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圜悟)스님께서 풍주(灃州)의 협산(夾山) 영천선원(靈泉禪院)에 주석하시면서
설두 중현(雪竇重顯)스님의 송고(頌古)에 대하여 평창한 말씀의 핵심.
- 벽암록 中
제56칙 흠산의 화살 한 대(欽山一鏃)
- [垂示]
垂示云. 諸佛不曾出世, 亦無一法與人, 祖師不曾西來, 未嘗以心傳授.
自是時人不了, 向外馳求, 殊不知自己脚跟下, 一段大事因緣, 千聖亦摸索不著.
只如今見不見聞不聞, 說不說知不知, 從什麽處得來.
若未能洞達, 且向葛藤窟裏會取. 試擧看.
[수시]
모든 부처님은 일찍이 세사에 출현하였으되
사람에게 한 법도 전해준 적이 없으며,
조사도 일찍이 서쪽에서 오셨으되 마음을 전수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밖으로 치달리며,
자기 자신에게 있는 하나의 대사인연(大事因緣)도
일천 성인이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에, 그런데 지금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말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만일 통달하지 못했다면 갈등(언어)의 소굴 속에서 알아차리도록 하라.
시험삼아 거량해보리라.
[본칙]
擧. 良禪客, 問欽山, 一鏃破三關時如何. 山云, 放出關中主, 看. 良云, 恁則知過必改.
山云, 更待何時. 良云, 好箭放, 不著所在. 便出. 山云, 且來黎. 良回首.
山把住云, 一鏃破三關, 卽且止. 試與欽山發箭, 看. 良擬議.
山打七棒云, 且聽, 這漢疑三十年.
거론하다.(擧.)
거양선객(巨良禪客)이 흠산(欽山)스님에게 물었다.
“한 화살촉〔鏃〕으로 세 관문을 격파했을 때는 어떠합니까?”(良禪客, 問欽山, 一鏃破三關時如何.)
- 준험하군. 기특하다. 참으로 용맹스런 장수로군.
“관문 속에 있는 주인공을 내놔보아라.”(山云, 放出關中主, 看.)
- 정면으로 묻는군.
그대들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뒷산은 높고 앞산은 낮다.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지요.”(良云, 恁則知過必改.)
- 상황을 보고 작전을 폈다.
벌써 두번째에 떨어져버렸다.
“당장에 고쳐봐라!”(山云, 更待何時.)
-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한다.
바람이 스치니 풀잎이 쓰러진다.
“화살은 잘 쏘셨는데 맞지는 않았습니다”하고 거양선객이 바로 나가버리자,
(良云, 好箭放, 不著所在. 便出.)
- 예상했던 대로군! 진술을 번복하려고 머뭇거리는가?
두 번째 방망이는 사람을 쳐도 아프지 않다.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잠깐, 스님!”(山云, 且來黎.)
- 부르기는 쉬워도 보내기는 쉽지 않을걸. 불러 세워놓고 무얼 하려고.
거양선객이 머리를 돌리자,(良回首.)
- 과연 붙잡아 들이지 못하는군. 적중했다.
흠산스님이 멱살을 움켜쥐고 말하였다.
“한 화살로 세 관문을 격파하는 것은 그만두고 저 흠산에다 화살을 쏘아보아라.”
(山把住云, 一鏃破三關, 卽且止. 試與欽山發箭, 看.)
- 호랑이 아가리 속에 몸을 디밀었구나. 역공격을 당했군.
의로움을 보고서도 실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거양선객이 말을 할 듯 망설이자,(良擬議.)
- 과연 찾지를 못했군. (원오스님이) 두드리면서 애석하다고 말하였다.
흠산스님이 일곱 방망이를 치면서 말하였다.
“이놈이 앞으로도 30년은 더 헤매야 정신을 차리겠군!”(山打七棒云, 且聽, 這漢疑三十年.)
- 법령을 제대로 수행하였군.
시작도 있고 끝도 있으며 처음도 바르고 끝도 바르구나.
이 방망이는 마땅히 (그 선객이) 흠산스님에게 먹였어야 했는데…….
[평창]
거양선객은 또한 어엿한 장수였다.
흠산스님의 손아귀에서 요리조리 움직이다 안장에서 떨어졌다가도
번개처럼 말에 솟구쳐 올라 싸우다가
뒤에 가서 안타깝게도 활은 부러지고 화살도 다한 것이다.
그러나 장군 이광(李廣)은 아름다운 명성이 있으면서도 제후에 봉해지지 않았으나,
이러기도 흔하지는 않다.
이 공안은 한 번 나오고 한 번 들어가며 한 번 사로잡고 한 번 놓아주면서,
상황에 직면해서는 정면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정면에서 보여주면서도 상황에 신속했으니,
이는 모두 유무 득실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를 현묘한 기틀〔玄機〕이라고 말한다.
조금이라도 역량이 부족하면 바로 엎어지고 거꾸러진다.
그러나 스님도 영특한 납자였다.
그의 물음은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으며 흠산스님도 작가종사라
바로 그의 물음의 핵심을 알아버린 것이다.
촉(鏃)이란 화살촉을 말한다.
“한 화살촉으로 세 관문을 뚫을 때는 어떠합니까?”라고 묻자,
흠산스님은 알면서도 “그대가 쏘아서 뚫을 수 있는 것은 그만두고
관문 속에 들어 있는 주인공을 내놔보아라”고 하자,
거양선객은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겠습니다”라고 말하니 기특하다 하겠다.
흠산스님은 “지금 당장 고쳐봐라!”고 하였다.
흠산스님이 이렇게 그를 지도했던 것을 살펴보면,
흠산의 물음에는 조금도 빈틈이나 부족한 곳이 없었다.
뒤이어 거양선객이 “화살은 잘 쏘셨지만 맞추지는 못했습니다”하고
바로 소매를 떨치며 나가버리니,
흠산스님은 그처럼 말하는 것을 보자마자 곧 그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스님!”
거양선객은 과연 그대로 가지 않고 머리를 돌렸다.
이에 흠산스님은 멱살을 움켜쥐고서
“한 화살이 세 관문을 꿰뚫었다는 것은 그만두고,
이 흠산에게 화살을 쏴보아라”고 하였다.
거양선객이 머뭇거리자, 흠산스님은 바로 일곱 방망이를 후려친 후
다시 뒤이어 한 편의 주문을 외웠다.
“이놈이 앞으로도 30년은 더 헤매야 정신을 차리겠군.”
요즈음의 선객들은
“무엇 때문에 여덟 번 치지도 않고, 여섯 번 치지도 않고서 일곱 번만 쳤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 흠산스님에게 화살을 쏴보아라’고 말할 때 바로 후려쳤어야지!”
라고 다들 말하는데 이는 비슷하기는 하지만 옳지는 않다.
이 공안은 가슴속에 조그만치도 이러니 저러니 하는 도리와 계교를 품지 않고
언어 밖으로 뛰어나야만, 일구로써 세 관문을 타파할 수 있으며
화살을 쏠 수 있다.
만일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마음이 있다면 끝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 거양선객이 그러한 사람이었다면 흠산스님 또한 매우 위험했을 것이다.
그가 이 법령을 시행하지 못하였기에 거꾸로 당했던 것이다.
말해보라, 관문 속의 주인공은 결국 어떠한 사람을까?
설두스님의 송을 살펴보아라.
[송]
與君放出關中主, 放箭之徒莫莽鹵. 取箇眼兮耳必聾, 捨箇耳兮目雙瞽.
可鄰一鏃破三關, 的的分明箭後路. 君不見, 玄沙有言兮, 大丈夫先天爲心祖.
그대에게 관문 속의 주인공을 내보내노니(與君放出關中主,)
- 적중했다. 정통으로 빗나갔다.
뒤로 물러서라, 뒤로 물러서.
활을 쏜 무리들은 거칠게 굴지 말라.(放箭之徒莫莽鹵.)
- 한 번 죽더니 다시는 살아나질 못하는군. 완전히 잘못됐다.
이미 지나가서 흔적도 없다.
눈을 보호하자니 반드시 귀먹을 것이오.(取箇眼兮耳必聾,)
- 좌측 눈의 무게는 반 근이지.
한 번 용서해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귀를 버리자니 두 눈이 멀게 될 터이다.(捨箇耳兮目雙瞽.)
- 우측 눈의 무게는 여덟 냥이다.
하나밖에 얻을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면 구덩이와 참호에 떨어질 것이오,
물러가면 사나운 호랑이가 다리를 물것이다.
아아! 한 화살이 세 관문을 타파함이여!(可鄰一鏃破三關,)
- 모든 기틀이 이처럼 (관문을 타파해) 올 때는 어찌하겠는가?
무슨 말을 하느냐? 산산조각 났다.
화살이 지난 뒷길은 또렷또렷 분명하다.(的的分明箭後路.)
- 죽은 놈아! 쯧쯧!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보았느냐?
그대는 듣지 못하였느냐?(君不見,)
- 문둥이가 짝을 끌고 간다. (옛사람의) 말을 들먹이네.
현사(玄沙)스님이 하신(玄沙有言兮,)
- 어느 것인들 현사(玄沙)스님이 아니랴!
“대장부란 천지가 개벽되기 이전에 이미 마음으로 조종을 삼는다”라는 말을.
(大丈夫先天爲心祖.)
- 한 구절[一句]로 많은 흐름[衆流]을 끊어버리니
만 가지 기틀이 깡그리 녹아 없어졌다.
(대장부의) 본래면목이 나(원오스님)의 손안에 있다.
천지 세계가 생기기 이전에 어느 곳에서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하랴!
[평창]
이 송의 몇 구절은 귀종(歸宗)스님의 송 가운데서 취한 것이다.
귀종스님이 지난날 이 송을 지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귀종(歸宗)”이라 법호를 삼았는데 종문(宗門)에서는 이를
“종지(宗旨)가 담겨 있는 말”이라 한다.
그 뒤 동안(同安)스님이 소문을 듣고서,
“양공(良公)은 훌륭하게 화살을 쏘았지만
결국 과녁을 적중 시키진 못하였다”고 하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과녁을 적중시킬 수 있습니까?”
“관문 안의 주인공은 어떤 사람인가?”
그 후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흠산스님에게 말하니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양공(良公)이 만일 (동안스님이) 위와 같이 말했던 대로 이해했다면
흠산스님의 (위와 같은) 질문을 결국은 면했을 것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동안스님 또한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설두스님은 “그대에게 관문 속의 주인공을 내보내니”라고 송했는데,
이는 눈을 떠도 옳고 감아도 옳다.
유형·무형을 모조리 잘라 세 동강이〔三段〕로 만들었다.
“활을 쏜 무리들은 거칠게 굴지 말라”는 것은
훌륭하게 활을 쏠 수 있다면 거칠게 굴지 않겠지만
잘 쏘지 못한다면 거칠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눈을 보호하자니 반드시 귀가 먹을 것이요,
귀를 버리자니 두 눈이 소경이 될 터이다”라고 하였는데,
말해보라, 눈을 보호했는데 무엇 때문에 귀가 멀며,
귀를 버렸는데 무엇 때문에 두 눈이 소경이 되는 걸까?
이 말은 취하거나 버림이 없어야만이 꿰뚫을 수 있으니,
취하거나 버림이 있으면 이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아아, 한 화살이 세 관문을 타파함이여!
화살이 지난 뒷길이 또렷또렷 분명하다”는 것은
거양선객이 “한 화살촉으로 세 관문을 타파했을 경우는 어떠합니까?”라고 묻자,
흠산스님이 “관문속의 주인공을 내놔보아라”는 대답을 송한 것이다.
그리고 나중의 동안(同安)스님의 공안까지도 모두가 화살이 지난 뒷길이다.
궁극적으로 어떻다는 것이냐?
“그대는 듣지 못하였느냐?
현사(玄沙)스님의 ‘대장부는 천지가 개벽되기 이전에
벌써 마음으로 조종(祖宗)을 삼는다’라는 말을”이라고 하였는데,
늘 마음을 조종의 지극한 법[極則]으로 삼는데,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천지가 채 발생하기 이전에
도리어 이 마음이 조종(祖宗)이 된다고 하였을까?
만약 이 시절 인연을 꿰뚫을 수 있으면
관문 속에 있는 주인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화살 지난 뒷길이 또렷또렷하다”는 것은, 과녁에 적중하고자 했으나,
화살이 날아간 뒤에 지나간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말해보라, 무엇이 화살이 날아간 흔적인가를.
반드시 제 스스로가 정신을 차려야만 알 수 있다.
“대장부는 천지가 개벽되기 전에 이미 마음을 조종으로 삼는다”하였는데,
현사스님은 항상 이 말로써 대중법문을 하였다.
이는 원래 귀종스님의 송이었는데
설두스님이 현사스님의 말이라고 하며 잘못 인용한 것이다.
요즈음 참선하는 사람들이 만약 이 마음으로 조종(祖宗)을 삼는다면
미륵 부처님이 하생(下生)하도록 참구하여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대장부란 마음을 으뜸으로 해도 오히려 아손(兒孫)이며,
천지가 나뉘기 이전을 으뜸으로 해도 벌써 두 번째에 떨어진다.
말해보라, 그렇다면 어떤 것이 천지보다도 먼저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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