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 좌 복
외진 절에서 기다란 좌복 하나를 얻어왔다
누구에게나
텅 빈 방 안에서
온몸으로 절을 올리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찔레나무 가지 끝에서
막 고개를 쳐드는 자벌레 한 마리
가지가 찢어져라 애먼 하늘을 볼 때
-이홍섭(1965~ )-
*좌복: 참선이나 절을 할 때 쓰는 방석*
우리들 생(生)의 지도에는 여러 갈래
'찔레나무' 가지들이 굽이쳐 있다.
그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으니 하나만 택할 수밖에.
그러나 그 끝에 이르렀을 때, 그래서 더 이상
가야 할지 아니면 되돌아와 다른 가지로 가야 할지
망설여질 때, 우리는 오래 하늘을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리석은 자벌레인 우리는.
허리와 머리와 무릎을 굽혀 가지런히 절하면,
'나'라는 것은 맑은 물이 되어 순리(順理)대로 흐르고 고인다.
그때 그 절하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자벌레가 아니라 속으로 들어가는 자벌레인 셈이다.
그 사람의 말소리는 낮아지고 얼굴은 편안해지며
다투던 일도 줄게 된다. 절은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다.
낮은 데에 이르러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이 있지 않은가.
저 우리가 갈구하는 진리(眞理) 말이다.
교회에 하나님이 있고 절에 부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낮은 곳, 힘들고 어려운 삶들,
그들에게 절하는 좌복이 없다면 높은 사람이 아니리.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 2012/04/02/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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