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임제선(臨濟禪)-1
임제종 개창자인 임제의현의 선 사상
관념의 벽 초월해 자기 본래면목 파악
임제선이란 중국 선종의 5가(家) 가운데 하나인 임제종과 그리고 그 개창자인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의 선풍, 선사상을 가리킨다.
임제선사는 마조도일-백장회해-황벽희운으로 이어지는 조사선의 직계이다. 오래도록 진주 임제원에 주석했기 때문에 ‘임제’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는 ‘임제할(臨濟喝)’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독특한 방법과 준엄한 가르침으로 납자들을 제접, 지도하여 크게 종풍을 떨쳤다. 그래서 그 후계를 임제종, 임제선이라 한다.
임제종(임제선)의 선풍은 5가 가운데서도 가장 준엄하다. ‘살불살조(殺佛殺祖)’ 즉 부처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조사에도 사로잡히지 말라(超佛越祖와 동의어)라는 말이 상징하고 있듯이 임제선은 권위와 대상, 관념의 벽을 초월하여 근원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본래면목을 파악하도록 요구한다.
임제선의 선풍과 특징에 대하여 청허휴정은 ‘선가귀감’ 말미에 다음과 같이 특필하고 있다.
“맨손 단칼로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인다.
삼현(三玄)과 삼요(三要)로 고금의 선지식을 판단하고 빈주를 가지고 용과 뱀을 알아낸다.
금강보검으로 죽목(竹木)에 붙어 있는 도깨비를 쓸어내고 사자와 같은 기백과 호령으로 호리(狐狸, 여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임제종을 알고자 하는가? 푸른 하늘에서 벼락이 치고 평지에서 파도가 친다
(赤手單刀, 殺佛殺祖,
辨古今於玄要, 驗龍蛇於主賓.
操金剛寶劍, 掃除竹木精靈, 奮獅子全威, 震裂狐?心膽.
要識臨濟宗?. 靑天轟霹靂, 平地起波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임제의 선풍은 중국의 오종가풍 가운데서도 매우 과격하고 와일드하다. 와일드하지 않고는 납자들의 허다한 분별망상을 한 번에 제거해 줄 수 없기 때문인데, 이로 인하여 때로는 선승들이 오판하여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액션을 취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컨대 임제의현이 강조하는 것은 진정견해를 갖추라는 것이다. 진정(眞正)한 견해(見解)란 곧 정법안으로 선의 오의(奧義)를 간파하는 눈이다. 그러나 지혜, 즉 진정견해가 없으면 그것은 부목정령(附木精靈, 헛깨비, 귀신 도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임제는 주로 ‘방(棒)’과 ‘할(喝)’을 사용하여 납자들을 지도했다. ‘방’은 몽둥이, ‘할’은 벽력같은 고함인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할’은 임제선풍을 상징한다. 임제의현은 ‘임제록’에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할(喝)’을 네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어떤 때의 할은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 번뇌 망념을 단칼에 끊어주는 역할)과 같고,
어떤 때의 할은 땅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황금 털 사자(노련한 사자가 사냥을 하듯 납자들을 병통을 잡아채서 제거해 주는 역할)와 같으며,
어떤 할은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하여 장대에 묶은 그림자 풀과 같고(探竿影草, 납자들이 탐간영초에 속아 따라오는지 수행의 경지 시험),
어떤 때의 할은 일체 할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본래면목을 보여 주는 역할
(有時一喝,如金剛王寶劍.
有時一喝,如踞地金毛師子.
有時一喝,如探竿影草.
有時一喝,不作一喝用).”
임제는 자신의 ‘할(喝)’은 하나지만 그 기능과 역할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임제는 누구든 네 번만 ‘할’을 던져 보면 상대방의 경지, 납자들의 병통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번의 할로 상대방을 파악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직관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당대(唐代)의 방장(方丈)은 이와 같이 백전노장이었다.
‘할’ 하나로 수백 명의 수행자들을 지도, 점검했으니 말이다. 누구든 이 할을 구분할 줄 안다면 그는 임제의 거실까지 다가갔다(入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 임제선(臨濟禪)-2
임제선은 조사선의 극치이면서 최고봉
중국 오가 중에서도 가장 융성하고 발전
임제의현이 개창한 임제종과 임제선은 사실상 조사선의 극치, 최고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제종은 중국의 오가(五家) 가운데서도 가장 융성하고 발전했는데, 임제의 6대 법손(法孫)인 석상초원(石霜楚圓, 986∼1039)에 이르러 제자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과 양기방회(楊岐方會, 992∼1049)에 의하여 황룡파(黃龍派)와 양기파(楊岐派)로 나뉘어서 그 문하에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양기파에서 걸출한 선승인 대혜종고가 출현하여 화두참구의 간화선을 제창함으로 인하여 임제종은 중국 선불교의 대부분을 석권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임제록’에는 ‘수처작주 입처개진’ ‘무위진인’ ‘무의도인’ ‘무사시귀인’ ‘평상무사’ 등 유명한 선(禪) 명구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명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으로, 임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큰 그릇의 사람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유혹을 받지 않아야 한다. 어느 곳에 처하던 간에 주(主)가 된다면 그대가 있는 그 자리는 모두 다 참된 곳이 될 것이다”
주(主)는 본체이고 객은 그림자이다. 주는 번뇌 망상 등 모든 것을 항상 자기 페이스로 리드해 간다. 그러나 객(客)은 끌려 다닌다. 객은 주에 소속된 껍데기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깨달은 자는 일체의 번뇌 망상과 사물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각자(覺者)이고 해탈인이며, 번뇌 망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대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위진인(無位眞人)은 일체의 고정관념과 범주를 초월한 참 사람(眞人), 어떠한 틀에도 박혀 있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데, ‘임제록’을 보도록 하자.
“임제선사가 상당하여 설했다. 벌거벗은 육체 위에 하나의 지위 없는(一無位) 참 사람(眞人)이 있다. 항상 여러분들의 눈과 귀, 코, 입으로 드나들고 있다. 아직 그것을 보지 못한 사람은 똑똑히 보도록 하라.”
여기서 말하는 참 사람이란 육신 덩어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그 육신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 즉 주인공을 뜻한다. 임제는 그것을 장자(莊子)에 나오는 ‘참 사람(眞人)’이라는 말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데, 용어는 같아도 뜻은 좀 다르다.
무의도인(無依道人)은 어떠한 것에도 의지, 의존하지 않는 독존의 주체자, 자립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예컨대 연예인들의 삶은 매우 화려하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은 항상 소속사의 통제를 받는다. 일거수일투족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의존하는 곳이 있다면 그 누구든 통제자의 손아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에서 무사는 경전 첫 구에 나오는 무학(無學, 더 이상 배워야 할 것이 없음)과 동의어로, 깨달은 사람, 수행을 완료하여 더 이상 닦아야할 일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부처를 가리키는데,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존귀한 사람(貴人)이라는 뜻이다. 평상무사(平常無事)도 무사시귀인, 평상심시도와 같은 말이다. 살불살조는 임제의 선풍을 잘 압축한 말임은 이미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다.
‘임제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것이 정법안이며, 진정(眞正)한 견해인가(如何是 眞正見解)’라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올바른 견해를 갖출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실상을 바로 보는 눈 즉 반야지혜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윤창화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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