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자진한잎(淸聲數大葉) 그 천의무봉의 세계로...
대금 정악중의 백미(白眉)라 일컬어지는 대금독주 '淸聲曲'의 원래 이름은 '청성자진한잎(淸聲數大葉)' 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곡을 전설의 고향등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제 경우도 역시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때 여러가지 악기에 관심이 많아서, 이리 저리 시도해보기도 했었지요.
제가 주로 악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 한가지입니다. 음악듣다가 음악에 필이 빡 꽂혔을 경우, 내가 직접 저 음악을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거였습니다.
우리 동아리 음악 감상실에는 물론 서양고전음악음반이 주로 많았지만, 그 중에 국악음반도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국음악선집이라는 아주 놀랄만한 음반이 있었는데, 일반 LP의 검정재질과는 다른 약간 투명한 녹색을 띤 이 70년초기 국악음반에는 현재는 타계하신 녹성 김성진 선생의 대금독주 '청성곡'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 고색창연한 음반에 수록되었었던 문제의 곡, 아마 곡 이름은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으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곡이 바로 청성곡의 다른 이름입니다. 요순시절의 화평한 곡을 뜻하는 별명으로 추측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음반에서 대금독주를 하신 분이 바로 무형문화재20호 대금정악의 인간문화재셨던, 綠星 김성진 선생이었습니다. 잠깐 이 분에 대해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綠星 김성진 선생은 한마디로 대금정악에 있어서는 전설적인 분입니다. 95년 타계하셨는데, 현재 모든 대금정악하시는 분의 조사(祖師)라 하실만한 분입니다. 20세기초 대금명인 최학봉-김계선을 잇는 분이며, 거의 대금정악의 맥을 홀로 지키셨다시피 한 분입니다. 평생 오로지 대금정악만을 하셨고, 거의 악기중 유일하게 대금을 무형문화재의 반열에 올리신 분입니다.
당시 청성곡을 처음 들었을 땐, 이런 사실을 몰랐었죠. 단지 이 오묘한 음의 흐름은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기에 한 번에 끌려버렸습니다. 마치 경국지색을 눈으로 직접 보았을때와 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대학 4학년 그 열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옆의 국악연구회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한 달간 도드리와 영산회상 타령만 배웠을 뿐이었지만, 이어 혼자서 음반을 듣고 하여 영산회상 그리고 몰래 이 청성곡을 불어 보곤 했었는데,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김성진 선생의 이 청성자진한잎을 무엇이라 표현할까요...!! 천의무봉(天衣無縫)하다고 할까요... 그 음의 농음이 너무 자연스럽고, 또한 살아있는 듯한 생명력에, 마치 살아있는 용이 꿈틀거리며 창공으로 승천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좀 과장인 듯 하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입신의 경지에 오른 연주는 사실 미안한 얘기지만 다른 분들의 연주에서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현재 대금정악의 무형문화재이신 김응서선생과 또한 김성진선생의 연주와 가장 가깝다고 하는 조창훈선생, 그 외에 황규일 등 많은 명인들이 계시지만, 저런 소리는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하나 꼽으라면 조창훈선생이 가장 비슷하고, 그 다음이 김응서선생이라고 개인적으로 평하고 싶습니다.
그 음반의 곡을 올려드리고 싶었으나, 제가 기술이 부족하고, LP 포노앰프의 문제로 못 올려드려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대신에 이리 저리 찾아 헤매다가 아주 좋은 음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김성진 선생의 청성자진한잎은 음반이 사실 현재 거의 구하기 어렵고, 저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아래 국립문화재 연구소가 사가판으로 한정 제작한 음반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구입은 불가합니다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홈페이지에 음원을 MP3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아래 주소를 클릭해 보시면 바로 김성진 선생의 70년대 초 한참 절정기의 청성자진한잎을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곡을 다시 찾고 오늘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김성진 선생의 연주는 제가 들은 그 연주와 약간 차이는 있지만, 그 길은 거의 동일합니다. 한마디로, 입신(入神)의 경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그런 절묘한 성음입니다.
한 번 꼭 들어보세요...!! 저를 국악에 입문하게 만든 바로 그 곡입니다.
http://www.nrich.go.kr/kr/mmulti/mContentS.jsp?ca_id=4&arc_id=85&arc_datatype=S&mss_id=263
거문고가 비오는 여름날 낙수물 소리라면, 대금은 늦가을 기러기 우는 소리라고 합니다.
늦은 가을 그 추수가 끝난 텅 빈 벌판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세요. 기러기 무리가 떼를 지어 어디론가로 날아갈 겁니다.
그 늦가을 밤에 기러기 우는 소리가 바로 이 소리입니다.
여기서 청성자진한잎의 근원을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원래 이 곡은 우리나라 가곡(歌曲)의 마지막곡인 태평가(太平歌)를 변조하여 독주곡으로 만든 곡입니다.
우리나라 전통가곡은 그야말로 정악에서 가장 예술성 높은 곡입니다. 시조를 가사로 하여 이에 거문고, 가야금, 해금, 피리, 대금, 장구로 구성된 반주음악이 따라 붙는데, 보통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으로 나뉩니다. 일반적으로는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가곡을 부르게 되면,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한 시간 정도 부르고 맨 마지막으로 남자 여자가 같이 부르는 맨 마지막 노래가 태평가 입니다. 이 태평가는 원래 가장 느린 이수대엽으로부터 파생된 곡으로 그 전 가곡의 모든 곡을 아우르는 백미(白眉)와 같은 곡입니다
.
가곡은 원래 아주 느린 만대엽(慢大葉), 중대엽(中大葉) 그리고 가장 빠른 삭대엽(數大葉) 세 가지가 있었는데, 앞에 두 가지는 너무 느려서 마지막 삭대엽만 남았답니다. 근데 이 삭대엽도 앞부분 곡인 이수대엽의 경우 엄청 느립니다.^^
하여튼 가곡의 원래 이름이 삭대엽(數大葉)이고 이를 우리 말로 풀이하면 '자진(數 자주 삭) 한(大 큰 대) 잎(葉 잎 엽)'이 되는 것이죠..
청성(淸聲)이란 말은 '맑고 높다' 즉 고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청성자진한잎은 가곡을 높은 음으로 연주하는 곡이란 뜻이 됩니다. 물론 원곡 그대로의 선율이 아니라, 연주자의 흥취에 따라 길게 늘일 부분과 시김새를 자유롭게 하여, 독주곡의 묘미를 살리게 됩니다. 독주곡인 청성자진한잎은 보통 단소, 대금의 독주곡으로 유명합니다.
한 번 들어보시면, 그 아정하고 고아한 살아있는 대바람 소리와 우리 음악의 깊이를 조금이라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현재 국립국악원의 무형문화재이신 김응서 선생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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