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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涅槃宗要』에 나타난 和會의 세계

경호... 2015. 7. 1. 02:35

『涅槃宗要』에 나타난 和會의 세계

 

김영태

 

 

내용차례

Ⅰ. 論考의 의도와 『涅槃經종요』

   1. 和會를 주제로 삼은 까닭

   2. 『涅槃宗要』의 大綱

Ⅱ. 和諍의 실제

   1. 和百家異諍과 和諍

   2. 異諍의 實例

   3. 異說에 대한 和解

Ⅲ. 會通의 진실

   1. 通解

   2. 會明

     1)會義同

     2)佛性論의 會通

   3. 會通에 의해 和解의 세계는 이루어진다.

 

 

이 글의 앞머리에 내세운 '『涅槃經宗要,에 나타난 和會의 세계'라는 제목 그대로, 여기에서 원효의 涅槃經宗要를 통해 볼 수 있는 和諍 會通의 論理세계를 고찰해 보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 論題에서의 '和會의 세계'란 聖師元曉 가 和諍과 會通, 곧 和會의 論理를 통해 밝혀 주고 있는 『열반경』,에 일관된 진리 체계라고 할 수가 있다.

 

물론 여기서의 和會란 和諍과 會通을 줄인 말로서 각각 그 첫 글자를 따서 합친 약칭이다. 그러나 실은 이 『涅槃宗要,에서는 和諍門1)이나 會通門2)이라는 항목 이름은 보이고 있어도 和會라는 말을 쓴 예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다른 현존 저서에서 '和會'라고 쓴 예를 더러 볼 수가 있다.

 

화회란 말을 쓰고있는 그의 현존 저서들에는 거의 모두가 '... 云(如)何和會 ..."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단지 十門和諍論,에서만 "如理會通 如實和會"로 보이고 있다. 이들 和會의 두 글자가 쓰인 경우의 글에는 (十門和諍論,을 제외하 고는 모두 다 서로 다른 견해나 經說을 든 다음에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을 어떻게 화회할 것인가? (如是相違 云何和會)"4)라고 한 다음에 "解云'5) 이라 하여 간략하게 그 문제점을 합리적으로 잘 조화시켜서 풀이(解答)하고 있다.

 

그러나 그 和會에 따른 풀이 말(解云, 또는 答)은 상당히 개괄적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화쟁' 이나 會通' 을 항목화하고 있는 열반宗要에서는 그 화쟁 과 會通이 매우 구체적이고도 논리 정연하게 잘 드러나 있다.

앞쪽에서 잠시 언 급되었지만 이 『涅槃宗要』,에는 ‘和諍門'과 會通門' 이 각각 한 항목씩 들어 있기는 하나 일부분에 치우쳐 있는 작은 항목일 뿐이며, 실은 전편에 결쳐 화쟁과 회통의 논법이 펼쳐져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동국대 불교학과 명예교수

1) 『涅槃宗要』 廣開分別 제2 明敎宗,1 열반문 (6)四德門의 네번째 和諍門(『한국불교전서』 第1책. p533上).

2) 위 『宗要』 明敎宗, 2 佛性義門의 여섯 번 째 會通聞(위와 같은 책, p.537下 및 p.543下 會通).

3) 『本業經疏』 卷下(『韓佛全』 1책, p.521하) 『彌勒上生經宗要』(위와 같은 책, p.550下와 551下 두 군데). 『金剛三昧經論』 卷下(위의 책, p.663상)

4) 『本業經疏』에서만은 “如是論文與此經違 如何和會”라고 하였다.

5) 모두가 和會 밑에 “解云”이라 하였는데, 오직 『起信論疏』한 군데만 “答”이라 있다. 그래서 “云何(如何)” 和會밑의 解云은 해답과 같은 뜻으로 볼 수가 있겠다는 것이다.

 

 

'和諍門'은 이 『宗要』의 전체 과목에 있어서 서론(大意門)과 본론(廣開分別 門)으로 크게 나뉜 것 중에서 두번째 문인 廣開분별' 의 내 가지 무문(說因緣 . 明敎宗. 出經體. 변敎迹) 가운데의 다시 두 번째가 되는 '明敎宗' (第二 辨敎 宗)의 두 부문(涅槃門. 佛性門) 중에서 첫 번째인 '涅槃門'의 여섯가지(六義門, 名義 體相. 通局. 二滅. 三事. 四德) 중 마지막 '四德門' 의 略門분별 네 가 지(顯相?立意?差別?和諍) 가운데 가장 끄트머리 결론부분에 해당된다.

科分 이름으로는 '四 和諍門'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그 부분의 서술에서는 次第四 明和相諍論' 이라 하고 있다. 즉 '다음 네 번째는 서로의 쟁론 화해하는 것을 밝힘' 이라 한 것인데, 여기에서 는 和諍의 뜻을 '和相諍論', 곧 '서로의 다른 주 장(諍論)을 화해하는 곳'으로 풀이하고 있음을 보게된다고 하겠다.

 

'會通門' 역시 큰 분류 '廣誾分別' 중의 두번째인 '明敎宗'의 涅槃門 다음에 자리 한 제2 佛性門에서 여섯번째(出體. 因果. 見性. 有無. 三世. 會通)에 해 당하는 끝부분이다. 和諍門과는 달리 이 會通門은 다시 '通文異' 와 會義同 '의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이 회통문은 글자 그대로 佛性論의 결론일 뿐만 아니고 열반論을 포함한 '明敎宗門' 전체의 결론이기도 하다고 할 수가 있다.

 

그와 같이 항목화 되어 있는 和諍과 會通은 각각 그 부분(涅槃門과 佛性門)의 결론격임을 알게 된다. 즉 和諍門은 涅槃論의 결론에 해당하는 항목의 이름이며, 會通門은 佛性論의 결론이면서도 '明敎宗門' 전체를 결론짓고 있는 항목명 으로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다루려고 하는 和諍과 會通의 주된 문제는 분과된 부분의 소항목 이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涅槃宗要』 전체에 일관된 하나의 전리체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 聖師 원효 특유의 實證的 논리세계 그 자체의 究明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도에서 이 논고에서는 먼저 『涅槃宗要』가 어떠한 저술인가를 간략 하게 보고, 다음에 和諍의 논리를 (1) 異諍, (2) 和解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며, 세 번째에서 會通의 論法을 通解와 會明의 두 갈래로 나누어 고찰할 생각이다. 그리하여 원효성사의 독특한 總和統一理念이라고도 할 수 있는 和諍會通, 곧 화회의 논리체계를 이 『涅槃宗要』의 범위 안에서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다.

 

 

2. 『涅槃經宗要』의 大剛

 

원효의 현존 다섯 가지(『大慧度經』, 『法華經』. 『涅槃經』, 『無量壽經』 『彌 勒士生經』) 宗要 가운데서 이 『涅槃宗要』가 가장 분량이 많다. 현재 『韓國佛敎 全書,의 수록 面數로 비교해 보면 『大慧度經宗要』 8면, 『法華宗要』가 7면 남짓, 『上生經宗要』가 6면에 약간 못미치고, 『無量壽宗要』가 9면인데, 『涅槃宗要』는 23면이 님는다. 그러므로 『大慧度經宗要』보다는 3배. 『法華宗要』보다는 3배가 넘고, 『上生經宗要』보다는 거의 네 갑절에 가까울만큼 그 부피가 많다고 할 수가 있다.

 

비단 宗要類만이 아니고 그의 현존저서 전체를 통해서 도 단권 저술로는 분량 면에서 적은 편이 아니니, 本未 2권으로 전해져 오는 그의 『起信論別記』가 20면 남짓(『韓佛全書』 面數)한 것을 견주어서 도 짐 작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r新編제宗敎藏總錄,6)에서 2권이라 하고는 그 밑에 '혹은 1권' 이라 註를 붙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당시 필사본으로는 분량이 많은 편이라 편의상 두 책으로 나누기도 하였으나 실제로는 그 내용에 있어서 한 권이 었으므로, 2권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1권이라고도 하였던 것이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이 『宗要』,가 所依로 삼은 『涅槃經』은 본래 『大般涅槃經』이 그 갖춘 이름이며 줄여서 『涅槃經』이라고 일컫는데, 실은 十乘계통의(阿含部) 경전에도 똑 같은 이름의 『涅槃經』이 있으므로8) 그와 구분해서 大乘 『涅槃經』, 또는 『大涅槃經』,이라 한다. 물론 여기에서의 『涅槃經』은 대승 『涅槃經』,의 약칭이 된다.

 

대승의 『涅槃經』은 일찍이 東晋의 法顯(339-420?)이 『大般尼환經一 6권을 번역하였으나 일부분의 번역이었으며, 北凉 때의 曇無讖(385-437)이 玄始 10년 (421)에 번역을 마친 大반열반경 40권이 완전한 번역인 셈이다. 이 40권 『涅槃經』,이 南朝에 전해지자 慧嚴(303-443)과 慧觀. 謝靈運 등이 이미 南朝에 번역 되어 있는 6권 『니환경』을 토대로 40권의 『열반경』을 손질하여 36권의 경전을 완성시켰는데(436), 이를 南本이라 하며 暈無讖 번역의 40권 經을 北本이라고 한다.

 

6) 義天錄, 『신편제종교장총록』 권1, ?대열반경? 조(『대정장) 55, p.1168 중). “宗要 二卷亦一卷 元曉述“.

7) 拙著, 『韓國佛敎 古典名著의 世界』 (民族史, 1995), p.24

8) 『長阿含經』 제2 ?流行經?의 異譯으로 『大般涅槃經』 3권(東晉 法顯 역)이 있으며, 대승 『涅槃經』의 부분 異譯인 『불교대반니환경』(法顯 譯). 『방등반니환경』(西晉 竺法護 譯)과 비슷한 이름의 소승 『涅槃經』으로 『불교니환경』(西晉 白法祖譯)『반니환경』(失譯) 등이 있다.

 

 

원효의 이 『涅槃宗要』,는 南本 38권 『涅槃經』을 저본으로 삼아 저술하였다. 이 『宗要』,는 제목 그대로 『대열반경』의 중요한 宗體와 敎迹 등을 간요하게 논석한 것이다. 전체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먼저 大意를 略述(一者 略述大意)하였으며, 다음에 넓게(자세하게) 열고 분별(三者 廣開分別)하여 풀이하였다.

 

첫째 門의 '述大意' 에서는 "본디 열반의 道라고 하는 것은 道가 없으면서도 도 아님이 없다" 로 시작하여, 『大涅槃經』, 곧 『大慧度經』의 제목 풀이에 이르기 까지 간략하면서도 매우 깊이 있게 그 경설의 요의를 서술하였다.

 

둘째 문인 廣開分別에서는 4부문(사문)으로 나누어, 먼지 經을 설하는 인연을 설명(初說因緣)하고, 다음에 經敎의 宗旨를 밝히며(次明敎宗), 세 번째에서 경 의 敎體를 드러내고(三 出經體), 네번째에서 敎這을 분변(四 辨敎迹)하고 있다.

 

원효는 특히 두번째 문인 경敎의 宗旨를 밝힘(辨明敎宗)에서 다시 열반門과 佛 '性門의 두 부문으로 나누어 그 經宗을 자세히 밝혀 놓았다.

 

열반의 義를 밝힘에 있어서는 包義. 體相. 通局. 二滅. 三事. 四德의 6門으나누었다.

佛性의 義를 밝히는 데에도 또한 여섯 문으로 나누어, 出體. 因果 . 見性. 有無. 三世. 會逋의 문으로 하고 있다.

 

이들 열반과 불성의 두 부분이 『宗要』 전체의 분류로 볼 때에는 제2 廣開分別 속의 4문 중 두번째인 明(辨)敎宗門에 들어있는 매우 작은 항목으르 보이고 있 으나, 실은 이 두 부문에 큰 비중과 역점을 두고 있다.

각각 6문으로 나누어 종래의 異說을 和解하고 경증을 들어서 會釋疏通으로써 열반과 佛性의 참뜻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하였다. 여기서 들어있는 이 두 부문이야 말로 성사원효의 涅槃觀과 佛性觀을 잘 보여주고 있는 훌륭한 두 편의 논문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涅槃經』의 敎體를 밝힘에 있어서는 먼저 이部를 서술하고. 다음에 大乘을 드러내었다.

 

마지막으로 敎迹을 밝히면서 南上(중국 南朝)의 학자들(제사) 사이에 전해졌던 五時敎와, 북방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四宗說을 각각 들어서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涅槃宗要』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게하고자 이 저술 안에 짜여져 있 는 과목一만을 따로 정리하여 다음에서와 같이 옮겨보기로 한다.

 

 

1. 述大意門

 

Ⅱ. 廣開分別門

 

1. 說因緣9)

2. 明敎宗10)

   總說11)

1) 涅槃門12)

   (1) 名義門 ① 飜名 ② 釋義

   (2) 體相門 ① 出體性 ② 簡虛實

   (3) 通局門 ① 小乘 ② 大乘

   (4) 二滅門 ① 明性淨方便壞 ② 현有餘無餘涅槃

   (5) 三事門 ① 出體相 ② 明建立 ③ 明總別 ④ 往復

   (6) 四德門 ① 顯相門 ② 立意門14) ③ 差別門 ④ 和誼門15)

2) 佛性門16)

   (1) 出體門 ① 序제說 ② 判是非

   (2) 囚果門 (總別. 通論)17)

   (3) 見性門

   (4) 有無門 ① 就聖位 ② 約凡位

   (5) 三世門 ① 就法身 ② 約報佛

   (6) 會通門 ① 通文異 ② 會義同

3) 出經體18)(先敍異部 後顯大乘)

4) 辨敎迹)(南土. 北方諸師說, 淺深略判)

 

9) 앞의 분류제목은 '初說인연' 인데. 본문의 실제 서술에는 '제일說경인연문'으로 하고 있다.

10) 이 역시 부문 앞에 목차로 들고 있는 제목은 '明敎宗'이나, 서술 本文쏙에는 '第二 辨敎宗' 으로 피어 있으며, 이 부문의 맨 끄트머리에는 '제2廣經宗竟' 이라 맺고 있다.

11) 이 明敎宗門은 처음에 분류 없이 서술이 시작되어 있으나 실은 涅槃門과 佛性門으로 분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이 부분을 總說이라 일컫고 있다. 그리고 涅槃門門 다웁의 불성문을 제 二로 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이 總說은 분류번호가 없기 때문에 번호를 들이지 않고 그냥 總說이라고만 하였다.

12) 이 涅槃門門도 서술에 있어서는 차례의 표시나 따로 제목올 들지 않고 마로 '涅槃之義 六門 分別' 이라 시작되어 있다.

13) 三事門의 네번째 往復온 본문에서 '第四 往復決擇門' 이라 하였다.

14) 四德門의 두번 째인 立意門도 그 본문에서 '第二 明其立四意者' 라 하였다'

15) '四 和諍門' 도 본문에서는 '次第四 明相相諍論' 이라 하고 있다.

16) 본문에서는 '第二 明佛性意義' 라 제목을 들고 그 다음에 '佛性之義 六門分別' 이라 시작하였다.

17) 전혀 분류가 되어있지 않으나 그 내용에서 總. 別. 通으로 서술되어 있으므로 괄호처리 를 하였다. 이 아래의 번호 없는 괄호처리 경우도 이 예와 같다.

18) 本文 안에서는 '제二 明敎體' 라 하였다.

 

 

Ⅱ. 和諍의 실제

 

1. 和百家異諍과 화쟁

 

大覺國師 義天(1055-1101)은 ?祭芬皇寺曉聖文」 에서 元曉聖師를 가리켜 "수많은 異諍의 극단을 화해하여 일대 至公의 正論을 얻었다(和白家異諍之端 得一代至公之論)"20)라고 하였다.

그리고 같은 高麗代이면서도 좀 후대의 인물인 河千旦이 쓴 「海東宗僧統官 誥」21)에서는 "원효스님이 新羅 때에 특출하여 百家의 다른 주장을 화해하였으며, 두 갈래 의 법문')을 합하여 하나로 돌아가게 하였다(...曉公 誕生羅代(和百家之異諍 合二門之同歸)"라고 하였다.

 

19) 本文에서 는 '第四 明敎迹'이다.

20) r대각국사문집』 권16,6장 앞면.(建國大學校 출판부.1974년, 영인본).

21) 『東文選』卷27, 制誥'(고서간행회본, p.38).

22) 여기에서 '두 갈래의 법문'으로 옮겨본 이 '二門'은 官誥릍 쓴 당시 고려의 사정으로 미 루어)禪門. 敎門이 아닌가 싶다.

朴鍾鴻박사는 이 二門으로 신라 見登의 r기신론동이략집』 卷上에서 원효의 『화쟁론』을 인용한 '生起之門'과 '歸原之門'을 들고, 또 『涅槃經宗要』에서의 '成萬德門'과 '歸 '心. 門' 을 들고 있다.(朴鍾鴻全集』 , p.115). 말하자면 朴박사는 두 가지의 二門을 들고 었 어서 이 '官誥' 의 二門이 어느 二門을 가리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國譯 東文選』 (民族文化推進會,1968) p.205의 註 92에서는 는 二門은 불교에서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 서는 먼저 自力門과 他力門이라 하여 두자"라고 하였다.

 

 

앞의 「祭芬皇曉聖文」에서는 "和百家異諍之端", 곧 百家 異諍의 端을 和하 였다' 고 하였는데, 이 官誥' 에는 "和百家之異諍", 곧 '百家의 異諍을 화하다' 로 되어 있다. 端이 있고 없는 차이는 있으나 이 두 글의 뜻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같은 高麗의 15대 숙종이 그 6년(1101)에 詔를 내려 신라 聖僧 元曉와 義湘에게 각각 시호를 追贈하고 婢石을 세워 기리게 하였을 때 원효를 '元曉大聖和靜國師' 라고 하였는데,23) 여기서의 和諍4)도 실은 和百家異諍을 줄 인 和諍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한 사실들을 미루어 보아 高麗 때에는 和諍 (和百家異諍)이 성사원효의 업적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용어로, 또는 그의 대명 사처럼 쓰여져 왔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의 많은 저서들이 다 흩어지고 교학의 자취가 거의 사라지기에 이르렀는데,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웃 日本에서는 20종에 가까운 그의 저술을 보존하고 또 소중하게 여겨왔었다.

그 영향으로 근래에 이르러 우리 학계에서도 현대적 연구방법에 의한 원효학연구가 눈을 뜨기 시작하였는데, 그 최초의 연구자가 趙明基박사 (1905-1988)라고 할 수 있다.25)

 

그로부터 근자에 원효의 현존저서가 번역이 되고 깊이 있는 論著가 간행 발표 되면서 활발한 연구가 전개되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성사 원효의 학문적 成果가 재평가되고 또 그 敎學이 현대적 각도에서 定立되어져야 한다는 소리들이 높아 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특히 和諍이 원효의 중심사상으로 이해되어 많은 학자들의 연구 촛점이 집중되기도 하였다고 할 수가 있는데, 그 중에는 화쟁을 元曉思想의 귀착점 이요 그 思想的 핵심이라고 까지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26)

 

23) 『高麗史』?世家?卷11 30장, 肅宗 6년8월 癸巳(아세아문화사, 1990 영인본上, p.234下)

24) 여기서의 ‘靜’은 ‘諍’의 誤字라기 보다는 ‘靜’자의 뜻 가운데에 ‘諫’하다는 뜻이 있어서 이 諫할 諍자와 같은 뜻의 글자로 쓴 듯하다.

25) 趙明基박사는 일찍이 발표한 ?원효종사의 십문화쟁론?(?금강저? 22호 1937년)을 비롯하 여, ?원효의 여성관?(『불교』)신 28호, 1940), ?원효의 화쟁?, ?원효의 근본사상?(『신라불교 의 이념과 역사』, 新太陽社, 1962), ?원효사상의 특질?(『한국사상논총』) 1, 1980) 등의 논문 이 있으며, 최초로 『원효대사전집』10책을 편집하여 1949년에 자비로 출판한 바 있다.

26) 李種益 著, 『元曉의 根本思想: 十門和諍論硏究』(東方思想硏究院, 1977), pp.11-12.

"그 사상의 귀착점은 和諍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元曉의 사상적 핵심이 和諍에 있다...”

 

 

그리고 또 『十門和諍論』을 元曉의 가장 대표되는 저술로 보는 한자들은 모두 하나 같이 원효의 사상을 和諍思想이라고들 일컫는다. 『十門和諍論』이 현재 극히 일부분만이 불완전한 상태로 전해져 있기때문에 학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和諍이란 용어의 사례 근거로 大覺國師의 '和百家異開之端', 또는 官誥의 '和百家之異諍'을 곧잘 든다. 즉 和諍이라는 말은 '百家의 異諍을 和한다' 는 뜻으로 諍은 百가의 이諍을 줄여쓴 말이라는 것이다.

 

논문의 소항목을 '和諍의 論理' 라고 이름 붙인 朴種鴻박사는 그 본문에서, "그리하여 오랜 동안 矛盾相爭하던 차에 百家의 異言爭을 화합하여 서로 다른 견해 를 귀일시킨 것이 바로 元曉의 사상의 가장 기본적인 특색이다"27)라고 하였고 또 "그러면 원효의 이러한 和諍思想의 논리석 가능 근거는 무엇인가. 佛敎衆典 의 부분을 통합하면 萬流가 一味이며 佛意의 至公無私함을 전개하면 百家의 異諍이 그대로 살려져 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28)라고 하였다.

 

李踵益박사도 그의 논문'29)에서 高麗 肅宗이 追贈하였다는 '元曉大聖和諍國 師' 의 시호 사실과, 「大覺國師文集』의 「祭芬皇寺曉聖文」(和百家暴諍之端得一 代至公之謚을 중심으로 하는 본문)을 비롯한 원효관계의 글들 및 "爰及曉公挺 生羅代 和百家之異諍 合二門之同歸"의 글이 들어있는 『東文選』의 '海東宗僧統 官誥' 내용을 원문 그대로 옮긴 다음, "...라고 한 것도 海東宗에서는 원효의 和諍思想을 전승함을 그 宗骨로 삼았던 것이다. 이렇게 원효라면 和諍,思想을 빼놓고 따로 존재할 수 없었다"라고 하 여, 和諍思想은 원효 그 자체요 전부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실은 오늘날 聖師 원효의 핵심 사상을 和諍思想으로 보는 경향은 비단 전문 학자들만이 아니고 거의 일반상식처럼 되어있다고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화 諍의 풀이말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和百家異諍이라는 말이 앞에서 본 바와 각 이 高麗의 大覺國師와 '官誥'에 聖師元曉를 칭송한 말(和百家異諍之端. 和百家之異諍)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알고 보면 元曉를 讚美한 말로 되어 있는 이 和百家異諍이란 숙어는 원효 스스로의 글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論考 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대상이면서도 주된 논거인 『涅槃宗要』의 첫 번째 문 이 되는 '述大意' 에서 그는 『大涅槃經』,을 가리켜, "지금 이 경전은 바로 불법의 큰 바다이며 방광 평등의 신비로운 寶藏이니 (今是經者 斯乃佛法之大海 方等之秘藏),...... 여러 경전들의 부분을 통섭하고 모든 敎說의 흐름을 (열반의) 한 맛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부처님의 뜻이 지 극히 공정함을 열어 보이시어 수많은 다른 주장을 화회하였다(統衆典之部分 歸 萬流立一味 開佛意之至公 和百家之異諍)"라고 하였다.

 

"지금 이 경전은(今是經者)'이라는 가리킴 말(指示詞)이 없더라도 이 글의 이 부분이 『大涅槃經』을 簡要하게 밝혀 칭송 찬양(稱楊)한 내용임을 알 수가 있다. 여기에서 문제로 삼고자하는 대목은 곧 "여러 경전(그 때까지 부처님이 설하신 衆典)의 부분들(部分說)을 통섭하였 고, 모든 교설의 부분(萬流)을 하나의 진리 세계(一味)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지극히 公正한 부처님의 뜻을 열어 보였고 백가의 異諍을 화회하였다" 는 부분인데, 특히 맨 끝의 "수많은 학설들, 곧 각기 다른 주장(百家異諍)을 화 회하였다"는 것이 여기에서 의 촛점이 된다.

 

뜻으로가 아니고 글자 그대로 和百家之異諍'이라는 글귀는 현존 元曉의 저술 중에서 오직 『涅槃宗要』의 이 대목에서만 보게된다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大覺國師의 '和百家異諍之端' 이나, 官誥에서의 '和百家之異諍' 이라는 말은 바로 元曉의 이 글귀에 근거한 것으로 불 수가 있다. 원효를 찬탄한 말로 또는 聖師 원효의 교학(사상적) 업적을 칭송한 표현으로 전해져 온 '和百家異諍'은 실은 원효가 그의 『涅槃宗要』에서 『大涅槃經』,의 특성을 밝혀 찬양(頌讚)한 귀 절에서 이끌어온 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원효의 『涅槃經』觀頌句 (統衆典之部分 歸萬流之一味 開佛 가리켜 和諍'의 意義를 명확하게 하고 있는 말,')) '和諍思想의 논리적 가능 근거'31), '和諍思想의 원리'32)라고 한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가 『涅槃宗要』에 그 말이 들어있다고 인용하면서, 그 글귀가 열반 經,의 특성을 밝혀 칭송한 말이라는 사실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다만 원효 자신이 스스로를 드러낸 말인 것처럼 和諍사상의 原理이며, 그 논리적 가능 근거이고, 또한 화쟁의 意義를 명확하게 하고있는 말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글귀는 분명히 원효가 한 말이지만 원효 자신의 사상을 드러낸 말이 아니고 '佛法之大海이며 方等之秘藏인 『涅槃經』이 衆典의 부분을 統攝하여 萬流를 一味 로 돌아가게 하며 佛意의 至公임을 열어서 百家의 異諍을 和解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 놓았을 따름이다.

 

聖師 元曉에게는 『十門和諍論』이 있지만 이 『涅槃宗要』에는 '和諍門' 이라는 작은 항목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전편에 걸쳐 어떤 문제를 해석함에 있어서 異說 이 있을 경우에는 그 異說 견해들을 열거하고는 그에 대한 비판을 가하여 각각 다른 주장들을 하나의 진리세계에로 돌아가게 하고 있다. 그와 같이 각각의 견 해와 주장들이 대립되어 있는 상태를 異諍, 또는 諍이라 하며, 그 견해 주장들 (異說. 異諍)을 調和 歸一시키는 것을 和解, 또는 화라고 하여 이를 和(解)(其) 譯이라 하는 것이므로, 비단 화쟁이라는 명목이 붙어 있지 않더라도 이 『宗要』의 여러 군데에서 和諍의 論法을 보게된다.

 

그래서 『涅槃宗要』의 전편을 통하여 和諍의 論法이 펼쳐진 실제형태의 몇가지 典型的 사례를 들어서 實證的으로 확인해 보려고 한다. 和諍은 和解와 異 諍, 곧 異諍을 화해하는 이중구조로 되어있으므로 여기서는 따로따로 나누어서 살펴볼 생각이다.

한문의 순서는 화(解)(異)諍이지만 우리 말의 語法 차례 에 따라 異諍을 먼저 보고 다음에 화해를 보기로 한다.

 

27) 『박종홍전집』, Ⅳ ?불교사상? ?원효의 철학사상?『한국사상사』형설출판사 1980, p.115

28) 위의 책 p.116

29) 앞의 註 26과 같은 책 pp.12-13

30) 鎌田茂雄, ?十門和諍論思想史白,意義?(『佛敎學』 11號, 일본불교학연구회,1981), p.2.

31) 앞 註28과 같음.

32) 앞 註26과 같음.

 

 

다른 견해 또는 여러가지 서로 다른 주장이나 학설을 異諍이라고 한다. 和諍 이라 할 때의 諍은 바로 이 異諍을 줄인 말이다.

 

흔히 諍을 말다툼할 諍자로 보기때문에 異諍을 각기 다른 주장을 가지고 말 싸움(論爭)하는 것으로들 보는 듯 하다. 그런 까닭으로 ?高仙寺 元曉碑」33)의 殘 편에 『十門和諍論』이 언급된 부분34)에서 "空空의 論이 구름 오가듯 하여 혹은 내가 옳다하고 다른 이는 옳지 않다고 하며, 혹은 나는 그러하고 남은 그러하지 않다고 하여 드디어 河漢(같은 논란) 이 이루어지게 되었다(...空空之論雲奔 或言我시 言池不是 或說我然 說他不然 遂成河漢矣)." 라고 한 것을 異諍史實의 실제적 근거로 보는 경향들이 없지가 않다.

단순히 나는 옳고 남은 옳지 않으며 나는 그러하고 남은 그러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논 쟁으로 볼 수가 있겠지만, 佛說 經敎의 해석 이 각각 다른 것을 일컬을 경우에는 서로 다툼질 하는 論爭이라기 보다는 각자의 견해와 해석이 다른 論과 諍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 원효의 저술, 특히 이 『涅槃宗要』에 보면 異諍은 서로 다른 말싸움으로 보이고 있지는 않다. 여기서의 諍은 '다툴 쟁' 字가 아니고 '諫할 쟁' 자로 보아 야 마땅할 것이니, 諫이란 直言하여 바로 잡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곧 자기 주장 또는 자신의 견해를 자연스레 드러낸 (상대방의 주장을 꺾거나 反論하기 위한 言爭이 아닌) 설을 諍이라 하며, 같은 문제이면서도 각기 그 견 해가 다르므로 이설 또는 異諍이라 한다고 할 수가 있다,

 

『涅槃宗要』에서 들고 있는 異譚의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다음에서 보기로 한다.

 

33) 朝鮮金石總覽上(pp.41-43) 등에는 ?高仙寺誓幢和尙碑라 하고 있으나? 이는 현재 碑額이 없는 잔편에서 서당화상이란 글귀가 보이므로 편의상 그렇게 제명한 것같다. 실은 원효대사비이므로 ?고선사원효비?라고 약칭하였다. (拙編, ?삼국 신라 불교금석고증?) pp.47-52참조

34) 趙明基 編, 『원효대사전집』 제10책을 비롯하여 현재 『十門和諍論』의 殘文을 수록하고 있는 모든 책에서 이 부분을 『十門和諍論』의 ‘序’ 殘文으로 삼고 있다.

 

 

1) 經敎宗旨에 대한 異說 35)

 

크게 두 문으로 나눈 것 중의 두번째인 廣開分別門에서 다시 두번째가 되는 '明敎宗'은 서술이 시작되는 본문 쪽에서는 '辨敎宗者' 로 제목되어 있고, 그 아 래에 서술을 시작하면서 "이 경전의 宗旨를 설명하는 이가 같지 아니하다(此經宗旨說者不同)."라고 하였으며, 그 부문(明敎宗門)의 맨 끄트머리에 "두 번째 經宗의 자세한 설명을 마침(第二 廣經宗竟)"이라 있으므로, '敎宗' 이나 '經宗' 이 같으며 다 같이 『涅般經』의 宗旨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이 경전의 宗旨에 대하여 각기 다른 說(說者不同) 여섯 가지를 들고 있는데, 그 내용이 장황한 부분도 있으므로 요점만을 간추려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經文의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 밝힌 바의 뭇 敎義로써 經宗으로 삼는다 (經文始終 所詮衆義 以爲經宗)."

 

② "네 가지의 大義로 이 經의 宗旨를 삼는다.

젓째, 大涅槃의 원만 지극한 妙果는 三事와 四德이 갖추어져 있다(大涅槃 圓極妙果 具足三事 及與四德).

둘째, 일체 중생이 모두 佛性이 있으나 번뇌에 덮여서 보지를 못한다(一幻 衆生 悉有佛性 煩惱覆故 不能見). 세째, 三責의 佛'性은 같은 몸체로 둘이 아니다(三寶佛性 同體無二).

네째, 불법을 비방하는 一闡提나 種性에 얽매인 二乘까지도 모두 당래에 부처가 될 수 있다(闡提謗法 執性二乘,悉當作佛)."

 

③ "出世間(無上)의 인(佛性 聖行)과 果(菩提涅槃)로써 宗으로 삼는다(出世 因果 以爲其宗 果卽菩提涅槃 因卽佛性聖行....... 故知 無上因果爲宗)."

이 문장의 사이에 本經의 ?純陀品」 ?哀歎品」 ?如來性品」 ?聖行品」 등에 근거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④ "當常과 現常의 두 果를 宗으로 삼는다....... 그러 한 뜻이 있으므로 두 果를 宗으로 삼는다. 다만 現常의 果를 좇아 제목을 세웠기 때문에 涅槃이라 이름한다(當常現常 二果爲宗...... 以是義故 二果爲宗 但종現立題 故名涅 槃也)."

 

⑤ "원만 지극(圓極)한 하나의 妙果로 이 경전의 宗을 삼는다. 이른바 제불의 대반열반이므로 宗을 따른 까닭으로 제목을 세운 것이다(圓極一果 爲是經 宗 所謂諸佛大般涅槃 所以從宗 而立題名......)."

 

⑥ "모든 부처님이 신비로이 간직하신 오직 하나의 참다운 성품으로 經宗을 삼는다.(설명부분이 많으므로 생략함)...... 그와 같이 無二의 秘藏으로써 이 경전의 종지로 삼지만 단지 그 제목 가운데에 여러 명목을 모두 함께 둘 수가 없고 또 열반하신 때를 따라 涅槃이라 經名을 세웠다는 것이다 (諸佛秘藏 無二實性 以爲經宗 如是實性...... 如是無二秘藏 以爲是經宗旨 但其題目之中 不能竝 偏存題名 且隨時事 立涅槃名)."

 

35) 第二辨敎宗者 此經宗旨說者不同...(『한국불교전서』)1책 p.525중하.

 

 

2) 涅槃의 '性에 대한 2 說

 

經敎宗旨를 밝힌 총설 다음에 涅槃門과 佛性門의 둘로 나누었는데, 涅槃論에 서 다시 6문으로 나눈 가운데의 두 번째인 體相門에서는 먼저 그 性을 밝히면서 異說 두 가지를 들고 있다.36)

36) 위의 책 pp.527하528상

 

① "때묻지 않은 眞如가 바로 涅槃의 體이다. 처음 일으키는 공덕(始起의 功 덕은 열반이 아니니, 곧 증득하는 지혜는 菩提 그것이기 때문이다(無垢眞如是涅槃體始起功德 非是涅槃 卽能證智 是菩提故)."

 

이 아래에 『涅槃經』과 『大品般若經』 및 『占察經』등에서 그에 해당되는 글(經文)을 이끌어 經證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나서 "그리므로 진여의 바른 지혜가 바로 涅槃임을 알게 된다. 번뇌를 끊어 없애고 나타나는 義의 부문 에서 는 곧 眞如를 일컬어 數滅이라 하는 것이니, 數滅이 바로 無垢의 眞如 이다" 라고 하였다.

 

② '果의 지위에서 생기는 萬德은 本覺이나 始覺을 불문하고 모두 묶어서 하 나의 큰 열반의 체로 삼는다(果地萬德 不問本始 總束爲 一大涅槃體)" 라고 한 다음 『涅槃經』과 『法華論』에서 해당 經文을 이끌어 전거로 하였다.

 

 

3) 往複決擇의 兩설

 

涅槃門의 다섯 번째인 '三事門' 에 4句分別이 있고 그 네 번째가 往復인데, 본문에는 제4 往複決擇門이라 하여 다음의 두 가지 설을 들고 있다.37)

37) 第四 往復決擇文(위의 책 p.532중하)

 

① "法身은 色相이 없으나 다만 耭緣을 따라 화현하는 色相은 있다. 色相이란 質碍가 되는 추形의 법이므로 전도된 분별에서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은 영원히 분별을 벗어나서 진리의 근원으로 돌아가 법계로 몸을 삼으니, 그러한 도리로 연유하여 色身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범부들도 無色界에 어르면 色相의 분별을 여의게 되어 색신이 없는데, 어찌 하물며 부처님이 색신이 있다고 하겠는가"(원문은 생략함). 그리고는 『金鼓經』(金光明經)과 『起信論』 및 『열반經』의 說을 文證으로 들고는 "그 러한 道理로 말미암아 마땅히 색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 밖의 곳에서 색신을 말한 것은 모두 그렇게 소통해야 한다(由是道理 當知無色 餘處說色 皆作是通)" 라고 끝을 맺었다.

 

色을 말한 것은 없으나, 곳에 따라 나타내 보이므로 色相이라 말한다. 분별에서 지어진 거칠은 色相은 비록 벗어났으나 萬行으로 감응되어 얻어진 미묘한 色身은 있다. 이는 마치 분별의 識은 비록 없으나 분별이 없는 識은 멀어진다고 말하 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록 장애가 되는 色相은 없으나 장애가 없는 색신은 또한 얻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도 『涅槃經』. 『小尼환經』 『薩遮尼健子經』 『攝大乘論』 등에서 이끌어와 文證으로 삼고는, "이들 글에 의하여, 두가지 행으로 감득되는 實報에는 自受容身과 自妥用淨土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다른 데에서 法身은 色相이 없다고 말한 것 은 自性身에 결부시켜서 色相이 없다고 말한 깃이니, 이는 三身 부문의 法 身義이다. 이제 三事의 부문에서 말하는 法身이 모두 始有의 萬德을 취하 여 體로 삼는다. 그러므로 법신은 형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4) 佛身의 常住와 無常에 대한 異諍

 

涅槃門의 6門 중에서 여섯 번째인 四德門의 4문 중 네 번째인 和諍門은 그 본문에서 '第四 明和相諍論38)이라는 항목명으로 되어 있다.

 

"諍論이 일어남에는 많은 事端이 있다"로 시작되어, "여기에 法身이 常住하고 化身이 기滅한다는 異諍이 偏起한다. 이 두 가지 불 身(二身)에 대한 諸說이 같지 아니하다.

 

오직 報身에 대하여 두 가지 執論이 따로 일어났는데, 그 따로 일어난 諍論은 두 갈래에 불과하다. 이른 바(報身佛을) 常住라고 고집하는 설과 無常이라고 고집하는 설이다.

 

常住를 고집 하는 설의 안에도 두 주장(二家)이 있다.

한 주장(一家說云)은 報身佛의 공덕에는 生함이 있으나 滅함이 없다는 것이다. 生의 因이 멸하였기 때 문에 生이 없음을 얻을 수 없으며, 이치를 증득한 것이 究竟이기 때문에 相을 떠났고 相을 떠났기 때문에 常住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번 째의 주장(第三家云)은 보신불의 공덕이 비록 生因에서 얻어졌으나 生의 相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비록 원래 없었던 것이 비로소 있다고 하나, 본래 없었던 것이 지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지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또한 뒤에 없는 것도 아니니, 이러한 道理이므로 三際를 멀리 여의어서 의연히 상주 한다.

 

그러나 道를 깨친 뒤에야 비로소 (報佛功德이) 성취되는 것이므로, 본래부터 비롯이 있는 것이 아니다. 二제를 벗어났기 때문에 生이 있는 것도 아니며, 生함 이 있지 않으므로 또한 멸함이 없게 된다.

생함도 멸함도 없기 때문에 이는 반드시 無爲의 상주불변이니 만약에 이와 같은 正見을 얻지 못한다면 반드시 有 爲니 無위니를 말할 수가 없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涅槃經』의 ?純陀品」 . 『長壽品』 『德王菩薩品』 『四相品』. 『如來性品』 『聖行品』과 『請僧福田經』39) 등 經文을 근거로 들어서, 각각 佛身(法. 報. 化)의 常住와 無常의 주장을 상당히 길게 다루고 있다.

 

38)第四 明和相諍論(위의 책 pp.536상 537중)

39) 『請僧福田經』은 現行經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인지 일본의 木村宣彰은 『元曉 涅槃宗要』 (佛敎學 ,26호 ' p.59의 註9에서 『諸德福田經』의 誤植일 것으로 보았으나, 현재 『諸德福田經』에는 여기에 인용한 "月德居士 歎不如來涅槃..."의 내용이 없어서 동일경 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5) 佛性의 體에 대한 諸설

 

앞에서 이미 본 '涅槃門' 의 다음 곧 크게 나눈 '廣開分별門' 의 두 번째인 '明敎宗' 중의 分別二門 가운데 두 번째가 佛性門' 이다. 본문에서는 '第二 明佛'性 義(불성의 뜻을 맑힘)' 라고 제목하였으며, 그 아래에 佛性의 義를 6문으로 분별 하였는데 그 첫 번째가 出體文이다.

 

" 出體文' 안에 또한 두 갈래가 있는데, 앞쪽은 여러 주장을 차례로 서술한 것이고 나중 쪽은 옳고 그름을 판볕한 것이다.(出體門內 亦有二重 先序諸說 後判 是非)"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이 앞 쪽의 여러 異說을 열거한 '先序諸說'40)에서 열거 서술된 제설, 곧 異諍을 보기로 한다.

"옛부터 異說에는 비록 百家가 있으나 서로 같은 뜻의 종류를 묶으면 여섯 가지를 벗어나지 못한다(昔來說 雖有 百家 義類相攝 不出六種)"라고 하여 6설을 들고 있다.

 

① 白馬寺 愛法師 述의 道生公說41)

이는 當來에 있을 佛果(當有佛果)를 佛性의 體로 삼는다는 說이다. 그 論據로 『浬槃經』 ?獅子喉菩薩品?의 '一闡提等無有善法 佛亦言 以未來有故 悉有佛性42) 以現在世 煩惱編因緣 能斷善根 未來佛性 力因緣故 受生善根' 이라는 佛說을 들어 서, 當來佛果를 佛性의 正因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② 莊嚴寺 僧旻法師의 說

현재에 있는 중생(現有衆生)이 佛性의 體가 된다는 설이다. 왜냐하면 중생의 用은 心法을 총괄적으로 부리는 깃이며, 중생의 義는 곳곳에 受生하는 것이다. 그러한 御心의 主이기 때문에 당래에는 반드시 大覺을 能成하므로, 중생이 佛性의 正因인 體가 된다는 것이다

 

③ 光宅寺 法雲法師 說

중생의 心性을 佛性 正因의 체로 삼는다는 주장이다. 중생의 마음은 本石과 달라서 반드시 苦를 싫어하고 樂을 구하는 성품이 있으므로 萬行을 닦아서 마 침내는 無上의 菩提樂果에 귀착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④ 梁武帝 肅衍43)天子 說

마음에 있는 신령스러운 성품(심신)을 佛性 正因의 체로 삼는다는 주장이다. 즉 心身 이미 몸안에 있으므로 능히 大覺의 果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②서 ④까지의 原經文 論據는 생략하였음).

 

⑤新師(玄?) 등의 說

이는 아뢰야식의 法爾種子가 佛性의 체가 된다는 주장이다. 역시 논거로서 "佛性者 一切諸阿뇩菩提中 道種子"의 經說과 『瑜伽論』說을 引證하고 있다.

 

⑥眞言諦三藏 說

이는 阿摩羅識의 眞如解性을 佛性의 諦로 삼는다는 주장이다. 그 논거로 "佛 性者 名第一義空 第一義空 名爲智楚"를 들고 또 『寶性論一의 설을 이끌어와 논증하고 있다.

 

40) '明(辨)敎宗門' 의 第二 明佛性義일 出體門 중의 先序諸說(앞 책, p.538上中).

41) 本文에서는 "此是白馬寺愛法師述生公의也'로 되어있다, 이는 곧 白馬寺의 愛法師(宗愛人 듯)가 生公, 곧 竺道生(355-434)의 說義(주장)를 서술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린데 이영무 교수는 그의 校訂國譯 『涅槃經宗要』(大星文化社, 1984), p.161 및 國譯 元曉聖師全書 권1 의 『國譯 涅槃經宗要』,(이영무역), p.367에서 이 부분을 '이는 白馬寺의 愛法사 述生公의 뜻이다"라고 하여 述과 生公을 붙여서 인명으로 보고 白馬寺 愛法師와 동일인칭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는 白馬寺의 愛法師가 述한 生公(竺道生)의 義, 또는 愛法師 述의 道 生公 說(義)이다.

42) 拙稿, ?元曉의 佛性論考」(?曉城 趙明基塼士追慕 佛敎史學論文集 1988?, p.263의 註5)에서 밝힌 바가 있지만, 이 引用文 중의 "佛亦言"은 『涅槃經』 原文에서는 "佛性亦善'으로 되어 있다. '佛亦言' 이면 뜻에 맞지도 않는데, 이영무교수의 校訂國譯本에도 그대로 고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原經文을 대조하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이 引用文에는 "悉有佛性" 앞에 "一闡提等" 네 글자가 빠져있다.

43) 本文에는 '簫焉'으로 되어 있으나, 梁武帝의 이름이므로 蕭衍으로 고쳤다.

 

 

원효는 이와 같이 佛性의 본질이라 할 體에 관한 6師의 說을 한 자리에 모아 보았는데, 이들 설(주장)이 각각 다르므로 異諍인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6설을 들면서 각각 說마다 그 첫머리에 '第一師云', '第二師云'... '第六師云'이라 하 였으며, 이들 說을 총칭 할 경우에는 '六師所說' 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師'는 각각의 說主(견해를 주장한 사람)를 가리키는 말인데, 스님 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에는 승려가 아닌 梁武帝도 있으므로 學者, 곧 첫 번째 학자(第1師) 두 번째 학자(第2師)라고 하는 표현이 알맞을 듯하다고 하겠다.

 

『涅槃經宗要』,에 있어서 經敎상의 여러 해석과 견해 곧 異說(異諍)을 대립적 으로 열거한 사례가 더 있지만 이상의 다섯 가지를 그 대표적인 예로 삼아보았다. 이 중에는 아예 異諍을 화해하는 것을 主題로 한 和諍門도 있었으나, 異諍 과 和解의 論法을 이해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갖추어진 보기라고 한다면 백가의 說(百家之諍)이 있다하여도 여섯 가지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하여 6설(6師異 諍)을 들고 있는 다섯 번째의 이 佛性의 體에 대한 제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 이다.

 

 

3. 異說에 대한 和解

 

앞에서 열거해본 그와 같은 異설(諍)에 대한 元曉의 圓整和解의 실제를 각 항목별로 대강 다음에서와 같이 옮겨본다.

 

1) 經宗 異說에 대한 調和

 

經敎의 宗旨에 관하여서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 견해가 주장하는 이마다 다르다(諸설不同)고 전제한 다음, 몇 說이 있다는 말도 없이 곧 바로 '有師說言' 이고 그 다음부터는 모두 '或有說者' 로 되어있는데, 이들 說者 여섯 사람의 설이 끝나면서 바로 問答형식의 글이 된다.

 

"여섯 학자의 견해 중에서 어느 설이 옳은가? (問, 六師所說 何者爲實)"라는 물음에 "答"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6師의 異說을 간략하게 조화시키고 있다."44)

"어떤 이는 말하기를, '여러 설이 다 옳다, 부처님의 뜻은 특정 한 方所가 없어 서 해당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라 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중에 말한 것이 옳다. 여래의 방소가 없는 뜻에 잘 들 어 맞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앞에서 말한 여러 학자의 주장(5說)을 모두 포용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或有說者 諸說悉實 佛意無方 無不當故. 或有說者 後說爲實能得如來無方意故 竝容前說諸師義故).

그러므로 이 두 분의 말씀(2설)이 또한 서로 틀리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當 知是이說 亦不상위也)"라고 하여, 『涅槃 宗旨에 대한 諸師의 견해를 判明한 두 가지 說을 이끌어와서 두 說이 서로 틀리지 않음을 밝혀놓았다.

 

44) (韓國佛敎全書 제1권. pp.525下~526上).

 

 

2) 涅槃 體性의 2說에 대한 和解

 

涅槃의 體性에 대하여서 도 제설이 不同하다고 하면서 이끌어온 두 說에 대하 여서 는 앞에서 본 바가 있다. 그 두 가지 이설을 옮긴 다음에 원효는 다음과 같이 그 두 견해를 和解하고 있다.45)

 

"그러한 두 설에는 모두 道理가 있다. 그 까닭은 열반과 보리는 공통됨이 있고 구별됨이 있기 때문이다.

구별되는 부문에서 말하자면, 보리는 곧 用立로서 (열반을 ) 능히 증득하는 德에 있으므로 道체에 섭수된다. 涅槃은 果位의 증득될 바의 法이므로 滅言諦에 섭수된다.

공통되는 부문에서 말하자면, 果地의 道言臂 또한 열반이며, 증득될 진여 또한 보리인 것이다.

예를 들면 生死에도 공통됨이 있고 구별됨이 있으니, 구별됨에 서 말하자면 內根의 始와 終을 일컬어 태어남과 죽음이라 한다. 이 『涅槃經』에 서 말씀하시기를, '生이란 緖根이 새로 일어나는 것이요, 死란 諸根이 없어져 다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공통됨에서 논하자면, 모든 雜樂의 法이 모두가 다 生과 死이다. 이 經에서, '空이란 일체의 生과 死이다' 라고 하셨으며, 또한 無我와 일체의 생사에 이르기 까지도 廣說하셨고 이 生과 死에 상대하여서 열반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열반에도 또한 공통됨과 구별됨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라고 하였으며, 이어서 문답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만약에 始각이 갖는 공덕 또한 涅槃이라고 한다면 이는 곧 열반에도 生因이 있게 되는데, 그렇다면 어째서 ?迦葉品?에 이르시기를, 3解脫門과 37道品은 능히 일체의 번뇌를 다시 내지 않는 生因이 되지만 또한 열반에서는 了因이 된다. 善男子여, 번뇌를 멀리 여의면 곧 了了하게 열반이 드러남을 얻게된다. 그러므로 열반에는 오직 了因만 있고 生因은 없다'고 하셨으며, 위 아래의 여러 經文 가운데에도모두 오직 了因만 있음을 말씀하셨을 뿐 또한生因이 있다고는일찌 기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라고 물었다.

대답하기를, "始覺에 있는 공력이 비록 열반이지만 열반의 뜻은 寂滅에 있다. 寂滅의 덕은 了達하는 바에 계합되는데,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오직 了因만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菩提는 生因에서 나왔지만 또한 了因으로 了達한 바 라고 하는 것과 같다.

곧 이러한 뜻에 준하여 마땅히 열반은 了因으로 나타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또한 生因에서 일어난 것이 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이러한 道理이기 때 문에 서로 틀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원문은 긴 편이라 옮기는 것을 생략하였음).

 

45)(위의 책, p528上-中).

 

 

3) 往複決擇 兩說의 皆失 俱得

 

"두 학자의 견해중에 누가 그르고 누가 옳은가? (問, 二師所脫 何失何得)"라 는 물음으로 시작되어, 往復決擇의 두 가지 說에 대한 得失판명을 문답형식으로 풀이하고 있다.46)

"答"이라 전제하고 여기에서도 "或有說者"라는 二人稱 설명법을 써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한쪽 가장자리(一邊)만을 취하면 두 說이 모 두 틀린 것이며, 만일 실다운 것으로 집착하지 않는다면 두 주장이 모두 옳다. (定敗一邊 二說皆失 若非實執47) 二義俱得)

어째서 그러한가 하면, 佛地의 萬德은 대략 두 부문이 있으니 만일 相을 버리고 一心으로 돌아가는 門에 나아간다 면, 일체의 德相은 같은 法界이기 때문에 오직 第一義身이라 色相의 차별된 경 계는 없다고 말하게 된다.

만약 '性을 따라 萬徑을 이루는 門에 의한다면, 色相과 心法의 공덕을 갖추지 아니한 것이 없기 때문에 무량한 相好장엄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그러한 두 가지 門이 있으나 다른 모양(異相)은 없다.

그러므로 제설이 모두 장애가 없으며, 이러한 무애의 법문을 드러나게 한다. ?金剛身品」에 廣說하시기를, 如來 의 몸은 몸이 아니면서 몸이요, 識이 없으면서 識이다. 마음을 여의고도 또한 마 음을 떠나지 아니하며, 처소가 없는데도 또한 처소가 되고 집이 없으면서 역시 집이 되며, 像이 아니고 相도 아니면서 모든 相好를 장엄하였다' 라고 하여 자세 히 설하셨다."

 

如來 秘藏의 법문은 마땅히 有를 실하고 無를 설하는 것이 모두 道理가 있음 을 알아야 할 것이다(이 부분의 원문 생략함) 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원효는 상대되는 2說을 모두 틀리고 모두 옳다(皆失 俱得)고 하여, 佛意의 진실을 들어 서 調和되게 하고있다.

 

46) 앞의 주37의 두 說을 이은 문답부분(앞 책 p.533)

47) 『涅槃宗要』를 수록하고 있는 대정장 38권이나 『한국불교전서』 1책(p.533상)에는 報로되어 있으나 執이 옳음.(이영무 校訂國譯 涅槃宗要) p.111 이 밖에도 앞에서 번역해 옮긴 원문(『韓佛全』 수록) 가운데 본 『열반경』 원문과 대조해서 상당한 誤字와 脫字가 있었으나 번역문 만을 옮겼기 때문에 別註로 정정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았음을 밝힌다.

 

 

4) 佛身 常住 無常의 異諍 화해

 

여기에서도 역시 문답형식으로 되어있어서 먼저 2師의 설한 바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問, 二師所說 何득登何실)" 라는 물음으로 시작되어 있다.'48) 물음에 대답하는 형식의 "답"이라 내세운 다음에 두 학자(二사 또는 三家)의 주장에 대한 得과 失을 "或有說者"라는 2인칭의 설명법으로 서술하고 있다. 모두 옳고 모두 틀렸다. 그 까닭은 만약 결정적으로 한 쪽 가장자리만을 고 집한다면 모두 과실이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장애가 없는 주장이라면 모두 道理가 있는 것이다(皆得皆失 所以然者 若決定執一邊 皆有過失 如其無障碍說 俱有道理)"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楞伽經』에서 "如來應供正遍知를 常이라 합니까, 無常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 시기를 常도 아니고 無常도 아니다. 두 가장자리에서 치우치면 허물이 있게 된 다' 그러므로 廣說하시기에 이르시다"라고 옮긴 다음에, "이제 이 말씀은 비록 常住가 아니라 하여도 생각 생각이 멸하지 않는다는 것 이다. 이러한 經文들은 그 치우친 고집을 깨트린 것으로 결정적인 한 쪽 가장자 리를 취하는 것은 道理에 맞지가 않다는 것이다.

 

장애가 없는 주장(無障碍說)이라면 두 견해가 모두 옳다고 한 것은 報身佛의 공덕은 相을 여의고 性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相을 여의었으므로 생멸의 相을 벗어나서 구경에는 寂靜하여, 지음도 없고 행함도 없는 까닭으로 常住라고 말 한다. 성품을 벗어났으므로 常住의 성질을 여의어 지극히 시끄럽게 움직여서 믓하는 일이 없는 까닭으로 無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품을 여읜 것과 형상을 벗어난 것이 둘이 아니고 따로 없는 것(然離 性離相49) 無二無別)이어서, 성품을 벗어난 것이 형상을 여읜 것과 다르지 아니 하다. 그러므로 常住가 生하고 滅하는 것에 방해되지 아니한다. 성품을 여읜 것 이 형상을 떠난 것과 다르지 않은 까닭으로 생하고 별하는 것이 常住에 장애되 지 아니한다.

 

그러한 道理로 말미암아 두 주장(二說)이 모두 옳은 것이다. 이를 더 자세히 살피면 또한 많은 부분이 있게되는데『楞伽經宗要』50) 가운데에서 구체적으로 설명 하였었다" 라고 한 다음에,

"그러나 無常을 고집하는 학자들의 주장(執無常家義)에는 미진한 뜻이 있다. 말하자면 법신을 곁정적 常이라 주장하기 때문인데, 만약에 결정적인 常住라면 곧 지음의 법(作法)이 아니니 지음의 법이 아닌 까닭으로 두 몸(報身. 化身)을 짓지 못한다. 그러므로 법신 또한 無爲가 아니다"라고 하여, 『楞伽經,과 『攝大乘論의 해당글귀를 이끌어 와서 文證으로 삼고 있는데, 특히 『攝大乘論』에서 法身의 5相을 설한 가운데 세번째의 한 귀절인 "有爲無爲 無三爲相 非혹業集51) 所生故 由得自在 能顯有爲相故52)를 옮겼으며, 또 『論釋』53)의 이 부분 釋曰 중에서 "非惑集所生故"와 "由得... 爲相故"의 두 釋曰54))에 해당하는 부분을 하나의 "釋曰" 아래에 옮겨놓고 있다.55)

 

그리고는 이어서,

'이는 법신이 비록 惑業으로 생긴 바의 有爲는 아니지만 凝然하여 動作이 없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여, 執無常家의 주장을 바로잠은 다음에 執常家의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또 常을 고집하는 학자들은 비록 常住를 좋아하기는 하나 그 常의 주장에는 또한 부족한 뜻이 있다. 말하자면 비로소 간직된 공덕은 그 앞의 위계에 두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공덕이 두루하지 못한 바가 있다면 곧 法界를 증 득하지 못한 것이 있게 된다. 법계에 있어서 증득하지 못한 것이 없어야만 곧 평등한 法性이 두루하지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華嚴經』의 다음 말씀을 옮겨 놓았다.

 

"여래께서 正覺으로 菩提를 이루었을 때 佛方便에 머물러서. 一切衆生等身을 얻고 一切法等身을 얻으며, 一切刹56)等身. 一切二世身 一切法界等身. 虛空界等身을 얻었고 내지 寂靜57))涅槃界等身을 얻으셨다.

佛子여, 여래의 얻으신 바 몸을 따라서 마땅히 음성과 무애의 마음도 또한 이와 같다. 여래는 이 같은 세 가지 청정무량함을 다 갖추셨다."58)

 

그리고는, "이는 여래께서 성도하신 뒤에 얻으신 色身과 음성과 無碍心이 평 등하지 않음이 없고 두루하지 않음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이미 一切二世에 평 등하다고 말씀하셨거늘 어찌 金綱(如來金剛身)의 이전에는 두루하지 않으랴.

그러나 이 道理는 諸佛의 秘藏이어서 思量하는 것으로 등히 헤아릴 수가 없다. 다만 부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믿음을 일으킬 뿐이다" 라고 會通하여 매듭을 풀었다.

 

48) 앞의 주38의 二家說의 二諍에 이은 문답형식의 화해부분(앞의 책, p.537중하)

49) 『大正藏』과 『韓佛全』(1책 p.537중)에는 離性無二無別로 되어 있어서 이상이 없으나 離性離相無二無別(이영무 교정국역 열반경종요, p.153)이 옳다고 하겠다.

50) 『신편제종교장총록』 권1등 옛목록집에 元曉撰으로 『楞伽經宗要』1권이 보이고 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51) 『大正藏』의 것을 옮긴 『韓佛全』(1책 p.537중)에서는 이 집이 잡으로 되어 있으며, 이영무교수는 그의 『校訂國譯 涅槃宗要』(p.155)에서 雜의 옆에 染자를 덧붙여 놓고(大正藏經無染字 今依文勢補入)이라 註記하였다.

52) 『攝大乘論』하(『대정장』) 31, p.129하

53) 世親菩薩 譯 眞諦 譯 『攝大乘論釋』

54) 위의 책 권13, (『대정장』31, p.251중)

55) 『한불전』 1책, p.537중하.

“一切有爲法...故非有爲는 非惑業...의 釋曰이고, 法身由得....故非無爲는 由得自在...의 ‘釋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영무교수는 그의 교정국역 p.157에서 이 ‘釋曰’을 “이를 해석하여 말하면”이라고 하여 전혀 『攝論釋』의 釋曰로 보지 않고 元曉의 해석으로 아래쪽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56) 『대정장』 38, p.248하에 殺로 되어 있어서 이를 저본으로 삼은 『韓佛全』(1책, p.537하)등 모든 책에서 다 ‘殺’로 하고 있으나 ‘刹’이 옳다.『대정장』9책, p.626하에 “得一切刹等身”으로 되어 있다.

 

 

5) 佛性의 體에 대한 제脫의 옳고 그름

 

이미 앞쪽에서 佛性의 體에 대한 여러 異脫(序제脫)을 보았는데, 元曉는 그 주장들(異諍)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려서(判是非하여) 和解하고 있다.

'次 判是非者' 라 항목을 들고 그 아래에 "이들 학자의 주장이 모두 옳기도 하고 모두 그르기도 하다(此諸師說 皆是皆59)非)"라고 전체적인 평을 한 마디로 내리고 나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그러한 까닭은, 佛性이 그러한 것도 아니고 그러하지 않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하지 않음으로써 여러 주장이 모두 옳지 않으며, 그러하지 않은 것도 아닌 까닭으로 여러 견해가 다 옳은 것이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 6師의 주장은 두 갈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의 하나는 당래에 있을 불과(當有之果)를 가리킨 것이고, 나중의 다섯은 지금에 있는 원인(今有之因)을 근거로 하였다. 이들 다섯 주장 중에서도 또한 두 갈래가 되는데, 맨 나중의 하나는 眞諦에 머물렀고 그 앞의 네 가지는 속諦 에 따른 것이다. 俗諦에 따른 4說은 人과 法을 벗어나지 않았다.

 

앞의 1說은 人을 들었고, 나중의 3설은 法을 근거하였다. 법을 근거로 하는 세 주장도 起와 伏에 지나지 않는다. 뒤의 1설은 種子(伏)요 앞의 2說은 上心(起) 으로서 , 上心을 의거한 것에도 주장(義)을 따라 說을 달리한다고 하였다. 그와 같이 여섯 학자의 주장(6師의 學說 또는 6師異諍)을 評析한 그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들어 제설을 화해하고 있다.

 

佛性의 體는 바로 一심(然佛性之體 正是一心)이다. 한 마음의 성품은 여러 가 장자리를 멀리 여읜다. 그러므로 도무지 해당하는 것이 없다. 해당하는 것이 없 으므로 해당되지 않는 것도 없다.

이를 마음의 입장에서 논한다면(就心論), 一심은 因도 아니고 果도 아니며, 眞도 아니고 俗도 아니다. 따라서 人도 아니고 法도 아니며, 起도 아니고 伏도 아니다.

 

그러하나 조건(緣)에 결부시켜서 논한다면(約緣論), 마음은 기도 되고 伏도 되며, 法도 되고 人도 되며, 속도 되고 진도 되며, 因도 짓고 果도 짓는다. 그래서 그러한 것도 아니고 그러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뜻(義)이므로, 여러 주장(諸說)이 모두 옳지 않기도 하고 옳기도 하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總說로는 비록 그러하나 그것을 분별하면 다음과 같다고 하여 各別論을 펼쳐 마무리하고 있다.

 

一心法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으니 하나는 더럽히지 않아도 더럽혀지는 것 (不染而染)이고, 하나는 더럽혀도 더럽혀지지 않는 것(染而不染)이다. 뒤의 것 곧 染而不染은 一味?靜이며, 앞의 것 곧 不染而染은 六道의 流轉이다.

 

이 經의 아래 글에 이르시기를, "一味의 약은 그 흐름의 곳에 따라 갖가지의 맛이 있으나, 그 참맛(眞味)은 산에 머무르고 있다(一味약隨其流處 有종종味 而其眞味 停留在山)" 하셨고 『夫人經』(勝曼經) 에서는 "自性의 청정한 마음은 확실하게 알기가 어렵다. 그 마음이 번뇌에 더럽혀지는 것도 또한 확실하게 알기가 어렵다(自性淸淨心 難可了知 彼心爲煩惱所染 此亦難可了知)"라고 말하였으며, 『起信論』 가운데서도 이 뜻을 자세히 드러내었다.

 

이것은 眞諦三藏의 주장으로 여섯 번째 학자(第六師)가 설한 眞如佛性이니 染而不染의 門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앞의 다섯 주장은 모두가 染門에 있게 되 는데, 왜 그런가 하면 染을 따르는 마음은 하나의 성품을 지키지 못하고 緣을 상대하여 果를 바라보면 반드시 生함이 있게 된다. 가히 生하게 되는 성품은 훈習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이름을 法爾種子라 말하는 것으로 다섯 번째 학자(第五師)의 주장이 이 문에 해당된다.

 

또 이와 같은 染을 따르는 마음이 변전하여 生滅하는 識位를 짓는 데까지 이 르게 되지만, 언제나 신解하는 성품은 잃지 않는다. 잃지 않음을 말미암기 때문 에 끝내는 心原으로 돌아가게 되니, 네번째 학자의 주장이 또한 이 부문에 해당 된다. 또는 染을 따르는 生滅의 마음이 안에서 훈습하는 힘에 의하여 두 가지의 業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른바 厭苦와 求樂의 能因이다. 이를 근본으로 하여 당 래의 극果에 이르게 되니 세 번째의 주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와 같은 一心이 染을 따라 변전할 때에 이르는 곳을 따라 제법을 모두 부려서 곳곳에 生을 받으니, 이를 일러 중생이라고 한다. 두 번째의 說이 여기에 부합된다. 그러한 중생은 本覺이 변전한 것이므로 반드시 大覺의 果에 이르게 되지만, 지금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當果라고 일컫는데 첫번째의 주장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6師의 설을 하나 하나 따로 논하여 자리 매김한 그는 다음과 같이 佛性體相論의 결론을 맺고 있다. 그러한 意義가 있으므로 6사의 주장(所說)은 비록 佛性의 實體에는 모두가 미진하나, 각기 그 부문에서 설명한다면 모두가 그 義에 부합된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經설에서 마치 장님들의 코끼리 에 대한 설명이 비록 그 실체를 적중하지는 못하였으나 코끼리를 설명하지 않 은 것은 아니듯이, 佛性을 설명한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6사의 주장 그대로도 아니고 그 여섯 가지를 벗어난 것도 아님을 알아야할 것이다(由是義故 六師所說 雖皆未盡 佛性實體 隨門而說 各得其義 故下文說 如彼盲人 各各說象 雖不得 實 非不說象 說佛性者 亦復如是 不卽六法 不離六法 當知此中 六說亦爾)라고 전체적으로 회통시키고 있다.60)

 

지금까지 우리는 『涅槃宗要』에서 볼 수 있는 和諍의 실제 사례 다섯 가지를 이끌어와서 그 대충을 살펴 보았다. 편의상 諍(異說)을 먼저 들고 和(和解)를 나중에 검토함으로써 각각 和諍논리의 실상을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그 다섯 사례가 모두 和諍의 실제를 잘 보여주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맨 마지막에 본 佛性의 體相을 밝힌 부분에서 가장 화쟁의 논법이 (오히려 和諍門이라 제명한 항 목보다도) 정연하게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57) 이 寂靜도 『華嚴經』원문 위의 『大正藏』9 (p.626하)에는 寂滅로 되어 있다.

58) 元曉가 인용하고 있는 이 대목은 60卷本 華嚴經 卷35 寶王如來性起品에 설해져 있는 불자 “如來應供....三種淸淨無量“의 부분을 옮긴 것인데, 첫머리에 ”如來淨覺成菩提時“라고 옮겨서 ‘應供等’의 3자가 줄여져 있으며, 끄트머리의 ‘如是三種淸淨無量’도 ‘如是等’의 등자가 빠져있다.

59) 『大正藏』 및 이를 옮긴 『한불전』(1책, p.538중)등에 모두 皆是非로 되어 있으나 그저술의 다른 예에 미루어 ‘非’ 앞에도 ‘皆’가 있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앞에 나온 이영무교수의 교정국역본)

60) 6說에 대한 元曉의 비판과 견해에 관하여서는 이미 拙稿 ?元曉의 佛性論考? (『趙明基博士追慕 佛敎史學論文集』) 1988 pp.265-267에서 본 바가 있다.

 

 

Ⅲ.會通의 진실

 

『涅槃宗要』를 통해 볼 수 있는 화쟁의 실제를 다섯 가지 사례로 묶어 보았다. 그 異諍의 和에는 반드시 결론을 맺으면서 이설을 조화 會通시키고 있음을 볼 수가 있었다. 이를 미루어 元曉의 和諍논리는 會通이 뒷받침되므로써 완결지어 진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게 된다.

 

그의 현존저술 여러 군데에서 그러한 사례를 볼 수 없는 바는 아니지만, 특히 일부 학자들에 의해 元曉思想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던 和諍을 주제로 삼은 『十門和諍論』의 殘文을 통해서 뚜렷하게 그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즉 극히 일부분이 불완전하게 남아 있기는 하나 그 본문에는 主題名인 和諍의 낱말은 찾아볼 수가 없고 오직 "如理會通 如實和會'61)라는 말을 보게 된다.

 

이는 물론 '이치 (진리 또는 理法) 그대로 회통하고, 참다움(實相, 또는 眞實) 그대로 和會한다' 는 뜻이므로, 10門에 걸친 異諍의 문제들을 論破 화해하여 如理하게 會通하고 如實히 和會한다는 것으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앞에서 본 和諍의 논리는 비단 '和諍門'에서만이 아니고 『宗要』 전편에 걸쳐 서 보여주고 있으므로 그 가운데서 다섯 가지 만을 예로 들어 보았었다. 그 和諍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宗要』에는 '會通門' 이 항목화 되어 있으나,會通의 論 法은 역시 전편에 걸쳐서 적용되어 있다. 그러나 그 사례를 다른 항목부문에서 일일이 찾아 옮겨 보는 번다함을 피하여(和諍의 경우와는 달리), 여기에서는 『宗要』의 '會通門'을 통하여서만 그의 會通論法의 진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앞쪽에서 이 『宗要』의 과목 짜임을 본 바와 같이 '會通門'은 佛性을 論明한6 門중에서 여섯 번째의 결론 부분에 해당된다. 이 부문에서 그는 通文異와 會義 同의 두 갈래로 나누어서, 먼저 通文異, 곧 經文의 각각 다름(文異)을 疏通하여 풀이(通解)하였으며, 다음에 佛說敎義가 하나 같음(義同)을 확연히 알도록 會釋하여 밝히(會明하)고 있다.

이 차례에 따라 여기에서도 通解를 먼저 보고 會明을 나중에 보기로 하였다.

 

61) 海印寺 刊藏本을 저본으로 한 『韓佛全書』 1책 p.838하.

 

 

1. 通解

 

그가 앞의 5門(體相. 因果. 見性. 有無. 三世門)을 풀이하면서 이끌어온 경 설의 여러 글귀가 서로 다른 부문을 문답 형식으로 하나하나 通解하였다.

여기서의 通解는 말할 것도 없이 文異(經文이 서로 다름)를 소통하여 풀이 (通解)한 것이므로 文異가 생략되어 있는 항목명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의 설 명순서는 6문의 차례대로가 아니고 『宗要』원문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 정리해 옮긴 것이다.

 

1) 因果門에서

①文異

앞의 因果門에서 인용한 『涅槃經』 「迦葉品」의 글 가운데, "阿뇩菩提를 얻지 못하였을 때62)의 일체 善과 不善과 無記法을 이름하여 佛性(盡名佛性)이라 한다"라고 있는 것에 의한다면 菩提心과 六度 등의 行이 모두 佛性인데, 어째서 「獅子喉品」중에서는"正因이란 佛性을 이름함이며, 緣因이란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그와 같이 서로 틀리는 것을 어떻게 會通할 수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되어 있다.

 

62) 『大正藏』과 『韓佛全』(1책, p.543하)에는, ‘未得阿뇩 菩提之時‘의 時를 約字로 잘못쓰고 있 는데, 이영무교수는(앞에 나온 그의 책, p.214에서) 이 약을 살려서 그 글자 앞에다가 時자를 넣고 있다.

 

②通解

"두루 통하게 하여 풀이하면(通者解云)이라 하여 그 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고 있다.

性으로는 포용되나 行으로는 포용되지 않으므로 일체를 다 불성이라 일컫는다(以性攝 行不攝故 說一切盡名佛性), 또 行으로써 性을 바라보면 性으로는 있으나 行은 아니다. 그러므로 性과 行을 나누어서 두 가지 因을 말한 것이다.

또한 性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是因義요 하나는 非作義이다. 因義 에 취하였으므로 盡名佛性이라 하나, 非作義에 결부시키면 行은 곧 性이 아니 다. 이러한 道理에 의하면 서로 틀리지 않는다,

 

3) 見性門에서

 

①文異

見性門 안에서 인용한 論에, "初地보살은 무애의 智眼으로 모든 중생이 다같 이 佛性이 있음을 본다"라고 하였는데, 이 經의 「德王品」과 「獅子喉品」등의 여 러 군데에서 十地 이하의 보살이 중생의 佛性을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글들을 어떻게 會通하겠는가?

 

②通者解云

通相으로 말한다면 究竟과 不究意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십地에서는 보면서도 明了하지 못하다고 설하였다.

만약에 隨分等見門에 의거한다면 初地菩薩도 또한 佛性을 눈으로 볼 수가 있 게 된다. 나머지 隱顯門에서 나투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 說이니, 十地의 因이 滿 位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得見이라 하였다. 九地 이하는 因이 원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不見이라 한 것이다.

이어서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하고 그는 "보살은 一切覺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비록 보기는 하나 不明了 한 것이다"라는 經文을 든 다음에, 나머지 經文의 서로 다른 것은 이를 준해서 通解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2. 會明

 

한마디로 말해서 敎義가 같은 것(義同)임을 會繹하여 밝혔으므로 會明이라 한다.

元曉는 여기에서 同類의 義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文句가 다른 경우에 그 같은 유형(同類)의 뜻으로 여러 經文을 會明(會義同)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 는 佛性의 義를 밝히려는 저자의 저술 의도에 따라 먼저 會義同을 보고, 다음에 저자 元曉의 佛性論에 대한 결론적 會通을 옮겨 보려고 한다.

 

1) 會義同

佛性의 義에는 무량의 문이 있으나 같은 끼리(類로써) 서로 융섭하면 다섯 가지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그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들었다.

① 性淨門常住佛性, ②隨染門無常佛性, ③現果제佛所得, ④ 當果衆生所含, ⑤ 一心非因非果.

이 중에서 앞의 두 가지는 因位의 佛性을 말한 것이라고 하였 으므로 ③과 ④ 果位의 佛性임을 알게 된다.

 

① 常住佛性門

그는 여기에서 『涅槃經』의 ?四相品」과 ?여래性品」에서 각각 한 구절, ?師子吼品」에서 세 글귀의 佛說부분63)을 인용해 놓고는 대략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이러한 經文들은 모두 異名을 들고 있으나 다같이 자성청정의 眞如佛性을 나타낸 것이다. 三乘이 同歸하므로 一乘이라 이름하며,12인연의 근본이기 때문에 因綠이라 하고, 일체를 멀리 여의었으므로 空이라 하며, 성품에 本覺이 있기 때 문에 智慧라하고, 중생 가운데에 實다우므로 實義라 하며, 자체를 自照하기 때 문에 我見이라 한다. 여러 일컬음들이 비록 다르나 밝혀야 할 대상(所詮)의 체 는 하나이므로 그처럼 많은 일컬음을 말하고 있는 까닭은 모든 경전이 오직 一 味임을 드러내고자 한 때문이다.

 

我見이라 일컫고 如來藏이라 이름한 것은 『勝만經』과 『楞伽經』, 등의 뜻(義 旨)에 會通한 것이며, 또 空이라 하고 지혜라 이름한 것은 여러 般若部 경전의 敎義에 會通되는 것이고 또 一乘이라 이름한 깃은 바로 『法華經』, 등에 會通되며, 또 眞解脫이라 한 것은 곧 『維摩經』 등에 회통되는 것이다. 이들 여러 경전은 글귀가 다르면서도 같은 뜻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하나의 佛性에 있어서 여 러 명칭을 세운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63) 각 品의 經文은 앞에 나온 拙稿, ?元曉의 佛性論考? pp.283-284에 原經文과 대조하여 옮겨놓았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였다.

 

 

② 隨染門 報佛性

앞의 것이 "性淨門 常住佛性"인데 반해 이 항목의 前提된 명칭은 "隨染門 無 常佛性"이다. 여기에서도 그는 본 經의 ?師子吼品」에서 두 귀절, ?迦葉品」에서 두 글귀64)를 이끌어 옮긴 다음,

"이러한 經文들은 다같이 隨染門 안의 報佛性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③ 明現果佛性

이 또한 전제된 제복은 "現果諸佛所得"이다. 여기에서도 그는 ?獅子喉品」과 ?迦葉品」에서 각각 해당되는 한 귀절65)씩을 이끌어 옮긴 다음에 "이와 같은 經 文은 함께 현재 果位의 佛性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다.

 

64) 위의 졸고. p.285에 원문 참조.

65) 위와 같음. pp.285-286

 

 

④ 說當果佛性

그런 까닭으로 이 글에서는 『涅槃宗要』전편에 드러나 있는 和諍會通의 논리 一味인 것이다 라고 하였다.68)

68)위와 같음 p.287

 

 

3. 會通에 의해 和會의 世界는 이루어진다

 

이제까지 우리는 聖師 원효의 『涅槃宗要』 안에서 和諍과 會通의 사례를 중 점적으로 대충 살펴보았다. 대체적으로 보아 『涅槃宗要』는 가장 中心되는 부 분이 '廣開分別'중의 두 번째인 '明(辯)敎宗門' 이며, 이 經敎의 宗旨를 밝히는 부문의 주제를 涅槃門과 佛性門의 둘로 나누고 있음을 보았었다. 말할 것도 없 이 浬槃論과 佛性論은 그의 『涅槃宗要』 전체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된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涅槃論』의 결론 부분을 和諍門' 이라 하고 佛性論의 결론부분을 會通門'이라 제목하였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和諍門이라 이름붙 인 항목 밖에서도 『涅槃宗要』의 전편에 걸쳐서 和諍의 논리적 전개를 많이 볼 수가 있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 다섯 가지를 이끌어내어 옮겨 보았었다.

이 들 다섯 문제 중에서 첫번째의 經宗 異說에 대한 調和(이는 여섯 異說 評解 한 2說을 끌어와서 調和시키고 있으므로 經證이 생략되었음)를 제외한 네 가지 문제가 모두 여러 經說을 文證으로 삼아 和解하여 會通하고 있다.

 

그는 '會通門'에서 通文異'와 會義同'의 두 갈래로 나누었지만, 通文異' 에서도 經說의 다른 부분(異文)을 각각 보기로 들고는 "이와 같이 서 로 다른 것을 어떻게 會通하겠는가(如是相違 云何會通)?"라고 自問한 다음 "두루 통하게 하 여 풀이하면(通者解云),,이라고 하여 문제점들을 和解하고는 "이러한 이치(道 理)이므로 서로 틀리지 않는다(由是道理故 不相違也)"라고 會通하였다. 會義 同' 에서는 和諍이나 通解라는 말을 한 마디도 쓰지 않으면서도 같은 義類의 다른 經文들을 이끌어와서 敎義가 같은 점을 밝혀 和會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이 글에서는 『涅槃宗要』 전편에 드러나 있는 和諍會通의 논리 체계를 먼저 和諍에서 異諍과 和解의 둘로 나누었으며, 다음에 會通에서는 通解와 會明으로 나누어 보았었다.

和諍은 『宗要』 전체를 통하여 異說(諍)이 먼저 열거되고 이어서 評析 調和가 논리정연하게 서술된 대표적인 사례만을 골라서, 편의상 앞 부분을 異諍이라 하고 해답부분을 列解라고 제목붙여 보았다.

會通의 항목 분류는 『宗要』의 '會通門' 에만 국한시켜서 그 앞쪽 '通文異'를 通解로 제목하고,뒷쪽의 '會義同'을會明으로 제목하였었다.

 

그와 같이 작게는 네 분류(異諍. 和解. 通韓. 會明), 크게는 두 부문(①화쟁, ②회통)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宗要』에 있는 그대로를 항목화한 것일 따름이다. 이 和諍과 會通을 다시 하나의 말로 합치면 和會가 된다. 화쟁의 경우에도 결국은 經證을 들어 通解하고 佛說로 會通하는 것이므로, 和諍이든 和會이든 모두가 會通에 의하여 論法이 완성된다고 할 수가 있다.

 

그의 『宗要』에는 끝으로 敎迹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敎判論이다. 여 기에서 그는, "옛부터 南土의 제師들은 많이 武都山 隱士 劉?69)의 주장에 의거하여..."라고 시작하여, 街土의 5時敎와 北方의 4宗을 비교 擧論한 다음, "南北의 두 주장은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 형식으로 화해하고 있다.

 

"만약에 한쪽을 고집하여 한결같이 그러하다고만 한다면 2說이 모두 옳지 않다. 만일 분수에 따라 그 주장하는 것이 없다면 口說은 다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까닭은 부처님이 설하신 반야 등의 여러 敎義가 廣大하고 매우 깊어서 , 얕고 깊은 것으로 한 가장자리에다가 한정시키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라 고 하였는데, 이는 異諍의 화해이면서도 남북 2說의 和會라고 할 수가 있을 것 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天台智者와 神人의 問答을 끌어와서 南北 2說의 得失을 비교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끝으로

 

"부처님의 뜻이 깊고 넓기가 한량이 없는데, 4宗(北方說)으로 經旨를 차례매 김하려 하고 또한 5時(內方說)로써 부처님의 뜻을 한정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소라로 바다물을 퍼내고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려는 것과 같음을 알 수가 있다" 라고 하였다.

이는 지금까지의 모든 견해와 異說들을 佛意와 經旨에로 會通시 킨 한 마디의 견론이라 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聖師 元曉의 和錚論理는 會通이 있으므로써 완성되는 것이므로, 和會가 그 바른 일컬음이라고 할 수 있다. 和諍도 반쪽이고 會通도 반쪽이라 할 수 있으나 會通에 의하여서 和證이 성립되는 것이라면 곁국은 會通을 떠나서는 화쟁이나 和會가 存立 불가능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본 바가 있지만 和諍을 주제로 한 그의 『十門和諍論』의 남은 글쪽에서 보게되는 "如理한 會通, 如實의 和會"는 그것을 입증해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라 하겠다.

 

그와 같이 和諍이라는 말은 불완전한 부분용어이면서도 오늘날 하나의 갖춘 낱말처럼 쓰이고 있는 사실은, 흡사 釋迦世尊 또는 釋迦불타(如來)를 줄여 앞의 두 글자만을 취하여 釋迦라고 일컫는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은 석가는 古代印度의 氏族名일 따름이었으나 고오따마(瞿曇)수행자가 성불한 이후에 釋迦族의 大聖이라는 뜻으로 그를 釋迦모니(世尊. 佛陀. 如來)라고 존칭하였었는데, 후대에 와서 釋迦佛. 釋尊. 석가 등으로 줄여서 썼으며 특히 釋迦는 오 늘에 이르도록 일반적 통칭처럼 되어왔다.

그러한 예에 견준다면 和諍會通의 네 자를 앞쪽의 두 글자 '和諍' 만으로 줄여 쓴 경우가 '釋迦' 와 같고, 네 자(釋 迦佛陀. 釋迦世兼)의 뜻을 살려서 두 글자로 줄여 釋尊' 이라 한 예가 '和會' 라 일컫는 경우에 견주어질 수가 있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聖師 元曉의 중심思想을 오늘날 흔히 利諍思想이라고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涅槃宗要에 보이고 있는 和諍은 결코 思想이라고는 일컬을 수가 없는 하나의 논리체계(論法)를 일컬는 部分語, 또는 줄임말(약칭)이기 때문이다.70)

 

『涅槃經』(다른 佛典도 마찬가지 임)에 펼쳐져 있는 중요한 문제와 中心思想을 밝히기 위하여 종래의 諸說과 각기 다른 견해(異諍)들을 부정과 肯定을 통해 화해하고, 佛說經敎의 文證을 들어서 會釋疏通, 곧 如理하게 會通하므로써 佛理 에 계합되어 一心具現의 진리 세계가 如如하게 드러나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를 如實의 和會'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참다운 和會 (如實和會)의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겨례가 직면하고 있는 민족통일의 至上原理일 것으로 여겨진다.

 

 

69) 이 劉?를『大正藏』과 『韓佛全』(1책, p.546중) 및 앞에 나온 이영무 『校訂國譯本』(p.238)에서는 모두 ??이라 틀리게 쓰고 있다. 隋 慧遠 撰 『大乘義章』 卷1, 衆經敎迹義(『大正藏』) 44, p.465상) 첫머리에, “晋 武都山 隱士 劉 說言”이라 시작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