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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나무가 차디 찬 바위에 기댔을 뿐이니(법전 큰스님)|

경호... 2012. 1. 15. 02:49

 

제 목: 마른 나무가 차디 찬 바위에 기댔을 뿐이니

법전스님

월간 해인지 2000 5 (219 )

 

검진삼천조관 盡三千條貫하여도
갱무정죄가단 更無情罪可斷이로다.
삼천조항의 법규를 다 뒤져도

정과 죄를 판단할 길이 없도다.

옛날에 한 노파가 암자의 스님을 20년 동안 시봉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 노파는 공양을 날라주던 딸에게 말했습니다.
스님을 껴안고는이럴 때는 어떠십니까?’라고 물어보고 그 대답을 나에게 전해다오
.”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하였습니다. 공양을 마친 후 그릇을 거두고는 가만히 스님을 껴안았습니다
.
그리고는 어머니가 시킨대로 물었습니다
.
이럴 때는 어떠십니까
?”
고목
枯木 의한암倚寒巖하니 삼동三冬 무난기無暖氣로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도 따사로운 느낌이 없도다
.”
딸은 돌아와서 그대로 어머니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노파는내가 20년 동안 겨우 속인을

공양시켰구나.” 하고는 벌떡 일어나 그 스님을 내쫓고는 암자에다가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이것이 종문에 전해오는 유명한 파자소암婆子燒庵 공안입니다.
늙은 할망구가 암자를 불사르고 중을 쫓아낸 법문인데 피상적으로 볼 때는, 그 스님네가 공
빠지고고요한데 머물러서 여자에게 음심淫心 내지 않는 것만 알았지 참으로 살아서 자재自在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 노파가속인이라고 꾸짖으면서 내쫓았다고 보통 생각합니다
.
만약 참으로 그렇게 본다면 그 노파가 암자를 불사르고 그 중을 쫓아낸 뜻도 영 모르거니와, 또 그 스님네가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도 따사로운 느낌이 없도다.’ 라고 한 뜻도 제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그 참뜻은 저 깊은데 있습니다. 누구든지 공부를 해서 그 노파가 암자를 불지르고 그 중을 쫓아낸 뜻을 확실히 알면, 일체법과 모든 공안에 조금도 막힘이 없이 전체를 다 통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공안은 그렇게 아주 깊은 법문이라 선종에서도 중대하게 관찰하는 것이니, 피상적 관찰로써는 그 법문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이야기가 숭악혜안崇嶽慧安국사에게 전해져 옵니다.
당나라 때 측천무후는 덕 높은 스승을 국사로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수
神秀대사와 혜안선사를 추천 받았습니다. 신수대사는 당시 강릉江陵 당양사當陽寺 머물고 있었습니다. 측천무후는 종려나무로 특별히 제작한 가마를 신수대사에게 보내어 문무백관이 도열한 가운데 가마에 오르게 합니다. 서울로 모셔 대궐안의 절에 모셔 더욱 공경스런 예를 베풀었습니다. 혜안선사는 태화산太和山 형악사衡嶽寺에서 두타행을 하다가 거기를 떠나 종남산終南山 거쳐 숭산 소림에서여기가 내 생명을 바칠 곳이다.’라고 하여 깊은 산 속에서 수도에만 전념했습니다. 하지만 측천무후가 세 번이나 사신을 보내서 간청하므로 할 수 없이 내려오게 됩니다. 두 분 모두 스승의 예로서 대우하고 존중하였습니다. 신수와 혜안은 둘 다 오조 홍인 스님의 제자로 사형사제간입니다. 측천무후는 궁중에서 두 스님을 목욕을 하게 하였는데 궁녀들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하였습니다
.
신수대사는 동심
動心이었으니 혜안선사는 부동심不動心이었습니다. 이에 측천무후는 탄복하면서입수入水 시지유장인始知有長人이로다. 물 속에 들어가 보아야 비로소 큰 사람을 알 수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
진원선와백옥시
秦苑仙娃白玉 장미행수쇄한회 薔薇行水灑寒灰
.
시문초호무관약
柴門草戶無關호대 뢰락금추격불개 磊落金鎚擊不開로다
.
궁궐의 선녀가 백옥같은 뺨에

장미강 물을 떠다가 식은 재에 뿌릴 뿐이네.
사립작 거적문에 자물쇠도 없는데

벼락같은 쇠망치로 두드려도 열지를 못하는구나.
아리따운 궁녀들이 혜안국사의 몸에 목욕물을 끼얹는 것이 식어버린 재에 물을 뿌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혜안국사가 모든 정욕을 떠나서 식어버린 재나 고목과 같이 되었다는 것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혜안선사를 국사로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등사傳燈史에서 가끔 이렇게 노파나 여인네들이 등장하여 스님들의 공부무게를 재어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주감파
趙州勘婆공안에도 노파가 등장합니다
.
조주선사가 사는 오대산 길목에 한 노파가 살았습니다. 스님들이 오다가다 그 노파에게 묻기를, ‘오대산은 어디로 가오?’ 하면 노파는 대답하기를곧장 가시오.’ 하여, 그 스님이 서너 걸음 내딛으면 노파는멀쩡한 스님들이 또 저렇게 가는구나.’ 하였습니다. 뒤에 물론 조주 스님에 의하여 감정을 당합니다만

덕산
德山 스님도 남방으로 용담龍潭 스님을 만나러 가다가 노파를 만나 곤욕을 치룹니다
.
주금강
朱金剛이라는 별명을 가질만큼 금강경의 대가를 자부하는 덕산 스님은 남방에 경전을 부정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것을 파하고자 내려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떡장수 노파를 만납니다. 배가 고파 요기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
스님께서는 무슨 경을 가지고 계십니까
?”
금강경 주석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나의 물음에 대답하면 떡을 보시할 것이요, 대답하지 못하면 돈을 주어도 떡을 팔지 않을 것입니다
.”
물어보시오
.”
금강경에서과거심 불가득
過去心 不可得이요, 현재심 불가득 現在心 不可得이요, 미래심 불가득 未來心 不可得이라고 하였는데 스님은 어떤 마음에 점을 찍으려고 하십니까
?”
덕산은 그만 이 노파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해 점심까지 굶은 채 길을 떠나게 됩니다
.
암두 스님이 법난을 피해 속복차림으로 한양
漢陽에서 뱃사공 노릇을 할 때 한 노파를 만난 이야기입니다
.
스님은 강 양편에다가 목판을 하나씩 세워놓고 강을 건너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들기게 하였습니다
.
어느 날 한 노파가 아기를 안고와서 강을 건너가고자 목판을 두드렸습니다
.
선사가 초막에서 돛대로 춤을 추면서 나오는데 노파가 물었습니다
.
노를 받쳐두고 돛대로 춤을 추는 것은 그만두고 말해 보시오. 내 손에 현재 안겨있는 이 아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
이에 선사가 노로 때리니 노파가 다시 말하였습니다
.
내가 일곱 아기를 낳았는데 여섯 명을 이미 물에 던졌다. 일곱번째도 지음자
知音者 만나지 못했으니 이놈 하나 마저도 살리지 못하겠구나.” 하고 아이를 바로 물에다가 던져 버렸습니다.

참공부인에게는 모두가 선지식입니다. 여기에 무슨 승속僧俗 있을 것이며, 남녀가 있으며, 노소老少 있겠습니까? 그저 치열한 선지禪知만이 번득이고 있을 뿐입니다. 암두 스님 덕산 스님은 노파와의 거량에서 이미 밀려났고 조주선사만이 겨우 스님네 체면을 세워주고 있습니다. 언제 이런 할머니들을 만나 곤욕을 치루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챙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하여 안목을 열어두는 도리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제일 망신살스러운 것은 살던 암자에서 쫓겨나고 암자까지 태워지는 수모를 당한 파자소암의 그 스님일 것입니다.
그러면 파자소암 그 공안에서 그 중은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도 따사로운 느낌이 없도다.’라고 하여 절대로 부동
不動하는 마음을 드러냈는데, 그 노파는 어째서 그런 중을속인놈이라고 꾸짓으면서 암자를 불사르고 쫓아냈고, 측천무후는 어째서 두 스님 가운데물 속에 들어가 보아야 비로소 큰 사람을 알 수 있도다.’라고 하여 부동심不動心 스님을 국사로 모셨습니까?

노파가 사는 곳은 참으로 깊고 깊어서 부처도 들어갈 수 없고, 조사도 들어갈 수 없으며, 물 한방울 바람 한 점 들어갈 수 없으나, 바짝 마른 나무에 꽃을 피게 하고 차가운 바위 속에서 불이 나게 하는 그런 기술을 가졌습니다. 또 그 중은 큰 바다에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여, 하늘 닿는 물결 속에서 힘들이지 않고 저 바다 밑바닥에 이르러도 몸에는 물 한방울 묻지 않는 그런 기술을 가졌습니다.
그 두 사람이 그렇게 훌륭한 법을 가지고서 감옥에 들어가도 유유히 나올 수 있는 재주를 가졌어도, 불법은 꿈에도 알지 못하는 멍텅구리라는 것입니다
.
노파가 암자를 불사른 것이 상
입니까? 입니까? 상이라고 하면 그 중을 버리는 것이고, 벌이라고 하면 노파를 끌어묻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른 눈을 갖추어 골수를 철저하게 보면 그 중을 위하여 설욕할 뿐만 아니라 노파와 더불어 경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필경에 이 소식을 어떻게 통할 수 있겠습니까
?
누구든지 사량복탁
思量卜度으로써 이런가 저런가 상인가 벌인가를 따져서는 지옥에 들어가기를 화살과 같이 할 것입니다. 오직 참선공부를 하여 확철히 깨쳐야 이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
절대로 사량복탁이나 문자의 해석으로는 영원토록 이 법문의 뜻을 모르고 말며, 설사 알았다해도 이 법문의 뜻과는 어긋나고 말 것입니다.

일파유조수부득 一把柳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 和風搭在玉欄干이로다
한 줌의 버들가지를 거둘 수 없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걸어두도다.□

 

출처 http://www.haeinji.org/haeinchonglim/index.html?haeinchonglim=view&author_no=13&chapter_no=4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