모여서 시를 짓고 학문과 예술을 논하는 시회(詩會)였다. 이런 모임을 특히 아회(雅會)라 불렀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임도 아회 가운데 하나인 옥계시사(玉溪詩社)의 만남의 모습이다. 옥계시사는 1786년 중인계층의 문화예술인들이 결성한 여항문학(閭巷文學) 단체였다. 옥계는 인왕산 자락의 옥류동(玉流洞) 계
곡으로, 중인 계층이 많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옥계시사는 중심인물이었던 천수경의 집 송석원에서 주로 모임을 열었기 때문에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라고 부르기도 한다. 천수경은 서당의 훈장 노릇을 했던 중인 출신 시인이었다. 천수경은 인왕산 옥류천 위에 소나무와 바위를 벗하여 초가를 짓고 송석원이라 이름 붙였다.

 

아회(雅會)! 이름부터 좋다. 아(雅)는 음악에서 유래했지만 문학예술 전반에서 담백과 절제의 미학으로 여겨 왔다. 따라서 아회는 속(俗)하지 않은 풍류의 모임이라 할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모여 낮이면 낮, 밤이면 밤, 담백한 시모임을 가졌다. 문학모임, 문화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임을 마친 뒤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옥계시사는 “동인들의 모임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이야깃거리로 삼는다.”라는 규약을 만들기도 했다.
김홍도의 <송석원시사야연도>와 이인문의 <송석원시회도>는 옥계시사의 모임을 그린 아회도(雅會圖)다. 1791년 여름, 옥계사의 일부 동인들이 인왕산 송석원 근처 계곡을 유람했다. 이 계곡을 유람한 뒤 낮부터 밤까지 시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그때 글들을 모아 『옥계청유첩(玉溪淸遊帖)』이라는 시첩을 남겼다.

옥계청유, 그 이름이 투명하게 다가온다. 김홍도와 이인문의 두 그림은 이 시첩에 들어 있는 것이다.

 

김홍도, <송석원시사야연도>, [ 松石園詩社夜宴圖 ] 1791년, 종이에 담채, 30.5×40cm, 개인소장

 

김홍도, <송석원시사야연도>,  부분.

 

 

김홍도와 이인문은 옥계시사의 회원이 아니다. 그러니 이들은 이날 모임에 초대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그림을 그린 것일까? 아마 수년 뒤 옥계시사 동인의 부탁을 받고 두 사람이 이들 작품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많다.

 

하여튼 김홍도와 이인문은 옥계청류의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실물을 본 것보다 더 멋지게 그린 것 같다.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화원이었고 또한 동갑내기 절친한 친구였다. 이들 역시 인왕산을 오르내렸을 테니, 멋진 옥계청류 아회도를 그릴 수 있었다.

 

김홍도의 <송석원시사야연도>엔 보름달이 뜬 한밤 어느 집 마당에 둘러 앉은 옥계시사 동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바르게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비스듬히 누운 사람도 있다. 그 옆에 술상, 술병, 촛대가 있다. 한 잔 마시고 인왕산의 달빛에 한 번 더 취하는 옥계시사 동인들.

 

이 그림엔 보름달 아래 인왕산의 아취가 가득하다. 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김홍도는 먹을 흐리게 풀어서 썼다. 그래서 달빛이 몽롱하게 쏟아지는 듯하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집과 나무 주변은 은근하게 여백으로 처리했다. 그 여백은 몽롱하다. 둥근 달을 보니, 달빛이 주변으로 번져나간다. 화면은 달빛에 푹 젖어내리고 있다.

 

이인문의 <송석원시회도>는 인왕산 계곡 커다란 바위 밑에서의 시회를 그렸다.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김홍도의 <송석원시사야연도>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절벽 아래 시회를 갖는 동인들의 모습에 생동감이 있다.
‘松石園’이라는 글씨를 선명하게 표현해 화면에 힘을 주었다. 그림은 시원하게 펼쳐지며 화면을 꽉 채웠다. 여름 인왕산 옥계청류의 분위기가 화면 전체에 싱그러운 바람처럼 불어온다.

 

김홍도의 그림이 몽롱하다면 이인문의 그림은 시원하다. 김홍도의 그림이 여백이 많다면 이인문의 그림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지나간다. 김홍도의 그림은 밤 분위기스럽고 이인문의 그림은 낮 분위기스럽다.

 

두 사람이 논의하고 이렇게 그린 것일까? 그럴 수 있다. 이인문이 <송석원시회도>에 “단원의 집에서 그린다[寫於檀園所].”라고 써넣은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이 그림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수 있다.

 

두 사람의 그림을 보니 1791년 여름 송석원시사의 옥계청류 시회는 매우 조촐하고 담백했던 것 같다. 밤의 시회가 몽롱하긴 해도 소박한 술상 하나 있을 뿐, 별다른 치장은 없다. 낭만적이지만 역시 검약과 담백함이 있다.
김홍도와 이인문의 두 그림을 보면 인물 표현은 매우 간결하다. 얼굴 형태만 있고 이목구비가 없다. 손이나 옷 주름도 없다. 쓱쓱 시원하게 동세(動勢)의 특징만 살려냈다. 김홍도와 이인문의 옥계시사 아회도는 개별적인 인물 한 명 한 명을 부각시킨 것이 아니다. 인물보다 인왕산의 풍광이 더 중요했던 것 아닐까? 그게 옥계청류의 진정한 풍류였던 셈이다.
종종 인왕산을 주유(周遊)하지만 이 두 그림을 보고 또 보고서야 그 진정한 멋을 알게 되었다. 옛사람들의 아회를 생각하며 달빛 좋은 여름 어느날, 인왕산 자락을 거닐고 싶다.

 

 

글˚이광표 (동아일보 기자)

 

 

Korea Cultural Heritage Foundation
July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