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鳳仙花) / 김상옥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 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
사향(思鄕) / 김상옥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 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 술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느티나무의 말 / 김상옥
바람 잔 푸른 이내 속을 느닷없이 나울치는 해일이라 불러다오.
저 멀리 뭉게구름 머흐는 날, 한 자락 드높은 차일이라 불러다오.
천 년도 눈 깜짝할 사이, 우람히 나부끼는 구레나룻이라 불러다오.
密使
수염이 더부룩한 젊은 목수는 과수원 울타리를 손보고 있었다.
하늘에 맹세한 순결에도 몸이 무거워진 사과나무! 그러나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난 봄 잉 잉 잉 꿀벌들의 외마디 소리, 당신의 밀사로서 다녀간 것을.
시집 <느티나무의 말>1998, 상서각
김상옥 시인
△경남 통영 출생(1920~2004)
△'맥' 동인활동(1938)
△《문장》시조 등단(1939).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1941)
△통영문인협회 창립(1956). 우리 시를 사랑하는 모임 고문(1999)
△마산·통영·삼천포·부산 등지에서 중등교사 역임. 1962년 서울로 이주, 골동품 가게 '아자방' 경영. 일본 교토에서 서화전 개최(1972)
△노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수상. 보관문화훈장 수훈
△시(조)집『초적』,『고원의 곡』,『이단의 시』,『석류꽃』외 다수
△동시집『꽃 속에 묻힌 집』
△산문집『시와 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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