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지혜와 어리석음은 하나
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국에 ‘양주팔괴(揚州八怪)’라는 말이 있다. 청나라 때 강소(江蘇)성 양주를 무대로 활약한 8인의 화가들을 지칭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화법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괴짜’라는 말을 듣게 된 연유다. 그중 대나무와 난 그림에 뛰어났던 정판교(鄭板橋)가 있다.
그는 시(詩)·서(書)·화(畵)에 모두 능한 삼절(三絶)로서, 특히 대나무(竹)를 잘 그렸다.
‘(대나무는) 푸른 산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네(咬定靑山不放<9B06>)
뿌리가 깨진 바위틈 사이에 박혀 있구나(立根原在破巖中)
비바람이 천번 만번 불어닥쳐도 굳건하니(千磨萬擊還堅勁)
동서남북 어디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든 불고 싶은 대로 불려무나(任爾東西南北風)’
그의 시 ‘죽석(竹石)’이다. 그에게 대나무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인품이었던 것이다.
그의 묵죽화(墨竹畵)는 눈앞에 보이는 대나무(眼中之竹)에서 마음속의 대나무(胸中之竹)를 거쳐 손 안의 대나무(手中之竹)에 도달하는 예술적 변화를 성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평생 자유인으로 살고자 한 그의 처세술은 ‘난득호도(難得糊塗)’다. 그대로 풀이하면 ‘바보인 척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총명하기는 어렵고 어리석기 또한 어렵다(聰明難 糊塗難)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기는 더욱 어렵다(由聰明轉入糊塗更難)
집착을 버리고 한걸음 물러서면 마음이 편해진다(放一著 退一步 當下心安)
뜻하지 않고 있노라면 훗날 복으로 보답이 올 것이다(非圖後來福報也)’
인생을 바보처럼 사는 게 왜 좋은지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어수룩함이 지혜와 닿아 있다고 믿어온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노자(老子) 또한 ‘기교가 뛰어나면 어리석어 보이고 훌륭한 말일수록 어눌하게 들린다(大巧若拙 大辯若訥)’고 하지 않았던가.
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과 결국엔 한 가지인 것이다(大智若愚).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큰 바보’라고 풀이했던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최근 폐 속의 침(鍼)을 제거하는 보기 드문 수술을 했다. 내년이면 그가 재임 당시 성사시킨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는다. 한·중 수교는 ‘큰 바보’가 공들여 추진했던 북방외교의 빛나는 결실이다. 노 전 대통령의 쾌유를 빈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竹詩죽시 대나무 시 / 鄭板橋 정판교
咬定靑山不放? 교정청산불방송
主根原在破巖中 주근원재파암중
千磨萬擊還堅勁 천마만격환견경
任?東西南北風 임니동서남북풍
新竹高於舊竹枝 신죽고어구죽지
全憑老幹爲扶持 전빙노간위부지
明年再有新生者 명년재유신생자
十丈帝孫繞鳳池 십장제손요봉지
푸른 산 꽉 물어 헐렁함이 없고
곧게 뻗은 뿌리는 바위 깨고 들어갔네
수없이 비비고 부딪치며 단단해졌으니
동서남북 모든 바람 네게 맡기리
새로 난 대나무 옛 가지보다 높지만
모두가 오래된 줄기에 떠받쳐 있네
내년에도 또 다시 새 가지 나올 테니
하늘이 낸 자손들 연못 둘러싸겠네
북쪽에 살면서 그리운 것은 단연 대나무 숲이다. 지난 며칠 따뜻했으므로 남도의 대숲은 지금쯤 완연한 푸른빛일 것이다. 햇빛 못 들어간 대숲 그늘 밑에는 녹다 만 눈이 남아있겠지만 봄기운은 하늘에서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솟기도 하는 것이라서 햇볕이 아니라도 남은 눈은 녹기 마련이다. 대숲을 지나는 바람소리 그리운지 귀가 간지럽다.
▶ 咬定(교정): 꽉 물다.
▶ 放?(방송): 느슨하다. 긴장을 풀다.
▶ 主根(주근): 수직으로 곧게 뻗은 뿌리.
▶ 帝孫(제손): 하늘이 낸 천손. 직녀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 鳳池(봉지): 봉황지, 곧 궁궐 안에 있는 연못을 가리킨다.
◈ 정섭鄭燮 [1693~1765]
청대淸代의 화가이자 문학가이다. 자는 극유克柔, 호는 판교板橋로 쟝쑤성江蘇省 흥화興化 사람이다. 어려서 집안이 가난하였다. 과거에 응시하여 강희제康熙帝 때 수재秀才가 되었고 옹정제雍正帝 때 거인?人이 되었으며 건륭제乾隆帝 때 비로소 진사進士가 된 후, 산동의 범현范縣과 유현?縣의 지현知縣을 지냈다. 훗날 고을 사람의 소송을 도와 이기게 한 것으로 지방 호족들의 미움을 사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온 뒤로는 다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시詩?서書?화畵 모두 특색 있는 작풍을 선보였으며 그림에서는 양주팔괴楊州八怪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난蘭과 죽竹 그림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림으로는 《묵죽도병풍 墨竹圖屛風 》, 문집으로는 《판교시초板橋詩?》와 《도정道情》이 있다.
청대(淸代) 서화가 판교(板橋) 정섭(鄭燮)의 <난죽도(蘭竹圖)>
※ 판교(板橋) 정섭(鄭燮), <난죽도(蘭竹圖)> 화제(畵題)
竹是新栽石舊栽 竹含蒼翠石含苔
一?風雨三更月 相伴幽人坐小齋
(죽시신재석구재 죽함창취석함태
일창풍우삼경월 상반유인좌소재)
대나무는 새로 심었고 돌은 오래 됐는데
대나무엔 푸른 빛 비끼었고 돌에는 이끼 끼었네
창가에 비바람 불더니 한밤엔 달 떠오르는데
선생은 이들을 짝하여 작은 서재에 앉아있네
청대(淸代) 서화가(書畵家) 판교(板橋) 정섭(鄭燮)의 <난죽도(蘭竹圖)>
☞ 판교(板橋) 정섭(鄭燮), <난죽도(蘭竹圖)> 제시(題詩)
烏紗擲去不爲官 華髮蕭蕭兩袖寒
寫去數枝淸挺竹 秋風江上作漁竿
(오사척거불위관 화발소소양수한
사거수지청정죽 추풍강상작어간)
관직을 내던지고 벼슬을 하지 않으니
하얗게 센 머리 거칠고 소맷자락 썰렁하네
몇 줄기 파리한 대나무를 그려내니
바람 부는 가을 강 위 낚싯대 만들까보다
<1, 4련(聯)은 같지만 2, 3련은 囊?蕭蕭兩袖寒 寫取一枝淸瘦竹(주머니는 텅 비고 소매마저 썰렁하네/
한 줄기 말끔하고 여윈 대나무를 그리니)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문맥에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 烏紗: 검은 깁. 정무를 볼 때 쓰는 관(冠)을 뜻하는 오사모(烏紗帽)를 줄인 말로 여기서는 관직의 의미.
※ 擲去: 던져서 내버림
※ 不爲: ~하지 아니하다
※ 華髮: 하얗게 센 머리카락. 노인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
※ 囊?(낭탁): 주머니. 자기의 차지로 만듦, 또는 자기 차지로 만든 물건.
참고:
http://moyangsung.blog.me/122922263
http://cafe.daum.net/yap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