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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은 "어서 가자"고 나를 재촉한다

경호... 2012. 2. 26. 04:11

 

[[머니위크]장태동의 여행일기/지리산 둘레길]

냇물을 건너고 산굽이 돌아 길은 본격적으로 산속으로 접어든다. 30여분 걸었을까? 등에 땀이 흐른다. 서서히 몸이 산에 적응 하는 것 같다. 걷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때쯤 눈앞에 나타난 상사폭포, 계곡바람이 상쾌하다 큰 호흡으로 푸른 숲의 정기를 흠뻑 빨아들였다. 몸이 먼저 '어서 걷자'고 마음을 인도한다. 아무 생각 없이 숲속을 걷는 게 행복했다.

◆몸이 숲에 적응하고 있었다

서둘러 길을 재촉했지만 걷기여행 출발지인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에 도착한 건 오후 2시10분이었다. 지도상 거리가 10km 정도 되니 평지를 걸어도 3시간 거리인데 산길이라서 1시간은 더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에 왔으면서 공원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은 6·25 전쟁 때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중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 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점촌 마을, 유림면 서주 마을에 살던 양민 705명이 희생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때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을 모신 묘역이다.

지리산 산골오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추모공원을 나와 방곡리 마을 쪽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길 왼쪽에 지리산 둘레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약간의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냇물이 나온다. 냇물을 건너 산굽이를 돌아가다 보면 흙길이 나오고 길은 산 속으로 이어진다.

산굽이를 다 돌아 들어가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경사는 심하지 않은데 오랜만에 걸으니 몸이 부자연스럽다. 옆으로 계곡이 흐르고 우리는 그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다. 은빛 억새와 푸른 소나무가 어울린 풍경이 이어진다.

겨울 끝자락 산길은 낙엽과 푸른 이끼가 공존하고 발길 내딛을 때마다 부드럽게 밟히는 흙길은 이제 곧 새순을 피워낼 봄을 느끼게 해준다.

30여분 걸었을까 몸에 땀이 구른다. 약간의 오르막에 숨이 차다. 땀을 닦고 숨을 고르려 잠시 발걸음을 멈추려는 순간 눈앞에 거대한 바위 절벽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 나타났다. 바위절벽 한쪽에는 20여m 높이의 폭포가 있다. 상사폭포다. 수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 물줄기가 얼어 빙벽을 이룬 모양은 볼만 했다.

상사폭포 위로 길이 이어지는데 가파른 계단을 잠깐 올라야 한다. 폭포 위에 통나무로 앉을 곳을 만들어 놓았다. 한줄금 땀을 쏟아 낸 몸은 이미 산길에 적응해 있었고, 마음보다 먼저 몸이 '어서 걷자'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걷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큰 호흡으로 숲속의 푸른 정기를 흠뻑 마시고 걷기 시작했다.

◆최고의 조망, 산불감시초소

'쌍재 2.1km'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다. 오랜만에 걷는 흙길이 정겹다. 곳곳에 돌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흙 때문에 미끄러지기 쉬운 곳을 쉽게 올라갈 수 있게 했다.

숲 그늘에서 벗어나 하늘이 보이는 곳에 이르니 눈높이까지 자란 나무에 새순이 돋았다. 꼬마전구가 불을 밝히듯 나무에 돋아난 새순이 숲속의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억새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흔들고 솔숲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산길이 구불구불 나 있다. 대나무 목책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걷는다. 땅 주인이 걷기여행에 나선 사람들을 배려하여 사유지에 길을 내준 것이다. 목책이 끝나고 조금 더 올라가니 민가가 한채 나왔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본 수철리 풍경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있는 아저씨 아줌마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늦게 올라오시네요"라며 인사를 대신한 아저씨는 퇴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약초농사를 지으신단다. 둘레길이 생기고는 오가는 사람들 발길 쉬어가라고 라면, 막걸리, 차 등을 판다.

우리 보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 한모금 하고 쉬었다 가라"시는 아저씨의 말에서 도시의 옹이 박힌 상술이 아니라 푸근한 인심이 묻어난다. 이곳이 '쌍재'마을인데 예전에는 30~40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아저씨 집 한채가 다다. 산속에 집 한채가 외롭게 보였지만 제2의 인생을 가꾸어 가는 아저씨 아줌마의 분주한 손길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길은 임도를 만나 잠깐 넓어졌다. 쌍재에 이르러 길은 다시 숲속으로 이어졌고 그 길로 가면 고동재가 나온다. 임도를 걷는 것보다 이제는 숲길을 걷는 게 오히려 편하다. 숲길을 걷는 동안 몸도 숲에 적응했나보다.

걷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숲속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 있을 뿐 생활의 편린들은 모두 사라졌다. 걷는 게 행복했다.

그렇게 숲길을 걷는데 갑자기 시야가 트였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이다. 이 구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초소에서 우리가 출발했던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이 있는 방곡리가 내려다보이고 반대쪽에는 수철리가 보인다. 산기슭을 타고 올라 계단처럼 된 '다랭이논'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이런 경치 앞에서 발걸음이 저절로 멈추어졌다. 이제 반 정도 왔다.

◆해는 저물고 길은 계속 된다

이제는 내리막이다. 원래 지리산 둘레길 공식코스는 수철리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방곡리에 차를 세워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방곡리로 돌아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내리막이지만 곳곳에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그 길에는 약간의 바위코스도 있고 전망바위도 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보는 전망보다 못하지만 가슴 시원한 풍경은 여전했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 길을 걸어 드디어 고동재에 도착했다.

고동재에서 수철리로 내려가는 이정표를 봤다. 수철리로 가는 길 반대쪽이 방곡리로 가는 길이다. 조금 걸으니 삼거리가 나왔고 우리는 우회전해서 길을 걸었다. 길은 차 한대가 충분히 다닐 수 있는 넓이의 길이었다.

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가현마을이 나왔다. 시멘트 도로와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이 낯설었다. 길은 우리가 지나온 뒤에 그대로 남아 있고 우리는 자연을 벗어나 다시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




◆걷기여행 끝에 펼쳐진 행복한 밥상

차를 주차해 놓은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저물었다. 물 한모금으로 갈증을 풀고 팍팍한 다리를 주무르며 저녁메뉴를 생각했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청에서 먹어야 할 것 중 으뜸은 지리산에서 자라는 약초와 산나물로 한 요리 아니겠는가.

산청한의학박물관 앞에 있는 '약초와 버섯골'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이름처럼 이 집은 약초와 버섯요리가 주 메뉴였다. 식사로는 '약초버섯매운탕'과 '약초버섯맑은탕'이 있고 '약초와 버섯전골(샤브샤브)'은 한우가 곁들여진 요리다.

이 모든 요리의 기본은 육수다. 육수를 만드는데 인삼, 두충, 오가피, 황기, 당귀 등 11가지 한약재가 들어간다. 육수가 맑고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다.

'약초와 버섯전골(샤브샤브)'은 중풍을 예방한다고 알려진 방풍, 간을 보호하고 근육을 튼튼하게 한다는 독활과 함께 당귀 오가피 등과 송이버섯 표고버섯 등 5가지 버섯, 그리고 쇠고기가 들어가는 요리다.

'약초버섯매운탕'과 '약초버섯맑은탕'은 재료는 같은 데 맵고 안 맵고 차이가 난다. 여기에도 물론 11가지 한약재로 우린 육수가 들어가고 표고버섯 등 각종 버섯과 약초나물이 들어간다.

우리는 칼칼한 국물을 좋아해서 '약초버섯매운탕'을 시켰다. 설설 끓는 돌그릇 안에서 은은하지만 깊은 맛이 나는 국물이 버섯과 함께 끓고 있다. 정갈한 반찬을 곁들인 행복한 밥상을 앞에 두고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먹는다. 씹을수록 맛이 깊어진다. 우리는 오늘 걸었던 지리산 둘레길 이야기를 하며 여유 있게 음식 자체를 즐겼다. 식사 끝에 먹은 표고버섯과 무로 끓인 따듯한 차 한잔이 구수하다.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 자가용을 가져간다면 원점회귀 걷기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에서 출발해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오는 코스를 걸어야 한다. 차는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 주차장에 세워야 한다(추모공원 입구에 있는 관리실에 주차 가능 여부를 물어본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생초IC로 나와 좌회전(구형왕릉 덕양전 방향)한 뒤 덕양전 가기 전에 있는 농협 하나로마트 서하점을 지나서 우회전, 금서초등학교와 경호중고등학교 앞을 지난다. 임천강변길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상촌마을, 점촌마을을 차례로 지나게 되고 길 오른쪽에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이 나온다. 추모공원 앞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길 왼쪽에 지리산 둘레길을 알리는 나무 이정표가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

대중교통

: 서울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산청행 버스를 탄다. 산청 지리산 둘레길 출발 또는 도착지점인 방곡리 또는 수철리로 가려면 산청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방곡리 가는 버스는 오전 8시30분, 낮 12시20분, 오후 5시 3대다(차 시간은 변경될 수 있으니 확인은 필수). 수철리 가는 버스는 오전 8시50분, 오전 10시20분, 오후 1시20분, 오후 3시30분, 오후 5시40분에 있다(차 시간은 변경될 수 있으니 확인은 필수). 방곡리에서 산청으로 나오는 차가 수철리보다 드물기 때문에 걷기여행은 방곡리에서 시작해서 수철리에서 끝내는 게 좋다. 수철리에서 산청으로 나오는 버스 막차가 오후 6시50분에 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수철리 마을회관에 도착해야 한다. 산청읍내에서 수철리까지 약 6km 정도 거리다. 차 시간이 안 맞으면 택시를 이용할 만하다.

*걷기여행 코스 간략 안내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6·25 한국전쟁 당시 학살당한 양민들의 영혼을 달래고자 만든 추모공원) - 상사계곡(물이 깨끗해 발 담그고 놀기 좋다) - 상사폭포(20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 쌍재로 가는 길에 막걸리, 라면, 차 등을 파는 집이 한채 있다. - 쌍재 - 산불감시초소(가장 전망이 좋은 곳. 방곡리와 수철리는 물론 저 멀리 산청읍내도 보인다) - 고동재 - 수철리로 내려가거나 출발지점인 방곡리(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로 다시 돌아간다. 고동재에 수철리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다. 방곡리로 가는 길은 수철리 반대 방향인데 길을 따라 조금 가다가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해서 계속 길 따라 간다. 약 40~50분 정도 걸으면 가현마을이 나오고 가현마을을 지나면 바로 방곡리(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가 나온다. 약 10km 거리에 3시간40분 정도 걸은 셈이다. 서둘러 걸어서 그렇지 여유 있게 걷고 중간에 쉬었다면 4시간30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음식

산청은 약초의 고장이다. '약초와 버섯골' 식당에서 약초와 버섯 등을 넣고 끓인 '약초버섯매운탕' '약초버섯샤브샤브' 등의 요리가 인상적이다. 산청의 특산품 중 하나인 곶감 맛도 괜찮다.

●숙박

둘레길 출발 및 도착 지점인 방곡리와 수철리에 민박집이 몇곳 있다. 지리산 자락인 중산리와 대원사 계곡, 경호강 주변에 민박 및 펜션이 있다. 남사예담촌에 가면 한옥민박을 할 수 있다. 산청 읍내에 모텔 및 여관이 있다.

●문의전화

산청교통 : 055-973-5191

약초와 버섯골 : 055-973-4479

수철리 민박 : 010-8611-1322

방곡리 민박 : 010-4544-0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