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 김경미
1
옳지 않다
나는 왜 상처만 기억하는가
가을밤 국화 줄기같이 밤비 내리는데
자꾸 인간이 서운하여 누군가를 내치려보면
내가 네게 너무 가까이 서 있다
그대들이여, 부디 나를 멀리해다오, 밤마다
그대들에게 편지를 쓴다
2
물 주기도 겁나지 않는가
아직 연둣빛도 채 돋지 않은 잎들
동요 같은 그 잎들이 말하길
맹수가 아닌 갓 지은 밥처럼 고슬대는 산양과
가슴 한가운데가 양쪽으로 찢긴 은행잎이
고생대 이후 가장 오래 세상을 이겨왔다 한다
3
관상(觀相)에서 제일 나쁜 건 불 위에 올려진 물 없는
주전자 형상이라지 않는가
바닥 확인하고 싶으면 가끔 울어보라 한다
가을 통화 /김경미
"아침에 일어나면
늘
어떻게하면
어제보다 좀 덜 슬플 수 있을까
생각해요......"
오래 전 은동전 같던 어느 가을날의 전화.
너무 좋아서 전화기째 아삭아삭 가을 사과처럼 베어먹고
싶던. 그 설운 한마디. 어깨 위로 황금빛 은행잎들
돋아오르고. 그 저무는 잎들에 어깨 집혀 생이라는
밀교. 밤의 어디든 보이지 않게 날아다니던. 돌아와
찬 이슬 털며 가을밤. 나도 자주 잠이 오지
않았었다.
'#시 > 영상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부 / 김 석 (0) | 2012.02.20 |
---|---|
혹 / 문정희 (0) | 2012.02.20 |
등신 / 김세형 (0) | 2012.02.08 |
꽃과 편지 / 엄창섭 (0) | 2012.02.08 |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0) | 2012.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