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사랑은 현물(現物)이니 / 유종인

경호... 2012. 5. 28. 21:13

 

 

 

 

 

 


사랑은 현물(現物)이니 / 유종인 

 

더듬어봐라

숨 놓고 얻게 된 푸른 무덤

오랜 돌비석에 새겨진 당신 이름에

흰 똥을 갈기고 가는 새들이 짧은 영혼을 뒤돌아보겠는가

 

당신을 품은 무덤도 당신 모르고

당신 이름을 새긴 돌비석도

당신 모르는데, 사랑은

미나리아재비과(科) 독성 품은 풀빛에도 기웃거린다

아연실색, 제 몸빛조차 모르고 흔들리다,

사라진다

 

더듬어봐라

사랑은 현물이니

맘에 담아 이리저리 말로 꿰려는 이여,

깨어진 돌비석에 역시 깨어진 당신 이름이여

한 이름 둘로 나뉜 비석 돌에 여전히 흰 똥을 떨구고 가는 새들,

성큼 자라오른 가시엉겅퀴 그림자가

깨진 당신 돌 가슴을 겁탈하듯 한나절 끌어안다 가는 것을

 

 

 

 

삵 / 유종인 

 
초록이 우북해졌다

꽃이 진다는 말을 잎사귀로 가리고

꽃들이 숨는다

다른 연애가 있는 모양이다

다른 병치레에 몸을 주러 가는 모양이다

영산홍 철쭉꽃 만첩조팝꽃

눈에 지는 몇 꽃은

그래도 숨는다 말꼬리를 흘리며,

땅에 듣는 그 꽃의 혼백이 갈릴 땐

꽃자루 헐거워진 그 틈새로

뱃구레가 훌쭉한 삵이 든단다

떠날 꽃 떠도는 꽃에 울음도 가벼운

노회한 삵이

초승달 같은 발톱을 숨겨 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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