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현물(現物)이니 / 유종인
더듬어봐라
숨 놓고 얻게 된 푸른 무덤
오랜 돌비석에 새겨진 당신 이름에
흰 똥을 갈기고 가는 새들이 짧은 영혼을 뒤돌아보겠는가
당신을 품은 무덤도 당신 모르고
당신 이름을 새긴 돌비석도
당신 모르는데, 사랑은
미나리아재비과(科) 독성 품은 풀빛에도 기웃거린다
아연실색, 제 몸빛조차 모르고 흔들리다,
사라진다
더듬어봐라
사랑은 현물이니
맘에 담아 이리저리 말로 꿰려는 이여,
깨어진 돌비석에 역시 깨어진 당신 이름이여
한 이름 둘로 나뉜 비석 돌에 여전히 흰 똥을 떨구고 가는 새들,
성큼 자라오른 가시엉겅퀴 그림자가
깨진 당신 돌 가슴을 겁탈하듯 한나절 끌어안다 가는 것을
삵 / 유종인
초록이 우북해졌다
꽃이 진다는 말을 잎사귀로 가리고
꽃들이 숨는다
다른 연애가 있는 모양이다
다른 병치레에 몸을 주러 가는 모양이다
영산홍 철쭉꽃 만첩조팝꽃
눈에 지는 몇 꽃은
그래도 숨는다 말꼬리를 흘리며,
땅에 듣는 그 꽃의 혼백이 갈릴 땐
꽃자루 헐거워진 그 틈새로
뱃구레가 훌쭉한 삵이 든단다
떠날 꽃 떠도는 꽃에 울음도 가벼운
노회한 삵이
초승달 같은 발톱을 숨겨 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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