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박성우]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
우린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 받았던가
그대의 바닥과 나의 바닥, 손바닥
괜찮아, 처음엔 다 서툴고 떨려
처음이 아니어서 능숙해도 괜찮아
그대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핥았던가
아, 달콤한 바닥이여, 혓바닥
괜찮아, 냄새가나면 좀 어때
그대 바닥을 내밀어 봐,
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
그대와 내가 마주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바닥
그래, 우리 몸엔 세 개의 바닥이 있지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
바닥에 대하여 [정호승]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으로 사는 것 [장시우]
원주천 둔치를 걷는다
어제 내린 비에
덜 마른 흙이 말랑하다
어제 만든 누군가의 발자국이
오늘 바닥이 되어 앉았다
발자국이
바람이 그린 물결 무늬같다
오늘 내가 만든 발자국도
누군가에게는 바닥이 되리라
밟히며 사는 일이
고단한 일만은 아니라는 듯
다소곳하게 제 몸 드러내는 발자국들
누군가의 발자국 위에
가볍게 발을 얹고 건넌다
웃자란 갈대들이
바람에 고개를 돌린다
흐르는 물도
바닥이 되어 길을 만든다
* 神이 굳이 지상의 가장 누추한 곳으로 와서 인간으로 태어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바닥으로 내려와 가장 자신을 닮은 인간을 다시 본 모습으로 돌리려는 목적이었을 테다.
인간은 누구나 넘어지고 깨지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걷는 모습을 갖는다.
그것이 神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의 삶이 바닥이라 하여도 그것은 오히려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뜻이므로
이제 올라설 것만을 생각해도 될 것이다.
오늘은 아기예수가 세상에서 가장 바닥으로 와서 탄생한 날이다.
神도 인간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인간들에게 보여주고 갔다.
다만 인간으로서의 품위, 즉 神의 품위를 가지고 살라는 본을 보여주고 간 게다.
성탄절이라고 흥청망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품위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침잠하는 하루가 되길 빈다.
'#시 > 영상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 속에 우는 님을 보다 (0) | 2012.07.02 |
---|---|
무지개 / 이홍섭 (0) | 2012.07.01 |
날 좀 때려주오 /박상주 (0) | 2012.07.01 |
틈,사이 / 복효근 (0) | 2012.07.01 |
크리티컬 블루, 재즈 학교 ........... 류근 (0) | 2012.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