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사는 날에 / 조오현
나이는 뉘엿뉘엿한 해가 되었고
생각도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 본다
그제는 한천사 한천스님을 찾아가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보았다
말로는 말 다할 수 없으니 운판 한번 쳐 보라, 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산에 사는 날에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고
그리고 흐름을 다한 흐름이나 볼 일이다.
내 울음소리 / 조오현
한나절은 숲 속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
반나절은 바닷가에서
해조음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쯤 내 울음소리를
내가 듣게 되겠습니까
일색변(一色邊) 1 / 조오현(霧山)
무심한 한 덩이 바위도
바위소리 들을라면
들어도 들어 올려도
끝내 들리지 않아야
그 물론 검버섯 같은 것이
거뭇거뭇 피어나야
일색변 2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소리 들을라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그 물론 굽은 등걸에
장독(杖毒)들도 남아 있어야
일색변 3
사내라고 다 장부 아니여
장부소리 들을라면
몸은 들지 못해도
마음 하나는 다 놓았다 다 들어올려야
그 물론 몰현금(沒弦琴)한 줄은
그냥 탈 줄 알아야
일색변 4
여자라고 다 여자 아니여
여자소리 들을라면
언제 어디서 봐도
거문고줄 같아야
그 물론 진겁(塵劫)다 하도록
기다리는 사람 있어야
일색변 5
사랑도 사랑 나름이지
정녕 사랑한다면
연연한 여울목에
돌다리 하나는 놓아야
그 물론 만나는 거리도
이승 저승쯤은 되어야
일색변 6
놈이라고 다 중놈이냐
중놈소리 들을라면
취모검(吹毛劍) 날 끝에서
그 몇 번은 죽어야
그 물론 손발톱 눈썹도
짓물러 다 빠져야
일색변 7
세상은 산다고 하면
부황이라고 좀 들어야
장판지 아니라도
들기름을 거듭 먹여야
그 물론 담장 밖으로
내놓을 말도 좀 있어야
결구(結句) 8
그 옛날 천하장수가
천하를 다 들었다 놓아도
한 티끌 겨자씨보다
어쩌면 더 작을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
조오현 스님의 적멸가
조오현 스님의 ‘적멸을 위하여’
절간 밖에서 만난 석수·염장이…
그들의 한 맺힌 설움과 애환들
피 토해내듯 쓴 깨달음의 시어
문학평론가 권영민 교수가 엮어
캉캉한 시골 노인이 절 원통보전 축대 밑에 쭈그리고 앉아 헛기침하며 소주를 홀짝거린다. 이를 본 스님이 “여기서 술을 마시면 지옥간다”고 쫓아내려 한다. 전쟁 때 승려들이 모두 도망가고 절이 ‘무장공비’들의 은신처가 되어도 떠나지 않고 절을 불태우지 못하게 막았던 노인은 “그때 불구경이나 했어야 하는데…”라고 더듬거리며 주저리 주저리 욕을 한다.
조오현(80) 스님의 시조집 <적멸을 위하여>에 나오는 ‘절간 이야기’다.
절간 이야기는 ‘절 밖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백담계곡에서 만난 늙은 석수는 더는 망치를 들 수 없다고 한다. “이제 눈만 감으면 바위 속에 정좌한 부처가 보여서”란다.
주막에서 만난 늙은 어부는 “시님(스님)도 하마(벌써) 산(山)을 버리셨겠네요?” 묻는다. 만경창파를 헤맨 지 30년 만에 자신이 노와 상앗대를 버린 것처럼.
또 곡차 한 잔 드시라고 5천원을 쥐어주며 둘째 아이 태기가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자갈치 어시장의 ‘아지매 보살’, 40년 동안 염을 하다보니 주검만 보면 후덕하게 살았는지, 남 못할 짓만 하고 살았는지, 지옥에 갔는지, 극락에 갔는지 다 보인다는 염장이….
절간 이야기의 주인공은 적멸한 고승보다는 오히려 술주정뱅이에 말더듬이인 촌로이거나 축생과 벌레들이다. 공자에게 구슬을 꿰는 법을 가르쳐준 것은 밭에서 일하던 아낙네였고, 소크라테스에게 영감을 준 것은 곱사등이 이솝이었고, 문수보살을 깨닫게 한 것은 병든 유마거사였다. 저자는 중생이란 방망이로 승과 부처를 깨우며, 축생을 들어 금수만도 못한 인간을 깨운다.
이 시조 속에선 허리께만큼 눈이 쌓여 오가도못하는 암자에서 홀로 우는 노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시장바닥에서 발가벗고 춤을 추는 괴승의 헛헛한 웃음이 보이는 듯도 하다. 조오현 스님은 시조 ‘내가 나를 바라보니’에선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하는 벌레 한 마리”가 된다. ‘산에 사는 날에’서는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는다,
짧막한 시조 한 수 속의 블랙홀에 들어가면 억겁 동안 쌓인 자신의 한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 시조 ‘어미’에 이르러서는 설움을 토해내며 울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조의 어미소는 죽도록 일하다 힘이 떨어지자 미처 젖도 못 뗀 새끼를 두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다가 당산 길 앞에서 주인을 떠박고 헐레벌떡 뛰어와 새끼에게 젖을 먹여준다.
어린시절 소머슴으로 절에 들어가 살기 시작해 파란고해를 거친 스님은 지금 고통 중생을 적멸로 이끄는 ‘설악산 신흥사’ 조실이다. 만해상과 만해축전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해마다 만해축전에서 시인학교와 시낭송회 등 시인잔치가 빠지지 않는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엮었다. 만해축전에 참가했다가 저자와 첫만남에서 ‘쓸데없는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는 핀잔을 들었다는 권 교수는 서문에서 지난 2005년 ‘세계평화시인대회’ 만찬장에서 오현 스님이 예정이 없이 즉흥적으로 발표한 시조를 소개한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이번 책 ‘적멸을 위하여’는 이 시조의 제목이다. 권 교수는 그때 이 시조를 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 시인이 “이 시 하나에 ‘평화’라는 우리의 주제가 다 압축되어 있다”면서 “대단한 인물”이라고 감탄했던 사실을 전한다.
“끝없이 기침을 하며 비릿비릿하게 살점 묻은 피를 토해내는”(‘천만’)
그의 시조는 우리 몸속에 켜켜히 쌓인 어혈을 쏟아내게 하는 마중물이다. 고통이 없는 행복이, 비움이 없는 충만이, 집착이 없는 적멸이, 죽음이 없는 삶이 있을 것인가. 한 차례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않고 어찌 이처럼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겠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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