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길The Correct Path of Zen : 禪門正路(선문정로) 退翁 性徹(Ven. Master Songch'ol) _ 조계종 종정, 해인사 방장 :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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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미 발행된 禪門正路(선문정로)에서 스님께서 특히 요점만을 직접 발췌한 것과, 화두공부하는데 대해 보충 설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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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一衆生而不具如來知慧 但爲妄想執著而不證得 若離妄想 一切然智 無碍智 則得現前(八十華嚴 第五十) 무일중생이불구여래지혜 단위망상집저이불증득 약리망상 일체연지 무애지 칙득현전(팔십화엄 제오십) 여래의 지혜를 갖추지 않은 중생은 하나도 없지만 망상의 집착 때문에 증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여의면 모든 자연지(自然智)와 무애지(無碍智)가 나타나느니라.
⊙ 여래의 지혜는 불성을 말함이니, 불성을 가리고 있는 망상을 버리면 불성이 저절로 나타난다.
一切衆生 悉有佛性 煩惱覆故 不知不見(大涅槃經 第七) 일체중생 실유불성 번뇌복고 불지불견(대열반경 제칠) 모든 중생들이 불성이 있으나 번뇌에 덮혀서 이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느니라.
如是佛性 唯佛能知(大涅槃經 第七) ; 여시불성 유불능지(대열반경 제칠) 이와 같은 불성은 오직 부처만이 알 수 있느니라.
因見佛性 成阿뇩多羅三막三菩堤(大涅槃經 第七) ;인견불성 성아뇩다라삼막삼보제(대열반경 제칠) 불성을 보므로 무상정각을 이루느나리.
⊙ 불성은 망상이 다 끊어진 부처만이 볼 수 있으니, 이것이 무상정각이다.
諸阿羅漢 不見佛性(同上二十七) ; 제아라한 불견불성(동상이십칠) 모든 아라한은 불성을 보지 못하느니라.
菩薩位階十地 尙不明了知見佛性(同上 八) ; 보살위계십지 상불명료지견불성(동상 팔) 보살의 지위가 십지에 이르러도 아직 불성을 밝게 보지는 못하느니라.
⊙ 보살의 지위가 제십자가 되어도 불성을 밝게 보지 못함은 미세한 망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니, 나한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深信含生同一眞性 但爲客塵妄心所覆 不能顯了 若也捨妄歸眞 寂然無爲 名爲理入(達磨 思行錄) 심신함생동일진성 단위객진망심소복 불능현료 약야사망귀진 적연무위 명위리입(달마 사행록) 중생들이 다 같은 참 성품임을 깊이 믿으나, 객진인 망심에 덮여 있어 완전히 나타나지 못한다. 만약 망상을 버리고 참 성품에 돌아오면 고요하여 함이 없으니 이치에 든다[理入(이입)]고 하느니라.
⊙ 이것은 돈황본 등으로 보아 달마가 친히 설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萬法盡在自性 妄念浮雲蓋覆 自性不得明 吹却迷妄 內外明徹 於自性中 萬法皆現(敦煌本壇經) 만법진재자성 망념부운개복 자성불득명 취각미망 내외명철 어자성중 만법개현(돈황본단경) 만법이 모두 자성 속에 있지만 망념의 뜬 구름에 덮혀서 자성이 밝지 못하다. 미망을 불어 없애면 안팎이 사무쳐 밝아서 자성 속에 만법이 다 나타나느니라.
⊙ "안팎이 사무쳐 밝음[內外明徹(내외명철)]"을 부처님께서는 유리병 속에 불을 밝혔을 때와 같이 안팎이 밝다 하고 그것을 묘각(妙覺)이라 하였다.
刹那間 妄念俱滅 內外明徹 識自本心 卽是解說 卽是無念(壇經) 찰나간 망념구멸 내외명철 식자본심 즉시해설 즉시무념(단경) _찰나간에 망념이 다 없어지고 안팎이 사무치도록 밝아서 자기의 본심을 아는 것이 해탈이며 무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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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경(壇經)의 유행본(流行本)에서 "견성한 사람도 이와 같다"고 하였다. 내외명철(內外明徹) 돈수무념(敦修無念) 등은 돈황본(敦煌本)과 유행본(流行本)이 같은 내용으로서 단경에 표현된 6조의 근본사상은 변함이 없다. 즉 내외명철(內外明徹)하면 견성이며 망상이 다 떨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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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이라고 한 것이다. 불성을 덮은 망상이 끊어진 것을 견성이라고 함은 불교의 근본원리이니, 부처와 조사의 말씀이 다를 바 없다.
菩薩地盡 遠離微細 得見心性 名究竟覺(보살지진 원리미세 득견심성 명구경각)_起信論 보살의 지위가 다하여 미세망념을 영원히 버리면 심성을 보니, 구경각이라고 이름하느니라. 妄心滅則 法身顯現(同上) ; 망심멸칙 법신현현(동상) 망심이 다 없어지면 법신이 나타나느니라.
⊙ 법신은 법성신(法性身)이니, 불성과 같은 말이다.
除滅無明 見本法身(同上) ; 제멸무명 견본법신(동상) 무명을 다 없애버리면 본래의 법신을 보느니라. 諸佛如來 唯是法身(同上) ; 제불여래 유시법신(동상) 모든 부처와 여래는 바로 법신이니라.
⊙ {기신론}은 공인된 대승불교의 총론이다. 망상이 다 떨어진 구경각을 견성이라고 함은 부처와 조사들의 말씀이 일치하고 있다.
十地終心 金剛喩定 無垢地中 微細習氣心念都盡 故云 得見心性(賢首 起信義記下) 십지종심 금강유정 무구지중 미세습기심념도진 고운 득견심성(현수 기신의기하) 십지의 최후심인 금강유정의 무구지에서 미세한 습기인 심념(心念)이 모두 없어지는 까닭에 심성을 본다고 하니라.
⊙ 교가(敎家)의 권위인 현수(賢首)도 십지에서 미세한 망상이 끊어져야만 견성이라고 하였다.
十地聖人 說法如雲如雨 見性如隔羅穀(雲門·傳燈錄) 십지성인 설법여운여우 견성여격라곡(운문·전등록) 십지의 성인이 법문을 구름 일어나듯 비 오듯 하여도, 견성에 있어서는 엷은 비단으로 눈을 가리고 보는 것과 같느니라.
如明眼人 隔於輕穀 都衆色像 究竟地菩薩 都一切境 亦爾 如明眼人 無所障隔都衆色相 如來亦爾 여명안인 격어경곡 도중색상 구경지보살 도일체경 역이 여명안인 무소장격도중색상 여래역이 눈 밝은 사람이 엷은 비단으로 눈을 가리고 모든 색상을 보는 것과 같이, 구경지 보살이 모든 경계를 보는 것도 이와 같느니라. 눈 밝은 사람이 가리움없이 모든 색상을 보는 것과 같이 여래도 이러하니라.
⊙ 십지의 구경지보살도 미세한 망상이 남아 있으므로 견성이 아니다.
悟人頓修 自性頓修(壇經) ; 오인돈수 자성돈수(단경) 깨친 사람은 단박에 닦느니라. 자성을 단박에 깨달으니라.
⊙ 돈황본(敦煌本)에서의 이 구절이 유행본(流行本)에서는 '迷人漸契 悟人頓修 頓悟頓修 亦無漸次(미인점계 오인돈수 돈오돈수 역무점차)'―"미혹한 사람은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사람은 단박 닦느니라. 단박 깨치고 단박 닦음에는 역시 점차(漸次)가 없느니라"―로 표현되어 돈수(頓修)의 주장은 동일하다. 돈황(頓煌) · 유행(流行) 각 본에서의 공통적인 돈수(頓修)주장은 육조의 근본법문이요, 육조는 깨친 후의 점수(漸修)를 거론하지 않았다.
頓悟頓修 一念不生 前後際斷(돈오돈수 일념불생 전후제단) ; 都序(도서) 돈오돈수는 한 생각도 나지 않아서 앞과 뒤가 끊어졌느니라. 妄念都滅盡 盡處還抹却(망념도멸진 진처환말각) ; 參禪錄(참선록)―太古錄(태고록) 망념이 다 끊어지면 끊어진 곳도 또한 없애라.
⊙ 망념이 다 끊어졌으나 끊어진 곳에 머물러 있으면 이것은 크게 죽었으나 살아나지 못한 것[大死不活(대사불활)]이다. 그러므로 망념이 다 끊어진 곳도 없애버려야 바로 깨치게 된다.
若人 一念不生 前後際斷 頓悟頓修 頓斷頓證 無地位矣(西山集 四) 야인 일념불생 전후제단 돈오돈수 돈단돈증 무지위의(서산집 사) 만약 누구든지 한 생각도 나지 않아서 앞과 뒤가 끊어지면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으며 단박에 끊고 단박에 증하여 지위가 없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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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돈오는 그 내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점수의 돈오는 번뇌망상이 그대로이므로 망상 제거하는 것을 점수라 하고, 돈수의 돈오는 한 생각도 나지 않는 대무심이므로 망상제거의 필요가 없어서 돈수라고 한다.
보조의 돈오는 망상이 그대로이므로 십신초(十信初)라 하였고, 육조의 돈오는 묘각인 내외명철이므로 불지(佛地)인 무념이라 하여 상반된다. 선종의 정안종사들은 모두 일념불생을 지나서 무념 아님이 없으니 망상 그대로인 보조 주장의 심신초는 상대의 가치도 없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일념불생(一念不生)이 되어도 일념불생에 머물러 있으면 대사불활(大師不活)로 견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法達 言下大悟 自言已後 念念修行佛行 大師言 佛行是佛(敦壇) 법달 언하대오 자언이후 염념수행불행 대사언 불행시불(돈단) 법달이 말 끝에 대오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이후로는 부처행을 수행하겠습니다" 하였다. 대사(大師)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행이 곧 부처니라"하셨다.
⊙ 돈오가 부처지위이므로 깨달음 이후 점수(漸修)는 필요없다. 부처행을 수행한다 함은 돈수하고 원증(圓證)하여 행하는 것이다.
我六代大師 一一皆言 單刀直入 直了見性 不言階漸 夫學道者 須頓悟漸修(神會遺集 三) 아육대대사 일일개언 단도직입 직료견성 불언계점 부학도자 수돈오점수(신회유집 삼) 우리의 육대(六代)조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단도직입적으로 곧바로 견성함을 말하였지 계단과 점차를 말하지 않았느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돈오하여 점수할지니라.
⊙ {신회유집}에는 돈수사상이 많으므로 호적(胡適)은 신회(神會)가 돈수(頓修)를 말한다고 단언하였으나, 신회(神會)는 선종(禪宗)이 돈수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점수를 주장하였으니 점수(漸修)의 원조(元祖)는 신회가 아닐 수 없다.
先須頓悟 方可漸修者 此約解悟 故華嚴說 初發心時 便成正覺 然後 三賢十聖 次第修證(都序, 節要) 선수돈오 방가점수자 차약해오 고화엄설 초발심시 편성정각 연후 삼현십성 차제수증(도서, 절요) 먼저 돈오하고 나서야 점수한다 함은 해오(解悟)를 말한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말씀하기를 "처음 발심하는 때 곧 정각(正覺)을 이룬다" 하였다. 그 이후에 삼현(三賢)과 십성(十聖)을 차례로 수증하느니라.
悟後 初入十信位也(承襲圖·節要) ; 오후 초입십신위야(승습도·절요) 깨친 뒤에 처음으로 십신위(十信位)에 들어가느니라.
⊙ 삼현십성을 차례로 수증함은 분명히 교가(敎家)이어늘 이것을 교외별전인 선종(禪宗)이라고 주장하니 포복절도할 노릇이다.
頓悟自性 本來空寂 客塵煩惱 與前無異(修心訣) ; 돈오자성 본래공적 객진번뇌 여전무이(수심결) 자성이 본래 공적함을 알았으나 객진번뇌는 이전과 다름이 없다.
⊙ 부처와 조사는 대무심지(大無心地)인 구경각을 견성이라고 하였는데 보조(普照)는 번뇌망상이 이전과 다름 없는 십신초(十信初)를 견성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불조(佛祖)의 말씀에 근본적으로 위배된 것이다.
一念回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 頓悟也 일념회광 견자본성 이차성지 무루지성 본자구족 즉여제불 분호불수 고운 돈오야 한 생각에 빛을 돌이켜 자기의 본성을 보니 어 성품자리는 무루의 지성(智性)이 본래 구족하여 모든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까닭에 돈오라고 하느니라.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濕氣 卒難頓除 故依悟而修 長養聖胎 久久成聖 故言漸修也(修心訣) 수오본성 여불무수 무시습기 졸난돈제 고의오이수 장양성태 구구성성 고언점수야(수심결) 비록 본성이 부처와 같음을 깨쳤으나 시작도 없이 익혀온 기운[習氣]을 단박 없애기 어려우니라. 그러므로 깨침을 의지하여 닦아서 길이 부처종자[聖胎]를 길러 오랜만에 성인이 되므로 점수라고 하느니라.
⊙ 보조는 번뇌망상이 이전과 다름없는 십신초(十信初)를 견성이라고 하였으나 부처와 조사가 말한 견성은 아니다.
悟後 長須照察 妄念忽起 都不隨之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方始究竟 天下善知識 悟後 牧牛行 是也(修心訣) 오후 장수조찰 망념홀기 도불수지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방시구경 천하선지식 오후 목우행 시야(수심결) 깨친 뒤에 오랫동안 잘 살펴서 망상이 홀연히 일어나도 결코 따라가지 않고 망상을 버리고 또 버려서 버릴 것이 없게 되면 바야흐로 구경이니라. 천하 선지식의 깨친 뒤 목우행(牧牛行)은 이것이리라.
⊙ 화엄·열반 등의 대경(大經)에서 부처님은 망상이 다 끊어진 부처의 지위를 견성이라고 하여 더 닦을 필요가 없음을 말하였다. 육조스님은 {단경}에서 내외명철(內外明徹)이 견성임을 자세히 말씀하여 더 닦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며, 가장 오래된 돈황본(敦煌本)에서도 점수(漸修)사상을 찾을 수 없다. 보조는 망상이 중첩한 십신(十信)을 견성이라 하고 그 망상 제거하는 것을 점수라 하여, 6조의 말씀과 반대됨을 볼 수 있다. 망상이 중중첩첩한 십신을 견성이라고 한 자체가 잘못이며 망상을 그대로 두면 안되므로 자연히 점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점수사상은 교가(敎家)요, 선종(禪宗)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敎意者 不變隨緣 頓悟漸修 有先有後 禪法者 一念中 不變隨緣 性相體用 元是一時 교의자 불변수연 돈오점수 유선유후 선법자 일념중 불변수연 성상체용 원시일시 교에는 불변과 수연, 돈오와 점수에 선후가 있는 것이요, 선에는 한 생각에 불변과 수연, 성과 상, 체와 용이 원래 동시에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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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서산(西山)의 [선가구감(禪家龜鑑)]에 있는 말인데, 돈오점수는 교가의 사상이요 선종이 아님을 말하였다.
今錯承禪旨者 或以頓漸之門爲正脈 圓頓之敎爲宗乘 其訪法之愆 余何敢言(禪敎訣) 금착승선지자 혹이돈점지문위정맥 원돈지교위종승 기방법지건 여하감언(선교결) 지금 선의 뜻을 잘못 이어받은 이는, 돈점의 문으로 정통맥을 삼기도 하고 원돈의 교로써 종승을 삼기도 하니, 법을 비방한 그 허물을 내가 어찌 감히 말하리오.
⊙ 돈오점수와 원돈신해 사상은 교가요 선종이 아니거늘 이것을 선종이라고 잘못 주장함은 대법을 비방한 큰 허물이라고 서산(西山)은 경고하였다. 또한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도 동일한 구절이 있다.
荷澤 是知解宗師(節要) ; 하택 시지해종사(절요) 하택은 지해의 종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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