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 적 없다
복효근
다시 그 자리에 돋는 새 잎이란 없다
이미 새 잎이 아니지
낯선 자리 비켜서
옛 흉터를 바라보며 지우며 새 잎은 핀다
이전의 사랑은 상처이거나 흉터다
이후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므로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조금 비켜서
덤덤히 바라볼 수 있는 눈빛으로
나무의 새순은 조금 더 놓은 곳에서 싹튼다
제 형체와 빛깔과 향기를
지우고, 지고 부정하고 배반하고
새 잎은 비로소 새 잎이다
내 너를 사랑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한 적 없다
오늘은 어느 부위에 상처를 남겨주랴
엄살피우지 말자
남은 날 가운데 가장 새 것이어서
우리 세포는 너무 성하다
흉터 따위를 기억하는 것은 사랑도 아니다
지금 네가 마지막 첫사랑이다
-계간『스토리문학』(2010, 겨울호)
지나간 사랑도 흔적이라고 단언하는 시인은 '상처'대신에 '흉터'라고 이름 붙이고
늘 지금 사랑이 마지막 첫사랑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뭐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게 아니라, 완연하게 달라진 생각과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일신일신우일신'은 옛글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꼭 필요한 생활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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